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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파룬따파는 내 딸에게 최고의 교육이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딸이 두 살 때, 아버지는 대법 진상을 알린 이유로 사악한 공산당의 박해를 받았고, 남편도 압력을 받아 대법을 수련하는 저를 떠났습니다. 한 친구가 제게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문제가 많으니 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대법을 수련하는 저는 딸과 반드시 걸어 나올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딸이 세 살 때 저는 늘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엄마랑 같이 대법을 수련할까?” 딸은 항상 “아니요, 크면 연마할게요!”하고는 웃으며 달아났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의 깨달음이 너무 부족했고 어쩌면 기연이 아직 안 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속인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딸을 키웠습니다. 특히 각종 조기교육과 유아교육의 유혹으로 딸을 데리고 이런 곳에 참가하며 피곤한 줄 모르고 즐거웠습니다. 결국 딸은 문제가 많았고 키우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밤에 잘 때면 울며 보챘고 또 늘 이불에 오줌을 쌌습니다. 감기에 자주 걸려 늘 병원에 다녔고, 어린이집에 가기만 하면 울어서 항상 우리 온 가족을 기진맥진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보고 조바심이 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맨날 이것저것을 교육이라고 가르치는데, 아이를 수련하도록 인도해야 하지 않겠느냐? 파룬따파(法輪大法)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육이란다.”

연고가 사라지고 딸이 법을 얻다

딸이 네 살 되던 해, 한 가지 신기한 일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딸이 유치원에서 요충에 전염되어 저는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딸에게 발라줬습니다. 본래 며칠이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보름 동안 발랐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딸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몇 분 후에 연고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연고가 어디 갔지?” 이때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딸을 데리고 수련하라고 점화해주신 건가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와 작은 소리로 이 일을 소곤거렸는데, 침대에 엎드려 있는 딸아이에게 들렸을 줄이야! 딸은 몸을 뒤척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엄마, 나 이제 대법을 수련할래요!”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웃었습니다! 그 이후 딸에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틀어줬더니 이틀 만에 약도 없이 나았습니다.

이 신기한 경험에 딸은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딸은 자기 전에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아주 빨리 이불에 오줌 싸고, 유치원에 가면 울고 떼쓰며, 자주 감기에 걸리는 등 안 좋은 상태들이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딸은 또 가끔 열이 나는 증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부님의 설법만 들으면 항상 하룻밤이면 회복돼 다음 날에는 평소대로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아이의 몸을 정화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딸은 법을 얻게 됐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었는데 신기하게 글자를 알게 되다

딸이 법을 얻은 후 저는 딸을 데리고 ‘전법륜’을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딸이 너무 어려서 글자를 모르기에, 제가 한 구절씩 읽어주며 딸에게 한 마디씩 배우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딸은 장난이 심해서 늘 몇 마디만 읽고는 온 집안을 껑충껑충 뛰어다녔습니다. 한 단락 법을 배울 때마다 몇 번씩이나 멈춰야 했고, 끊임없이 달래야 했기에 매우 짜증이 났습니다. 어머니도 “아이가 너무 어려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하고 권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만약 딸이 학교에 가서 글자를 배운 후 다시 ‘전법륜’을 읽는다면 아직도 2년이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맨 처음 아이를 데리고 법을 읽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그 기간 몇 번 정체됐지만 저는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견뎌냈습니다. 그러자 딸도 점점 조용해졌고 마구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딸은 저를 따라 ‘전법륜’을 한 번 다 읽게 됐습니다.

‘전법륜’을 한 번 읽고 나니 딸은 5살이 넘었습니다. 그날은 햇살이 쨍쨍했던 기억이 납니다. 딸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외출했는데, 딸은 즐겁게 차 안의 광고를 가리키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뜻밖에도 딸은 글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에도 가면서 줄곧 길가 점포의 간판을 읽었는데 틀린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딸에게 글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저를 따라 ‘전법륜’을 읽을 때도 제가 한 구절 읽으면 딸은 한 구절씩 따라 읽었고, 특히 장난이 심할 때는 아예 책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글자들을 알게 됐어?”라고 묻자 딸은 “저도 몰랐는데 그냥 이 글자들이 갑자기 익숙해져 단번에 읽을 수 있게 됐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전법륜’은 불법(佛法)이란다. 이는 네가 엄마와 함께 ‘전법륜’을 끝까지 읽는 것을 해냈기에 나타난 기적이야!”라고 알려주자 딸은 매우 신기해하며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딸과 함께 두 번째로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딸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책 안에 딸이 모르는 글자가 없었습니다. 몇 달 후, 딸은 또 세 번째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딸은 저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법을 읽을 때 눈앞에 커다란 화면이 있으며, 끊임없이 몇몇 광경들이 나타나서 딸아이가 모든 말의 표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필부(匹夫)는 모욕을 당하면 검을 뽑아들고 싸운다.”[1]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면, 딸은 고대의 남자 두 명이 칼을 휘두르며 일어서는 것을 보고 곧 뜻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딸이 어려서부터 불광(佛光) 속에 젖어 있도록, 어린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와 보살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법공부 시간이 부족하게 됐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매일 일찍 일어나 법공부를 한 후, 학교에 간다면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을 거야.”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1학년 아이가 매일 일찍 일어나 법공부를 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러자 순수한 딸은 “저는 할 수 있어요!”하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또 즐겁게 웃었습니다. 그래서 1학년 첫날부터 딸은 정말 매일 일찍 일어나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반에서 독서위원회 회원으로서 매일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아침 독서를 해야 했습니다. 딸이 이렇게 잘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비록 그동안 조금의 변덕도 있었지만 매일 법공부를 하는 습관도 길렀습니다. 또한 제 어머니의 관념도 바꾸어 놓았는데,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아이는 보통 아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명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과외 학원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다

현재 중국의 아이들은 악질적인 중학교 입시 경쟁에서 시달리는데 고생이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학년 때 우리는 딸을 어떠한 과외 학원에도 보내지 않고 매일 꾸준히 법공부를 시켰는데, 딸의 학업 성적은 매우 좋았습니다. 고학년 이후에는 중학교 입시 때문에 미리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컸는데 심지어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평일 수업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딸도 이런 기형적인 교육 속에서 힘에 부쳐 학원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차례대로 작문과 수학, 그리고 영어 과외를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강도 높은 과외는 딸의 자유시간을 잃게 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법공부와 수련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습니다. 딸은 온종일 생기가 없고 공부 효율은 낮았으며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개인분투는 인생의 작은 것을 개변할 수 있으며, 일부 작은 것들은 개인분투를 통해 일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당신이 개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업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업을 짓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1]

저는 저와 딸이 이 길을 바르게 걷지 못했고 심지어는 악의적인 경쟁과 기형적인 교육을 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와 딸은 안으로 찾았고, 명을 구하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강한 집착심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바로잡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록 법리는 명백하게 알고 있었지만 확실한 명리 앞에서 때때로 내려놓지 못하고, 요 몇 년은 과외의 악순환에서 딸과 여러 번 넘어졌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명리를 담담하게 보고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점화시켜 주셨습니다. 딸은 저에게 점수에 집착할수록 성적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수학을 제외한 기타 과외는 모두 포기했습니다. 너무 앞서가고 너무 어려운 내용에 대해 저는 딸에게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딸에게 매일 법공부와 대법제자의 심득교류를 보는 것을 보증하도록 독려해 딸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됐으며 딸의 정신 상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또 의외로 더는 과외를 하지 않은 국어와 영어는 기말고사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요 몇 년간 중국에서는 명문학교 입시로 인한 아이들의 우울증과 학업에 대한 싫증과 자살, 그리고 돌연사 등 일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딸에게 학교 교육의 좋지 않은 풍조에 대해 되새기게 했습니다. 수련의 법리를 인식함에 따라 딸은 명문학교 입학에 대해 점차 담담하게 내려놓았으며 과외에 대해서도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어머니,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겠어요. 법공부와 수련을 보장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고, 인생 숙명의 도리를 알지 못했다면 저와 딸은 이 혼란한 현상 속에서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것이고, 심신이 지쳐버렸을 것입니다.

전통으로 돌아가 전자제품의 유혹을 막아내다

스마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 활동은 게임, 만화 보기, 드라마나 스타를 쫓는 등등입니다. 비록 대법을 수련하지만 이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딸도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때 딸도 휴대폰에 빠지고 만화를 보며 수련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극단적으로 변해 쉽게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설법만 들어도 차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접촉하기만 하면 또 성격이 확 바뀌어 딸을 기진맥진하게 했습니다. 정말로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게임을 하는 것도, 일으킨 것은 똑같은 작용이고, 같은 이치이다. 당신이 끊는데, 당신이 끊으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닌가? 안 된다. 나는 기어코 당신이 보게 할 것이다. 안 보는가? 당신에게 일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에게 공부하지 못하게 하며, 당신 사상으로 하여금 그것을 가지고 놀고 싶게 한다. 안 보면 나는 당신에게 꿈에서라도 가지고 놀게 할 것이다.”[2]

딸은 법리상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생활 환경은 이미 완전히 스마트화로 가득 차 있기에 매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수련환경을 보증하기 위해 우리 집은 스마트폰 하나만 보유하고 꼭 필요한 생활 용도가 아니면 절대 켜지 않았습니다. 한가한 시간에는 딸에게 대법제자들의 미디어에 있는 진상과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는데, ‘유유자재’, ‘삼자경’, ‘소건곤’, ‘소담풍운’과 같은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딸의 성장에 동반했고 딸아이를 전통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도 딸을 데리고 수공예를 하면서 손을 많이 쓰라고 격려했습니다. 딸의 수제품을 반 친구들은 모두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학교 물물교환 모임에서 친구들이 의외로 앞다투어 몽땅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또한 딸에게 전자기기를 갖고 놀지 않고도 평범하지 않은 근사한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비록 아직은 딸이 전자기기를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했고, 특히 이번 전염병 기간의 온라인 수업은 딸에게 약간의 반복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전보다 자제력이 많이 좋아졌고, 반에서 유일하게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딸은 늘 저에게 사부님께서는 항상 자신을 보살펴주시고 일깨워주신다고 했습니다. 딸은 전자기기 사용량이 과도할 때면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이 근질거리며 발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제때 바로잡고,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하면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속인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일지 모르지만, 대법을 수련하는 아이는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 아래 자신을 단속하고, 유혹을 물리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바꾸고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다

학교에서는 이기주의 기풍이 매우 심했고,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 앞에서 딸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딸과 서로 격려하며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조금씩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속에 딸은 넘어지고 일어서는 중에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2학년의 한 학기에서 딸이 아침 독서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다른 파트너인 친구는 매일 늦게 학교에 도착하며 학교에 도착하더라도 항상 빠져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이런 상태가 몇 달째 계속되자 딸은 매일 혼자서 규율도 지키고, 읽기도 하며, 입이 마르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 저에게 불평했습니다. 저는 “우리는 대법제자니, 고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자!”라고 말했습니다. 딸은 제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 마침내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그럼 어쩌지? 선생님에게 이야기해볼까? 아니면 그 친구들 부모님께 말 좀 해볼까?” 딸은 힘껏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또 “그럼 내일은 좀 늦게 가서 좀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렴!”하고 말했습니다. 딸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갈등이 더 커질 거예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딸은 전과 다름없이 묵직한 가방을 메고 버스를 쫓아서 나갔습니다. 나중에 제가 알기로는 이런 상태가 한 학기 동안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딸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여전히 매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아침 독서를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 번째 학기에는 아침 독서를 맡은 그 친구도 의외로 매일 일찍 학교에 왔습니다. 딸이 그 친구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매일 학교에 일찍 오고 싶어졌어.”

딸아이 반에 한 남학생이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매번 꼴찌였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습니다. 많은 친구가 그의 ‘작은 선생님’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때리고 고함치면서 그 남학생을 쫓아다니며 숙제를 완성시키다가 결국 모두 실패했고, 나중에는 그를 도와줄 친구가 없어졌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누가 ○남학생의 작은 선생님을 할래요?”라고 물었지만 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한번 묻자 딸이 조용히 손을 들었고 반 전체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시간을 들이면서 이런 골치 아픈 일을 자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긴장된 학업 압력에도 딸은 여전히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에 저도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딸은 책임지고 그의 학습을 도왔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모두 놀고 있었지만 딸은 그를 독촉해 틀린 것을 고치게 하고 문제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이 남학생도 협조하지 않아 딸도 저와 의논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만약 악으로 악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에게 고함치고 욕한다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은 덕을 잃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학생이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딸은 선의로 주의를 주며 말했습니다. “만약 네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는 너를 도울 수 없고, 누구도 너를 도와주려 하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치고 딸은 조용히 떠났습니다. 뜻밖에도 딸의 선의적인 권유가 정말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고, 제대로 공부했으며 딸의 도움에도 잘 협조했습니다. 기말고사에서 이 남학생은 최우수 진보상을 받았고 선생님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딸도 최고의 ‘어린 선생님’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대법 수련 속에서 딸은 책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또한 이런 경험들은 딸에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선(善)의 힘을 진실하게 체험하게 했고, 정말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법의 혜택 속에서 성장하면서 보통 아이들의 고민이 딸에게는 고생하고 고비를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기말마다 딸은 작은 선물을 준비해 선생님께 감사를 표했습니다. 아빠네 가족과 놀러 갈 때도 아줌마를 존중했고 여동생을 챙겨주었습니다. 딸의 진지함과 선량함은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선생님의 꼬마 조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딸은 자신의 공부 외에도, 학급 활동을 조직하고, 아침 낭독을 이끌며, 숙제를 거두고, 책과 우유를 안아오고, 점심을 타오며, 또 선생님을 도와 통계작성, 숙제 지도, 심지어는 친구를 도와 작문을 수정해주는 등등 매일 학교에서 바삐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때론 어린 학생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딸은 정말로 해냈습니다.

작년에 제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작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는 딸이 낙천적이고 자신감 있으며 영리한 데다 손재주까지 있는 것을 보고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전에 너에게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다고 말했는데, 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관건은 역시 사람의 마음에 있구나. 어떤 가정이든 좋은 교육을 해준다면 아이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되는구나.”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 딸은 대법을 수련해. 파룬따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육이야.” 친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습니다.

불은호탕(佛恩浩蕩), 이 몇 년간 딸의 성장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께서 직접 딸을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을 수없이 느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모두 사부님의 일깨움을 느낄 수 있으며, 저와 딸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파룬따파의 자비와 아름다움은 맑은 샘물이 흐르듯 딸의 마음에 흘러들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신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5/4063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