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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련형식으로부터 수련의 엄숙성을 논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엄숙하다는 법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많은 수련생이 수련에서 장기간 정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방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주의하게 되었다. 대법제자는 위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기에, 역사상의 수련보다도 더 엄숙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고대 수련형식이라는 이 각도로만 나의 인식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희망컨대 깨닫지 못한 수련생에게 일깨워주는 작용이 됐으면 한다.

고대 수련의 일부 형식은 수련인을 시시각각 일종의 수련환경에 놓이게 하여 일깨우고 단속하는 작용을 했다. 고대 수련은 출가해야 하고, 출가하면 속인 사회와의 연결을 대부분 단절해야 하므로 수련에 들어가는 것은 인생의 하나의 중대한 결정으로서,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사람에게 엄숙성을 느끼게 했다.

또한 사부를 모시는 이러한 형식이 있는데, 사부를 모시는 그중 한 가지 함의는 자신을 스승에게 전부 맡기겠다는 표명으로, 앞으로 완전히 신사신법(信師信法)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련의 엄숙성을 알고 “자신을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1]겠다는 것이다. 수련하려면 집이 아닌 사찰이나 도관에서 살아야 하며, 호칭이나 차림새도 속인과 구별되는데, 이렇게 하면 수련인은 형식적으로 자신을 속인과 구별하게 된다.

고대의 수련은 수련인에 대해서도 엄격한 요구가 있었고, 지금 우리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 아니다. 고대에서 수련하려면 스승을 모셔야 하는데 어떤 법문은 중생구도를 말하지 않으며, 당신이 사부를 모시고 싶어도, 사부가 아무나 받아주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법을 구하는 과정은 수련 기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또 만약 절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쫓겨날 것이며 더는 수련할 수 없다.

오늘 대법 수련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 누가 배우려 하든지 다 되며 대도무형(大道無形)이다. 대법제자는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의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는데 역사상의 수련보다도 더욱 엄숙하다. 동시에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심지어 수련생이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거듭 기회를 주신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형식이 없고, 사회 전체가 수련장이기에 사람마다 스스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본다.

대법의 대도무형에 직면해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수련의 위대함과 수승함(殊勝)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을 속인으로 여긴다”[1] 오랫동안 수련했는데도 무엇이 수련인지조차도 똑똑히 모르며, 아직도 대법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고금 수련형식의 대비를 통해 수련의 엄숙성이라는 이 문제에서 수련생들에게 다소 일깨움이 되기를 바라며, 수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이 문제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수련생들과 함께 정진하여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길 바란다!

개인 층차의 조그만 인식으로, 조심스럽게 교류를 올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5/21/4066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