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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으면, 진정한 대법제자가 된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고생스럽다고 여기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소화상(小和尚)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잘났다고 생각하며 오만한 대화상(大和尚)이 되라는 것도 아니며, 오직 중생을 생각하는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1. 불평만 하는 소화상이 되지 말자

전화팀에서 나는 플랫폼의 수련생들을 조율하는 동시에 다른 사업 항목도 수련생과 협력하여 대법을 실증하며 또 전화팀 총책임자의 업무와 다른 플랫폼과도 연계하여 협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줄곧 다른 수련생과 협력하여 사람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다수 수련생 눈에는 내가 조율만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더욱더 많은 시간을 혼자 묵묵히 뒷일을 보충하고 부족을 보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때 법공부가 부족하면 자신이 바로 그 불평 잘하는 소화상이 되는데 자신이 매우 고생스럽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보완하고 또 보완하고 있지만 어떤 수련생은 그래도 못마땅해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협력하지 않는다.

특히 작년에 플랫폼의 병원 전화팀 일부 수련생이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물론 총책임자는 이 수련생들에게 별도로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겠지만, 당시 나의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병원팀 수련생이 팀 내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총책임자가 이곳 팀장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배치했다고 했다. 게다가 이 팀장은 나에게 미리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는데 또 나의 다른 항목 협조인은 내가 사명을 완수하지 않고 속인의 일에 정신을 팔고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그땐 정말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百苦一齊降)”[1]라고 느꼈다.

처음에는 이 일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바로 밖을 향해 봤다. 다른 일로 자리를 옮겨간 수련생들이 플랫폼을 그만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법을 공부하면서 명백해졌는데 이것은 사부님의 배치였다. 자신을 제고하고 용량을 더 확대하며, 타인을 위해 고려하고 자신의 바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 수련인의 표준으로 이 일을 가늠해야 했다. 당시 나는 사부님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0년 설법”을 반복해서 학습했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당신이 일을 함에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 서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다.”[2]라고 말씀하셨다.

부단히 법을 공부하자 나는 처지를 바꿔 다른 사람이 이 일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총책임자와 자리를 옮겨간 수련생들도 사실 모두 쉽지 않았으며 총책임자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조율하는 일을 하려면 각 항목의 분량(업무량)과 필요한 인력을 알고 균형 있게 잘 배치해야 한다. 대법 항목은 언제나 누군가는 이것을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저것을 하는데 나는 수련생을 고려해야 했고, 사람 구하는 정체적인 수요를 고려했어야 한다. 자신이 팀 내 수련생의 불평과 다른 항목 협조인 수련생의 불평을 좀 더 감당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자신이 소업할 좋은 기회인데 좋은 일이 아닌가! 옮겨간 수련생도 역시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했다. 모두 하나의 정체이며, 사람 구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하려면 자신을 내려놓고 무조건 책임자에게 협력해야 한다.

법리(法理)를 깨달았으나 흔히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병원에 전화하는 팀 수련생들이 떠나자 그녀들의 그 팀이 어떠어떠하다는 말이 수시로 나왔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플랫폼 수련생에게 자기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이 온전히 평온하지는 않았는데 이 팀에서 나간 수련생들을 플랫폼에 가서 보니 솔직히 마음이 정말 편하지는 않았다.

하루는 제1장 공법 2회째를 연마할 때 ‘뤄한뻬이산(羅漢背山)’[3] 동작을 해야 하는데 잊어버리고 다음 동작인 ‘진강파이산(金剛排山)’[3]으로 건너뛰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3회째 음악이 나오고 다시 ‘뤄한뻬이산’ 동작을 할 때 그 내포가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어이구, ‘뤄한뻬이산’이란 말씀 속에는 내가 나한처럼 ‘하하’ 웃으며 산과 같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감당해야 한다는 사부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오직 이렇게 심성이 제고되어야만 다시 난관을 만나더라도 ‘뜻은 금강지라’[4]의 강인하고 두려움 없는 결심으로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다음 연공동작이 ‘진강파이산’이 아닌가! 의문이 완전히 풀렸으며 정말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부님의 고심(苦心)한 배치에 감사드린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어떤 일에 다시 부딪혀도 자신이 더는 쉽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는데 방법을 생각하고 발정념하며 안정적으로 해결했다. 사부님이 계시고, 일체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기에, 우리의 심성이 올라오기만 하면 사부님은 우리를 점오(點悟)해 주실 것이고, 언제나 완성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당시 총책임자가 수련생을 옮겨 갈 당시를 생각해 보니, 총책임자가 나중에 메모를 남겨 나에게 수련생을 빼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자신이 어떻게 곤란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지나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다. 이 일로 나는 총책임자가 감당한 책임이 크며, 압력은 더욱더 높아서 훨씬 고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을 구하는 데는 소화상도 없고 대화상도 없으며 맡은 일이 다를 뿐, 수련생이면 누구나 다 아주 고생스럽다. 나는 수련생과 협력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 구하는 일을 첫 자리에 둬야 하고 자신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2. 독선적이고 오만한 대화상이 되지는 말자

얼마 전 나는 밍후이 라디오에서 “밀레르빠(密勒日巴) 부처 수련 이야기(14)”를 듣고 있었다. 열반하려는 존자(尊者)가 자신은 이미 오독(五毒: 탐욕(貪), 화냄(嗔), 어리석음(痴), 오만(慢), 질투(嫉) 등 다섯 가지 번민)을 닦았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오독 중 ‘만(慢)’이 무엇인지 몰랐다 (전에 이 고사(故事)를 봤으나 자세히 생각나지 않음). 나중에 독을 놓는 조보(操普) 박사가 존자(尊者)에 도전할 때 육신의 고통을 받던 밀레르빠는 여전히 평온하게 미소지으며 그에게 대답하면서 그에게 말을 번복할 기회를 주었다. 이 고사의 세세한 이야기는 나에게 그 ‘만(慢)’을 알게 해줬는데 원래는 생명에 대한 오만함과 거드름이었다. 이것은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것이다. 한 각자(覺者)라면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오만함도 거드름도 없을 것이며 무량한 자비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을 뿐이다.

플랫폼에서 자신의 업무에 지장을 받았을 때를 회상해 보니 인내심을 잃을 때가 많았고 수련생의 감당 능력을 고려하지 못했다. 말투가 강경했는데 몸소 사람 구하는 일을 하며 자신이 방침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수련생의 접수능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이런 거드름과 생명에 대한 오만은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다. 수련생도 역시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지라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업에 협력하지 않게 될 것이며 일부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사후에 나는 스스로 반성해 봤다. 우리 모두 역사상에서 왕이 된 적이 있는데 사실 수련인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일종의 책임이며 천하의 백성을 위해 짊어진 중책이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사람 속의 영광이 아니라 사실은 어쩔 수 없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이생(今世)에 대법제자가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맨 처음 우리가 주불(主佛)을 따라 하세(下世)한 것 역시 신의 영광을 포기한 것이고 지금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 속에 있는데 수련생에게 머리 숙이지 못하거나 착오를 인정하지 못할 것이 뭐 있겠는가? 모두 함께 만나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인연인가. 마땅히 더욱 귀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얼마 전 정례모임에서 수련생들이 플랫폼에서 내보낼 문장 선택을 토론하며 논쟁이 있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듣는데 두 수련생의 어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쟁투심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서 논쟁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을 정면에서 보며 수련생의 부족을 보지 않고 이것은 내가 무엇을 잘하지 못했고, 무엇을 고려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지를 보았다. 두 수련생이 대법 항목에 필요한 각자의 장점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그녀들이 세밀하지 못한 곳을 다음에 보충하여 두 사람 사이에 간격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참여한 수련생에게 간절하게 말하기를 “제가 사려 깊지 못해 여러분에게 오해가 생겼습니다. 출발점은 다 좋으니 우리 이후로는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라고 했다. 순간 격앙돼 가던 논쟁이 즉시 차분해졌고 마지막엔 모두 다음에는 매주 모여 함께 토론하고 교류하며 사람 구하는 일을 공동으로 상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일치된 의견을 말했다.

그 후 나는 깨달았다. “자신이 대화상이 돼서는 안 되며 자신을 대법 중의 하나의 입자로 여기고 매 수련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만 진주처럼 반짝이는 수련생 하나하나를 한데로 연결할 수 있고, 함께 사람을 구하면서 더욱 반짝이며 더욱 강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참여하는 수련생은 모두가 제일선에서 진상을 알리기에 중생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마음의 매듭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정성을 다해 문장을 골라 제일선에서 발송하는 수련생과 협력해 중생이 알아야 할 진상 자료를 지혜롭게 대륙으로 보낸다. 수련생 가운데는 소화상, 대화상 구분이 없으며 서로 부족을 보충하며 공동으로 사람 구하는 일을 한다. 현재 거의 매일 몇 사람의 대륙 동포가 인터넷에서 우리가 보낸 진상을 보고 삼퇴한다.

수련생들의 나에 대한 포용, 이해와 지지에 감사드리며 함께 법을 실증하고 사람 구하는 일을 하게 돼 영광이다. 새해에도 우리는 계속 서로 협력하며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으로 각자의 생명으로 담보한 사람을 구하겠다는 약속을 완수하자.

이상은 나의 현재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은 수련생들이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 – 마음고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설법 11 –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 – 2.동작도해’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 – 법이 일체를 바로잡다’

 

원문발표: 2020130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30/4004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