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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수련을 중시하여 진정한 수련인으로 되자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평범하지 않은 과거 조사정법(助師正法)의 날들을 회상하면 우리 모든 대법제자는 모두 서로 다른 수련의 길에서 자신이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고, 모두 서로 다른 인식과 수확이 있었다. 특히 오늘날, 사회의 기풍이 날로 나빠지는 복잡한 사회 환경에서 우리가 자신의 나쁜 물질을 제거하고,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안에서 찾는다는 첫 일념이 없으면, 무조건 안으로 찾는다는 말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부딪힌 한 가지 일은 나에게 깊은 교훈을 주어, 자신의 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하였다.

법공부 소조에서 수련이 괜찮아 보이는 한 수련생이 평소에 법리에 대한 인식도 매우 밝아, 많은 수련생이 궁금해하는 문제에서 그는 매우 독특한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에게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처음에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작은 난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아 곧 돌파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법공부 소조의 수련생들은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우리가 7~8년이나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그가 어디에서 잘못해서 그런가? 이 몇 년 동안 이 수련생은 좀 태만하여 제때 연공하지 않았고, 진상 알리기도 적게 했다. 주변 수련생에 대해 늘 무시하는 마음이 있고, 집안 환경도 아직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그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은 마치 영화처럼 나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나는 그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아, 병업 상태에서 빨리 걸어 나오도록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그와 교류하고 싶어 그의 집에 갔다. 그를 보자 나는 매우 놀랐다. 며칠 만에 그는 검고 여위었으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집에 속인이 있어 나는 긴말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내가 생각했던 것을 한꺼번에 다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마지막에 한마디 말을 했다. “당신이 말한 것이 나는 왜 인상이 없을까요? 나는 지금 발정념을 해야 하기에 할 말이 있으면 내일 법공부 소조에서 교류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그가 왜 이럴까? 내가 그를 위해서 한 말이 아닌가? 내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닌가? 왜 승인조차도 하지 않는가?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이튿날 나는 다른 수련생의 집에 일 처리하러 가서, 자신의 마음속 불평과 생각을 그에게 말했다. 생각밖에 그 수련생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본 것은 모두 표면이에요, 사실 그가 수련이 아주 잘 되었을 수도 있어요,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좀 있을 뿐이에요. 가는 길이 서로 다르니 그에게 큰 난을 주어 돌파하도록 배치하셨을지도 몰라요.”

수련생의 이 말은 나를 냉정해지도록 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왜 그의 장점을 보지 못했는가? 마난 중에서 그는 신체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또 가족과의 관계를 잘 균형 잡아야 한다(그는 자신의 신체 상황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또 난관을 포기하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는데 얼마나 어려운가! 아마 그는 이미 자신의 실질적인 문제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관을 넘는 중에 나는 왜 표면의 부족한 점만 보고, 그를 나쁘게 보았는가? 나의 그런 강한 태도가 그에게 압력을 배로 증가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내가 밖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면 그를 위해서인가?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아 이미 법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수련상태를 되돌아보고, 법에 대조해보니 정말로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났다. 대면 진상 알리기 일만 하더라도 나는 늘 이 사람, 저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시간을 다그쳐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마음속으로 우러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정말로 구하는 것인가? 때로는 사람 마음이 나와 정법의 노정에서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태만하여 구세력이 빈틈을 탈까 봐 두려워하고, 또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서 말했다. 그 수련생처럼 중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무조건 대면해서 말하지 못해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을 구도한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라, 고르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2] 나는 역시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3] 하지만 내가 그 수련생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다고 지적했을 때 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늘 자신이 법을 많이 외웠고,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잘했고, 정념이 매우 강하다고 느껴, 늘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았다. 갈등이 생기면 늘 자신을 위해 변명하고, 늘 자신을 실증하려고 하여, 자신이 제고해야 할 기회를 많이 놓쳤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많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나를 보시면 마음이 조급해하실 것이다! 여러 번 꿈속에서 내가 명리심, 쟁투심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는데 얼마 전에는 꿈속에서 자신이 또 다른 사람을 때리는 꿈을 꾸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수련에 소양이 있는”[4] 그런 표준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 이것을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고 싶다. 수련생들이 병업 중의 수련생들을 도와 발정념을 해주는 데 아주 바삐 보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주변의 수련생들이 어떻게 수련생을 도와주는 동시에 자신이 또 무슨 사람 마음이 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정체 제고하기를 기대하신다. 모든 수련생이 자신의 수련을 중시할 수 있다면 주변의 환경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면 바른 에너지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모든 수련생은 모두 자비롭고 온화한 에너지장을 느끼게 되고, 다른 공간의 영체와 좋지 않은 물질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자신의 수련을 중시해야 한다. 현재 나의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바로 표면의 현상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사람과 사람간, 수련생과 수련생 간에 갈등이 생기면 표면 현상으로 논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좋아한다. 이것은 당(黨)문화의 사고에 빠져들어 선념(善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5]

그 때문에 우리의 수련을 놓고 말하면 평소의 일상생활 중에서 매사를 수련 제고의 기회로 삼는 것을 중시하고, 그런 나쁜 생각들을 배척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수련이 잘된 자신의 그 일면이 자신을 주도하여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만이 수련의 길에서 굽은 길을 덜 걷게 되고, 서로 다른 층차에서 우리 수련인에 대한 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

20여 년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고서야 진정한 수련이 무엇인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했다. 이 천박한 체득을 쓴 것은 자신을 각성시키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당문화의 패물(敗物)을 제거하고, 겸손하고 온화한 심태를 닦기 위해서이다. 중국의 이런 혹독한 수련환경에서 자신을 단련하여 진정한 대법제자로 되어야 한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 –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 –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불성무루(佛性無漏)’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4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8/3845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