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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복을 주는 파룬궁(6)

글/ 중국 대법제자 정리

[밍후이왕]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 이는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1강 첫 부분에서 하신 말씀이시다. 리(李)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한 그렇게 실천하셨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진 곳곳마다 수련생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심신에 혜택을 받았으며, 인심은 진정으로 선량해지고,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안정을 가져왔다.

베이징 외국기업 수석 엔지니어가 삶의 목표를 찾다

1971년 류융왕(劉永旺) 씨는 허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陽縣)의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1990년 우수한 성적으로 톈진대학에 입학했고, 1994년 대학 졸업 후 순조롭게 베이징의 강철공장에 취직해 정착한 후 다시 외국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한 부서의 수석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생각을 하면서 무엇이든지 질문하기를 좋아했는데, 성장 과정에서 범상치 않은 이상한 일들을 수없이 목격하게 되어, 그 진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그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두 가지 포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포부는 뜻을 세워 사람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나쁜 일에 사용할 수 없는 진정 좋은 과학을 찾는 것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과학은 사실 충분한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과학은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계 최고의 상인 노벨상을 예로 들면, 노벨이 질산글리세린 폭약을 발명해, 산을 깎아내 쉽게 길을 낼 수 있는 등 사람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 좋게 사용될 수 있지만, 무기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데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포부는 뜻을 세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늠할 수 있는 영원히 변치 않는 표준을 찾는 것입니다. 그는 줄곧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 사회의 관념으로는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기준이 분명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상사가 선물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은 “(잘난)척한다”고 말할 수 있고, 남에게 부탁하면서 선물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철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모두 자기입장에서 인위적으로 정의를 내린 것이기때문에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개인적인 관념을 뛰어넘어 전 인류에게 공통된 표준은 없을까?’ 그는 이런 난해한 생각을 박사과정 지도교수에게 물어보았고, 거리 노숙자에게 물어보았으며, 절의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그러나 어디에서도 만족한 답을 얻지 못했으므로 그는 줄곧 이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답을 찾다가, 자신이 직접 본 인체의 수수께끼를 일부라도 풀기 위해, 대학 시절 한 기공을 접해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기공은 현대과학의 한 영역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연마한 기공은 훈련된 자가 다른 사람에게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도록 격려하면서, 기공으로 병을 치료해주면 자신에게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는 1994년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서 이 기공 수련을 열심히 실천했지만, 사람에게 ‘병 치료’를 해주고 나면 오히려 매번 자신의 몸이 괴로웠고, 심지어 뼛속까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기공사들이 돈을 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융왕 씨는, 이 기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것을 계속 다시 찾기로 했습니다.

그때 회사와 가까운 공원에서 매일 아침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기공에 흥미가 있는 그는 ‘파룬궁’ 책 한 권을 구해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나서, 파룬궁은 다른 기공에 비해 공을 가르칠 때 비용을 받지 않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연공하면 곧 병이 낫는다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병이 나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답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자신의 심성을 제고해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동작만 연마하고 심성을 제고하지 않고, 도덕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체조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몸소 실천을 통해 파룬궁 수련으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매우 훌륭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파룬궁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좋으므로 그것에는 과학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둘째, 도덕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그 속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나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셋째, 그 속에서 이로움(예를 들면 건강)을 얻은 사람은 도덕 수준이 높아졌으므로 분명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이것이 그동안 애써 찾던 ‘사람에게 좋은 것만 가져다주고, 나쁜 일을 하는데 이용될 수 없는 진정한 과학’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처음 ‘전법륜(轉法輪)’에서 “眞(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를 보았을 때, 마음이 진동했습니다. ‘이 답은 정말 대단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으려고 한 좋고 나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영원한 표준입니다. 그는 실천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수련할수록 파룬따파는 범상치 않은 진정한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선인’의 이념을 따르기로 노력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점차 명(名)과 이(利)를 담담하게 보았으며,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했습니다. 베이징의 외국기업과 민간기업의 기술책임자와 수석엔지니어 직책을 담당하면서 자주 자료를 번역해 동료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었고, 업무 중 경험한 유익한 내용도 부하직원들에게 제공해 도움을 주었으며, 또 여유시간에 동료에게 드로잉 소프트웨어를 가르쳤고, 출장비도 초과로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사장의 신임을 얻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깊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바오딩 이동통신사 직원이 삶의 답을 찾다

류후이(劉輝)씨는 허베이성(河北省) 바오딩시(保定市) 전문대학교 출신으로 교육수준을 갖춘 바오딩시 이동통신사 직원입니다.

그는 1970년대 초 바오딩 지역 안궈(安國市)시 최북단 시골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허약해 잦은 잔병치레로 몹시 야위어 뼈만 앙상했으며, 늘 감기에 열이 나서 늘 주사와 약을 먹었습니다. 초, 중학교 시절부터 건강을 위해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인 80년대에 기공 붐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기공을 연마하기 시작한 후 수업이 끝나면 매일 밤 학교 밖 숲에서 기공을 연마했습니다.

나이 들면서 삶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지만, 몇 년 지나면 20대, 다시 몇 년 지나면 30, 50대,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늙어 죽는 …… 정말 삶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일까?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걸일까? 정말 등불이 꺼지듯 사람이 죽으면 그만일까? 실생활에서 남을 해치는 사람은 매우 자유롭게 살고,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치욕을 참으며 한을 품는데, 죽은 후에 정말 그런 기록들은 모두 무효가 되는 것일까?’

삶에 대한 수많은 의문은 그의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풀지 못한 채 자주 병이 나고, 집에서는 어른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며, 병원 의사들도 약을 먹지 않는가?’ 그는 풀리지 않는 그 의문을 갖고 일부 도가와 불교의 책을 보았고, 인간의 삶에서 해탈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직접 절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허베이의 한 선사(禪寺)에게 귀의(皈依)하러 갔다가 주지 스님이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어 생각했습니다. ‘세간에서 개오한 사부님을 찾아야 한다! 주지 스님도 스스로 자신의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는데, 그가 어떻게 나를 해탈시킬 수 있고 제도할 수 있겠는가? 경전을 말하는 스님들은, 자신이 죽은 후 반드시 극락세계로 왕생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는 1994년 8월 전문대학졸업 후 바오딩 만청현(滿城縣) 우전국에 배치되어 근무하던 어느 날, 바오딩시 서쪽 교외 지역 간행물 판매소에서 ‘중국기공(中國氣功)’이라는 기공 잡지를 보았습니다. 표지에 기공 사부가 가부좌의 수인자세 사진인데, 머리 위에 금빛광환(光圈)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잡지를 보고 즉시 마음이 끌렸습니다. 잡지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사진의 인물이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훙쯔 대사께서는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더욱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깨우친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류후이는 매우 격동되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내가 찾으려고 했던 개오한 사부님이 아니신가?’ 이어서 그는 ‘전법륜’을 읽었고, 리훙쯔 대사님의 연공동작을 이미지에 따라 연습했습니다. 비록 동작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매일 ‘어떻게 하면 리훙쯔 대사님을 찾아가 공을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무렵,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입니다. 전에 함께 기공을 연마한 적이 있는 아주머니의 여동생이 우한(武漢)에서 바오딩으로 온 것입니다. 여동생이 그들에게 연공동작을 교정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제남 설법 비디오(濟南講法錄音) CD 14개를 그들에게 준 것입니다.

류후이 씨는 설법 비디오를 집으로 가져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숨에 다 들었습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 큰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였고, 그들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수많은 의문에 해답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생로병사가 있는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이 모두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심신은 정화되었고, 그때부터 대법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1995년 만청현에서 바오딩시 전신국으로 다시 전근되어 광섬유 통신장비를 유지 보수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그는 삶의 이치를 알았습니다. 일과 생활하는 곳곳에서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선임자에게 업무를 배웠고, 개인적인 명리를 담담히 보면서 일을 열심히 하며, 동료들에게도 관심을 기우려 파룬따파 수련자의 자세를 견지했으므로 책임자는 물론 동료들로부터 호감을 얻었습니다. 그를 신임한 책임자가 그에게 창고관리를 맡기게 되었고, 무선호출기 삐삐도 마련해주었습니다. 1998년 4월 기술자 1명을 일본 가와사키시 후지쓰사에 파견해 기술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본사에서, “반드시 일선 기술자를 파견해야 하며, 책임 간부가 가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류후이 씨가 속한 기술부서에 40여 명의 직원이 있었으므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책임자는 심사숙고 끝에 최종적으로 류후이 씨를 일본교육에 파견한다고 결정 후 발표했습니다.

류후이씨는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에도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다가 연이어 다섯 차례나 불법으로 중국공산당에 납치되어 투옥됐습니다. 하지만 파룬궁에 대한 그의 의지는 꺾지 못했습니다.

그는 간고한 환경 속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바오딩 모바일 시내 전송망, 바오딩 지역의 22개 현의 로컬전송망 건설과 몇백 개의 기지국 개통작업을 완수하였습니다. 파룬따파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열심히 일한 그는 여러 차례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삼 남매가 자살 심리에서 벗어나다

두허셴(杜賀先) 씨는 허베이(河北)성 슝(雄)현 슝저우(雄州)진 구좡터우(古莊頭)촌 출신입니다.

두허셴 씨가 17세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말다툼 끝에 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농약)자살했습니다. 당시 장녀인 두허셴 씨는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이었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자살한 가정의 불행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계모가 들어왔습니다. 계모는 화통한 사람이라 두허셴 삼 남매에게 잘 대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잘 맞지 않아 하루걸러 닷새 걸러 다투면서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웠고, 자살하겠다고 소란을 피웠으므로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매일 이 약 저 약을 복용하며 온갖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가정불화 속에 처한 두허셴 씨 삼 남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두허셴 씨 삼 남매(여동생, 남동생)에게 자살한 어머니는 늘 그들 마음속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괴로운 일을 만나면 자살을 떠올렸는데, 특히 여동생은 더 심했습니다. 여동생은 어려서부터 열등감에 시달렸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을 못해 세 번이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운 좋게 구급되어 살아났지만, 자살 욕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라. 가족을 걱정하게 했습니다.

두허셴 씨는 21세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한때 도피 생활을 하고 싶어 했는데, 아마 일찍 결혼한 것도 하루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나니 집에 남겨진 동생들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그래서 자주 친정집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늘 친정집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 전화벨이 울리기만 하면 마음이 긴장되어 ‘친정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하며 걱정부터 하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신혼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젊은 남편은 결혼 후 몇 년간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자주 외박을 했는데, 첫 아기(사내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남편 때문에 부부는 자주 말다툼을 하며 갈등을 빚곤 했습니다. 친정집 동생들에 대한 걱정, 결혼생활에 대한 실망 등이 두허셴 씨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자살 같은 것도 자주 떠올랐지만, 어린아이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괴로운 나날은 8년을 끌었지만, 그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어 막막했습니다.

마침내 1996년 운 좋게 온 가족이 파룬따파를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가정에는 처지개벽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와 계모가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관용할 줄 알게 되어 참고 양보하면서 더는 다툼을 벌이지 않았고,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여동생은 대법 책을 본 후, 자살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일생은 모두 신이 잘 배치해 놓은 것이므로, 만약 스스로 끊어버린다면 신의 배치를 혼란시켜 매우 큰 업을 짓게 되며, 그 한 생명은 몹시 고생스러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자살이라는 생각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두허셴 씨도 가족들의 권유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참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화를 내도 다시는 그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화를 내면 그가 평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이치를 말합니다. 남편은 ‘젠장’이라는 나쁜 말버릇이 있어서, 그가 그런 점잖지 못한 말을 하면, 늘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해 남편과 말다툼하기 일쑤였어도 남편은 고치지 않았습니다. 두허셴 씨는 파룬궁 수련 후 남편의 잘잘못에 대해 따지지 않자, 부지불식간에 남편의 나쁜 습관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습니다!

남동생이 한동안 수련한 후, 가족들에게 과거 자신의 수련 전 일을 말했습니다. 그는 한때 건선피부병증이 손에서 손목까지 퍼져 몇 번이나 아버지, 계모, 큰 누나에게 말했지만, 가족들은 온종일 다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 무척 슬펐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양쪽 허벅지 사이까지 버짐이 가득 퍼져 상태가 심각했고, 당시 그의 나이 15, 6세의 한창 사춘기라, 그런 질병에 시달리면서 심한 열등감에 빠져 자주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가족과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피부병이 나아, 매우 기뻤다면서, 이제야 비로소 가족들에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두허셴 씨는 남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중에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당시 남동생이 한여름에도 항상 긴 바지를 입고 있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바보 아냐. 이렇게 더운 날에 긴 바지를 입다니”라고 남동생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남동생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잠시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이내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다행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파룬따파가, 파괴되는 가정과 죽음에 직면한 가족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대법 사부님의 구도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파룬궁은 파룬따파라고 칭하기도 하는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 1992년 리훙쯔 사부님께서 전하셨습니다. 우주의 최고 특성인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수련하는 심신 수련법으로, 공법의 보조수단인 아름답고 간단한 다섯 가지 동작을 연마하는데,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수련자의 신체 정화에 도달하고, 도덕심을 높일 수 있는 공법입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억 명 이상이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전면적인 박해가 지속 된 20년 가까운 기간에도 파룬궁은 소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으며, 파룬따파의 기본서인 ‘전법륜’은 39개 언어와 문자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공개발행 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모든 주요 국가와 지역에는 모두 파룬궁 연공장이 있으며, 파룬궁수련생들의 단체연공과 대법을 널리 알리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18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18/377191.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8/12/8/1735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