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샤오청언(肖承恩)
[명혜망]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름의 오랜 친구가 있다. 이 ‘다른 사람’은 인류 사회의 ‘동네북’이 돼, 무슨 일이 잘못되면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다른 사람’은 모든 문제의 주범이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마음을 돌려 자신에게 요구해야만 갈수록 더 잘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용서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돌려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만 당신의 그릇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 중에 ‘반구저기(反求諸己,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의미다. 즉, 무슨 일에 부딪히면 먼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을 용서할 때는 너그럽게 하고, 자신을 꾸짖을 때는 엄격하게 하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역사상 이와 같은 일화가 아주 많은데, 우리는 단지 두세 가지 예를 골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어리석은 듯한 맑은 정신’: 여몽정의 뒤돌아보지 않음
《송사(宋史)·여몽정(呂蒙正)전》의 기록에 따르면, 여몽정이 막 조정에 들어가 부재상이 됐을 때, 그는 젊고 경력이 짧았다. 첫날 정사당(政事堂)에 출근하는데 발 뒤에서 누군가 손가락질하며 “이 녀석도 재상 자격이 있단 말인가?”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몽정은 못 들은 척하며 곧장 걸어갔다. 여몽정의 동료는 매우 화가 나서 배후에서 누가 험담을 했는지 기어코 알아내 그를 대신해 화풀이하려 했다.
여몽정은 급히 동료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제발 조사하지 마십시오. 만약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면 평생 잊기 어려울 테니 모르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 각자는 뒤에서 남을 헐뜯기 마련이어서, 여몽정은 사람에게 있는 이런 질투와 깔보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일단 이름을 알게 되면 마음속에 ‘남을 탓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그는 내면의 청정(淸淨)함을 유지하고 외부의 교란을 받지 않기 위해 차라리 ‘보지도, 듣지도 않기’로 한 것이다. 불과 아주 짧은 순간의 반응이었지만 이는 여몽정이 평소에 ‘자신을 탓하고 남을 용서하는’ 데 공을 들였음을 보여준다. 만약 일반인이라면 대개 무의식적으로 뒤돌아보며 등 뒤에서 험담하는 그 사람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묻지 않는 덕’: 진식과 ‘양상군자’
《후한서(後漢書)·진식(陳寔)전》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 해 기근이 들었을 때 한 도둑이 저명한 학자 진식의 집에 잠입했다. 들보 위에 숨어서 불이 꺼진 뒤 도둑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식은 사실 진작에 도둑을 발견했지만 도둑을 잡으라고 소리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후, 자손들을 모두 방 앞으로 불러 모아 엄숙하게 훈화했다. “사람은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본성이 악한 것은 아니며, 습관이 성품을 이루어 마침내 이에 이르게 된 것이다. 들보 위의 군자(梁上君子)가 바로 그렇다!”
들보 위의 도둑은 듣고서 간담이 서늘해져 바로 뛰어내려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진식은 그를 관아에 넘기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의 생김새를 보니 악인 같지는 않고, 아마도 빈곤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짓을 한 것 같소.” 그는 도둑에게 명주 두 필을 주고 일을 마무리 했다.
‘양상군자’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진식이 만든 것이다. 진식은 관아에 신고해 도둑을 잡지 않고, 현장을 하나의 교실로 삼아 들보 위의 도둑과 자손들이 동시에 한 가지 수업을 받게 했으니, 이 수업은 가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자신을 꾸짖을 때는 엄격해야 한다. 나쁜 사람의 본성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일단 습성이 길러지면 고치기 아주 어렵다. 진식은 도둑을 용서해 그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줬고, 자손들도 이를 통해 자신을 꾸짖음에는 엄격하고, 남을 용서함에는 너그러워야 함을 배웠다.
천재와 우둔함: 증국번의 자신을 꾸짖음과 남을 용서함
《약과용담(藥裹慵談)》의 기록에 따르면, 증국번(曾國藩)이 곤경에 처했을 때 좌종당(左宗棠)이 찾아와 만나서는, 면전에서 증국번을 호남 지역 사투리로 ‘돼지 새끼’라고 조롱했다. 증국번은 이미 청나라 2품 대관이었고 좌종당은 당시 작은 인물에 불과했지만, ‘신동’이라 불리던 좌종당은 자신의 눈에 ‘우둔한’ 증국번을 지시하고 훈계함에 있어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무엇을 훈계했는가? 좌종당은 편지에서 일찍이 이렇게 썼다. “척공(滌公, 증국번의 자)의 방략은 본래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시골뜨기 기질이 너무 무거우며 재능 또한 너무 부족하오. 용병에 있어서 결국 깨달음이 적구려.”
증국번은 이런 비판을 본 후, 곧바로 자신의 과실을 반성했다. “신은 말을 잘 타지 못해 적진 앞에 나설 수 없고, 또 행군도 너무 느리고 둔하며, 기발한 계책을 하나도 쓰지 못했고, 적을 단번에 제압할 방략 하나 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신의 단점입니다.” 그는 일찍이 동생이나 부하에게 보낸 편지에서 “좌계(左季, 좌종당의 자) 형님의 명을 들어, 동쪽으로 가라 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라”라고 권하며 그들에게 좌종당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좌종당은 증국번에 대해 시종일관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태도였다.
함풍(咸豊) 9년에 좌종당이 탄핵을 받아 위기에 빠졌을 때 증국번은 ‘지극히 애를 태우며’ 나서서 위로하고 다방면으로 구출했다. 증국번의 강력한 천거로 좌종당은 증국번의 조수가 됐고, 상군(湘軍, 증국번이 직접 조직한 사병 부대)에서 좌종당은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증국번은 황제에게 좌종당을 칭찬했다. “장차 반드시 국가를 위해 영토를 개척하고, 반역의 무리를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좌종당이 과연 신장(新疆)을 수복했으니, 증국번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증국번은 책임이 크면 포부도 커야 한다는 소박한 이치를 철저히 지켰다.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체면이 깎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모욕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의 선택은 아마도 경원시하는 것일 테니, 보복할 마음을 품지 않고 상대방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증국번은 도리어 다른 사람의 모욕을 자신을 반성하는 처방전으로 삼았으니, 상대방을 헐뜯거나 교묘히 괴롭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종 결정적인 순간에 도리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상대방을 성취시켜 줬다. 증국번은 인(忍)과 서(恕, 용서)로써 중국 전통문화 중 심성 수련과 자아 초월의 미담을 남겼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3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3/51096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3/51096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