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언(鄭言)
[명혜망] 유행어 중에 “1천 년 역사는 베이징을 보고 3천 년 역사는 산시성(陝西省)을 보며 5천 년 역사는 산시성(山西省)을 보라”라는 말이 있다. 산시(山西)성은 공인된 화하 문명 기원지로 상고 시대 요(堯), 순(舜), 우(禹) 세 성왕이 모두 산시성 경내에 도읍을 정했으며, 현재 이미 린펀(臨汾) 지역에서 요임금 도읍의 존재가 실제로 발견돼 산시성 역사의 무게에 신비로운 색채를 더해줬다.
상고 시대 요, 순, 우의 공적은 역대 군왕들이 칭송하고 본받는 도덕적 모범이 됐다. 한나라 이후 또 산시성은 불교 발전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하나의 핵심 요충지로 변모해, 오대산(五臺山)은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으뜸으로 자리 잡았고, 또한 오대산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청묘(靑廟, 한족을 통해 전해진 불교)와 황묘(黃廟, 티베트를 통해 전해진 불교)가 서로 빛나며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량이기도 하다. 자오청(交城)에 위치한 현중사(玄中寺)는 불교 정토종의 조정(祖庭)으로 공인받고 있으며 정토종 발원지이자 일본 정토종의 신앙 연원이기도 하다. 산시성은 또한 당나라 이래 역대 불교 고적을 보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선사(南禪寺)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나라 목조 건축과 채색 소조상을 보유하고 있다. 유명한 둔황(敦煌) 벽화와 달리 산시성 벽화는 대부분 관방이나 궁정 화가가 참여해 정교하고 엄밀하며 재료의 품질을 중시해 예술적 가치가 높다. 산시성은 9조(九朝)의 고도로서 역대 관방에서 모두 불교 문화에 높은 중요성을 부여했으며 이를 보호하고 널리 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탁발황, 조서 반포를 늦춰 불법을 수호하다
북위(北魏) 시기[도읍을 평성(平城)에 정함, 현 산시성 다퉁(大同)]에 불교 역사상 참담하고 가슴 철렁한 장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위서·석노지’ 기록에 따르면 기원 446년 북위 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跋燾)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가혹한 멸불(滅佛) 조서를 내렸다. 그는 불상과 경권(經卷)을 불태울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승려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태자 탁발황(拓跋晃)은 천성이 인자하고 불법(佛法)을 독실하게 믿었다. 그는 부황의 성지를 어길 수 없음을 깊이 알고 매우 은밀하고 효과적인 ‘지연 전술’을 취했다. 그는 태자로서 국정을 대리하는 직권을 이용해, 고의로 조서를 압류하고 반포 시간을 지연시켰다. 바로 이 귀중한 며칠의 ‘시간차’ 덕분에 관방 조서가 도착하기 전에 소식이 이미 민간에 비밀리에 퍼졌다. 평성의 승려들은 병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가장 진귀한 경전과 작은 불상을 지니고 산시성 북부의 깊은 산속[즉 오늘날 윈강(雲岡) 석굴이 있는 우저우산(武周山) 일대]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탁발황이 ‘조서 반포를 늦춘’ 것은 수천 명의 승려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훗날 불교를 부흥시킬 기술 역량을 보존했다는 점이다. 태무제가 붕어하고 문성제(文成帝, 탁발황의 아들)가 즉위한 후 바로 탁발황이 보호해 낸 승려와 불상, 경문에 의지하며 우저우산에 기세가 웅장한 윈강 석굴을 뚫었다. 윈강 석굴은 중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오랜된 불상군 중 하나다.
1500년의 역사는 이미 먼지와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탁발황이 승려를 보호한 선한 마음과 용기는 여전히 윈강 석굴의 그 자비롭고 상서로운 불상들 사이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역사는 맹종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며 걸왕(桀王)을 도와 학정을 펴지 않은,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한다. 반면 바른 믿음을 박해하고 쥐꼬리만 한 이익을 위해 신앙인을 잔해한 무리들은 결국 역사에서 버림받을 것이다.
진중 감옥, 맹종하고 지혜 없이 사람을 해치다
산시성은 예로부터 ‘표리산하(表裏山河,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라 불렸으며, 예로부터 산시성 사람들은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융합해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해 왔고, 30개 성 중에서 산시성만이 고대 지상 건축물이 온전히 보존돼 전국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21세기인 오늘날, 화하 문명의 발원지에서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고 중국공산당(중공)이 빈틈없이 은폐한 신앙 박해가 발생하고 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장쩌민(江澤民) 및 중공이 일으킨 파룬궁수련자 박해는 부당한 판결, 세뇌, 미행, 가혹행위, 경제적 단절, 육체적 소멸 등 반인륜적 수단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파룬궁수련자들을 계속해서 유린하고 있다. 산시성 남성 파룬궁수련자는 주로 치(祁)현에 위치한 진중(晉中) 감옥(산시성 제1감옥이라고도 함)에 부당하게 수감돼 있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진중 감옥은 파룬궁수련자에게 가혹행위를 가해 9명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적이 있다. 뤄바오쥔(羅保俊, 2021년), 왕지구이(王繼貴, 2016년), 궈샤오원(郭小文, 2013년), 한하이밍(韓海明, 2014년), 루하이싱(陸海星, 2012년), 루야오쉐(盧爻穴, 2010년), 롼푸성(欒福生, 2007년), 캉즈궈(康治國, 2005년), 류즈빈(劉志斌, 2004년) 등이다.
최근 몇 년간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감옥의 환경을 개선해 현대화 수준이 높은 새 건물을 세웠는데, 이는 산시성 감옥 시스템의 첫 번째 고도 경계 감구로 불리며 건물은 ‘회(回)’ 자 모양으로 총 4층이다. 그러나 이는 감옥의 ‘인간화’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현대적이고 표면적으로는 화려하지만 배후에서는 더 음흉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선량한 사람들에게 신앙 포기를 강요하고 있다. 2025년 5월부터 진중 감옥은 폭력적인 세뇌를 시작했는데, 갓 부당하게 입소해 집중훈련을 받는 파룬궁수련자부터 한 명씩 고도 경계 감구 4층 감방으로 끌고 가 밤낮으로 벌 세우기, 잠 안 재우기, 구타, 고춧물 뿌리기를 가했으며, 그런 다음 대대로 내려보내 한 명씩 감방으로 끌고 가 가혹행위를 했다.
허우리쥔(侯利軍), 남성, 54세, 산시성 타이위안(太原)시 사람. 한때 강제노동을 당한 후 20여 년간 유랑 생활을 했고, 2023년에 부당하게 10년형을 선고받은 후 진중 감옥으로 납치됐다. 진중 감옥 고도 경계 구역(집훈대)에서 허우리쥔은 며칠 연속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장시간 작은 목욕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으며, 그는 박해받아 때로는 소변을 보지 못했고 허리와 등이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이후 감구로 내려가 허우리쥔은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했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가혹행위를 당해 지난해 단식이 200여 일에 달했다.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자들은 모두 가족 면회가 정지됐고, 전화카드를 발급해주지 않으며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신 왕래조차 중단됐다. 화이트리스트(白名單, 수감자의 계좌로 송금이 허용된 가족·지인 명단) 등록을 해주지 않아 가족이 계좌로 송금할 수 없었고 감옥 내 소비가 제한됐다. 이는 복역자의 기본적 권리를 심각하게 짓밟는 것이고 노골적으로 ‘감옥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화이트리스트와 전화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 감옥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주재 검사도 감옥과 한통속이 돼 파룬궁수련자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거나 감옥이 책임을 모면하도록 도왔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전하는 금옥양언(金玉良言)
파룬궁은 파룬따파라고도 하며,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불가(佛家) 대법으로, ‘진선인(眞·善·忍)’을 준칙으로 삼으며 현재 이미 백여 개 국가에 전해져 전 세계의 환영과 호평을 받고 있다. 오직 중공만이 정보 봉쇄를 이용해 사람들을 미혹하고 좋은 사람을 박해해 가없는 죄업을 짓고 있다. 맹종하지 말고 지혜롭게 진상을 똑똑히 보라. 중공은 왜 공검법(公檢法, 공안·검찰·법원) 직원이 출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가? 출국 후 파룬궁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진상을 보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과 책임 추궁을 볼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산시성 사람들이여, 깨어나라. 더 이상 중공의 지시를 따라 악행을 하지 마라. 표면적으로는 파룬궁수련자 박해 수위를 높여 약간의 보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 놓고 보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체포되고 선고받고 파면된 이들이 바로 정법(政法) 시스템의 사람들이 아닌가? 위로는 저우융캉(周永康)부터 아래로는 조사받은 2만여 명의 공검법 직원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조사해보면 절대다수가 직간접적으로 파룬궁 박해와 관련이 있다.
이른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이며, 선에는 선한 보답이 따르고 악에는 응보가 따른다고 했다.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스스로 저울질해 보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가? 발밑의 이 황토에 떳떳한가? 훗날 언젠가 가슴을 치며 천지양심에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산시성 사람들이여, 깨어나라!
원문발표: 2026년 5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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