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집 두 채를 잃은 이야기

글/ 쓰촨 대법제자 석연(惜緣)

[명혜망]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76세입니다. 29년간 수련해 오면서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풀어주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27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하여,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잃음과 얻음에 대한 저의 작은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1. 첫 번째 집을 잃다

1995년, 아들이 대학교를 곧 졸업할 무렵이었습니다. 친정 식구들이 의논 끝에 아들의 직장을 부모님이 계시는 A시로 정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친정 부모님은 딸만 여럿 두셨고 아들은 없으셨습니다. 저는 결혼 후 남편이 타지에서 일하게 돼 친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그래서 부모님은 이 외손자를 각별히 아끼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10만 위안 가까운 돈을 들여 A시 중심가에 100여 평방미터의 아파트를 샀습니다. 부동산 등기부에는 아들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졸업하고 나니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남편이 일하는 도시로 발령이 났는데, 친정에서 100여 리(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 자신은 그 공무원 자리에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대법을 수련하기 전이라, 인생의 길은 신이 이미 다 안배해 놓은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제가 허리띠를 졸라매어 모은 돈을 집에 묶어두게 됐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또다시 부모님 뜻을 따랐습니다. 집을 팔지 않고, A시에서 장사하던 막내 여동생에게 빌려줬습니다. 동생의 시댁이 교외 농촌에 있어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어머니께서 안쓰러워하셨기 때문입니다.

2004년, 막내 여동생 부부가 도박으로 장사 밑천 수십만 위안을 날렸을 뿐 아니라 도박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동생은 아들에게 전화해 A시로 한번 오라고 했습니다. 등기부와 신분증을 챙겨오라면서, A시 부동산관리국에서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들은 이모를 믿고 A시 부동산관리국에 갔습니다. 별다른 의심 없이 관리국에서 지정한 서류들에 서명을 하고 손도장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명의 이전 절차였습니다. 동생은 아들에게 서류도 자신이 보관하겠다며, 필요할 때 편하게 쓰려고 그런다고 했습니다. 이모를 믿었던 아들은 서류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달이 지나 동생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께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집을 명의 이전해서 팔아 도박 빚을 갚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미 집값이 올라 있었는데 얼마에 팔렸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 일로 크게 앓아 드러누우셨습니다. 집을 사게 하고 빌려주게 한 것이 모두 어머니의 생각이었고, 다 자식을 위해서 한 일이었는데 막내 딸이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동생을 꾸짖으셨습니다. “네 언니와 형부가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때 집 살 돈은 둘이서 이 악물고 아껴 모은 거야. 너는 정말 집안 망치는 자식이야……” 남편도 저를 봐서 억울함을 꾹 삼켰습니다. 저는 이미 대법을 수련한 지 몇 년이 됐던 터라, 마음은 좀 아팠지만 세상 이치가 인과관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위로한 뒤, 동생에게도 착하게 살고 다시는 도박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좋게 권했습니다. 동생도 우리 살림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잘 알았습니다. 그때 공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고, 남편은 불치병까지 걸려 치료비도 많이 들었으며 생활은 몹시 어려웠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고 있었으니 사부님 말씀을 따라야 했습니다. 온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습니다.

그 궁색한 시기에 타지에서 장사하던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요즘 장사가 아주 잘 돼요. 노후 생활은 걱정 마세요.”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우신 것임을 알았고, 가족들도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집안에 복을 가져다줬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한번은 친정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그 자리에서 대법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에 대해, 그리고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중공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 있던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가 수련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저는 말했습니다. “동생아, 어째서 네 상관이 아니야? 너는 혜택을 받지 못했어? 네가 어려울 때 누가 도와줬어? 네가 나한테 진 빚을 지금까지 내가 따지지 않았잖아.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았다면, 매사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거야. 그 집값이 작은 돈이 아니잖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제가 수련 전후 몸과 마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있었기에, 동생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동생도 제가 수련 전에 앓았던 여러 난치병이 대법을 수련하고서 나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꾸준히 인내심 있게 타이른 끝에 동생은 마침내 깨어났습니다. 동생은 저를 통해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직접 목격했고, 자주 저의 진상 알리기를 도왔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여러 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언니 말 들어. 나라는 사랑하되 당(黨)은 사랑하지 마.” 동생은 도박도 끊고, 부부가 함께 마음 편히 장사를 하게 됐습니다. 동생 아들은 평소 성적이 보통이었는데, 대법을 믿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한 뒤 복을 받아 무사히 대학원에 합격했고, 졸업 후에도 연봉 100만 위안의 좋은 직장을 손쉽게 구했습니다.

2. 두 번째 집을 잃다

1997년, 남편의 직장에서 주택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저는 전에 병으로 인해 공장 지도부의 배려로 남편과 같은 공장에서 일하게 됐고, 규정에 따라 100평방미터짜리 아파트 한 채를 배정받았습니다. 복지 주택이라 상품 주택보다 훨씬 저렴해, 2만 위안만 내면 됐습니다.

1999년 봄, 한 지인이 집값이 곧 오를 것 같다면서, 아들이 처음에 산 집은 타지에 있고 이쪽엔 집이 하나뿐이니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면 계속 함께 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 말이 맞다 싶어, 집에 있던 몇 만 위안을 털어 시내 중심가에 아파트를 한 채 더 샀습니다.

2001년, 큰아주버니 내외가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천 리 밖에서 수십 년간 일하면서 거의 고향에 오지 못했고, 고향집에는 80세가 넘은 연로한 부모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큰아주버니의 자녀 셋도 고향으로 따라와 새로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온 가족이 돌아오니 집이 좁아 도저히 다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큰아주버니는 우리가 집을 두 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공장으로 찾아와, 공장에서 받은 복지 주택을 자기네 식구들이 살 수 있게 내어달라고 했습니다. 원래 가격인 2만 위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큰아주버니의 말투는 꽤 단호했습니다. “집을 안 내주면 우리 식구는 다 당장 원래 직장으로 돌아갈 거야.” 마음속으로 참 아쉬웠습니다. 집값이 이미 올라 있었으니, 지금 집값에 비할 수는 없어도 농촌에서도 2만 위안으로는 100평방미터짜리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들도 곧 결혼할 나이였으니 집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큰아주버니 내외가 수천 리 밖에서 수십 년을 버텨내다가 겨우 퇴직하고 돌아와 부모님과 가족들 곁에서 함께 지내려는 것인데, 살 집이 없어 또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또 가족과 이별하는 상황이 될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인이니 무슨 일을 하든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마음 편히 등기부를 큰아주버니에게 넘겨줬습니다.

2006년 초,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9년에 집값이 크게 오르자, 큰아주버니는 아우가 세상을 떠났으니 제가 집을 돌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당시 집을 내줄 때는 가족이라는 생각에 명의 이전을 하지 않았고, 남편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유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이치로 보자면, 집을 돌려받고 2만 위안을 큰아주버니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사부님 말씀을 따라야 했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큰아주버니와 함께 부동산관리국에 가서 명의 이전 절차를 밟았습니다.

두 채의 집을 잃고도 의연했던 저의 태도는 친척과 지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보고 멍청하다 했고, 어떤 이는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두 채의 아파트는 지금 가치가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두 채의 집으로 가족들이 파룬따파를 인정하게 됐고, 그들의 생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친정 식구들뿐 아니라 시댁 식구들도 거의 모두 대법 진상을 믿게 됐습니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중공 악당 조직에 가입한 적 있는 친척들이 하나둘 모두 삼퇴했습니다. 제가 중공 악당의 박해로 감금됐을 때는 큰아주버니와 조카가 파출소에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고, 조카는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였습니다. 가족들이 대법에 보여준 이 올바른 태도와 선한 행동은 모두 복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대가족에서는 어르신들이 모두 장수해, 80~90세 노인이 10여 명이나 됩니다. 젊은 세대 중 장사하는 이들도 날로 번창하고 있으며, 대학 졸업자들도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좋은 직장을 어렵지 않게 구했습니다. 그들 모두 파룬따파가 바른 법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새 차를 살 때면 제일 먼저 제가 선물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장신구를 달고 싶어 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끝없이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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