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나의 장사 비결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의 함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면서 저는 환골탈태했습니다. 심성이 승화되자 장사에도 변화가 찾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몇 가지만 골라서 들려드리려 합니다.

장사하며 마음이 지치지 않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아내는 저를 ‘전투기’라고 불렀습니다. 쟁투심이 강하고 속이 좁아 장사하면서 끊임없이 번뇌에 시달렸습니다. 예를 들어, 동업자 중 누군가 좋은 물건을 들여왔는데 제게 없으면 조급했고, 공장에 돈을 보냈는데 물건이 안 오면 조급했으며, 물건이 도착한 후 재고로 쌓여도 조급했고, 거래처에서 돈을 안 줘도 조급했습니다. 마음속은 늘 비관적이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장사하다가 골치 아픈 일을 만나면 법리로 가늠하며 마음을 열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족, 거래처, 동업자, 공장 측을 선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거래처가 외상값을 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어떤 거래처는 가게가 망해서 돈을 받으러 가면 안면을 몰수했는데, 소송을 걸기에는 가치가 없어서 속만 태우곤 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 법리가 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어 담담하게 내려놓게 됐고 마음도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한 거래처에서 1만여 위안의 외상을 진 채 가게 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몇 번이나 독촉했지만 결제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겠다고 여겼습니다. 돈이 없으면 물건으로 대신 갚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 직장에 낡은 컴퓨터가 있다면 두 대를 가져와 빚을 대신해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승낙하더니 다음 날 두 대를 보내왔지만, 컴퓨터 상가에 가서 확인해 보니 모두 폐기물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따지자 그는 태도를 싹 바꾸며 말했습니다. “체면을 세워주려 해도 받을 줄을 모르네, 보아하니 쓴맛을 좀 봐야겠어! 당신 파룬궁 수련하는 게 어떤 상황인지 몰라? 당장 경찰에 신고하러 가야겠어.”

저는 제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이 바르지 않았고 원망심이 있었으며, 겉으로는 그를 위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손해 볼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의 아이는 장애가 있었고 아내와는 이혼했으며 장사마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저는 그를 헤아려주어야지 속인처럼 압박해서는 안 됐습니다. 예전에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한 적이 있는데, 돈 몇 푼 때문에 그를 대법과 대립하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망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공무원인 그가 밥그릇을 잃게 만드는 일쯤은 아주 쉬웠습니다. 저는 그를 원망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건 경찰도 다 알아요. 신고해도 되지만 그런 걸로 나를 어쩌진 못할 겁니다. 당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니 그 1만 위안은 있으면 갚고 없으면 그만두세요. 하지만 대법을 욕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그는 곧바로 말을 바꿨습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나중에 그의 가게는 망했고 돈도 갚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의 요구대로 자신을 다스리며 손실을 근심하지 않고 너그럽게 사람을 대했더니 장사가 갈수록 잘됐습니다.

어떤 사장이 제가 대리점을 맡은 정품 상품의 가품을 몰래 도매로 넘겨 제 판매 실적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당장 신고해서 그가 큰코다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대법을 수련하므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밥을 먹으며 제 장사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에 저도 가품 파는 데는 누구 못지않게 독해서 평판도 안 좋았고 늘 일이 터질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하늘의 도리는 바른 것에 보답하니, 장사를 오래 하려면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이건 다 사장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는 무척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형님, 그만 말씀하십시오. 앞으로는 형님 물건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영향 덕분인지 그 후로 그가 다시 가품을 판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저를 보기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제 가게에 자주 놀러 옵니다. 그는 처제가 결혼할 때 저를 특별 하객으로 초대해 신부 측 혼주석에 앉혔고, 신부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을 때도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저는 그의 부모님과 네 명의 동서, 처제 등 친척들에게 모두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켜주었습니다.

제게 유능한 여점원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에게 몇 가지 제품을 전담해서 팔게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녀가 전표도 끊지 않고 하위 거래처 한 곳에 3만여 위안어치의 물건을 빼돌린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어 이 일을 확인하자 하위 거래처 사장은 겁에 질려 울먹이며 거듭 말했습니다. “제발 신고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당장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그는 아마 법을 아는 눈치였는데 3만 위안이면 징역을 살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습니다. 저는 그 하위 거래처 사장에게 대법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고 그 점원에게도 진상을 알려주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며 심법의 제약이 있는데도 자주 실수를 저지르는데, 점원은 속인이고 심법의 제약도 없으니 실수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그녀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녀는 형편이 어려웠고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으며 아이는 어려서 양가 부모님의 보조로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제 뒤통수를 쳤지만 저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고 게다가 돈도 모두 회수했습니다. 제 관리에도 허점이 있었으니 제게도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가 기존 업무를 계속 맡도록 하고 그녀의 남편도 가게로 불러 일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사장님은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훗날 그녀는 ‘전법륜(轉法輪)’을 한 권 모셔갔고 저와 아내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남동생,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에게 모두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나의 상도(商道)

수련하기 전, 저는 제 자신이 똑똑해서 어떤 물건이 잘 팔릴지 훤히 꿰뚫고 돈 벌기가 쉽다고 여겼을 뿐 상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나쁜 일과 맞닥뜨리면 괴로워하며 그저 방향 없이 살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공평하게 거래하고, 마음을 바르게 놓으면 된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단언컨대 이것이 바로 상도이며 인류의 영원한 상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바름’은 인품이고 마음이 발라야 ‘공평’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법의 심성 요구로 제 장사를 이끌며 가품의 거래를 끊어냈고, 스스로 좋은 상인이 되어 대법에 먹칠하지 않도록 일깨웠습니다. 법리를 통해 저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해서 더 얻는 것이 아니며 우둔하다고 해서 덜 얻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신(神)께서는 사람의 능력을 보지 않고 덕(德)과 업(業)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십니다.

그 후로 저는 동업자를 존중하고 선하게 대하며 기점을 타인을 위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꽁꽁 숨겨두었을 영업 비밀도 이제는 마음을 열고 공유했습니다. 이렇게 장사하니 손해를 보기는커녕 동업자들의 호감을 얻었고, 어떤 사장은 제게 새로운 거래처를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공장에서 손님이 오면 저는 그들을 함께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자리에서 주로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1년 또 1년, 얼마나 많이 진상을 알렸는지 모릅니다. 진정 세상 사람들이 모두 대법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기를 바랐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 파룬궁은 보나 마나 좋은 거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좋고 말고요, 수련해 보시면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새로 개업한 거래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확신이 없어 바가지를 쓸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원칙은 큰 거래처는 존중하고 작은 거래처는 키워주는 것입니다. 마음 놓고 물건을 가져가십시오.” 제가 이렇게 하니 큰 거래처는 트집 잡지 않았고 작은 거래처는 걱정을 덜었습니다.

어떤 사장이 처음 물건을 들이러 왔을 때 제게 특산물을 좀 챙겨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며 말했습니다. “수련인은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장사만 잘하시면 저는 그걸로 기쁩니다.” 그는 대법을 아주 공감했고 올 때마다 대법 화제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대금 결제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연말 정산을 할 때면 늘 빚이 한가득 남았습니다. 그는 몸에 병이 있고 아이는 학교에 다녀 온전히 작은 가게의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몇 번이나 물건 공급을 끊으려 했지만 저는 그녀를 말렸습니다. “그 집 사정이 저런데 물건을 안 대주는 건 목숨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요. 동정해야 하오.”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동정하면 우린 누가 동정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고 누구에게나 선하게 대하니 집안도 평안하고 장사도 잘되지 않소. 이게 바로 대법의 복이 아니겠소!” 제가 은퇴한 후 그가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저를 초대했습니다. “우리 현(縣)에 수억 위안을 투자해 새로운 관광지를 조성했는데 꼭 한번 놀러 오십시오.” 그는 제게 보답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뜻은 없고 그저 제 작은 성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진심이었지만 제 마음속엔 하나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도울 수는 있어도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거래처는 제게 2만여 위안의 외상값을 졌는데 개업할 때는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더니 가게가 망하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지 동업자들 말로는 그가 도로 건설에 돈을 투자했는데 공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무렵 윗선에서 중단시켜 돈을 허공에 날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러 차례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기에 영원히 그를 다시 보지 못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우주의 재산이니 제 그깟 돈 몇 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절반이라도 갚아야지 정말 양심이 없네!”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아내를 타일렀습니다. “아마 전생에 그 사람에게 빚진 게 있어서 이번에 갚은 셈 친 거요.” 아내는 “당신이 이렇게 타일러 주지 않았으면 화병이 났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저는 아내만도 못했습니다. 우리 밑으로 100여 개의 하위 점포가 있었는데 어떤 거래처는 폐업하면서 외상을 떼먹고, 어떤 거래처는 낡은 물건으로 때우려 했으며, 어떤 곳은 막무가내로 버텼습니다. 이렇게 떼인 돈만 수천 위안에서 수만 위안, 최고 14만 위안에 달하는 건도 여럿 있었습니다. 저는 연연하지 않고 득과 실을 자연스러움에 맡겼습니다.

선(善)을 베풀다

장사를 하면서 겪는 모든 일은 마음을 닦고 층차를 높이는 기회였습니다. 선과 불선의 차이는 오직 일념의 차이일 뿐이며 이 일념이 쌓이면 서로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이야기 1

변두리에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사장이 떼가는 물건이 아주 적어 매번 수백 위안 정도였고 가끔은 외상을 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버스 시간에 맞추려고 아침에 제가 출근하기도 전에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런 영세 상인은 동업자들도 다들 상대하기 꺼렸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홀대하지 않고 매번 물건을 나르고 차에 싣는 것을 도와주었으며 그가 떠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물건을 떼가려 왔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울먹였습니다. 저는 위로했습니다. “남편분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게 하세요. 되도록 절단 수술은 하지 마시고요. 진심으로 외우면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그녀는 “그에게 전하긴 하겠지만 믿을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다시 덧붙였습니다. “이전 외상값은 그냥 두시고 필요한 물건을 제가 먼저 외상으로 내어드릴 테니, 돈이 생기면 병원비부터 쓰십시오.” 그녀는 무척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남편이 사장님 같은 좋은 분과 인연을 맺었네요.” 그 기간 동안 저는 그에게 계속 물건을 보내주었고 그가 주문하지 않은 신상품도 챙겨 보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그 도시에서 동업자 중 손꼽히는 큰손이 됐습니다. 훗날 만날 때마다 그는 제게 극진한 예의를 갖추었고 당시 일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그때 사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니었으면 제 가게는 벌써 망했을 겁니다.”

이야기 2

제게 세를 내준 매장이 하나 있었는데 주변 시세는 5만 5천 위안이었지만 저는 5만 위안만 받았습니다. 세입자는 고마운 마음에 제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 또 보내시면 월세를 올리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감탄하며 “사장님은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다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그의 가게 앞에서 도로 공사를 했는데 20일이면 끝난다는 공사가 3개월이나 지연됐습니다. 그가 현장소장을 찾아가 따졌지만 소장은 “나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소. 정부에서 돈을 주는 만큼 일할 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주변 가게 사장들이 정부 청사를 찾아갔으나 경찰들이 떼 지어 몰려와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구류시키겠다”라고 협박했습니다. 세입자는 분개하며 말했습니다. “장사를 다 망쳐놓고 보상도 안 해주다니 어디 가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합니까? 공산당이 무너지지 않는 한 서민들에게 좋은 날은 없을 겁니다.” 저는 그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2000위안을 보태드릴 테니 다음 월세에서 제하고 내십시오.” 그는 감동하여 말했습니다. “파룬궁 사부님께서 사장님 같은 분을 길러내셨다니 정말 탄복했습니다!” 사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저는 매우 인색해서 2000위안은커녕 남에게 밥 한 끼 사는 것도 아까워했습니다. 대법이 제 마음을 씻어내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야기 3

읍내에서 작게 장사하는 사장이 있었는데 그는 장애가 있었고 얼굴은 손바닥만 한 데다 꼬질꼬질했으며 체형도 기괴했습니다. 그가 처음 물건을 받으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여점원이 “엄마야!” 하고 비명을 지를 정도였습니다. 저는 점원에게 “저분을 잘 모시고 물건 고르는 걸 도와드려요”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법을 믿기만 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습니다. “내 꼴이 이런데 무슨 복을 바라겠소?” 저는 “저는 당신에게 허튼소리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대법을 믿고 복을 받은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제 말을 믿었습니다.

1년 후 그에게 아내가 생겼는데 그녀 역시 장애가 있었습니다. 점원들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저런 사람에게 시집올 여자가 있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 해가 바뀌어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건 우리 사부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거고 대법이 내려준 복입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죠?”라고 묻자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물건을 너무 늦게 가져가는 바람에 막차가 끊겼는데 몸에 3만여 위안이라는 큰돈을 지니고 있어 여관에 묵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가 제 아내에게 “댁에서 하룻밤 묵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아내가 제게 “우리집에서 재워도 될까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모두 평등하며 만나는 것 자체가 인연이니 그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저희 부부와 같은 상에서 두 끼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감회가 깊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를 꺼렸을 텐데 지금은 마음이 태연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4

한 친구가 제게 2만 위안을 빌리며 두 달 후에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차용증을 쓰려 하길래 저는 그 종이를 찢어버렸습니다. 그가 깜짝 놀라 “왜 이러는 건가?” 하고 묻자 저는 “신의는 말 한마디면 족하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 차용증을 쓴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심법이 없어서 약점을 쥐고 있으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옛사람들은 급한 불을 꺼줄 때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음덕을 쌓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차용증을 쓰고도 마음을 놓지 못해 보증인까지 세우는 실정입니다.

그 후 그가 제게 소고기 5kg을 보내왔는데 제가 받지 않으려 하자 그가 섭섭해하는 눈치여서 마지못해 받았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록 그는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듣자 하니 그가 한때 토지 보상금으로 1000만여 위안의 큰돈을 만진 적이 있는데 돈이 들어오자마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았다고 합니다. 사회보험도 기초 생활 수급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셋방을 전전하며 아내가 고물을 주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가 너무 가여워서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빌려준 2만 위안은 안 받을 테니 아무 부담 갖지 말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럴 순 없네. 올해는 꼭 재기할 수 있을 거야.”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자네 나이가 벌써 70이 넘었는데 재기하려면 타고난 팔자에 있어야지 팔자에도 없는 복을 어디서 끌어오겠는가? 사람에게 심법이 없으면 돈이 있는 것이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네.’

하지만 저는 그가 가져왔던 소고기 5kg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의 것을 거저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공과 사는 구별해야 했습니다. 시장 시세를 알아보니 0.5kg당 45위안이어서 5kg이면 450위안이었는데 지금의 그에게는 꽤 큰돈이었습니다. 저는 메모 한 장을 적어 450위안과 함께 차(茶) 상자에 담은 뒤 사람을 시켜 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야기 5

한 수련생이 억울하게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자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열여섯 살에 불과한 딸은 학업마저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 수련생과 잘 아는 한 가게 사장이 제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외상으로 물건을 좀 대주시면 제가 그 애를 도와 가게를 하나 열어줄까 합니다. 안 그러면 어린애가 밖으로 나돌다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단번에 “그러지요”라고 승낙했습니다.

그 수련생의 딸을 만나 어머니의 안부를 묻자 아이는 “교도소에서 면회를 안 시켜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떠니?” 하고 묻자 “저한테 신경도 안 쓰셔서 밥도 제가 혼자 차려 먹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 어린 나이에 혼자 가장 노릇을 해야 하다니 마치 매서운 찬 바람 속에 덩그러니 놓인 한 포기 풀꽃 같았고, 이 세상이 너무도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원가 수준으로 물건을 넘겼고 반품도 자유롭게 받아주며 부디 장사가 잘 자리를 잡길 바랐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아이의 어머니가 감옥에서 출소한 뒤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이가 사장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더군요. 사장님 덕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고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제게 감사한다지만 저는 대체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대법이 저를 제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세상 이치에 대해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대법은 곧 정토(淨土)이니 마음속에 대법이 있어야 마음이 따뜻해지고 타인의 마음까지도 데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왈칵 눈물이 납니다. 저는 사부님을 직접 뵌 적도 없고 훌륭한 제자라고 내세울 만한 자격도 없지만 줄곧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지난 일들이 하나둘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모든 일들이 수련 후 환골탈태한 제 삶의 눈부신 흔적들이며 대법 안에서 영혼이 승화하며 피어난 무지개이고, 사부님의 위대하심과 ‘진선인’ 대법의 무한한 위력을 생생히 실증하는 기록들입니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6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4/5104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4/5104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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