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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남을 고려하다’를 실천하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응급실 내과의사이다. 2005년 응급실로 이동하여 일했고 13년간 근무했다. 중국 대륙에서 의료 환경은 갈수록 열악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긴장되어 있어 응급실은 대다수 의사들이 더욱 근무를 꺼리는 부서였다. 아래는 나의 비교적 어려운 업무환경에서 수련한 체험이다.

1. 의학 배우기와 수련이 동시에 진행되다

1998년 6월초 대학입학지원서를 쓰는데 나의 지원서에는 각종 의대가 가득 적혀있었다. 아버지는 왜 의학을 배우려고 하는지물으셨는데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대답했다. “덕을 쌓으려고요.” 그때 나의 내심깊은 곳에서 단지 ‘덕’을 일종의 정신층면의 내포로 간단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달 25일 나는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다행히 읽게 되었는데 꿈에서 깨는 듯 했고 사람이 왜 사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 이전의 ‘덕’에 대한 오해를 수정했는데 원래 ‘덕’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종 백색물질이었다. 단지 우리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로써 진정으로 수련하는 길로 걸어가게 되었다.

대학입시 후 순조롭게 꿈이 실현되어 의대생이 되었고 5년제 의료과정을 마친 후 졸업하여 어렵지 않게 유명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의 동료의 말로 나는 너무나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병원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의사 모집을 하지 않았고 나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같이 졸업한 학생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2. 속인과 혼동되어 수련상태가 바닥으로 떨어지다

2004년 내가 내과에서 회진하고 있을 때 늘 저녁 10시에 불이 꺼진 후 경비실 창문으로 응급실 불빛이 밝게 켜있는 것을 보았다. 응급실 의료진의 바쁜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나의 머릿속에서 응급실에 대해 고정적 인식이 생겼다. 그들은 너무나 수고한다 였다! 2005년 내가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진정으로 뼈에 사무치는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고 접대하는 환자는 거의 모두 다른 얼굴이고 거기에 함께 오는 가족까지, 만약 밤낮으로 진료하면 30명 정도다. 그럼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가? 계산하면 매우 놀랄 정도다.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배치해주신환경은 이른 바 얻기 힘든 마음을 닦는 좋은 곳이었다.

물론 수련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은 각 방면에서 방해를 받고, 때로는 막막하거나 심지어 실의에 빠져 길을 잃기도 한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회 환경을 대하면서 나의 내심은 학교처럼 그렇게 순정함을 유지할 수 없고 수련의 상태가 갈수록 느슨해졌고 이어서 많은 일들이 엉망으로 변했다. 나는 속인과 똑같이 명리를 다투었다. 전에 나는 또 소박하게 옷을 입고 꾸몄는데 깨끗하고 단정하면 되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후 주위 동료들이 어느 유행하는 패션을 비교하자 자신도 차츰 따라갔고 각종 유행을 추구하였다. 심지어 뇌물을 받는 부적절한 행위까지 마음속으로 조금씩 묵인했고 자신의 수고에 이런 특혜를 주는 것을 당연시했다.

바로 이렇게 계속 살았고 저도 모르게 자신이 무척 피곤하며, 모든 일에 늘 원망하고 심리상태는 계속 조급하여, 자신을 느슨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정서는 소극적이고 실망스러웠으며 팽창된 욕망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부정적인 정서가 나를 질식시켰고 가정환경도 엉망이었으며 일에서는 너무나 피곤하고 번잡하며 심지어 가끔은 돈을 써서 응급실을 벗어날 생각도 들었는데 여기에 하루라도 더 있으면 사람이 미칠 것 같았다. 정서 속에서 부정적 요소가 아주 큰 비율을 차지했고, 사람이 태만해지고 중성적인 의상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숏커트 머리스타일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나는 자신의 얼굴색이 갈수록 창백한 것을 발견하고 가만히 피검사를 했다. 그 결과 깜짝 놀랐는데 혈색소 지표가 60을 갓 넘었다! 이때 자신의 수련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3. ‘남을 고려하는’ 사유습관을 형성하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무슨 일이나 모두 ‘나’의 각도에서 고려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저녁에 당직을 설 때 한밤중에 환자가 오면 병세를 물어본다. 환자가 집에서 2달 넘게 버티다가 겨우 진료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서 화가 났는데 두 달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에 사람을 잠도 못 자게하고 야밤에 오다니! ‘나’의 이익을 건드리면 마음속으로 원망하기 시작했고 환자에 대해 좋지 않은 태도로 대하고 차갑게 응대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완고한 습관인 ‘나’를 출발점으로 하는 사유가 바뀔 수 있을까? 아울러 자신의 내면에서 진심으로 남을 위해 생각하고 이어서 행동하게 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좋다. 나는 자신에게 요구하고 일에 부딪히면 먼저 되도록 ‘나’의 감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고 전체사건 중에서 자신의 실질 이익에 대한 중요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로써 전체사건 최후에 자신의 ‘사’를 보호하는데 편중되어 또 늘 그 모습이거나, 심지어 이로 인해 원한이 생기고 평형 되지 않는 등의 부정적 정서가 생기는 것을 되도록 먼저 상대방 각도에 서서 고려하고 그다음 천천히 이런 사유를 습관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이는 쉽지 않은 것임을 알지만 실천이 증명하다시피진짜로 너무 어려웠다! 가끔 앞발은 자신이 타인을 위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알지만 결국 돌발사건을 만나면 또 불만이 가득 찬다.

후에 한차례 경험이 있었는데 나는 진정으로 남을 고려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전화위복이 된 후 나는 이로 인해 수련 방면의 자신감이 조금 생겨났다.

한번은 내가 당직을 서는데 모자(母子)가 왔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의사선생님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요.” 검사하니 환자는 혈압이 높은 것 외에 다른 음성적인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머리 부분 CT검사를 진행하려고 휠체어를 가져왔다. 젊은 아들에게 어떻게 비용을 납부하고 검사하는지 주의사항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알려주었으며 이렇게 아들은 환자를 밀고 나갔다.

그날도 마침 부서의 직원들이 한창 바빠서 나와 간호사 한 명만 사무실에 남아있었고 간호사는 또 응급실의 환자를 관찰해야 했다. 한참 지나서 그 젊은이는 달려와서 CT실 의사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고 아울러 어머니의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알리고 젊은이와 함께 CT실로 달려갔다. 당직 의사를 찾은 후 빨리 검사를 하도록 하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응급실에는 다른 응급환자들이 수시로 오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화가 나서 달려왔고 동행직원이 없어서 자신이 하지 못하겠다고 원망했다. 이쪽에서는 응급실 환자를 그냥 둘 수 없고 그쪽은 또 재촉하고 있으니 마음은 단번에 번잡해졌다. 젊은이에게 환자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했고 빠른 시간에 간호사를 배치해서 찾아가게 하겠다고 했다. 바로 이렇게 다른 간호사가 입원환자를 배웅한 후 곧바로 CT실로 갔다. 본래는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 갓 시작이었다. 대략 30분 지난 후 그 젊은이가 또 왔고 진료실에 들어와서 바로 내 앞에 앉아서 큰 소리를 쳤다. “나의 어머니는 당신이 지체해서 뇌출혈이 왔어요. 의사가 지금응급치료하고 있는데 만약 어머니에게 뭔 일이 생기면 나는 당신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에요.” 이때 나는 그를 자세히 보았다. 머리는 이상한 칼라로 염색하고 아주 높게 드라이를 했으며 옷은 괴이한 스타일로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양아치와 다른 게 없었다.오늘 진짜로 재수가 없었다. 이렇게 도리를 논할 수 없는 이를 만나다니. 나의 머릿속에서는 그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여러 가지가 올라왔다. 보안요원을 찾을까? 상사를 찾을까? 그러나 나는 똑똑히 알고 있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일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었다.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정서를 천천히 냉정하게 만든 후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고 일종 온화한 어투로 그와 말하였다.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어머니가 전에 두 차례 뇌출혈이 왔고 모두 후유증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이번에 또 병이 발작하여 젊은이는 아주 조급했는데 원래 이 젊은이는 아주 효자였다.

그럼 젊은이는 이유 없이 나를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는가. 만약 입장을 바꿔서 말하면 나도 화가 났을 것이다. 방금 전 나의 행동을 보면 진짜로 그들을 위한 것인가? 진짜로 책임을 다했는가? 자신의 정서가 불평에서 부끄러움으로 천천히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나는 진솔하게 젊은이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았고 사과드립니다. 아마도 의사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의사로서의 일부 책임을 소홀히 했어요…….” 나는 이 말들이 진심에서 나오고 일을 논하고 있으며 자신의 과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말이 끝나자 갑자기 아주 편안한 에너지가 나를 포위했고 나는 젊은이도 마땅히 감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는 화를 내지 않았고 일어나서 나갔다. 나는 그를 쫓아갔고 그의 어머니가 하루 빨리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했다. 이후에 필요하면 수시로 나를 찾아오라고 했다. 나중에 젊은이는 나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여 감사를 표했다. 유일한 아쉬움은, 그 당시 정념이 부족하여 정면으로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을 말하지 못하였다.

이번 경험으로 나는 느낀 점이 아주 많았다. 하나는 그렇게 많은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는 기회를 놓쳤고 둘째는 진지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깨닫지 못했고 어떻게 대조해 수련하고 일상생활과 업무에서 체현하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4. ‘남을 고려한다’는 사유를 형성한 후의 수확

‘남을 고려한다’의 사유는 나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나로 하여금 이익을 담담하게 보게 만들었고 전에 나는 절실한 이익을 버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거의 해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홀가분하게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말한다. “나는 리베이트를 받지 않습니다.” 업무에서 나는 늘 ‘남을 고려한다’로 변하여 자신의 업무환경이 갈수록 효율적으로 변하였다. 예를 들어 환자 가족에게 어떻게 입원절차를 밟는가를 알려줌에 있어 전에는 여러 번 중복해서 말해야했다. 그러나 가족이 조급해지고 병원이 커서 잘 찾지 못하는 요소로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입원 절차 매뉴얼을 만들었고 간단명료했다. 이렇게 가족에게 절차를 알려주니 아주 간편했다. 발열하는 환자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약을 복용하는지와 주의사항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발열환자를 만나면 신체검사를 한 후 매뉴얼 한 장을 주면 집에 돌아간 후 자신의 병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했다. 고혈압환자는 고혈압 관련 매뉴얼을 주었다. 심지어 신체검사에 관해서도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서 준비했고 이렇게 한 후 응급실 업무가 다소 홀가분해졌고 환자들도만족해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이 빨리 돌아가게 하려고 나는 컴퓨터 모니터에 아주 많은 파일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술 취한 환자가 치료하러 오면 나는 환자를 본 후 내가 설치한 파일을 클릭만 하면 전반 치료방법이 나왔고 조금만 더 검토하면 되었다. 간호사가 의사 처방전을 편하게 식별하게 미리 인쇄해 놓았다. 환자 이름만 적어놓으면 되었는데 간호사는 처방전을 보고 바로 말했다. “첨단이에요!”

이렇게 하니 전반 진료 시스템 시간이 짧게 변했고 응급실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응급실은 늘 위중한 환자를 함께 진료하기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민첩하게 돌아가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후에 나는 이 방법을 동료들과 공유했고 동료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이 방법이 너무 좋아요. 나는 많은 힘을 절약하게 되었어요.”

나는 또 머리카락을 길렀고 얼마 전에는 약간 파마를 했고 대범한 옷 스타일로 바꾸었더니 모두들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자신이 남들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들이 대법제자의 그러한 긍정적이고 또 아름다운 형상을 보는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인상은 나로 하여금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의사와 환자 관계를 개선하고 나는 체험이 더 깊어졌다. 한번은 저녁에 당직을 서는데 발열하는 한 젊은이 A의 진료를 맡았는데 그는 다른 한 20여 세 되는 B와 같이 왔다. 두 젊은이들은 부유해 보였는데 그들 몸에서 오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A의 병을 본 후 바이러스 항생제 수액을 처방했다. 얼마 안가서 진료실 옆의 치료실에서 갑자기 고성이 오갔다. B와 간호사의 목소리였고 잇달아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늦은 밤 조용해서인지 이 다툼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고 빌딩과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는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이 적을수록 좋으니. 그러나 갑자기 B가 원장을 찾겠다고 소리 지르고 간호사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나는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사건 전말을 알아보았다. 원래 B가 약을 찾아서 간호사에게 주었는데 간호사는 약을테이블에 놓았고 B는 간호사에게 “어느 테이블에 놓았는가? 당신은 왜 약을 보지도 않는가?”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치료실에 테이블은 한 개 뿐이라고 답하면서 이것이 원인이 되었다.

B와 간호사를 이미 갈라놓았지만 두 사람은 정서가 흥분되어 거의 붙기만 하면 크게 몸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약품도 깨졌고 잔여물은 온 바닥에 가득했다. 나는 먼저 간호사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계속 말하면 이런 충돌이 끝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간호사는 오히려 억울해서 말했다. “왜 나를 말하지 못하게 해요 이렇게 사람을 업신여기는데!” 나는 할 수 없이 B를 향해 돌아서서 그를 잡아당겼다. 그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우리 먼저 냉정해요. 나는 먼저 간호사를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치료실에 돌아와서 다른 한 간호사가 이미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자라는 약은 어떻게 할까? 아예 내가 약을 사서 보충하자. 나는 돈을 지불하고 약을 가져왔다. A와 B의 앞에 가서 약을 다른 한 간호사에게 주었더니 간호사가 약 한 가지가 더 모자란다고 했다. 또 약을 보충하러 갔다. 나는 다시 A와 B의 앞에 와서 그들 손의 진료카드를 달라고 하면서 약을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B는 약간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돈을 대신 낼 필요 없어요. 내가 가서 돈을 낼게요.”

그래서 나는 B와 함께 돈을 냈고 약을 가져왔다. 길에서 나는 B와 주동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내일 원장에게 어떻게 신고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 당시 장면을 모두 녹화했다고 했는데 마치 간호사를 기어코 해고시키려고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B는 그가 여행사를 운영하고 본인도 서비스업에 종사하기에 그의 생각에서 서비스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했다. 그는 간호사의 태도가 거슬려서 화가 났다고 했다. 나는 듣고서 B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사업에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포부가 있는 사람의 흉금은 마땅히 넓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요? 사실 간호사 일이 아주 힘들어요. 급여가 적으면서 아주 수고스러워요. 당신이 진짜로 그녀에게 일자리를 잃게 한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얻나요? 일개 대장부라면 한 여자애를 그렇게 못살게 하겠어요?” B는 듣고서 화가 조금 풀렸고 또 나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처럼 진지하게 책임감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은 당신에 대해 인상이 좋아요.” 나는 그를 바라보고 진솔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저는 믿음이 있어요. 저는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중국에서 아직도 박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파룬궁은 세계 많은 국가에서 모두 널리 전해지고 있어요.”

이때 B는 마치 방금 전 발생한 불쾌함을 잊은 듯 했다. “나는 몇 번 여행팀을 데리고 홍콩에 가서 파룬궁 자원봉사자들을 보았어요. 그 당시 단지 멀리서 보았는데 그들은 아주 대단했어요. 모두 자신이 돈을 내고 자원적으로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그는 단대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저녁에 B는 또 진료실에 들어와서 A의 상태를 물었고 나의 답을 들은 후 그는 만족해서 나갔다. 한참 지나서 또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는데 이때 그의 손에는 녹차 한 병이 들려져 있었다. 내가 기침하는 것을 보고 나를 위해 특별히 음료를 사서 목을 축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좋은 뜻에 좋은 말로 사절했지만 마음속은 아주 감동했다. 그날 저녁 나중에 진료하는 환자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책임을 다해 진찰했고 한밤중에 길을 묻는 사람 때문에 잠이 깨도 원망하지 않았고 마음은 계속 아주 즐거웠다.

나는 수련 중에 아직 많은 부족한 점이 있다. 예를 들어 게으르고 강하며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며 제멋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등등이다. 그러나 나는 ‘남을 고려한다’를 이미 실행한 작은 수련 체험으로 내심에서 기타 부족한 점을 닦아내고 싶었다. 자신을 주도적, 적극적으로 변하게 하고, 노력하여 대법에 동화되고 싶었다.

나는 대법수련을 열심히 한 후의 이런 체험이 아마도 중한 속인의 마음을 씻어 없애는 맑은 샘물 같고, 어쩌면 작은 반딧불이 긴긴 검은 밤을 비추는 것 같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작은 선행이 사람 내심의 오해를 녹이고 본성이 공명(共鳴)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데 이로써 대법을 접촉하고 자신의 먼 기억을 열고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알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나의 현재의 인식이다. 부족한 점은 수련생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26/378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