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광저우 파룬궁 설법반에 참석한 수련생은 5천여 명이었으며, 사부님께서 체계적으로 파룬궁을 가르치신 학습반 중 가장 성대한 규모였습니다. 모두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자발적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강 전날이 되어서야 참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휴가 허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 차표를 구하지 못하는 문제, 중간에 환승할 때 기차표를 구매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입장권이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이전 설법반 참석 경험이 있는 경우 입장료가 절반인 25위안이었습니다). 저녁 개강 시간이 되어서도 입장하지 못한 수련생이 거의 1천 명에 달했고, 모두 장외에서 단체 연공을 하며 사부님을 기다렸습니다. 사부님이 나타나시자 모든 사람이 매우 감격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주최 측과 협상해 수련생들을 줄지어 입장시키려 하셨지만, 주최 측은 수익을 위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 입구에 나오셔서 밖에서 줄을 서며 입장을 기다리는 수련생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무려 5분 동안 미소를 띠시며 자상한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감격하여 박수를 쳤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과 주최 측의 협상 결과, 수백 명은 줄을 서서 입장했고 수백 명은 사부님 설법장 옆방에서 실황중계를 시청했습니다. 저는 3번째 강의부터 옆방에서 중계방송을 들었습니다. 당시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돌아가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한 수련생에게 물어보니 옆방에서 중계방송을 한다는 것을 알고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왔으면 모두 인연”과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일요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연속 3강의를 하셨습니다. 오후 두 강의 사이 휴식시간에 뜻밖에도 사부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즉시 일어나 사부님 주위로 둘러서서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드린 후,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어져 그저 조용히 사부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부님은 그토록 친근하며 존경스러우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떠나시려 하자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길을 내어드렸고, 아쉬운 마음으로 사부님을 배웅했습니다. 사부님과 함께 오신 직원이 다시 돌아와서 설명했습니다. “리(李) 선생님께서 죄송해하시며 반드시 여러분을 만나뵙겠다고 하셨고, 제게 그 뜻을 여러분께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광저우 설법반에는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매 강의 전에 사부님께서는 일찍 오셔서 모든 사람의 질문에 답해주셨습니다. 강의 전에는 책상 위에 놓인 수련생들이 잃어버린 돈, 기차표 등을 들고 누가 잃어버렸는지 강의 후에 찾아가라고 공지하셨습니다.
이상은 제가 직접 체험한 일들입니다. 거의 1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부님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수련길의 험난함 속에서, 특히 사악한 장쩌민(江澤民) 집단의 박해 속에서 사부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항상 따뜻해졌고,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저를 한 번 또 한 번 이끌어주셨습니다. 광풍으로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것은 일시적이며, 언제나 비가 갠 후 맑은 하늘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부님의 덕은 높고 높아 영원히 보존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05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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