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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나의 예술 인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40세 이전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문화 회사에 채용되어 미술 업무에 종사했다. 주로는 행정부서를 협조해주며 선전 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우선 당(黨)문화에 세뇌되는 대상이 됐으며 당을 도와 사람을 때리는 명실상부한 ‘몽둥이’가 됐다.

붉은 색 표어를 쓰고 만화를 그리며 ‘정치운동’을 따라서 달리고 미화하지 않으면 추악하게 먹칠하는데 문화인들은 당이 얼굴을 변화하는 기술을 바싹 따라갔다. 저속하고 악랄한 형식, 야만적인 언행은 매일 업무와 생활 속에 가득했다. 장기간 이런 환경 속에 처하자 사람은 막무가내식이고 마비되어 갔으며 심지어 세파에 떠밀려 내려갔다. 동료들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마작을 하고 더러운 말을 썼으며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아예 타락해서 최저선이 없었다.

그 시기에 나는 공산당의 이런 한 세트를 꿰뚫어보았다. 나는 대인관계가 좋아서 회사 상사들은 여러 번 나에게 입당을 독촉했지만 나는 입당하지 않았다. 그 외 나는 자신에게 지식이 있다고 느끼고 고등예술기관에 가서 더욱 닦고 싶었으며 이렇게 대충 사는 나날은 싫었다.

나는 집중해 자신의 미술전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문예계는 일반적으로 ‘(사악한)당을 칭송하는 주선율’로 주도할 것을 요구했고 동시에 각종 다양한 사상조류와 유행을 혼합시키도록 요구했다. 나는 전통문화에 대해 인식이 없고 일부 착오적인 것들에 대해 판단이 부족했기에 자연스럽게 창작 방향은 전위예술로 흘러가게 됐다. 현대파의 물건에 깊이 미혹되고 신기하고 괴이한 것을 추구하며 몽롱한 상태 속에서 명상하고 영감을 찾았고 내심의 곤혹과 답답한 정서를 발산했으며 절망적이고 환멸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렇게 10여 년 동안 나의 회화는 굽은 길을 걸었고 성적이 없으며 또 온몸에 병을 불러왔는데 위장병과 엄중한 류머티스, 전신 통증으로 밤에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었으며 약간만 무거운 신발을 신어도 길을 걸을 때 끌지도 못했다. 나는 대도시 작은 마을의 아주 많은 중의원, 병원을 다녔고 각종 처방대로 먹었으며 심지어 ‘불문(佛門)’에서 향을 태운 잿물도 마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40세도 안됐는데 자신이 진짜로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나의 예술도 곧 끝날 것 같았다.

당시 아버지는 이미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셨고 고혈압, 심장병과 전립선염 등 병이 보름도 안 되어 신기하게 사라졌다. 아버지는 나의 누런 피부와 수척한 모습을 보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라고 설득하셨다. 그러나 우리 이 시대 사람들은 공산당 무신론 거짓말에 중독을 깊이 받아 대법 책을 어떻게 해도 들 수 없었고 이렇게 또 2년이 흘렀다.

40세 이후

그때는 1997년이었다. 내 체중은 50kg도 안 되었고 업무를 더는 볼 수 없었다. 급여를 받으면 먼저 약국에 가서 약을 사야 하는데 가정생활이 너무 어려웠다.

바로 이 해에 나는 ‘전법륜’을 읽다 말다하며 5가지 공법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나는 평소에 일부 좋지 않은 생각과 습관을 고쳤으며 사상적으로 깨끗해지려 했다. 대법에 대해 갈수록 인식이 생기면서 저도 모르게 신체가 천천히 좋아졌다.

대략 반년도 안 되어 나를 거의 5년간 괴롭혔던 류머티스와 10여 년간의 위장병이 철저히 나아졌고 얼굴에는 붉은 빛이 돌고 체중은 60kg으로 올라갔다. 좋지 못한 행위와 사상이 내 몸에서 차츰차츰 물러갔고 불광의 빛은 나의 내심을 비추었으며 사부님께서는 나를 음지에서 꺼내주셨다.

1998년 설을 쇠고 출근했는데 동료들은 내가 사람이 바뀐 것처럼 젊고 혈기가 넘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대법 ‘진선인’에 따라 했고 일을 많이 해도 이익을 다투지 않았으며 회사의 미술활동 예산에서 자재 구입은 항상 혼자 가서 했다. 비록 생활이 매우 어렵지만 회사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고 회사에 자재를 구입할 때 동시에 자신이 사용할 물건을 구입할 경우는 다른 호주머니에서 자신의 돈을 꺼내어 지불했다.

그 외 우리 회사는 도시의 모든 노래방과 클럽을 관리하게 되어 회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을 내지 않고 그곳에서 놀고 소비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이런 곳에서 우리를 초대했지만 나는 이런 고상하지 못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동료와 상사들과 관계를 잘 처리하자 사람마다 나를 칭찬했다.

1999년 장쩌민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미친 듯이 박해를 발동했고 동료 상사는 모두 암암리에 나를 보호해주었고 일부 일에서 돌봐주어 나는 이 세월을 순조롭게 걸어왔다. 물론 그들도 나를 통해 대법 진상을 알았고 내 몸에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며 대법제자의 직업 정신, 선량함과 바른 부분을 보았다. 그리하여 사당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먹칠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 외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의 그림에도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당시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사부님의 설법은 없었지만 나는 ‘전법륜’을 읽은 후 사람이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예술도 마땅히 바른 길을 걸어야 함을 알았다.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알리고 추악한 것은 버려야 함을 알았다. 나는 거의 하룻밤 사이에 10여 년간 견지했던 변형된 풍격을 버렸고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실사수법으로 돌아왔으며 마치 봄바람에 목욕하는 것과 같았는데 나의 내심의 모든 답답함과 방황을 버릴 수 있었다. 사람이 변했고 작품도 변했으며 기형적이고 괴이한 그림자도 사라졌다. 화면에는 평화로움과 깨끗함, 희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었음을 진실하게 느꼈고 창작도 더 이상 이전처럼 억지로 힘들게 생각하고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파룬따파를 1년 넘게 수련하고 내 작품은 참신한 면모로 전국에서 최고급 전시회에도 나타났다. 이후로 순조롭게 전국미술전에 입선됐고 문화부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상을 받았다. 국가TV방송국에서 다큐로 제작해 방영했고 여러 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이런 성적은 내 마음속에서 아주 큰 분량을 점하지 않았고 이로써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평온한 생활을 하고 열심히 일하며 세파에 물들지 않았다. 혼탁함 속의 깨끗한 연꽃이 됐고 수련인의 내심이 승화한 후에 순선순미의 경지를 예술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펼쳐보였고 사람들 마음속에 정의와 선량을 깨웠다.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은 대법의 신성함과 위대함을 실증했고 중국공산당의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악이 제거될 것임을 증명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번 박해의 사악성과 비이성, 불법성을 점차 알게 될 것이다. 진상도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이 한 단락 경력을 돌이켜보니 내심에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무한한 은혜로 가득하다. 대법이 있으니 제자는 반드시 더욱 잘할 것이다.

(밍후이왕 2018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경축’ 원고)

 

원문발표: 2018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2/3651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