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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한없는 불은(佛恩)에 복을 받은 중생들

글/ 중국 대법제자 징핑(靜平)

[밍후이왕] 나는 1956년에 쓰촨의 가난한 산간지역 시골에서 태어났다. 8개월 됐을 때, 어머니는 여동생을 임신했고 그때부터 나는 젖을 뗐다. 그 후 부모님은 농사에 바빠 나를 알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하셨다.

1. 어렸을 적의 시련

한 살이 좀 넘어 나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배가 부풀어 오르고 안색이 누렇고 몸이 수척하며, 하루 종일 울고 떼를 쓰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때 아직 시집가지 않은 막내 이모가 나를 외할머니 집으로 업고 간 후 가망성이 없지만 끝까지 치료해보겠다고 했다. 막내 이모는 직접 약초를 심는 먼 곳 시골의사를 청해 내 병을 봐달라고 했다. 그 의사는 밥을 담는 도자기 그릇을 깨뜨린 후 아주 가느다란 그릇 부스러기를 물에 타서 나보고 마시라고 했다. 또한 일부 약초까지 캐어 내 병을 치료해주었다. 이렇게 나는 죽음에서 한 번 벗어났다.

2~3살 때 중국공산당의 ‘대대적인 철강 제련 운동’, ‘대약진(大躍進) 운동’, ‘인민공사 세 가지 붉은 깃발(人民公社三面紅旗)’ 등 운동 때문에 전국적으로 몇 년간 대기근을 겪었다.

남녀노소를 모두 모아 군사화를 만들었고 단체로 나가 농사일을 했다. 개인집 양식, 물품은 모두 단체에서 관리했고 개인 물품이 사라졌다. 어른들은 단체로 식당에 모여 식사했고(사실 어른들도 먹을 음식이 없었음. 오전 내내, 하루 내내 일해도 담아온 밥은 위에는 물이고 아래에는 입쌀과 야채가 조금 들어있어 그들도 배를 곯으며 일했음), 아이들은 모두 공사에서 관리하는 이른바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냈다.(보낸 것이 아니라 실은 감금한 것이고 우리를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았음) 아이들은 1인당 매일 입쌀 1냥(50g)을 주었는데 이 1냥도 유치원,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주머니들이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우리들이 먹을 수 있었다. 나의 전반 어린 시절은 사실 배고파 죽지 않은 상태에서 견뎌왔다.

항상 굶주렸기에 2살 좀 넘은 해에 허겁지겁 다른 사람이 준, 껍질도 벗기지 않은 썩은 감자를 먹다가 눈이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다행히 제때에 발견되어 해독했기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위험했던 일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십여 리 떨어져 있었다. 십여 리 밖에 안 된다지만 이건 산을 몇 개 넘어야 하고 게다가 모두 낭떠러지 옆에 있는 좁은 길을 걸어야 했다. 내가 7~8살 되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자기도 모르게 벼랑으로 떨어졌다. 길거리에 야생나무와 덩굴이 가득 자라 아무도 내가 떨어진 것을 몰랐고, 30m 깊이여서 누구도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똑똑히 내 비명소리를 들었다. 내가 벼랑에서 떨어진 곳과 우리집은 적어도 1km 이상 되는 직선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이건 신께서 어머니에게 알려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시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아버지와 함께 내가 학교로 가는 길로 달려갔다. 벼랑 끝에서 내가 떨어질 때 쓰러뜨린 야초와 나뭇가지를 발견한 후 내가 떨어질 때 남긴 흔적을 따라 나뭇가지와 덩굴을 잡고 몇 층 높이 방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내가 벼랑 끝과 15m 떨어진 곳에서 굵은 덩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벼랑 끝은 온통 뾰족한 바윗돌로서 사실 깊은 자갈 구덩이였음) 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와 함께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를 안고 올라오셨다.

그때 나는 이미 인사불성이고 정신을 잃었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구조되기는커녕 시체도 찾지 못했을 테니 정말 위험했다! 대법을 배운 후에 사부님께서 줄곧 지켜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어려서부터 나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고 고생을 많이 했다. 신체가 나빠 지금까지 젖니 하나를 바꾸지 않았고 어릴 적부터 늘 머리가 아파 잠깐씩 잠을 자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업무 스트레스가 많아 갈수록 머리가 아프고 잠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36살 때에는 아무리 오래 자도 소용이 없었고 구토, 두통과 함께 두통약을 먹으면서 아픔을 완화시켰다. 증상이 심해짐에 따라 두통약을 먹는 횟수도 잦아졌다. 처음에 한 봉지, 두 봉지를 먹던 데서 나중에는 한꺼번에 다섯 봉지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심지어 가끔 한 번에 열 봉지를 먹기도 했다. 이로 인해 나는 심한 미란성 위염에 걸렸고 입안이 다 헐고 궤양이 생겼으며 심한 부인병에 걸려 몹시 허약했다. 하루 종일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 늘 누워 자고만 싶었는데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치료를 위해 크고 작은 병원을 넘나들면서 이 병원이 안 되면 저 병원을 다녔고 집에 있던 돈은 모두 치료에 사용했다.

마흔 살인 나는 보기에 예순 넘은 할머니 같아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눈이 부었다.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헝클어졌으며 얼굴에는 온통 검은 반점이었다. 1998년 9월, 42살 될 때 더 이상 참기 힘들어 회사에 1개월 휴가를 신청한 후 충칭 다핑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3일 동안에 1만여 위안을 썼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어 병원에서는 나에게 3천여 위안어치 약 처방을 주며 집에 가서 치료하고 쉬라고 했다. 실은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해 밖으로 떠민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 사람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었지만 잠들지 못했고, 밥 먹고 싶어도 입안에 온통 썩은 궤양이어서 먹지 못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6살 된 큰 아들은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돼요. 제가 아직 어리고 공부도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2. 신기하게 법을 얻다

이렇게 죽지 못해 살던 절망적인 순간에 나는 목숨을 구해준 대법을 만났다.

우리 회사에 서른 몇 살 때 질병으로 퇴직한 A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나와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2층에 살고 나는 3층에 살았다. 어느 날 A아주머니는 나를 보러 와서 “○○, 당신 모양을 보니 오직 파룬궁을 수련해야만 나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책을 보세요.” 내가 보니 ‘전법륜2’였고 펼쳐보니 부처님 한 분이 계셨다. 당시 나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한 후 책을 TV 위에 놓고는 연공하러 간다는 아주머니를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떠나간 후 속으로 ‘회사에 한 달 휴가를 내어 치료를 하겠다고 했는데 며칠도 안 돼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면 남들이 꾀병을 부린다고 얘기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내려가 A아주머니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연공하러 갔다. 그래서 그녀 남편에게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제가 내일 연공하러 가지 않을 거라고 전달해주세요. 휴가 끝난 후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몸을 돌리기 전에 코피가 흐르기 시작해 나는 코를 잡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피가 입안에서 흘러나왔다. 수도꼭지를 틀어 피를 씻으니 갈수록 더 많이 흘렀고 나중에는 아예 덩어리째 입안에서 뿜어 나왔다. 속으로 ‘나는 종래로 코피를 흘리지 않는데 오늘 왜 이렇게 많이 흘리지? 나보고 내일 연공하러 가라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즉시 TV위에 놓았던 ‘전법륜2’를 손에 받쳐 들고 동쪽을 향해 말했다. “신이시여! 저보고 내일 연공하러 가라는 뜻이십니까? 그럼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단번에 코피가 멈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 “아주머니에게 내일 저를 기다려달라고 얘기해주세요. 저도 연공하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3. 법을 듣고 연공하고 홍법하다

이튿날,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연공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한 수련생 집에 가서 설법 녹음을 듣게 했다. 그날 들은 것은 사부님 ‘광저우 설법’ 제9강이었다. 절반 쯤 들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들을 만해요?”라고 물었고 나는 “좋아요! 들을수록 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들은 후 한 수련생 언니(이 집 주인)는 기뻐하며 말했다. “어제 저녁 꿈에 여자 세 명이 한 갈래 강의 상류에서 떠내려 왔어요. 나는 그들을 구하려고 급히 몸에 둘렀던 앞치마를 벗어 물에 놓았죠. 그 중 한 명은 내 앞치마를 잡고 기슭에 올라갔지만 나머지 두 명은 떠내려갔습니다. 알고 보니 구해준 사람이 당신이었네요!”

그 뒤로 나는 날씨가 개이든 흐리든 1년 사계절 법공부와 연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머니가 날마다 6시에 나를 데리고 연공장에 가서 1~4장 공법을 연마하고, 저녁 7시에 법공부 팀에 데리고 가 ‘전법륜’을 두 시간 읽은 후 5장 공법을 연마했다. 낮에는 계속해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과 ‘전법륜’, ‘정진요지’를 배웠는데 정말 제고가 아주 빨랐다.

연공을 시작하고 보름도 안 돼 내 신체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 심한 부인병, 뇌진탕 후유증, 미란성 궤양, 뇌졸중 등 병들이 모두 사라졌다. 길을 걸으면 온몸이 홀가분하고 날마다 기운이 넘쳤으며 정신이 또릿하고 얼굴이 불그스레했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됐다. 나는 그 3천여 위안되는 약을 모두 회사의 한 동료에게 주었고 다들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네요. 이걸 연마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 회사 상사마저 ‘전법륜’ 한 권을 요청해 보았다.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연공장에서 연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연공기를 사다가 연공장 하나를 더 조직했다. 하지만 하나 갖고 또 부족해 계속해 두 개, 세 개를 조직해 반년 사이에 우리 이 작은 현급시에는 이미 수만 명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공하고 있었다.

4. 고향에서 법을 전하다

1998년 겨울 방학, 나는 대법을 얻은 후 심신이 혜택을 입은 크나큰 기쁨과 사존에 대한 비할 바 없는 감사의 마음을 품고 시골 친정집에 내려가 법을 전했다.

나는 친척과 마을 사람들에게 대법의 각종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그들은 모두 내 말을 믿었다. 나에게서 발생한 각 방면의 변화를 보았기에 다들 사부님 설법을 들으려 했다. 그들에게 사부님 설법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기계를 켜니 돌아가지 않았다. 소리도 없었고 화면도 나오지 않았지만 검사해보니 기계는 정상이었다. 속으로 ‘왜 이러지? 어떻게 해야지?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사부님께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다들 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사부님께 향을 피워 도와달라고 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향 세 개를 피운 후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 사부님의 설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가 돌아가지 않으니 사부님께서 환경을 청리해주시고 기계가 정상으로 작동해 그들이 구도될 수 있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와서 방 안의 많은 곳에서 소리가 난다고 알려주었다.(사부님께서 환경을 청리해주심) 조금 뒤 기계가 돌아가고 사부님 모습이 화면이 나타났다. 내 눈에서는 즉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친정집 대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 건강 상태, 언어습관에 모두 예상치 못한 크나큰 변화가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도 예전보다 부유해져 먼 곳 친척과 친구들은 다들 의논하고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멀고 가까운 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고 법을 얻은 후 그들 집도 자연스레 법공부 팀, 연공장이 됐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당시 현지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그때 아침마다 적어도 10여 명이 우리 친정집 옥상에서 연공했다. 어느 날 아침, 우리 열 몇 명이 동공을 연공하고 있을 때 6시 좀 넘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연공을 마칠 때까지 누구도 연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비가 줄곧 내렸지만 그들 옷은 비에 젖지 않았고 바닥도 젖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수련의 신심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렇게 대법은 우리 친정집 주변에서 널리 전해졌다.

5. 가족들이 법을 얻어 혜택을 입다

1)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인생이 순탄치 못했고 생활고 때문에 온몸이 병투성이였다.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신 후 당일 저녁 잠 잘 무렵에 토하기 시작했고 다 토한 후 잠드셨다. 그때부터 몇 십 년 괴롭혔던 중이염, 위장병, 담낭염이 모두 사라지셨다. 더 이상 6월 무더위에 솜, 모자, 검은 천, 흰색 손수건으로 머리를 세숫대야보다 더 크게 꽁꽁 싸매지 않아도 됐고 겨울에도 싸맬 필요가 없게 됐다.

현재 여든 몇 살인 어머니는 하루도 학교에 다니신 적이 없고 일자무식이지만 사부님 말씀은 알아듣는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전법륜’을 읽을 수 있어 다들 신기해하며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님은 하루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데 어찌 여든 몇 살 되는 연세에 안경도 쓰지 않고 이 두꺼운 책을 받쳐 들고 그렇게 열심히 보실 수 있나요?” 그럼 어머니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우리 사부님께서 나에게 글씨를 가르쳐주셨어요.”

과거 허약하던 어머니는 지금 생기가 넘치고 활기차며 얼굴이 뽀얗고 붉은 빛이 돈다. 날마다 법공부, 연공을 하고, 날이 개이면 날마다 나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신다.

2) 아버지와 남동생

아버지와 남동생은 담배를 많이 피우고 피우기 좋아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누가 아버지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 아버지는 숨이 넘어가면 모를까 아니면 계속 피울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사부님 설법 녹음과 녹화를 본 후 아주 자연스레 피우지 않게 되셨다.

남동생은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보았지만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서 담배를 피우다가 갑자기 쪼그리게 됐고 십여 분 지났지만 여전히 일어나지 못했다. 그제야 담배를 더 이상 피워서는 안 되고 이건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두 명은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됐다.

남동생은 맨 처음에 읍내 기업에 출근하다가 이후에 스스로 장사하겠다고 퇴사했다. 나중에 장사하다 손해를 본 후 집에 마작관을 차렸다. 그도 같이 마작을 하면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늘 잃어서 결국 마작관도 망했다. 수입이 없어서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1998년 말, 남동생은 기쁘게 대법을 얻어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얼굴에 화색이 돌고 생기가 넘쳤으며 그의 집은 법공부 장소, 연공장이 됐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집단이 대법을 박해한 후, 남동생은 ‘열성분자’로 찍혀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남동생을 아침 8시에 파출소로 데려 갔다가 저녁 8시에 데려왔는데 목적은 그에게 누가 현지에 파룬궁을 전파하고, 현지에서 누가 파룬궁을 배우는지 말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파출소 경찰들은 결국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보름 뒤, 온 집식구의 거주지가 감시당하고 조용한 수련환경을 잃어 남동생은 늘 혼자서 강가에 앉아 울었다.

1999년 말, 남동생이 만 40세 되던 해, 그는 사부님의 배치 하에 누구의 소개로 읍 소재지에서 임시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일한 지 반년도 안 돼 정식 직원이 되고 정상적인 직장을 갖게 됐으며 수련 환경이 생겼다. 이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으로 사부님이 그를 지켜주셨기에 대법의 복을 받은 것이었다.

3) 나의 이종사촌 형부

나의 이종사촌 형부는 2008년에 이상한 병에 걸렸다. 하반신 소변 부위에서 끊임없이 흰 액체가 흘러나왔는데 마치 부인병인 백대하 같았다. 온 몸에 기운이 없고 일을 할 수 없으며 성격이 난폭해졌다. 치료를 위해 유명한 병원과 큰 병원에 모두 다녀왔지만 모두 치료하지 못했고 병원에서도 무슨 병인지 진단해내지 못했다. 편방, 초약을 모두 사용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부처님께 빌어도 안 됐다. 이때 집안 돈도 다 써서 절망에 빠지게 되자 형부는 내 남동생을 찾아와 상황을 얘기했다.

남동생이 그에게 파룬궁을 수련할거냐고 묻자 그는 무기력하게 수련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남동생은 그에게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1강을 다 본 후 남동생은 1강 테이프를 꺼내고 제2강 테이프를 넣으려고 했는데 1강 테이프를 꺼내고 아직 새로운 것을 넣지 않은 2~3분 동안 사부님의 이미지는 여전히 TV화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남동생은 이것을 보면서 형부에게 스스로 깨달으라고 말했다.

형부는 ‘전법륜’ 한 권을 청했고 사부님 설법 녹화 테이프를 갖고 돌아가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다. 20여 일이 지난 후 형부는 전화에서 남동생에게 그의 병이 다 나아 약을 먹거나 입원할 필요가 없고 일을 할 수 있고 기운도 난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뒤 둘째 딸을 얻었고 지금은 마을 주임이다.

4) 남편

남편은 1998년 왼쪽 발에 메추리알만한 혹이 자랐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해보았지만 의사나 전문가들은 모두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혹이 발등 힘줄에 자랐기에 만약 수술을 해 잘라버리면 힘줄을 건드릴 수 있기에 깨끗하게 잘라내지 못한다. 그러면 얼마 뒤 또 다시 자라서 어떻게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었다.

내가 대법을 얻은 후 우리가 연공할 때 남편도 뒤에서 우리를 따라 동작을 흉내 냈고 이러면서 그 혹은 자기도 모르게 사라졌다. 오랫동안의 결벽증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남편은 수련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모두 “이 파룬궁은 정말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했고 한 번도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특히 내가 대법을 수련하고 1년 뒤에 박해가 시작됐을 때, 대법제자가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환경이 험악하든 느슨하든 남편은 모두 무조건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주고 협조해주었다.

5) 아들과 며느리

2008년 현지 국가보안대대, 610(파룬궁 박해 전문조직)은 내가 집에 없을 때 방학해 집에 있는 아이를 속여 문을 열게 했다. 불법적으로 집에 쳐들어와 프린터, 코팅기, 컴퓨터 등 개인물품을 빼앗아갔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지혜롭게 대법 책(특히 내가 법을 얻을 적에 받았던 ‘전법륜2’)를 숨겨놓아 보호했다.

이튿날 그들은 나를 국가보안대대에 데려가 물건을 내놓으라고 했다. 아들은 내 옆에 서서 당당하게 말했다. “삼촌, ‘전법륜’ 책을 우리 어머니에게 돌려주세요. 어머니 목숨을 구해주신 책이에요.” 아들이 법을 수호하고 대법제자를 지지했기에 그해 대학 입시에서 가장 낮은 합격선 성적으로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며 정식으로 졸업하기 전에 가장 좋은 회사에 채용됐다.

며느리도 나와 수련생을 도와 장쩌민 고소장을 인쇄하고 정리해주었으며 평소 우리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과일을 올렸다. 대법을 좋다는 것을 믿었기에 역시 정식으로 졸업하기 전에 가장 좋은 회사에 채용됐다.

해마다 설날 때, 나와 남편, 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 일가족은 순서대로 줄줄이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구도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가족들이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지지하고 대법을 수호하며 대법제자를 도와 힘이 닿는 데까지 진상을 알리는 일들을 했기에 작은 아들은 원래 직장에서 좋은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작은 며느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회사를 차렸는데 매월 수입이 몇십 만 위안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대법이 준 복이다.

사실 대법 중에서 혜택을 입은 친척이나 친구, 세인들이 너무 많아 여기에서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다. 이런 것들을 써내는 것은 세인과 중생들이 빨리 진상을 찾아 파룬따파를 알아보고 대법의 구도를 받기 바라서이다.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린다! 천 마디 말로도 사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밍후이왕 2018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 모집)

 

원문발표: 2018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8/3650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