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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은혜를 회억: 대법수련에 들어서도록 이끌어주신 사부님

글/ 창춘 대법제자 춘위(春宇)

[밍후이왕] 나는 1992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여러 번 사부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게 되었다. 줄곧 그 경과를 써내어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 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1. 사부님께서 내 병을 제거해주시다

나는 올해 81세이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로 오늘까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구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렸을 때 몇 년 동안을 중이염에 시달렸고, 홍역을 앓을 때 눈병(강렬한 빛이나 바람을 맞으면 눈물을 흘리는 병)까지 걸렸다고 한다. 1948년, 공산당이 창춘을 겹겹이 포위하여 곤경에 빠뜨렸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나도 하마터면 굶어죽을 뻔했는데 그때 위장병에 걸렸다. 1949년 생활고 때문에 사방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토담집에서 세를 살면서 또 류머티즘에 걸렸다. 결혼하고 임신 7개월 때 신우신염(腎盂腎炎)에 걸려 아무리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다. 면역력이 갈수록 떨어져 늘 달고 살던 감기는 물론 편두통, 저혈압, 부비강염, 류머티즘, 각종 부인병, 만성 맹장염, 골증식 등 열여덟 가지의 병에 시달렸다. 문화대혁명 때 농촌생산대(生產隊)에 들어가 노동하고 생활할 때 하마터면 거기에서 죽을 뻔했다. 도시로 돌아온 후 주사 맞고 약 먹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늘 병원에 입원하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해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포함한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기공이 나타난 후 나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공법을 찾기 시작했다. 여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는데 비록 효과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모두 근본적으로 병을 제거하지 못했다. 후에 한 친구 소개로 불교에 들어가 3년 동안 채식했지만 여전히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또한 불교에서 연공도 못하게 해 속으로 ‘연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병 치료하지?’라고 생각하며 아주 난감하고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다. 1992년 9월, 사부님께서는 길림대학에 와서 연공장을 세우셨다. 어느 날 아침, 우리가 길림대학 목단원에서 새벽운동을 할 때 한 기공사가 길림대학 선생님은 사람의 병을 치료해준다는 말을 듣고 모두 찾아갔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오늘 사람마다 한 가지 병을 치료해줄 것이고 만약 완전히 병을 제거하고 싶으면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셨다. 나는 보도원에게 우리 세 명도 병을 치료해줄 수 있냐고 사부님께 여쭈어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응낙하셨다.

내 왼쪽 어깨에 오십견이 있어 몇 달 동안 팔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생활하는데 영향이 많았지만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병 치료를 해주실 때 가끔 보도원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당시 나에게도 사진을 찍어주었다. 당시 기쁨에 젖어 사진 찍은 일을 까맣게 잊어버려 지금 생각해도 참 유감스럽다. 사부님께서 병 치료해주신 왼쪽 어깨는 여태껏 아픈 적이 없었다.

사부님의 손만 가면 다들 병이 치료되어 정말 신기했고 사부님 공법을 아주 믿었다. 그래서 단체 연공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연공한 지 한 주도 안 돼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공장 보도원에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묻자 그는 사람들에게 내 소주천(小周天)이 열렸다고 말했다. 얼마 지난 후 모든 병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나아져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했다. 그래서 파룬궁을 수련할 것이고 그 어떤 어려움도 나를 가로막지 못하며 끝까지 사부님을 따라 수련하겠다고 맹세했다. 이렇게 나는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1993년 초부터 지금까지 나는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2. 사부님께서 전일하게 대법을 수련하라고 이끌어주시다

병이 많아 나는 여섯 가지 기공을 연마했고 불교에도 들어간 적이 있었다. 불교에서 수련할 때 다들 ‘스승을 모셨는데’ 보통 입문하기만 하면 스승을 모셨다. 비록 불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스승을 모시기가 싫었다. 나를 불교로 이끌어준 친구도 스승을 모셨고 그것도 직위가 높은 주지스님이었다. 이 스님은 함부로 제자를 받지 않았는데 나와 친구가 함께 스님을 만날 때 스님은 나를 아주 잘 대해주었고 매번 우리 둘을 보면 항상 나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넸다. 친구는 스님이 왜 나를 잘 대해주는지 의아해하면서 나보고 주지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인간 세상에 아직 내 사부님이 될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평소에 나는 아주 고지식하고 온순하며 종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이토록 허황된 말을 하지 않을 텐데 그때는 나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대법을 배운 후에야 오래 전부터 나에게 수행을 가르쳐주려는 사부님이 속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3년 나는 사부님이 창춘에서 개최하신 제5기 설법반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일반 기공으로 생각했지만 들을수록 사부님이 다른 기공사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고 온화하여 가까이 다가가기 쉬웠으며 소박하고 단정했다. 나와 가까운 곳에 앉은 사람은 옆 사람에게 강당에 부처가 왔고 수많은 불·도·신(佛, 道, 神)이 사부님 설법을 듣고 계신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절대 일반분이 아니고 더욱 높은 부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불교는 몇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속으로 좀 모순이 되어 집중해 듣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씀하실 때 불교를 수련하면서 파룬궁을 수련해서는 안 되니 한 가지 법문만 선택해 수련할 수 있다고 하셨다.

9강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의 질문에 해답해주셨다. 내가 이 문제를 올렸지만 사부님께서는 해답해주시지 않았는데, 나는 시름이 놓이지 않아 보도원을 찾아가 사부님과 단독으로 얘기하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이에 사부님께서는 동의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부님께서는 내 옆에 오셔서 나와 얘기를 나누셨다. 내가 불이법문에 관한 의혹을 여쭈어보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사찰이 어떠한지 보라. 진정한 부처는 모두 떠나가고 불상에는 부체들이 올라앉았고, 주지스님이 불전에 올라 경을 읽을 때 조는가 하면 ‘공덕함(功德箱)’ 관리자가 안의 돈을 훔치거나 함부로 개광(開光)한다. 당신이 보건데 그들이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는가? 사찰이 아직도 정토일까?” 수많은 사찰의 좋지 않은 일들을 사부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셨고 길에서 직접 나를 깨우쳐주셨다.

사부님의 말씀은 정말 사실이었다. 이로써 예전에 겪은 한 가지 일이 생각났는데 어느 한 번, 나를 불교로 끌어들인 언니와 함께 큰 절에 갔을 때 절 문 옆에 1.8미터 높이의 관음보살상이 있었다. 언니는 자기 이름이 좋지 않다며 나에게 관음보살께 이름을 고쳐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나와 언니는 관음보살상 앞에 가서 두 눈을 감고 합장한 후 관음주문을 외웠다. 조금 뒤, 관음보살이 왔는데 민간전설에서 전해진 관음보살은 흰색 옷을 입었지만 이 관음보살은 고동색 옷을 입었다. 당시 나는 깜짝 놀랐다. 이튿날 누군가 나에게 관음보살상 밑에 여우가 엎드려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찰의 부처상에 온통 부체들이 앉아있다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과 딱 맞지 않는가?

그때 사부님이 가장 높은 부처이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정법을 얻으려면 교란과 시험이 존재한다. 부처 수련하는,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동생이 나에게 ○○법문을 수련하자고 했다. 체면 때문에 정말 마지못해 갔다. 거기에는 면접시험이 있었는데 나보고 평소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다. 그때 남동생을 도와 가게를 봐주었기에 밥할 시간이 없어 점심이면 늘 계란이 들어간 빵을 먹었다. 그들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자 그들은 내가 먹는 음식이 깨끗하지 못하다며 개인전용식기가 있어야 하고 계란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30여 명이 갔는데 나만 합격되지 않았다. 그들 요구에 따라 한 달 동안 한 후 다시 시험을 봐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 법문을 수련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듣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고 마치 해탈된 것 같았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할 테니 다른 법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며칠 뒤, 나를 불교로 이끌고 간 두 자매는 또 나를 찾아와 이젠 절은 안 된다고 하며 집에서 수련을 잘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억지로 나를 거기로 끌고 가려 했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우리 집 문을 지키면서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부처를 잘 수련하다가 왜 포기하는지, 포기하면 헛수고라는 등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다. 가보니 회사 사장 부인이었고 집은 방 3개, 거실 하나가 있었다. 일부러 방 하나를 비워 불당을 만들고 수많은 부처상을 모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집에 가서 향을 피우고 고두(磕頭)하며 부처에게 인사를 드렸다. 들어간 후 나는 예의상 합장을 한 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나보고 어떠하냐고 묻자 나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질궁이라는 곳까지 왔을 때 나는 갑자기 다른 공간의 모습을 보았다. 사찰, 나무가 있고 더없이 아름답고 훌륭했다. 동시에 귓가에 파룬궁 연공 음악소리가 들렸는데 소리가 아주 높았다. 내가 그들에게 보고들은 것을 알려주자 그 둘은 동시에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해야 하나보네요. 이제는 각자 수련하고 우리도 다시는 당신을 잡아당기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꿈에 우리 세 명이 하늘을 아주 높이 날고 있었다. 삼거리까지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극락세계로 가고 나는 파룬세계로 가겠다고 말했다. 이 꿈을 그들에게 알려주자 그들도 기뻐했다. 이렇게 나는 진정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만이 나의 진정한 사부님이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할 것이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경문을 종이에 반듯하게 잘 적어 벽에 붙였다. “수련의 길에 고생 있음이 아니라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음이로다. 마음 굳혀 소업하고 心性(씬씽) 수련하리니 영원한 사람몸 얻어야 부처로다“[1]

그때부터 나는 확고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예전에 함께 불교를 수련하던 자매들에게도 파룬따파 칭찬을 했다. 수련과 덕을 중히 여기는 것, 심성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남편 역시 나를 지지해주면서 파룬궁에는 다른 법문에 없는 장점이 있다며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부처수련도 할 수 있으니 다른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제7기 창춘설법반 열 번째 날, 즉 마지막 날에 사부님께서 수업을 마치신 후 나는 강단 통로에 서 있었다.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바라보셨기에 나는 속으로 확고히 대법을 수련하려는 마음이 사부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추측했다. 후에 늘 그 순간이 생각났고 생각날 때마다 행복에 젖고 수련의 정념이 더 강해졌다. 대법제자는 이렇게 대법사부님과 성스러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2]였다.

3. 사부님께서 부체를 없애주시다

만약 내가 법과 공을 전해주신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마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나에게 부체가 있었지만 나 본인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나는 우주어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그때 연마하던 기공장에 늘 한 여사가 왔다. 그녀 남편은 부처를 모셨는데 보호를 받지 못하자, 불상을 내동댕이치고 병에 걸려 입원했다고 했다. 어느 한 번, 그녀는 또 연공장에 와서 함께 연공했다. 연공을 마친 후 사람들이 차츰 떠나갈 때 그녀는 갑자기 쓰러졌고 나는 우주어로 그녀를 치료해주었다. 그때 나에게는 예측공능도 좀 있었다. 전에 나를 불교수련으로 이끌어준 여동생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7~8일 음식을 드시지 못했다. 누군가 점을 치러 와서 이맘쯤이면 돌아가실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 여동생은 나보고 그녀 집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세상 뜨지 않으니까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결과 그녀 어머니는 정말 세상 뜨지 않고 몇 년을 더 사셨다.

중국에는 ‘문화대혁명’ 때부터 기공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 치료해주는 기공사도 아주 많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체로 병을 보았다. 내 친여동생이 병에 걸리자 누군가 점을 잘 치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여동생은 나보고 우선 이 사람이 어떠한지 가보라고 했다. 거기에 찾아가보니 한 노인이 계셨고 그녀는 나를 가리키며 그녀 딸에게 말했다. “이 언니는 괜찮아. 관음보살과 함께 왔어.” 방에 들어가 보니 그녀 집에서는 불상과 이른바 선가(仙家, 즉 부체)를 모시고 있었고 불상에도 모두 부체가 올라앉아 정도(正道)가 아니었다. 여동생을 대신해 병 치료하러 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반드시 본인이 직접 찾아와야 치료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떠나갈 때 그녀는 이유 없이 세 번 인사했고 인사하면서 부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예전에 나도 가끔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었는데 그건 부체가 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 부분을 똑똑히 안 후 더 이상 남에게 병 치료해주지 않았다. 나에게 이 정념이 있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부체를 철저히 제거해주셨다. 보도원은 나에게 우리가 포륜(抱輪)을 연공할 때 사부님께서 오셨고 바로 나를 향해 오시더니 내 머리위에서 손을 몇 번 움켜쥐고는 내던졌다고 말했다. 당시 몰랐지만 보도원 얘기를 듣고서 사부님께서 오셔서 부체를 철저히 제거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에 있던 부체가 영원히 제거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지 않았으면 내 목숨도 부체가 가져갔을 것이다. 어떤 기공사들이 사람에게 병 치료를 해주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는데 사실 모두 부체의 해를 입은 것이다. 파룬따파를 얻게 되어 다행이고, 이 소중한 인체로 대법을 배울 수 있고 수련할 수 있어 비할 바 없는 행운을 느낀다.

사실 초기에 법을 전하실 때 사부님께서는 늘 각 연공장에 오셔서 수련생들이 연공하는 것을 보셨다. 우리 연공장에도 여러 번 오셨고 어느 한 번 사부님과 함께 연공장 복도 계단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이 사진을 나는 줄곧 고이 간직하고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인과(因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2-사도은(師徒恩)’

 

원문발표: 2018년 4월 21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21/3626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