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역시 질투심의 문제를 말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질투심에 대한 재인식’을 보고 감명이 깊다. 자신의 질투심과 비교해 보니 내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문제에 부딪힐 때면 자신에게 질투심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슬쩍 지나쳐 버린다. 그것을 붙잡고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 보호했다. 다시 일에 부딪히면 질투심이 또 나온다. 지나가고 나면 더 이상 깊이 파고 제거할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수련한지 20년 된 노제자이지만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못했다. 확실히 심각한 문제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1] 질투심은 수련생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하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게 하며 사람 사이에 경계심을 품게 한다. 사부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2] 아래에 나의 질투심을 폭로하고 제거해 대법이 나에 대한 매 층차에서의 표준과 요구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며 절대 건성으로 하지 않겠다.

나의 질투심은 일상생활 속에, 수련 중에서 나타난다. 심지어 내가 참여한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도 나타난다. 가정에서 나타난 예를 하나 들자면, 나는 토지 자금이 2만여 위안(한화 약 330만 원)이 있었는데 딸에게 주고 싶었다. 아들은 집을 살 때 딸의 돈 3만 위안(한화 약 490만 원)을 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은 이 돈이 있는걸 알고는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돈에 눈독을 들였다. 아들이 미웠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지? 돈에 눈이 멀었구나.’ 평소에 우리 부부는 아들의 장사를 도와준다. 일상적인 지출 외의 돈은 모두 아들에게 주었다. 여러 해 동안 아들은 우리에게 옷 한 벌 사주지 않았고 모두 딸이 사줬다. 이 생각이 들자 더욱 화가 났다. 불효하고 이기적이며 우리의 보잘것없는 연금마저도 넘보려(통장을 가져가서 줄곧 돌려주지 않았음)하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이 문장을 쓸 때에야 비로소 이것이 바로 인연 관계라는 것이 생각났다. 이전에 진 빚이라면 갚아야 한다. 여기에 무슨 불공평한 것이 있겠는가? 없다.

질투심은 수련생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예전에 나는 A, B수련생과 협력해 일을 했다. A는 나를 데리고 NTD 텔레비전 안테나를 설치할 마을로 안내했다. 초행길이라 A, B수련생이 앞장섰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녀들과 거리가 좀 있었다. 그녀들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들이 어느 집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쳐 버렸다. 멀리 가서야 이상하다 싶어서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서야 그녀들이 나를 찾으러 왔다. 당시 화가 나고 반감이 들었다. 안으로 찾는 것도 잊고 말투도 거칠었다. “나를 데리고 왔으면 대문 앞에서 좀 기다리던가, 그렇게 빨리 들어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이런 일이 또 한 번 발생하자 아예 그녀와의 협조를 그만뒀다. 몇 번 나를 찾아 왔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 일은 생각만 해도 서운했고 그녀들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났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했으면 참았을 텐데, 심성(心性)을 제고할 좋은 기회였는데! 이것이 바로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은 결과였다.

질투심은 대법 항목에서 나타났다. A수련생과 자료점을 설립할 때 그녀는 내가 설비를 고장 낼까 봐 만지지 못하게 했다. 어렵사리 배워서 1년을 한 후 그녀는 혼자서 하려 했다. 그리하여 B수련생을 도와 자료점을 설립하고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데 그녀도 다 배우고 나서 안전을 위해 혼자 하겠다고 했다. 그녀들의 일부 행위를 보면서 오기가 생겼다(이것이 쟁투심이었음). 이전에 A수련생이 B수련생과의 협력을 마다해 중간에서 조정했더니 지금은 둘이 함께 하면서 나와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속으로 평형이 되지 않을 때 갑자기 수련인은 마땅히 수련인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심이 또 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 기회에 안으로 찾아 질투심을 제거해 버려야겠다. 수련생의 문장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나는 마음으로 우러나와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이후에는 어떤 일에 부딪혀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안으로 찾아 태연히 고비를 넘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수련과 관련이 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찾아와 그녀 딸과의 교류를 부탁했다. 그녀의 딸은 정진하지 않고 자주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찾아갔더니 그녀의 딸에게 무슨 말을 해도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람을 불러 자신을 나무란다고 말했다. 원망심이 심한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놔뒀다. 사부님께서 다 관여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내가 과시심이 있는 건 아닌가? 자신이 대단하게 생각되어 남을 무시한 건 아닌가? 나는 남보다 수련을 잘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나 잘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이전에 수련생의 딸과 교류를 잘했었는데 지금 나를 만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무슨 집착심이 있는가? 과시심과 환희심이 아닌가? 이 점을 꼭 붙잡고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말자. 내가 협조해야 하면 곧 협조하고 법의 기점에서 서서 어떠한 목적과 집착심 없이 자연스럽게, 필요하지 않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법공부를 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기다리거나 의지하지 말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된다. 집착심을 내려놓자 마음이 매우 홀가분했다. 몸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은 속세 밖에 있다는 말처럼 세속을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법에 있기만 하면 넘지 못할 고비가 없다. 지금 앞에 놓인 길을 어떻게 잘 걸을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5/357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