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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중에서 본 수련생 구출 및 법리 교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을 구출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현재 수련상태에서 본 일부 상황을 법리상에서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개인 층차에서 본 데 의하면 여러분이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하여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시정해주기 바란다.

1. 붙잡히고, 수감되고(엄중 병업 포함), 엄중하게 박해당하는 것에 관해 이성적으로 인식하자

(1) 사념을 제거하지 않으면 엄중한 박해의 구실이 된다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2003년 칭화대학의 20여세 수련생A가 잡힌 후 경찰에게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고 베이징에서 8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마비되어 누워 있는데 식물인간과 같았고 내몽고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수련생들이 구출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소개에 따라 내가 보게 된 것은, A는 잡힌 후 오직 대법을 위해서 모든 마음을 쏟았고, 대법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었으나 그에게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2001년부터 A는 왜 구치소를 폭발시켜 수련생을 구조하려 했나요? 그는 나중에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수시로 이런 허망한 꿈에 빠졌습니다.”

수련생은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가 계속 내려놓지 못했어요? 2001년 1월에 A는 신경문 ‘더는 참을 수 없다’를 보고 잘못 깨달았습니다. 저한테 그런 생각을 말했는데 저는 반나절이나 그에게 말해주었고 그가 너무 극단적이고, 이것은 사상업이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버려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오할 수 있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그는 말이 없었지만 여전히 중얼거리며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총명하니 언젠가는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A는 2년 동안 이 사오한 염두를 버리지 않았는데 곁에 있는 수련생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가 인식에서 올라오도록 도와주지 못한 책임이 있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선하지 못한 생각도 있다. 평소에 선을 닦은 것이 부족해 언행에서 선을 체현해내지 못했다.

개인적인 이해인데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사악한 생명’은 다른 공간의 것이라고 하셨다. 표면공간의 속인과 혼동해서 대하면 절대로 안 된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속인은 반대로 우리가 노력해서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

왜 이렇게 엄중한 박해가 나타났는가? 나는 A가 역사상에서 목숨을 빚진 것을 보았다. 하지만 만약 그가 심성에서 누락이 없다면 사악은 어떻게 빚 독촉을 해도 성사할 수 없다. 사악이 그를 구타하는 것은 그가 그런 나쁜 사람을 선해하여 구도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선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염두는 모두 닦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줄곧 깨닫지 못했고 또 원망, 속인의 표면에 대한 경멸까지 생겼다. 선심(善心)은 줄곧 닦아 내지 못했는데 대법의 가장 기본적인 선에 도달하지 못했다. 구우주의 표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만약 A가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 큰 난을 양성해 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제자는 심성의 승화에서 소업해야 가장 빠른 것이다. 완전히 업을 갚기 위해 업을 갚는 것은 대법의 길이 아니다.

그는 나온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선을 잘 닦지 못해, 사부님께서는 목숨 빚을 이정도로 풀어주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수련생이 그를 도와 가능한 한 빨리 근원을 찾았더라면, 일체 악념을 깊이 캐고 진정으로 대법에서 선을 닦는다면 아주 빨리 회복될 것이다.

사실 병이 위중해 출옥한 많은 수련생들은 병업이 아무리 엄중해도 모두 가상이다. 몸이 아무리 나쁘게 박해당했어도 안으로 근원을 찾아내면 아주 빨리 대법속에서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선을 닦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

(2) 화, 원망, 선하지 못함이 박해를 가중한다

중국 수련생이 또 2003년 4월 상하이교통대학에서 발생한 B수련생 실종사건을 말했다. 나는 본 후 이렇게 말했다. “대법을 위해 생명을 잃은 이런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대단하고 최종적으로 모두 원만입니다. 그도 대법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온 마음을 모두 투입하여 불바다에 뛰어들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법에 동화하지 않았고 선에 동화되지 못했습니다. 대법이 탄압받던 초기에 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는 상하이에서 잡힌 후 구타당했고 그 후에 고향 산시성으로 돌려 보내졌다. 의지가 강해 굽힐 줄 몰라 세뇌기지 몇 군데를 돌았고 매개 기지에서 모두 그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매번 그는 내상을 입었다. 왜냐하면 역사상에서 그가 그 곳에서 모두 목숨을 빚졌기 때문이다. 결국 구타당해 사망했고 모든 업을 갚았다. 이것은 전형적인 구세력의 서약 배치였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로지 당신들이 올바르게 걷기만 한다면 사실 모두 내가 선해해 줄 수 있다. 나는 꼭 그 극단적인 마음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는 그가 더는 자신의 목숨을 갚아 달라고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으로 그의 마음속 매듭을 풀어 줄 수 있고 나는 무엇이든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집착이 있어 내려놓지 못하면 풀어지지 않으며 사부일지라도 하기 어려워진다.”[1]

그는 잡힌 후 그를 폭행하는 경찰과 고용인에 대해 연민과 자비의 마음이 나오지 못했다.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고 했고 마음속에 원망이 있었다. 이런 상황도 비교적 많은데 마난 속에서 고달프게 수련해 최후에 각자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며 이것도 수련이다. 그러나 그가 빚진 목숨들이 아주 많아 구타를 매우 심하게 당했다. 그를 구타하는 것도 그가 그런 나쁜 사람은 구할 약이 없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았고 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악인들 대다수는 구할 수 있었고 그들을 구해야만 비로소 대원만이다.

그가 그를 폭행한 사람에게 아무 원망도 없이 자비로 대하고, 그들을 가엾게 여겨 구하려고 생각했다면 사부님께서는 그런 목숨을 빚진 업력의 매듭을 풀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때 대법 중에서 하신 말씀을 잊었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2]

그처럼 대법에 이렇게 견인불굴하고 죽어도 변치 않는 사람은 정말 얻기 힘들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고 아무튼 한 점의 아쉬움이 있었다.

(3) 체포, 감금, 폐관(閉關) 수련

체포당하고, 수감되는 것은 겁난이고 박해다.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수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런 가장 고생스러운 환경에서 수련해야 다른 표준으로 승화하여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할 수 있고 비로소 이 단계에서 공성 원만할 수 있다. 많은 수련생들이 그렇게 수련해오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은 앞당겨 표준에 도달해 구세력의 박해를 앞당겨 끝내고 헤쳐 나왔다. 어떤 수련생은 전례를 깨 판결도 받지 않았고 어떤 수련생은 1년 넘게 감금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일부는 10년을 판결 받고도 2년도 채 안되어 나왔다… 여기에는 모두 외부 수련생들이 구출한 요소가 있지만, 수감된 수련생들이 각자의 수련표준에 도달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체포되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동굴에서 수련하는 상태와 닮지 않았는가?

예전에 동굴에서 단독수행하며 세간에 대한 일체 근심걱정을 강제로 잘라내었는데 이는 가장 낮은 표준이다. 또 세간의 욕망, 집착을 끊어야 비로소 원만하여 관문을 돌파하고 나올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체포된 후 가족, 사업, 재물, 자신을 걱정하며 이것저것을 두려워했다… 무릇 이런 사람들은 밖에서 구출해도 일반적으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폐관의 가장 낮은 표준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니 어찌 가능하겠는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정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 ‘정사(情絲)’ 두 글자는 보기엔 비유 같지만 다른 공간에서 모두 물질이다. 사악이 휘저으면 그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고 마음이 아프다.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가? 각자의 대자재(大自在)와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사실 체포되고 수감되어서 만약 이것이 중대한 고험인 것 같다고 깨우친다면, ‘전법륜’에서 말한 동굴에서 폐관(閉關)하고 밧줄을 끊어내는 것처럼, 속인 중의 모든 그리움을 단칼에 잘라내고 더이상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남은 것은 발정념, 진상 알리기, 법외우기이다. 물론 절대로 사악에게도 협조하지 않는다. 무릇 이 표준에 도달하면 사악은 더는 이런 방면에서 가로막지 못하고 외부 구출도 성공하기 쉬운데 선례도 적지 않다.

사실 엄중한 병업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받으러 온 영들에게 수감된 것 같다. 그럼 더욱더 속인의 일체 그리움과 정을 잘라내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병이 위독해 병원에서 받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 후에 이 한 점을 해내 아주 빨리 나아졌다.

2. 체포된 후 정행, 정오(正悟)한 본보기

수감된 수련생이 만약 스스로 잘하지 못하면 외부 구출은 정말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만약 정념정행할 수 있다면 구출은 성공하기 쉽다. 아래에 몇 가지가 참조할만하다.

(1) 신사신법, 마음이 바르고 의지가 굳세다

만약 이것이 법에서 말한 세속과 격리하는 고험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특수한 환경에서 똑같이 수련해낼 수 있고 대법에 대한 견정함으로 쉽게 해낼 수 있다. 만약 마음이 흔들리거나 혹은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며, 이런 사념을 배제할 수 없다면 외부 구출도 소용없게 된다. 안에 있는 수련생도 너무 많이 우려하지 말자. 외부 수련생들이 발정념 함에 있어 부분적으로라도 마음이 순정하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2) 두려워 말고 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으로 일체 두려운 요소를 해체하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3]

정말로 이 단락 법을 믿는다면 진짜로 두렵지 않다. 모두 좋은 일인데 무엇이 두려운가? 당신이 잘하기만 하면 아무리 큰 난도 사부님께서 모두 풀어주실 수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사실 두려운 것은 자신의 집착심이 두려워하는 것이고, 당신의 마음속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정말로 두렵지 않고 생사마저 내려놓아, 한차례 한차례의 생사고험을 넘어서 주된 방면에서 정말로 표준에 도달되면 기타 표준은 쉽게 도달할 수 있다.

(3) 사악에 협조하지 않고 진술은 간단하게 하자

대법은 간단하고 쉬우며 진술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박해에 협조하지 않는 방식이다. 자백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바로 당신을 박해하는 것이고 기타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것이다. 협조하여 진술을 조금이라도 하면 박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 수련생은 ‘솔직하게 해 관대한 처벌을 받는다’의 속임수에 걸려서 많은 것을 이야기했고 스스로 많은 업을 지을수록 박해가 더욱 가중됐다. 안에서 진술을 남기면 밖에서 구출할 때 어려움이 겹겹이다.

(4) 선을 닦고 자비의 힘으로 사악을 녹이는 것도 발정념 위력의 원천이다

어떤 수련생은 두려움이 없어 박해에 참여한 인원과 다투고 화난 눈으로 노려보고 원망, 원한은 모두 성격에 따라 끌려나왔다. 심지어 극히 개별적인 이들은 법정에서 악으로 악을 제거하는 방식을 썼는데 표현에서는 견인불굴의 영웅같은 기개였다. 이러한 수련생들은 박해가 감소되지 않았고 밖에서 수련생이 구출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이는 자비로운 각자의 상태인가?

관건시각에 마땅히 사악을 제지해야 하지만 선에 기초하여 자비의 마음이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수련생의 수련 이야기에서 쓰기를, 일부 경찰이 대법제자를 때리는데 경찰의 아들이 한 켠에서 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아했다고 한다. 그녀는 일어나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말했다. “잊지 말아요. 당신은 인민경찰이에요! 당신은 먼저 아들을 데리고 나가요. 아이가 장래에 당신이 이렇게 대법제자를 박해한 걸 알면 당신을 깔보게 될 겁니다!” 수련생을 습관적으로 혹독하게 구타하던 경찰은 당시 손을 멈췄다. 아이에게 아주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게 하고 더는 대법제자를 때리지 않았다.

또 일부 수련생은 법정에서 알려야 할 진상을 평온하게 말한 후 법관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진(眞)ㆍ선(善)ㆍ인(忍)을 반대하는가요? 나는 당신들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들이 진선인이 좋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장래에 좋은 미래가 있게 됩니다.” 후에 이 수련생은 집행유예로 판결받고 석방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석가모니든 그런 수련인이든 모두 말한 적이 없다.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4]

선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정과 사(私)를 떼어내고 닦아내야 한다. 수련생을 박해한 많은 사람들을 구도해야 하고 악으로 악을 다스리면 그들을 밀어내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각자의 자비로운 행위가 아니다. 마음속으로 화, 원망, 원한이 있으면 발정념해도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마난 속에서 반드시 선을 닦아야 하고 속인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정념으로 박해를 청리할 수 있고 비로소 힘이 있다.

(5) 안을 향해 찾고 법을 많이 외우고 일체 잡념을 버리면 사악은 숨는 수밖에 없다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말라 /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도다 /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5]

감옥에서 안을 향해 많이 찾고 많이 깨닫고 법을 많이 외워야 한다. 많이 기억하지 못하면 ‘논어’를 반복적으로 외워도 되고 세뇌당할 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반복적으로 읊어도 된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이 좋다(大法好)’를 염(念)하면 비단 속인에게 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가 사상을 청리하는 데도 역시 효력이 있다. 당신 자신의 전신 세포 모두 대법이 좋다고 염(念)한다면, 당신은 전반 신체 속이 모두 진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박수) 의념으로 움직인 것이 법(法)이기 때문에 비로소 그렇게 큰 위력이 있다.”[6]

진짜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매 글자가 모두 눈앞에 나타나도록 읽으면 일체 잡념은 모두 버려지고 속인 마음도 모두 비워진다. 진짜로 이렇게 해냈을 때 사악이 당신을 때려도 모두 아픔을 느낄 수 없고 사령은 당신을 보기만 하면 두려워하고 감히 박해하지 못하는데 정말로 당신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외부에서 구출하면 상당히 쉬워진다.

3. 단식과 쟁취는 잘 활용하자(善用)

이 한 점은 자신이 파악해야지 맹목적으로 따라하면 안 된다.

단식으로 항의하는 것은 속인 중에서 일종 아주 효과적인 평화로운 항의 방식이다. 감옥에 갇힌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했었고 그 속에서 아주 많은 휘황한 깨달음이 있었다. 대다수는 구출 전에 나왔는데 모두 단식의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의 단식은 좋은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

관건은 여전히 심태다. 일부 수련생은 대법의 억울함 때문에 단식하고 일부는 법공부 연공 환경을 쟁취하려고 단식하고 일부는 사악의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서 하며 일부는 하루 빨리 병업상태가 나타나 빨리 나가려고 한다… 오로지 마음이 법에 있으면 모두 큰 문제가 아니고 이 자체 또한 수련이며 그 속에서도 대법의 초상함을 실증할 수 있다.

그러나 단식 중에 마땅히 순선한 표현이어야 하고 악의 표현은 또 번거로움을 불러올 수 있다. 속인이 단식하는 수련생에 대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할 때 그러한 변태적으로 사람을 박해하려고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악의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만약 단식하는 수련생이 일반적인 음식물주입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현하면 주위 사람들은 진짜로 그가 살고 싶지 않아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속인의 악과 대법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그들은 더는 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과격하고 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선을 표현할 수 없고 중간 정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순선한 단식은 주변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진상을 알려서 사람을 구하는 데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4. 외부 수련생들의 협조

(1) 현지 사회 여론을 선용(善用)하여 구조하다

2003년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한편의 교류문장 ‘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다’에서 여러분들은 사부님께서 이 문장에 쓰신 평어를 보았을 것이다.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을 두려워 떨게 하는 더할 수 없는 큰 작용을 일으켰다. 동시에 또한 현지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민중들에게 사악의 박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폭로와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또 거짓말에 독해되고 기만당한 민중을 구도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다. 대륙의 전체 대법제자들과 신수련생들이 모두 이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7]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밍후이왕에서 보도할 수 있으며, 수련생에게 사악을 더욱 똑똑히 조사하도록 해서 보도할 수 있다. 현지 수련생들에게 이런 나쁜 사람을 힘껏 폭로하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밍후이가 협조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일부 지역에서 이처럼 하지 못했거나 한 것이 부족한 것에 대해 수련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8]

장기간 이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다. 우리는 속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면 효과가 가장 좋고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더욱 주목하기에 이는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이다. 주변의 공개된 여론은 사악에 대한 진감력이 가장 크고 사람을 구하는 힘도 가장 크다. 이는 속인사회의 자원을 선용하는 것이고 속인을 구하고 수련생을 구하는 효과가 모두 아주 좋다.

(2) 형식을 과도하게 크게 보지 말아야 한다

일부 협조인은 구출에 열성적이고 현장감이 커서 다른 지역의 성에서까지 협조하여 발정념해야 좋다고 한다. 물론 사람이 많으면 좋지만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고 만약 조직자가 큰 것을 좋아하고 공을 향수하는 마음이 있거나 협조능력을 과시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욱 좋지 않다.

관건은 인심이고 모두들 먼저 교류하고 먼저 법리에서 승화하고 모두 인식하고 순정하게 행할 수 있으면 효과가 가장 좋다. 아울러 엄중한 병업 박해를 당하는 수련생을 겨냥해서, 목숨을 앗아가려는 사령에게 구금된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먼저 그를 도와 안을 향해 찾고 근원을 찾은 후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단지 형식만 행하면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또 여러 사람을 교란할 수 있다.

(3) 과정과 협조가 중요하고 결과를 너무 중히 보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붙잡힌 수련생 상태가 좋은가? 그가 잘하지 못하면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닌가’를 걱정한다면, 누가 이러한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는 구출에서 헛된 일을 하는 것이고 자신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감옥에 붙잡힌 수련생에게 좋지 못한 염두를 가하지 말아야 하고 그가 합격됐다고 간주하고 그가 이전에 잘하지 못한 것을 보지 말며 더욱이 수련생에 대한 헛소문을 듣지 말아야 한다. 그의 정념을 강화해주고 순정하게 가서 구출해야 한다. 결과가 어떠하건 이렇게 하면 수련생의 압력을 감소시킬 수 있고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없앨 수 있다. 구출과정 자체가 바로 수련이고 정체 협조에 대한 고험이다. 안에 있는 수련생이 잘 못하더라도 밖에 있는 수련생들이 그렇게 해냈다면 역시 합격한 정체 협조와 수련이다.

곧바로 구출해내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고 이 속에는 아주 복잡한 요소가 있다. 붙잡힌 지 한 달 만에 나오고 몇 달 만에 나오고 1년이 넘어 판결받지 않고 나오거나 혹은 사전에 나오는데 모두 성공이다. 개별적으로 시일에 맞춰 나온 것도 구출 성공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박해해 빨리 세상을 떠나게 하려는 운명이 외부에서 구출하는 수련생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들이 살아서 구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한 것이고 비록 수련생이 안에서 미혹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구출하는 중점을 기타 사람들한테로 돌리면 된다. 모두들 내심에서 그를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이렇게 해야 그는 장래에 쉽게 돌아올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들 그에게 악념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변호사를 선용하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 많은 지역에서 수련생들이 법률을 운용하여 박해에 반대하고 있고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섰는데 대부분 구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교류문장 ‘법률로 반박해를 경험하다(하)’에서는 ‘변호사에 의지한 교훈’을 말했는데 모두들 주의하지 않았다. 나는 많은 변호사들이 구출에 실패한 한 가지 관건을 보았는데 그들은 암암리에 공검법에 돈을 썼고 암암리에 중재하는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지금 중국공산당의 박해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공검법이 불법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고 기소하고 판결하는데 이미 기본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박해에서는 변호사 이쪽에서 돈을 얻을 수 있는데 즐겁지 않을 리가 없으며 박해가 중지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변호사 비용이 폭등한 원인이다. 일부 변호사는 공개적으로 법관에게 말하기를 “나는 나대로 변호할 테니 당신은 당신대로 판결하시죠!”한다. 이는 암암리에 거래하는 것이고, 왜 대법제자는 듣고서 변호사를 바로 잡지 않는가? 또 방임하는가? 이러한 변호사는 누구와 한 무리인가?

이런 변호사가 법정에서 무죄 변호하는 것은 쇼를 하는 것이고 공검법은 모두 잘 알고 있어서 어떠한 압력도 없다. 또 일부 변호사는 대법제자의 말을 전혀 듣지도 않고 돈 벌 생각에 억지로 응수하는 것이며 수련생의 기획을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이 제멋대로 무죄변호를 한 후 수련생에게 판결하는 것에 동의하게 한다. 법원이 변호사에게 ‘당신이 한 것은 무죄 변호이다’라고 일깨워주자 변호사는 수련생에게 형을 내리는 것에 동의하라고 고집해 수련생은 자신이 무죄 기소를 주장한 것이 헛되었다.

나는 일부 지역에서 아주 잘한 것을 보았는데 변호사에게 진상을 아주 투철하게 해서 변호사와 수련생이 하나의 정체를 형성했고 공검법에 돈을 주지 않았는데 진짜로 그들을 놀라게 했고 양지를 깨워주었으며 반대로 구출해낸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적잖은 지역에서 맹목적으로 유명한 ‘정의 변호사’를 구했는데 그가 무죄 변호하는 것이 보여주기식임을 몰랐다. 그가 암암리에 대법자원을 도용해 사악을 키웠는데 속인 중에서 수련에서 어느 각도에서 봐도 모두 범죄이다. 이러한 변호사에 의지하는데 구출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변호사를 선임할 때 명성을 보지 말고 현지 변호사를 찾아 착실하고 착실하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좋다. 대법제자가 완전히 주도할 수 있고 자원을 절약할 수 있으며 또 사람을 구하고 사악을 진섭할 수 있다.

나는 변호사들이 매번 수련생 구출에 성공하면 공로가 변호사의 것이 절대 아님을 보았다. 천상에서 이 일에 대해 무척 똑똑히 기록했는데 내외부에서 수련생들이 협조를 잘 해 정체를 형성한 것이고 외부와 내부 수련생들이 모두 기본적으로 표준에 도달해 비로소 돌파한 것이다. 변호사는 단지 현지 법정과 소통해 진상을 알린 작용을 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변호사는 잘 활용해야 하지 방임하면 안 되고 더욱이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

구출과정은 매개 수련생에게 모두 고험이고 심성과 협조의 검증이며 법리 인식의 검증이자 공동 정진과 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검증이다. 각 방면의 세부절차에서 모두 ‘선’을 닦음을 홀시할 수 없고 선을 크게 닦아낼수록 사악을 크게 제거할 수 있고 세인을 구도하는 위력을 펼칠 수 있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고 참고로만 제공한다. 여러분들이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법 속에서 답안을 찾아야 법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깊을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내심에서 법을 인식해야 행위가 법에 동화되고 비로소 진정한 승화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뉴욕법회설법’[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슬퍼하지 말라’[6]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수련생 문장에 대한 평어(評語)’[8]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역 설법10-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25/3515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