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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부 처장 “파룬궁을 연마해야 한다”

글/ 대륙 대법제자 춘전(存眞)

[밍후이왕]

친척들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고 인정하다

아들은 생후 모유를 먹었다. 내가 열이 나자 모유를 먹은 아들도 나와 똑같이 열이 올랐다. 그리하여 백일도 되기 전에 폐렴에 걸려 입원했고 이때부터 병원의 단골손님이 됐다.

내가 법을 얻은지 얼마 안 되어 아들도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몸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학습 성적도 크게 올랐다. 남편도 이때부터 아픈 아내와 아들로부터 해방되어 뒷걱정이 없어지고 전력으로 사업에 몰두했다. 직장 판매부 부장에서 경영 공장장으로 승진했고 마지막에 자영업을 시작했다. 경제조건도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의 7가구에 복도가 하나인 12제곱미터 주택에서 지금의 2백여 제곱미터의 집으로 바꾸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네 곳에 주택을 샀고 또 상가와 차고, 공업용 공장건물 부지도 있었다. 남편은 또 20만 위안(한화 약 4천만 원)주고 나에게 승용차도 한 대 뽑아줬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시동생, 동서, 시누이, 시누이 남편과 앙금이 있어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회도덕의 부패에 따라 층층이 탐오부패하고 많은 샐러리맨들이 직업을 잃었다. 시동생과 시누이, 시누이 남편도 잇따라 실업자가 되고 병마에 시달렸다.

나는 파룬따파의 요구에 따라 원망심, 이익심, 쟁투심, 억울한 마음과 질투심 등을 닦아 버리고 누구에게나 잘 대했다. 남을 선하게 대하고 선으로 모든 것을 녹여냈다. 그들을 찾아가 보고 도움을 줬다. 시동생과 시누이 아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등록금과 일부 생활비는 우리가 거의 다 내주었다. 시동생 네가 한꺼번에 이주하게 됐는데 이주 비용이 중고 주택을 살수밖에 없었다. 중고 주택을 사서 아들을 결혼시키고 나니 자신들은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우리집 한 채를 주어 살게 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찾고 사부님을 찾았음에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수련 후 명리를 담담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으며 심신이 활달하고 여유로워졌다. 지금은 우리 친척은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고 인정한다.

돈 한 푼 안 쓰고 국가급 병원에 들어가다

2000년 대학입시 2, 3개월 앞두고 남편은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 교사를 붙여주려 했다. 집 근처의 한 대학교 사무실에 갔더니 선생님 한 분이 말했다. “수학박사를 불러오게.” 이 학생은 수학을 특별히 잘했는바 모두 ‘수학박사’라고 불렀다. 의과대학 7년제 반에 진학한 후 그의 부모가 시골의 집이랑 땅이랑 다 팔았지만(딸네 집에 갔음) 1년 학비와 생활비밖에 해결하지 못했다. 이후에 이 학생은 대출과 과외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학생에게 관심이 갔고 매우 동정했다. 집에 와서 과외할 때 식사를 준비해주고 평일에 손님이 오거나 좀 좋은 반찬이 생기면 집으로 불렀다. 매번 볼 때면 파룬따파 진상과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심신의 변화를 말해주었다. 그는 파룬따파의 이치를 매우 인정했다.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 없습니다.”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는 자주 우리를 보러 왔다.

국가급 병원에서 인턴을 할 때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당시 이 병원에 인턴 끝나고 남을 수 있는 정원은 2명뿐이었는데 연줄이 있어야 하고 또 수십만 위안(한화 약 몇천만 원)이 있어야 했다. 그는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었다. 등록금도 줄곧 대출을 받았기에 이 병원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생 학력으로는 일반적으로 대형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계속 박사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삼퇴’ 붐이 시작됐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그는 주방에서 줄곧 진상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당원이냐고 물었다. 그는 당원은 아니고 단원이라면서 탈퇴시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뭐라 말씀하셔도 저는 다 믿어요.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아주머니 옆에 있으면 든든해요.”

얼마 후 그는 우리 집에 와서 흥분해 소식을 전했다. 원래는 그는 전혀 병원에 남을 희망이 없었다. 인턴기간에 부주임 교수를 스승으로 모셨고(과의 2인자) 기타 실습생은 주임교수를 스승으로 모셨다(1인자). 지금 ‘1인자’가 갑자기 전임되어 부주임 교수가 1인자가 됐고 교수는 그에게 병원에 남을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정원이 한 명이라 해도 그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리하여 그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국가급 병원 외과 의사가 됐다.

국가안보부 처장 “파룬궁을 연마해야 한다”

국가안보부 처장인 남편의 사촌형(사촌 아주버니)은 남편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이전에 내 건강이 매우 나빴기에 만날 때마다 먼저 내 건강에 대해 묻곤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병이 없이 온 몸이 가벼웠다. 파룬궁 진상을 말하면 아주버니는 모두 인정했고 나에게 탈당성명을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문화의 세뇌로 어떤 때는 흐리멍덩해질 때가 있는데 특히 그의 직장환경이 그러했다. 2년 전 나는 남편과 사촌 아주버니 등 친척들과 결혼 연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니는 뜻밖에 남편 손을 붙잡고 말했다. “우리는 그래도 당을 믿어야 해. 당이 나에게 돈을 준단 말이야.” 내가 그에게 진상 알리기를 소홀히 한 것이다.

2017년 설날 전 어느 날 아침, 남편과 나는 넷째 사촌 시동생네 집에 갔다. 인근에 살고 있는 사촌 아주버니도 왔다. 나는 남편과 아주버니네 집에서 이틀을 지내면서 모든 시간을 이용해 아주버니와 형님(모 정부기관 서기)에게 파룬따파가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며 도덕이 고상해지게 하며, 파룬궁을 박해한 중국공산당 고위관리들이 보응을 받아 낙마한 실례를 말해줬다.

우리가 떠날 때 사촌 아주버니와 시동생들은 연회를 베풀어 배웅했다. 석상에서 사람들은 아주버니의 건강 상황을 물어보면서 정기적으로 링거를 맞고 혈관을 관리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주버니는 고혈압을 여러 해 앓았고 또 당뇨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버니는 오히려 “필요 없어, 나는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다)’만 믿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렇지? 우리는 그저 파룬따파 하오만 염할 거야, 그러면 돼!”

한 사촌 동서가 말했다. “이번에 형님(나를 가리킴)의 안색과 기질이 특별히 좋아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젊어졌어요.” 한 사촌 시동생도 말했다. “형수님, 진짜로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젊어지셨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머리를 끄덕이며 반복했다. “진짜로 또 젊어졌어요. 안색도 매우 좋구요.”

아주버니는 또 어조를 강조하며 말했다. “우리 춘전은 파룬궁을 연마하여 젊고 예쁘고 착해요.”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매 하나의 생명에 자비를 베푸신다.

나도 아주버니께 말씀드렸다. “절대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지 마세요!” 그는 엄숙하게 말했다. “제수씨는 나를 뭘로 보고 그래요. 난 절대로 박해 안 합니다!”

2017년 설 명절 후 아주버니 내외가 우리 집에 왔다. USB에 파룬따파 주요저작 ‘전법륜’과 사부님의 기타 설법서적을 복사해 넣어주었다.

아주버니는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파룬궁을 연마해야 해요. 돌아가면 파룬궁 책을 전부 다 볼 겁니다. 내 이 나이에 다른 바람은 없어요. 관직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봤어요. 나는 몸이 안 좋은데 어떤 병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도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죠. 파룬궁은 연구해볼만 합니다.”

중생은 각성하고 세인은 구도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2/3505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