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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일사일념을 지켜라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러분과 자신의 한 단계 심성수련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하루는 사무실 동료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개인 문제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어요? (나는 줄곧 독신으로 있기 때문) 나는 지금 노모와 함께 살기에 아주 좋으므로 무슨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동료는 나에게 어떤 조건인지 자세히 고려해 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도외시했다. 하지만 이후의 어느 날 오전에 사무실에서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모친과 함께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 혼자 남으면 어쩌지? 혼자면 아주 외롭고 적막할 텐데 그때면 어떡하지!’ 눈물이 찔끔 솟았다. 또 한 가지 생각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너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지 않은가? 법에서는 사람은 제각기 제 명이 있다고 했다. 대법을 배운 사람은 헛배우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다 안배할 것인즉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재빨리 나는 냉정해졌고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또 한 동료가 갑자기 말했다. “당신, 마땅히 개인 문제를 고려해 봐요. 노모가 그렇게 연세 많으신데 평생 자기와 같이 있을 수는 없지 않아! 자기 혼자 남으면 어떡해! 짝이 있어야 하잖아, 여전히 조건을 고려해 봐야 해.”

이번엔 나는 중시하게 됐다. 집에 돌아온 후 모친께 “8월 중순 엄마와 언니가 떠나가면 나는 어떤 느낌일까!”라고 여쭈었다. 그 시각 코가 찡하면서 눈앞이 흐려졌고, 마음이 대번에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할 때 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더했다. “엄마, 엄만반드시 수련을 잘하셔서 꼭 사부님 따라 집에 돌아가야 해!” 말을 마치고 나서 엄마에게 수련을 잘하라고 한 것은 수련생이 법에서 모친수련생에게 정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친 없이 자기 혼자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 마지막 한 마디 ‘두려움’에 대한 내용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모녀 정이 너무 중해 닦아 버려야 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모친은 올해 78세이고 나와 함께 계신 지 8년이 되었다. 나와 같이 있는 몇 년 동안 모친은 날마다 나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거들어 주는 외에는 그저 법 공부만 하셨다. 내 집은 법 공부 장이어서 모친은 오전과 저녁은 모두 함께 법 공부를 견지했고, 네 번 정각 발정념도 아주 잘 견지했으며, 아침 연공은 거의 빠진 적이 없다. 모친의 말투는 지방 사투리여서 현지 사람은 잘 알아듣지 못함으로 그저 집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법 일만 할 뿐이었다. 모친의 신체는 아주 좋아져서 나가기만 하면 모두 어머니를 60대로 본다. 나의 의식 중의 모친은 꼭 사부님 따라 집에 돌아가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은 절대로 진정한 내 생각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과정을 더듬어 보면 자신이 아직도 엄청 심한 집착심을 깨끗이 닦아 버리지 않았고 닦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자신이 단신으로 몇 년 동안 줄곧 모친과 함께 살면서 생활의 구석구석을 다 어머니께서 해 주시기에 전기 요금을 내는 일조차도 나에게는 큰일이었다. 이렇게 되어 무형 중 나에게는 아주 심한 의뢰심이 자라났는데 사실 이는 책임을 감당하기 싫어하는 일종의 표현이며, 또한 위사위아인 것이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고 하신 말씀을 중시하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일은 모두 ‘자연’으로 형성되었고, 더 나아가 ‘습관’으로 돼 버린 것이다. 가령 내가 법에서 요구한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훼멸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모친마저 해치게 될 것인즉 어쩌면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가정에서의 수련을 수련생에게 일깨워 주고자 한다. 우리는 정말 바르게 걸어야 하고, 일하는 출발점은 반드시 상대방의 각도에 서야 한다. 우리는 속인 가운데서 양성된 이른바 ‘습관’을 정말로 고쳐야 한다. 많이는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되면 우리의 진보를 방해하는 관념으로 돼 버릴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일사일념을 지켜 법에 있지 않은 것은 순간에 해체하여 불필요한 손해를 조성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적이고도 실제로 마음을 닦아야 한다.

이밖에 가정을 꾸릴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나는 줄곧 자연에 따르는 심리 상태이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는 심리였지만 후에는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자신의 수련 환경과 수련 상태는 가정을 꾸리지 않는 것이 수련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또 ‘이성과 결혼하지 않고 그저 같이 지내기만 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해 봤다. 나는 가정 이루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단지 적합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현실 생활에서 수련하지 않고 홀로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단신으로 있다 해서 남이 말하는 게 두려운가. 생각해 보면 여전히 자기 문제가 아닌가. 사실 바로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대법에 부면적인 영향을 줄까 두렵다’는 것을 구실로 심층의 ‘색욕심’을 덮어 감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은 수련과 밀접하다고 하셨다, 부딪힌 매 한 가지 일은 모두 우리의 수련상태와 관계있다. 오직 우리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의식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느 방면의 문제라고 점화해 주시거나 관계되는 법이 대뇌 속에 나타난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게 하는데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이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아직도 이 방면. 저 방면의 부족을 인식할 수 없고, 인식하지 못하면 제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꼭 매 한 번 나타난 이른바 마음에 내키지 않거나 불쾌한 기회를 틀어잡고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수련은 정말이지 아주 미묘하다. 오직 우리가 법 속에서 수련하면서 자신의 부족을 인식할 수 있고 따라서 법에 귀정할 수 있다면, 귀정 후의 느낌은 그야말로 아주 미묘하다. 마지막으로 수련생들께서 모두 용맹정진하여 하루빨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를 충심으로 축원하는 바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문장발표: 2017년 3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28/3448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