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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광산 소장복을 입게 된 말단 직원

글/ 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대법 수련에서 나는 18년이란 세월을 걸어왔다. 걸어온 길은 평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넘어지고 부딪치곤 했다. 나는 우주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생명인 대법제자다. 조사정법(助師正法)을 할 수 있고 대 재난 전에 사람을 구원하며, 자신이 세상에 올 때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게 되어 대단한 영광을 느낀다. 나는수련 가운데서 겪은 일부 일을 말하는 것으로 사부님에 대한 끝없는 감격을 표시하는 동시에 대법의 초범성과 신성함을 실증하려 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1979년 나는 군대에 갔다. 몇 달 후 나는 합동훈련 통지를 받았는데 뜻인즉 간부 발탁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자는 사람이 결정하지 못한다고 연대에서 마지막 보초를 서던 그 날 나는 갑자기 까무러쳤다. 그때부터 건강이 나빠져 대량으로 피를 토했는데 많을 때는 반 대야나 토했다. 배가 참을 수 없이 아팠고 심할 때는 죽을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내 인생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큰 난이 찾아왔다.

상하이와 톈진 일류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간이 터졌다는 것이다. 즉 간 부위 아래쪽 표피가 터져 출혈이 멎지 않았는데 불치병이었다. 키가 167cm인 사람이 체중은 30kg 밖에 안 돼 장작처럼 말라보였다. 병원에 장시간 누워 있었기에 등에 넓게 욕창이 생겨 침대시트에 단단히 붙어 있었고 고열이 내리지 않았다. 당시 몇 년 동안의 시달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성 소재지 중심 병원에서 두 미국인 실습생의 소개로 미국에서 고단백질과 알부민이라는 첨단약품을 수입해 사용한 후에야 간 파열 부위가 아물어 붙었다. 하지만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지 못했기에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장기관리 환자가 됐다.

연대에서 나는 정상적인 훈련, 근무를 할 수 없고 오히려 남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으므로 나를 서기(書記)와 한 방에 살게 했다. 말하자면 참 묘하기도 했다. 서기의 부친은중의사였는데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省)의 한 고위급 간부도 그를 찾아와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그 중의사는 아들을 보러 와서 어느 날 나와 온 밤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집의 많은 일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그야말로 직접 본 듯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죽지 말아야 한다면서 재난이 많을 것이나천부가 높아서 40여세 때 고인(高人)에게 법을 전수 받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간 생명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그 때 나는 놀랍고도 막막했다.

퇴역해 집으로 온 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게 됐고 한 시멘트 공장에서 전기공 일을 했으나 건강은 늘 좋지 못했다. 간장병이 있는 외에도 다른 각종 질환이 많았다. 이를테면 관절염, 심각한 위장병 등이다. 그 때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눈과 얼굴이 누랬으며 체중은 35kg밖에 안 되어 얼핏 봐도 중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관절염이 몹시 심해 걸을 때면 무릎에서 두둑 소리가 났고 잘 설 수 없었다. 공장에서 당직을 서면 몸이 너무 허약해 겨울이든 여름이든 뜨끈뜨끈한 온돌에서 자야 했다. 삼복더위에 온돌이 손이 델 지경으로 뜨거워도 나는 더운 줄 몰랐다.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병이 있는지 물으면 나는 병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인생의 고통을 깊이 느꼈으며 앞길이 아득해 그저 그럭저럭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1998년 내 친척이 파룬궁을 배워 온몸의 병고가 다 나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다지 믿지 않았다. 한 번은 그녀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그녀가 ’전법륜’을 추천했다. 표지를 열어보니 사부님 사진이 보였다. 사부님께서는 젊고 멋지셨는데 용모가 일반인이 아니었고 사진에서는 끊임없이 강렬한 오색 빛을 뿜었다. 나는 자신이 술을 많이 마셔 눈이 잘못된 줄로 여기고 옆 사람에게 보라고 했더니 그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했다. 내가 아래로 다시 ‘논어’를 보았더니 글자마다 모두 부처님이고 문장 부호마저도 전부 작은 부처님이었다. 이때 몸에 한 갈래 강대한 뜨거운 기류가 솟는 감을 느꼈고 온 몸에 땀이 났다.

나는 이 공법이 대단하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갑자기 이전에 부대에 있을 때 중의사가 나에게 예언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 일은 정말로 실현됐고난 정말로 고인을 찾았다.

나는 수련할 생각은 했지만 아직 책을 보지 않았고 또 연공장에 가서 동작도 배우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집에서 포륜 동작만 해보았다.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내 배를 겨누고 한 대세게 때리는 느낌이라 배를 끌어안고 즉시 쭈그리고 앉았다. 잠시 후 배 안에서 난리가 나더니 연이어 적지 않은 검푸른 물을 토했다. 토하고 나서 유달리 뭔가를 먹고 싶었고 물을 마시고 싶었다. 나는 집에 남은 찬밥을 반 사발이나 먹고 더운물을 한 사발 마셨다. 그러자 몸에서 열이 나면서 땀이 났다. 이어서 또 적지 않은 암홍색 핏덩이를 토했고 토하고 나서는 또 배가 고파 찬밥에 더운 물을 먹었다. 그리고는 또 쓴 물을 한 사발쯤 토하고또 배가 고파 또 찬밥에 냉수를 먹었다(더운물은 이미 다 마셔 버렸다). 괴이쩍은 것은 토하고는 먹고, 먹고는 바로 토했는데 토한 데는 밥이 없었고, 몸은 땀이 나서 옷을 적셨다. 아내가 아침밥 짓기를 기다려 잇따라 또 밥을 두 사발 먹었다.

여러 해 되는 위장병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식욕이 괴상할 정도로 좋아서 냉수, 찬밥을 무턱대고 먹어도 아무 일 없으니 그야말로 불가사의했다.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때부터 위장병이 없어지고 무엇을 먹든 다 맛있고 식사량이 대폭 늘어 몸은 재빨리 건강해졌다. 파룬궁을 배운 후 내 몸은 기적 같이 다 나았다. 나는 사부님께 너무 감격했다. 절망 속에서 구사일생 살아났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던 것이다.

고생 중의 고생을 겪다

수련 후 나는 사람이 되면 바로 고생이고 수련하려면 고생 속의 고생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됐다.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1]

나에게는 동생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대뇌, 소뇌 발육부전으로 지능이 상당이 낮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으며 말할 줄 모르고 대소변도 가릴 줄 몰랐다. 이전에는 홀몸인 형이 그를 돌보았는데 내가 공을 배운지 얼마 안 되어 형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아우는 내가 돌보아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수련을 시작하라고 하셨는데 그럼 나는 동생을 선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날마다 세 번씩, 겨울에는 날마다 두 번씩 밥을 날라다 주느라 마을 한 쪽에서 다른 한 쪽까지 뛰어다녔다. 밤에는 출근해야 하고 낮에는 또 3천 평이나 되는 밭을 가꾸어야 했고 또 늘 마을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을 무료로 수리해줘야 하는데 아무 때건 부르면 가야 했으므로 너무 바빴다.

이후에 내가 텔레비전을 수리해 주었던 많은 집들에서 내가 몹시 바쁜 것을 보고 동생에게 밥을 보내주려 했다. 어떤 사람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밥과 반찬을 나에게 주면서 갖다 주고 와서 다시 텔레비전을 수리하게 했다. 동생은 대소변을 모두 침대에서 보았다. 게다가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서 변을 몸과 옷, 침대에 죄다 발라놓았다. 계속되는 긴장, 피로, 고통에 직면해 나는 사부님의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2]는 가르침을 명심했다. 나는 대법 책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 틈만 있으면 한두 페이지씩 읽었다. 그래서 그 때는 법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2004년 초반 동생이 사망했다. 동생을 보살피는 일을 날마다, 해마다 하면서 6년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보아왔고 나의 간난신고에 감탄했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어찌 견지할 수 있었겠는가! 장쩌민 사악한 깡패 집단이 박해가 아주 심각할 때에도 마을의 사당 서기마저도 내 동생이 사망하기 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있게 된 것은 파룬궁 덕분이라고 했다.

박해가 심할 때 진(鎭) 서기와 공안의 한 무리 사람들이 상부의 요구에 따라 우리 마을에 와서 파룬궁수련생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할 때 그 서기는 수십 명 사람을 향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동생을 보살펴 주고, 마을 사람에게 무료로 텔레비전을 수리해 주었으니 좋은 사람이오!”

2005년,내 두 아이가 연달아 외지에 가서 공부하게 됐다. 내가 일하는 공장은 곧 파산될 것 같아서 집안 경제는 더욱 어렵게 됐다. 아이들을 계속 공부시키기 위해 나는 밖에 나가 일하기로 작심했다. 다른 사람의 소개로 탄광에 가서 노동자가 됐다. 이후에 탄광의 한 전기공이 나를 광산 지도자에게 추천해 나는 전기공이 됐다. 나는 기초가 좋고 일을 책임지며 성실하게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에서 지혜를 열어줘 자연적으로 기술 수준이 높아져 광산에서 나는 두각을 나타내는 전기공이 됐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또 한 가지 마의 교란형식이 있는데, 역시 사람마다 모두 마주치게 되며, 우리 이 법문에서도 사람마다 모두 마주치게 되는데, 일종의 색마(色魔)와 마주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아주 엄중하다.”[2] 수련에서 나에게는 색마에 대한절실한 체험이 있었다.

동생이 살아있을 때 한 번은 동생에게 밥을 가져다주느라고 마을 중심 길을 걸어가는데 천목으로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됐다. 길에 여우, 수퇘지와 수탕나귀가 빼곡해 사람이 다닐 곳이란 없었다. 당시 나는 이게 무슨 일일까 생각했다.

외지에서 삯일을 몇 해 하고 나니 가정의 경제 형편도 서서히 나아져 빚을 갚았고 아이들도 모두 외지에서 공부하게 됐다. 생각밖에 아내가 마을의 한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일부러 마을에 돌아와서 타이르면서 그녀가 각성하기를 기다렸다. 나중에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공개화 되어 그녀는 놀랍게도 그 사람 집에 가서 살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 외지로 일하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다른 한 탄광에서 막 전기 부소장으로 되어 사업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됐다. 여러 해 동안 시련을 함께 겪어온 아내의 배반은 내 인생에 또 한차례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도 못했으며 그 치욕과 증오는 무정하게 내 가슴을 찢었고 그야말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또한 나의 정상적인 생활, 사업을 완전히 헝클어 놓았고 부소장 노릇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마을로 돌아간단 말인가? 마을 사람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달아났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유언비어, 손가락질, 피할 곳이 없고 숨을 곳이 없었으며 창피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이 정도까지 되었다니 그야말로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쟁쟁한 인물이어서 누구도 얕잡아 보지 못했고 나 역시 개성이 강한 남자다. 보복하려는 각종 사악한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끓어올라 억제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몽롱할 뿐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한 가지 생각만은 명확했다. 나는 연공인이다. 대법을 파괴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2]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장래에 어쩌면 당신이 가장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의 뺨을 두어 번 때려 당신으로 하여금 망신을 당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당신이 참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2] 사부님의 이 말씀은 나를 향해 하신 말씀이 아닌가?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란 없다. 이 관을 나는 반드시 넘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복잡한 환경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고생 중의 고생을 겪어낼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또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한다.”[2]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이 화를 참아내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간주하여 대할 수 없다면, 내가 말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때에 많은 고인(高人)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태연하게 정념으로 대하라고 간곡히 알려주셨다. 나는 교란을 배제하려면 대량으로 법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도 머리가 조용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절대 위축되지 않았다. 나는 잡념은 소멸할수록 적어지고 심경도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량으로 법공부를 함에 따라 내 마음은 서서히 안정되고 갈수록 이지적이 됐다.

나는 또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친척은 내 과거 성격을 아는지라일을 저지를까 두려워했으나 내가 이전처럼 안정된 것을 보고 시름을 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바르게 걷기에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 각기 뜻이 있고 인연도 무상하니 그녀가 가려 하면 저는 막지 못합니다. 진정 가련한 사람은 그녀입니다.” 친척들은 내 몸에서 한 수련인의 기백과 이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가 집을 떠난 후 그녀는 가끔 아이들을 보러 왔다. 처음에 나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자신에게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는 것을 의식했다. 그럼 계속 내려놔야지. 속인은 명리정을 추구하는데 나는 수련인으로서 닦아버리려는 것이 바로 명리정이다. 서서히 나는 마음이 차분해 졌고 그녀가 다시 와도 대수롭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에 대해 아주 불만스러워 했다. 이 일 때문에 외할아버지도 보러 가려 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대법에서 수련해 낸 선념으로 그들을 인도해 그들의 원망을 풀어주고 그들이 성심으로 어르신을 방문하고 존경하게 했다.

광산 소장복을 입게 된 말단 직원

나는 일찍 탄광 채굴 전기공사를 한 적이 있다. 한번은 갱내 채굴 정비를 할 때 전기드릴이 고장 나 전기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측정기로 1140볼트 전기드릴의 전기를 검사했다. 전자펜이 막 닿자 눈앞에서 ‘훅’하고 불빛이 번쩍하더니 ‘꽝’하는 굉장한 소리가 울렸고 측정기가 폭발했다. 내 온 얼굴이 불에 그슬렸고 옷에도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뚫렸다. 측정기는 손에 쥔 두 손잡이만 남았다. 그 때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폭발할 때 머리 앞에 거대한 손이 나타나 내 얼굴을 가려주셨던 것뿐이다. 손가락은 팔뚝만큼 부었다. 나는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셨음을 알았다.

갱도 규정에 따르면 폭발 사고가 생기면 재빨리 현장을 떠나고 직원을 구출해야 한다. 이치대로라면 폭발 후 측정기마저 다 기화했으므로 사람도 아마 살 수 없을 것이고 살았다 해도 얼굴에 심한 흉터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괜찮다. 나는 바로 갱도에서 나갈 수 없다. 기계들이 운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책임진 일을 다른 사람은 할 줄 모른다. 내가 가기만 하면 채굴 기계는 장시간 멈추게 되어 광산에 아주 큰 손해를 입힐 것이다.’ 나는 현장의 전기 일을 죄다 마무리 짓고 생산이 회복된 후에야 자리를 떴다. 이때는 폭발 후 두세 시간이 지났다.

갱도에서 나오니 사장과 동료들이 모두 어서 병원으로 가자고 했으나 나는 말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어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니 병원에 갈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는 사부님의 관할이 있으므로 재빨리 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믿지 않았다. 숙소에 와서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은 시커멓고 부어서 눈은 실오리만큼의 틈밖에 나지 않았다. 얼굴 피부가 탈락하기 시작하면서 누런 물이 흘러나와 아주 무서웠다. 나는 수건을 가져다 얼굴을 닦아보니 누런 물은 쉼 없이 나왔고 세수수건은 잠시면 쥐어짜야 했다. 닦고는 쥐어짜고 했지만 얼굴이 그다지 아프지 않았으나 눈만은 데여 몹시 아팠고 머리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사흘째 아침, 내 얼굴은 벌써 딱지가 앉았다. 사장은 공상처리 사고로 나에게 10만 위안의 보상금을 주려 했다. 나는 말했다. “저는 비록 육체적인 고통을 당했지만 별로 큰 문제가 없으므로 한 푼도 갖지 않겠습니다.” 집까지 가져다 준 10만 위안의 보상을 받지 않았다는 이 일은 이후에 광산 구역에 널리 소문나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정신병이라고 말했다. 10만 위안을 막 되돌려주자 나는 내 얼굴에 앉은 딱지가 ‘팍팍’ 소리를 내더니 재빨리 대부분 딱지가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떨어지면서 새로 자라난 피부를 드러냈다. 대법은 초범적이다. 대법제자로서 마음이 바르기만 하면 신의 기적이 곧 나타난다.

사흘째 저녁, 광산 지도자가 와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들은 연달아 말했다. “당신은 신이야!” 잇따라 광산에 또 문제가 생겼는데 다른 사람이 처리하자면 곤란해 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갱도에 내려갈 수 있습니까? 안 된다면 임시로 다른 사람을 찾아보지요.” 내가 말했다. “내려갈 수 있습니다.” 나는 또 갱도에 내려갔다. 또 며칠이 지나자 온 얼굴의 낡은 피부는 새 피부로 바뀌어 딴 사람이 된 듯 했다. 이후에 적지 않은 사람이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장은 이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으나 잘 알지는 못했다. 사고의 전후 사실은 그를 크게 감동시켰다. 또 며칠이 지나자 소장은 사람을 거느리고 검사하러 내려오다가 마침 옷을 갈아입고 갱도에 내려가려던 나와 만났다. 그는 큰 소리로 분부했다. “제가 입은 작업복을 류씨와 바꿔주시오.” 그리고는 또 나에게 말했다. “류씨, 앞으로 갱도에 내려갈 때마다 자넨 이 옷을 입게.” 소장이 입은 1급 간부 작업복은 기타 직원이 입은 옷과는 달리 홍색이어서 갱도에서 보면 아주 눈에 뜨인다. 나는 광산에서 유일하게 소장복을 입은 말단 직원이 됐다.

사실나는 단지 외주 채굴 고용인으로서 광산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아들이 대법을 선하게 대해 혜택을 입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대법의 훈도를 받아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혜택을 많이 받았다. 그는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또 급여를 받으며 대학에 다녔다. 그는 사람을 성실하게 대하고 교양이 있으며 차례로 수치제어 기계공장,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작년부터 부부 둘이서 창업해 고급 간판을 제작하는 작은 회사를 차렸다. 처음으로 고객을 찾으러 갈 때 명함을 들고 한 대중 목욕탕에 갔더니 마침 그들의 전자 광고판이 고장 나 주인이 물었다. “고칠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고칠 수 있습니다.” “점심 12시 이전에 고칠 수 있어요?” 그가 확고하게 대답했다. “네.” “얼마인가요?”, “60위안입니다”, “100위안 드릴게요.” 첫 번째 일을 아주 순조롭게 완수했고 게다가 제 시간에 고쳤다. 목욕탕 주인이 보니 일을 잘하기에 무척 기뻐하면서 그에게 20여 집 고객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첫 고객을 찾게 됐다.

작년에 경제가 크게 하락해 같은 업종 여러 회사가경영이 부진했다. 그의 회사는 표준이 높고 평이 좋았으며 업무가 숙련됐으며 효과도 좋아 개업 후 모은 돈으로 10여 만 위안짜리 새 차 한 대를 샀다.

작년 말, 고향인 저장성의 두 대법제자가 박해를 당해 관다오(關到)시 구치소에 갇혔다. 나와 여러 사람은 구치소에 수련생을 보러 갔다. 나는 아들 며느리가 걱정할까 봐 사전에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갔다. 이후 아들이 알게 되자 나에게 말했다. “아버진 마땅히 우리에게 알리셨어야 합니다. 이는 바른 일이므로 저도 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더 많으면 한 몫의 힘이 더 보태집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는 몹시 기뻤다. 설령 아무리 잔혹한 박해 시기라 해도 그는 시종 대법과 대법제자를 지지했다.

한 번은 아들이 한 회사에 광고판을 설치해 주려고 이중 비계를 세웠는데 4미터 높이였다. 그의 한 직원이 비계 위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비계가 넘어지면서 직원은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가 길 중간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길에는 오가는 차들이 많았으나 그를 치지는 않았다. 경찰이 보고 다가와 차량을 정리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겨우 일어났는데 몸은 아무 일도 없었다. 가게 사장이 보니 비계가 넘어진 곳은 고급 승용차를 세워 둔 곳에서 겨우 두 치 떨어진 거리였다. 그 차는 4, 50만 위안씩 하는 차였는데 비계가 조금만 앞으로 넘어져도 고급차가 망가지고 배상 금액이 늘어났을 것이다. 사람, 차가 모두 문제없었다. 사장이 아들을 보고 말했다. “당신 집은 틀림없이 덕행이 있나 보군.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힘들게 됐을 거야.”

손자는 올해 세 살이고 반응이 민첩하며 표현 능력이 강하고 지능은 6, 7살 어린이 수준으로 어떤 때는 어른보다 더 강하다. 평소에 그는 동갑 아이들과 재미없다고 놀기 싫어하고 그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하고만 놀려 한다.

지난 해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 시 중심 도로변에서 그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쳐도 돼요?” 내가 말했다. “외칠 수 있지!” 아이는 길가에 서서 오른손을 추켜들고 연속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다만 나이가 어려서 발음이 아직 그다지 똑똑하지 못할 뿐이었다. 내가 그와 외출할 때 어떤 때는 아이에게 진상 신문을 길가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드리라고 하면 그는 쪼르르 달려가서 드리곤 한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큰 딸의 변화

내 큰 딸은 지금 30이 넘었는데 어려서 뇌성마비에 걸려 말할 줄 모르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몇 년 전 내가 돈벌이를 나가고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딸을 집에만 가둬 놓았는데 이후에는 이미 사람 같지 않았다. 온돌에 누워만 있었고 앉으면 머리도 들기 어려웠다. 두 발은 작은데다 휘어져 변형됐고 걸으면 넘어졌다.

작년에 나는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 돌아와 딸을 보살피면서 근본적으로 개변시키기로 결정했다. 병원의 현대기술은 전혀 방법이 없지만 대법은 만능이다. 내가 법공부할 때면 딸은 한 쪽에서 들었는데 법 듣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이후에는 습관이 되어 내가 책을 드는 것을 보기만 하면 스스로 한 쪽에 조용히 앉았다. 내가 만약 다른 책을 보면 다가오지 않는다.

나도 의식적으로 딸에게 많이 움직이고 일을 많이 하도록 시켰다. 대법은 확실히 딸에게 지혜를 열어 주었다. 1년이 되자 서서히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지금 딸은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고, 오른손으로 물 한 통을 들기는 문제없으며, 쪽지를 써주면 가게에 가서 물건을사올 수 있고, 스스로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으며, 텔레비전 음악 소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한 번은 딸이 플라스틱통의 물을 들다가 손잡이가 빠지면서 물이 쏟아졌지만 발이 다치지는 않았고 스스로 손잡이를 다시 꽂았다. 또 한 번은 라이터를 찾아오라고 시켰다. 나는 잘 사용하지 않으므로 평소에 딸에게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딸은 스스로 서랍에서 찾아왔다.

원래 딸의 머리카락은 돼지 털처럼 뻣뻣했는데 지금은 부드러워졌다. 예전에는 양미간이 찌푸려져 있었고 얼굴에서는 눈알만 움직일 뿐 온 얼굴은 굳어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양미간이 펴졌고 입에는 늘 웃음이 담겨있으며, 자주 뭐라고 외치기도 하는데 즐거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을 지녔고 마치 말을 해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딸의 눈동자는 밝고도 정신이 나 있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에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했다. 결과는 원래 뇌성 마비가 이미 나았다는 것이다. 단지 말을 배울 시기를 놓쳤다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딸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딸은 이미 법을 얻었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어떤 때 나는 딸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데 녹음기를 갖고 나가서 ‘보도(普度)’, ‘제세(濟世)’를 틀어놓는데 대법 음악은 마을에 메아리치면서 난잡한 악마를 쫓아내고 귀가 번쩍 뜨이게 한다.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옛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 큰 딸의 변화는 대법의 신기함을 펼쳐보였다.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맺음말

폭풍우가 지나면 온하늘에 아롱진 무지개가 나타날 것이다.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세상에 올 때의 우리의 사명이고, 대법제자가 된 의의는 우리 생명의 전부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정법의 진전은 대법제자에게 더욱 높은 요구를 제기한다. 시간은 긴박하고 책임은 중대하다. 오직 바른 마음을 가지고 집착을 버리며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정진, 또 정진할 뿐이다.

제자는 사존의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사존께 합장을 올립니다.

타당하지 못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마음고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5일
문장분류: 13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5/3371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