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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대법이 원한다면 나는 곧 할 것이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본인 구두 녹음, 수련생 대필)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대법은 나를 회생시켰다.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대법에 받은 도움이 무궁무진했기에 대법의 아름다움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전력을 다해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1. 대법은 나를 회생시키다

나는 올해 63세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를 못했고 11살 때부터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나는 딸 3명이 있다. 작은 딸이 7살 때 나는 천식을 앓고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기침이 매우 심했다. 기침하면 소변도 누었고 해를 보면 좀 괜찮았으며 바람을 맞고 움직이면 숨이 가빠지고 두 다리는 떨고 있었다. 저녁에는 아래위로 옷을 껴입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동시에 담낭염, 관절염, 심장병, 신경증, 치질 등 질병으로 앓고 있었고 치질이 도지면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발가락 외에는 온 몸이 아팠다. 나는 각 도시에 있는 병원에 모두 가보았지만 아무리 온종일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고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1998년 내가 법을 얻기 직전, 증세는 가장 심한 정도로 발전했고 길을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숨이 가빠 쉴 수 없었다. 나를 아는 한 파룬궁수련생이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나는 2개월 동안 네 차례 가서 들었고 4강의까지 보았다. 나는 사부님 설법 제1강과 제2강 녹음테이프를 2개 갖고 있어서 집에서 반복적으로 듣고 있었다. 그래서 내 몸에는 반응이 왔다.

예전에 나는 요통 때문에 야채를 썰고 나면 두 손으로 도마를 누르고 한참 있어야 일어날 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작은 의자에 앉아 야채를 잘게 썰고 나서 그릇을 들고 바로 일어나 몇 걸음 걷고 난 후 생각났다. ‘허리가 안 아프고 숨도 안 차고 몸이 많이 편안해졌구나.’ 나는 남편에게 파룬궁이 효과가 있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하자 남편은 효과가 있으면 가서 배우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내가 몸이 아파했을 때 자주 화를 내는 안 좋은 습관을 길렀기 때문에 화를 내면 천식이 발작했다. 사부님 말씀 “수련하는 사람은 화를 내면 안 된다.”[1]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2]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자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병도 완치됐다. 대법은 나를 회생시켰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2. 사부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정진하다

나는 늘 생명도 사부님께서 주셨고 대법이 원한다면 곧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도중생이 필요하면 할 것이고 수련생들이 원하면 할 것이다.

컴퓨터를 배우고 진상 자료를 만들다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지 몇 년 후, 나도 컴퓨터를 배우고 진상 자료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다. 비록 몇 년 동안 단체 법공부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대법 책은 혼자서 읽을 수 있었지만 대법 책을 안 보면 나는 아직도 몇 글자 몰랐다. 그리고 당분간 가르쳐 줄 사람도 찾지 못하는데 어떻게 컴퓨터를 배울 것인가?

나는 고민 끝에 PC방에 가서 청소부를 하기로 했다. 나는 사장님에게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데 월급은 적게 받아도 되고 나에게 컴퓨터 한 대만 쓰게 해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켜고 끄고 하는 것만 가르쳐주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 컴퓨터를 켰는데 마우스를 움직이자 화면에 ‘너 무엇을 하려는 거야?’라고 나타났다. 나도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고 놀라서 얼른 컴퓨터를 꺼버렸다.

나는 큰 딸에게 PC방에 같이 가자고 하자 큰 딸이 하는 말이 엄마는 나이도 많고 글자도 모르는데 누가 엄마를 가르칠 수 있겠냐고 했다. 그래도 나는 큰 딸을 끌고 갔다. 큰 딸은 컴퓨터를 켜더니 말했다. “모두 파룬궁을 모함하는 내용이네.” 나는 듣고 나서 “나도 안 볼 테니 너도 보지 말렴”하고서는 컴퓨터를 껐다. 이렇게 이번에는 배우지 못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자 아마 사부님께서 마음을 보고 도와주신 것 같다. 하루는 내가 길을 가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아마 그는 현(縣) 책임자 수련생 B 같았다. 하지만 확실치 않아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정말로 뒤돌아 내 앞에 와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컴퓨터를 배우고 자료 만들고 싶다고 했고 이 지역에서는 필요한지 되물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동의했다. 다음날 그의 아들이 운전하고 컴퓨터와 복사기를 싣고 기술지원 수련생과 같이 우리 집에 왔다. 기술지원 수련생은 우리 집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나에게 컴퓨터 다루는 방법과 밍후이왕 접속법 및 복사기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수련생이 있을 때 나는 모두 할 수 있었는데 가고 나니 또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당시 나는 현(縣)에서 삼륜차를 끌고 생활용품을 팔고 있었고 기회를 보면서 여러 수련생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나는 우선 돈에 진상 내용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 그 후 밍후이왕에서 다운로드하는 것도 배웠고, 한 장씩 만들다가 소책자를 만들 수 있었고, ‘9평’ 책자, 탁상용 달력, 벽걸이 달력, 진상 보드판도 만들 수 있었다. 밍후이왕에서 나온 진상자료들을 거의 다 만들어보았고 동시에 진상 CD도 만들 수 있었다.

고난 속에서 걸어나오다

내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마침 남편은 지방에서 일하게 되어 집에 올 수 없었다. 나는 낮에 자료를 만들고 저녁에는 수련생들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있는 시골에 가서 진상자료와 CD를 배포했다. 하기에 매우 편리하고 자유로웠다.

얼마 전, 남편은 지방에 일이 끝나 다시 돌아와 우리 지역 한 마트에서 일하게 됐다. 처음에는 감히 그에게 말하지 못하고 복사기를 침대 밑에 숨겨 놓았고 그가 출근하면 자료를 만들고 퇴근 전에 치워 놓았다. 남편이 책상에 있는 컴퓨터가 어디에서 났는지 묻자 나는 수련생B의 남편이 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B의 남편과 아는 사이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자 복사기를 계속 침대 밑에 숨겨 두는 것이 너무 번거로워 책상 위에 놓았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해서 보더니 무엇인지 묻자 나는 컴퓨터 부속품이라고 하고 넘겨버렸다. 아마도 남편은 내가 뭘하는지 알고 싶었기에 하루는 일찍 퇴근했다. 결국 내가 진상 자료를 만드는 것을 목격하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좋은 날이 없었다. 내가 저녁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가려면 욕하기 시작했고 그 후 나를 때리기까지 했다. 한번은 내가 시골에 가서 자료 배포하고 돌아오니 그는 내 목 칼라를 잡고 한번 휘둘렀는데 나는 머리가 문 앞에 있는 쇠통에 부딪혀 쓰러졌다. 또 한 번은 돌아왔는데 솥으로 내 머리를 내리쳐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머리 위가 꺼져 들어갔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셨으면 나는 그에게 맞아죽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제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한 숨만 붙어 있어도 자료를 나눠주고 사람을 구할 거예요. 당신이 제 다리를 부러뜨리면 전 기어서라도 갈 거예요.” 남편은 내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다시는 날 때리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오로지 남편을 적대시하고 자신의 수련을 소홀히 했으며 남편의 입장도 소홀히 했다. 그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일반 중생으로 대하지 않고 그에게 진상을 잘 알리지 못했으며 마음속으로 원망만 했다. 이런 것을 인식한 후 나는 자신이 수련을 강화했고 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했다.

남편도 점차 나를 지지했고 지금은 남편도 수련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배워 시골에 가서 중생을 구도하다

자전거를 타고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한번은 내가 ‘9평’ 책자 세 박스를 큰 주머니에 넣어 자전거 뒤에 묶어서 현에 있는 수련생 집에 보내야 했다.

우리 집은 교외에 있어서 수련생 집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철도를 세 번 넘어야 했다. 철도를 넘을 때마다 자전거 앞부분은 세워져 있었다. 나는 힘껏 누르면서 속으로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계시기에 무겁지 않다.’ 스스로 정념을 가하고 수련생 집에 도착하자 수련생은 내가 어떻게 끌고 왔는지 상상할 수 없어 매우 놀랐다.

나는 오토바이가 한 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 전체와 시골은 너무 넓어서 오토바이를 탈 수 있으면 많이 편리할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집에서 돈 관리를 했기에 남편과 상의했다. 우리 집은 교외에 있고 현과 산림국에도 우리 일이 있어 자전거를 타는 것이 효과가 좋지 않고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안전을 고려해 동의하지 않았고 1년간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동의했다.

나 혼자 오토바이를 구입하기 직전, 남동생이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우리 집에 왔는데 나는 동생에게 뒤에 앉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결국 긴장했던 탓에 엑셀을 밟고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자 오토바이는 밭에 떨어졌고 남동생도 떨어졌으며 오토바이 범퍼가 파손됐다. 동생은 나에게 “누나는 나이도 많은데 왜 오토바이를 운전하려고 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단다’라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구입한 후 남편이 이틀 동안 가르쳐 주었는데 몇 번이나 넘어 졌는지 몰랐지만 결국 배울 수 있었다. 오토바이가 있어서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처음에 우리는 저녁에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이후에는 낮에 시장에 가서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자료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다. 나는 여러 수련생을 태우고 전체 현 곳곳을 돌았다. 나는 또 전화 진상활동과 단체 메시지 보내기, 사진 보내기도 배웠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에 갈 때 휴대폰 몇 대를 트렁크에 넣고 자동 음성전화를 켜거나 혹은 단체 메시지 발송을 했다.

3. 중생들 모두 대법을 위해 왔다

우리가 시골에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었는데 아래 대표적인 몇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사부님 말씀: “어떤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많은 고층 생명이 내려와 전생해서 대법과 인연을 맺으려 하고, 사람 역시 윤회전생하고 있는데, 사람 숫자와 인피는 한정되어 있고, 더 많아지면 이 지구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층 생명이 동물, 식물로 전생한 것도 있다.”[3]

작은 고양이가 길을 안내하다

한 번은 저녁에 우리가 시골 한 마을에서 진상 자료 배포를 절반쯤 했는데 작은 고양이가 우리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료를 놓으려고 하는 대문 앞에 앉아 ‘야옹 야옹’하고 여기에 놓으라는 뜻으로 두 번 소리를 냈다. 우리가 놓으면 또 다른 집 문 앞에서 ‘야옹 야옹’ 소리를 냈다. 우리하고 마을 절반을 돌았고 우리가 끝났는데도 가려하지 않았고 우리를 따라 마을 밖으로 나왔다. 나는 가라고 계속 타이르면서 말했다. ‘네가 안 가면 주인은 걱정할 거야.’ 여려 번 타일러서 보냈다. 유감스러운 것은 고양이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려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대법에 동화되어 구도될 수 있는데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것을 잘 몰랐다.

지적 장애인이 길을 안내하다

한 번은 낮에 수련생이 운전하고 우리는 시골에 CD를 배포하러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20대 젊은이가 우리를 보더니 좋아서 계속 소리치면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지적 장애인이었다. 나는 젊은이에게 집에 CD플레이어가 있는지 물으면서 CD를 주고 너무너무 좋은 것이라 부모님과 같이 보라고 권했다. 그는 너무 좋아서 CD를 받고 가슴에 안고 보물을 얻은 것처럼 어쩔 줄 몰랐다. 그 젊은이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고 나를 데리고 골목골목 돌아다니면서, 어느 집에 CD플레이어가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이 장애인도 보통은 아니었다. 명백한 일면은 매우 명백하다.

4. 사부님의 보살핌에 정념으로 곤경에서 벗어나다

한 번은 내가 오토바이에 남자 수련생을 태우고 M마을 시장에 CD를 배포하러 갔었다. 마을 경찰서는 시장과 거리가 20m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속으로 두려웠지만 다른 수련생을 영향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수련생에게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서 배포하자고 했는데 수련생은 못 들은 것처럼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배포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 배포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에게 배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설명하자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당신, 날 따라 오세요.” 나는 듣고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나는 전혀 남에게 손을 대지 않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손으로 그의 어깨를 치면서 “제가 왜 당신하고 가야 하는데요? 제가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그를 통제하는 배후의 사악은 해체됐고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날 보호하시는 것을 알았고 이때 두려움도 사라지고 정념도 올라왔다.

또 한 번은 이 수련생과 T마을로 갔는데 그는 동쪽을 책임지고 나는 서쪽을 책임졌다. 내가 한 슈퍼 문 앞에서 배포가 끝나자 양복을 입고 겨드랑이에 작은 가방을 끼고 보기에 마을 간부 같은 한 남성이 와서 소리치면서 여기에서 배포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에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저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왜 못하게 하죠? 당신들 위해서인데,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일 만날 수 있어요? 우리가 1년에 몇 번 올 수 없는데 당신이 만났으니 인연이에요. 누가 만나면 그가 구도되는 거예요”라고 말하자 이 남성은 나를 붙잡고 “당신이 배포하는 것이 파룬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컴퓨터 판매하는 가게에 가서 CD를 보고 파룬궁이면 당신을 붙잡을 것이고 아니면 돌려보낼게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보면 구도될 수 있으니 보세요.’ 이때 컴퓨터 가게 주인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집 컴퓨터가 고장 나서 나오지 않네요.” 이때 이 남성은 손을 놓았다. 이렇게 나는 곤경에서 벗어났고 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와 잡담을 하면서 중간에 진상도 알렸다. 내 조카도 이 마을에서 산다고 하자 그는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아는 사이고 좋은 친구라고 하며 앞뒤 집에서 산다고 했다. 그가 말이 끝나고 떠나자 나는 쫓아가면서 탈당을 권했고 CD를 전했다. 그는 내 조카 집에서 보았다고 하고 받지 않고 부랴부랴 가버렸다.

또 한 번은 나는 오토바이에 한 여 수련생을 태우고 S농장에 CD를 배포하러 갔었다. 우리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배포하려고 우선 10연(連)에 가서 집집마다 아주 순리롭게 배포했다. 그리고 9연에 있는 양식장, 슈퍼, 식당에 배포하고 진상도 알렸는데 모두 잘 받았다. 우리가 가려는데 한 남성이 와서 여기에서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했다. 본래 우리는 끝나서 가려고 했는데 이때 수련생이 그 남성이 전화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말하자 나는 전화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며 신경 쓰지 않았고 사악을 청리하고 박해를 부정하는 발정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8연에 가서 또 안쪽부터 밖으로 알리려고 갔다. 마침 경찰차도 8연 마을 끝에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CD를 꺼냈는데 키 큰 남자가 경찰차에서 나오더니(경찰복을 입지 않았음), 우리를 보고 소리치면서 막았고 악랄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배포하는지 물었다. 나는 거침없이 션윈CD를 건네면서 중화 5천년 전통문화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거칠게 말했다. “무슨 5천년 문화? 빨리 말해, 도대체 뭐야?” 이때 수련생은 그 경찰에게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그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졌고 화장실을 알려주었다. 내 가방에 CD와 자료들이 많아서 수련생에게 가방을 건네면서 화장실에 가서 오지 말고 기회를 봐서 가라고 눈치를 줬는데 그 수련생은 눈치채지 못하고 받지 않았다. 그리고 오토바이에 있는 자기 가방만 가져가려 했다. 그의 가방은 거의 비어있었다. 내 마음은 차분했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수련생은 나에게 “언니, 전 화장실에 가려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좀 끌려 한 것이고 무서워서 그랬어요”라고 했다. 이 때 나는 생각을 바꿔 그녀를 혼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농장에는 길이 하나 밖에 없고 통근버스만 다니며 택시 한 대도 없다. 만약 나가지 못하면 더욱 큰일이다. 나는 수련생에게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우리와 그는 박해하고 박해 받는 관계가 아니고, 구도와 구도 받는 관계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구도해야 할 중생이고 우리는 그와 직면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돌아온 후 그 경찰은 손에 CD를 들고 아직도 오토바이 근처에 서 있었다. 또 화를 내면서 우리에게 뭐냐고 물었고 파룬궁이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는 말했다. “이왕 당신이 알고 있으니 숨길 일이 없고 파룬궁이 아니면 사람을 구도하는 작용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파룬따파는 정법이고 ‘천안문 분신 거짓 사건’, 장쩌민이 어떻게 파룬궁을 모함했는지, ‘고대 암석에 새겨진 글자’, 하늘에서 중국공산당을 소멸하는 일, 왜 삼퇴를 해야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지,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는 일들을 말해줬고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라고 권하면서 아니면 자신에게도 안 좋고 또 자손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했다.

마지막에 그는 “사실 저도 제게 번거로운 일이 생기길 원치 않습니다. 당신들을 놓아줄 수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배포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차에 타서 나는 그에게 너무 이기적이라고 하자 그는 “당신들을 놓아주었는데 왜 이기적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신은 CD를 보면 구도되지만 당신의 관할 지역의 사람들은 아직 구도 받지 못했어요”라고 했다.

수많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부님의 보살핌과 대법의 무한한 법력의 가지 하에 위기를 넘겼다. 제자는 사부님께 무한한 감격을 품고 오로지 정진, 또 정진할 것이다.

5. 수련생의 어깨를 밟고 서다

우리 여기에는 큰 팀 책임자가 있었는데 2년 전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3년 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가 책임자를 맡았다. 우리 큰 팀에는 시골 수련생들이 있는데 H마을에서 4명이 우리 큰 팀에서 법공부를 했었다. 그 지역에는 열 몇 명이 있는데 모두 2005년 이후 법을 얻었다. 하지만 비교적 정진하고 진정으로 걸어나와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은 이 4명뿐이었다. 작년10월, H마을에서 가장 먼저 법을 얻은 두 수련생이 각각 다른 도시 다른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구속됐고 재판을 받았는데 결과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고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다른 도시 경찰과 그 지역 경찰들이 협조해 그 수련생 시부모님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열쇠를 뜯고 들어가 집안을 엉망으로 뒤진 후 가버렸다.

이 갑작스런 변고가 작은 마을에게 적지 않은 파문을 가져왔다. 순식간에 여러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두 사람 외에 H마을에 수련생C도 붙잡혔고 H마을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사는 수련생D도 잡혔다고 하며, 곧 H마을에 모든 수련생들을 잡으러 온다고 했다. 예전에 뇌출혈로 전신마비로 있다가 법공부를 통해 일어났던 수련생Z는 당시 놀라서 쓰러져 원래 상태로 돌아갔고 비암(鼻癌)을 앓았던 수련생G는 며느리가 다른 지역에서 잡히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수련하지 못하게 했고 수련생들도 같이 법공부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나와 수련생D는 나올 수 있는 몇몇 수련생과 같이 H마을에 한 번 가보자고 상의했다. 첫째는 소문을 타파하고, 두 번째는 붙잡힌 수련생 가족들 위로하려 했으며, 셋째는 그 지역 수련생들과 교류를 통해 단체 법공부를 느슨하지 말고 수련생들에게 정념을 주려 했다. 그리고 또 돌아오는 길에서 진상 보드판을 붙이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려고 준비했다.

저녁 무렵 우리는 6시 발정념을 하고 승용차로 출발했다. 이때 날씨는 많이 흐렸고 우리는 차에서 계속 발정념을 하고 가끔 법에서 교류도 했다. 근 한 시간 거리에 우리가 도착하자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릴 수 없었고 차 안에서 H마을 공간장을 청리하고 비가 그치라는 발정념을 했다. 10분 지나서 비는 멈췄다.

우리는 우선 붙잡힌 수련생 시부모님을 만나 걱정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 지역 수련생들과 교류해 단체 법공부를 다시 하도록 했다. 시간은 빨리 갔고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보니 10시가 됐다.

문을 나서자 맑은 하늘이었고 전봇대를 만져보았는데 하나도 젖지 않았고 보드판 걸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때 나는 집에 가려하는 수련생C를 불러 같이 자료를 배포하고 보드판을 붙이자고 하자 C는 두 말 없이 따라왔다. 마을 끝 도로변에 철로 된 간판이 있었는데 보드판 붙이기에 딱 알맞았다. 다만 너무 높아서 손에 닿지 않았다. 나는 초조하고 있었는데 수련생C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대고 말했다. “자, 제 어깨를 밟으세요.” 방금 비가 왔기에 땅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나는 차마 그의 등을 밟을 수 없었다. 수련생C는 괜찮으니까 빨리 올라가라고 했다. 내 눈가는 촉촉해졌다. 수련생D는 한 손은 나를 잡고 한 손은 보드판을 건네주었다. 나는 보드판을 똑바르게 철판에 붙였다. 이 보드판은 멀리서 봐도 잘 보였고 매우 뚜렷하고 매우 보기 좋았다. 우리는 만족하면서 차로 돌아왔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신이 나에게 여기 사람 구원하라 한다네.”[4] “당신들 매 한 사람이 하나의 아주 큰 범위를 맡았으며, 한 지방의 중생들을 대표했기 때문이다.”[5] “이번 박해 중에서 어떻게 중생을 구도할 것인지 하는 이것은, 모두 역사가 대법제자에게 부여한 책임이다.”[6]

우리는 계속 질퍽거리는 길에서 전진하고 자료를 배포하고 보드판을 붙이며 이곳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정체 협조의 힘은 무궁하다.

6. 인간 세상의 기적

어느 날 나는 삼륜차를 끌고 생활용품을 팔고 있었는데 수련생이 길에서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 배포가 어렵다고 하자 나는 대신 배포하면서 생활용품 파는 것을 잊어버렸다. 수련생은 물건을 안 파냐고 하자 그것은 괜찮고 중생구도가 급하다고 했다. 그 후 나는 또 션윈 포스터를 삼륜차에 있는 들보에 걸어놓고 물건을 사러 온 사람에게 얘기하고 포스터를 달라고 하면 한 장씩 줬다. 당시 생활용품을 하루에 정말 많이 팔았다.

1월 하루는 갑자기 나에게 물건 사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나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계속 대리점에 전화해 물건을 갖다달라고 하고 대리점에서 제때 못 오면 남편보고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나는 주로 양말을 파는데 한 켤레 2.5위안이다. 그날 뜻밖에 5천 위안 어치를 팔았다. 이것은 기적이다!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내가 못 판 것을 모두 보상해주셨다. 나는 정말 사부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수련생들 말에 따르면, 공부도 못한 할머니가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고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자료를 만드는데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60세 넘은 할머니가 오토바이에 젊은 청년들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 우리 현에서는 아마도 유일하고 독특한 풍경인데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이는 오로지 신의 길에서, 사부님의 보호 하에 있는 대법제자만 만들 수 있는 인간세상의 기적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3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5/3371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