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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확고히 믿어 생사 고험을 넘다

글/ 대륙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올해 55세다. 2013년 어느 날 내가 선양 공공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서 길옆 건축 시공하던 지게차가 정류소 표지판 위 길이 3미터, 너비 1.5미터인 150키로의 덮개와 부딪쳐 그 덮개가 떨어지면서 나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 덮개는 표지판 기둥 옆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쓰러지면서 한 손으로 땅을 짚었는데 움직일 수 없었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으며 호흡이 곤란했다. 나는 크게 부딪쳐 혼미해졌다.

혼미한 가운데 눈앞으로 오가는 차량만 보였다. 다시 긴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면서 ‘나는 어찌된 일인가?’라는 염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즉시 이는 사악이 나를 박해하려는 것임을 의식하고 “나는 파룬궁수련생이다. 사부님께 도움을 청합니다!”라는 일념이 생기자 곧 매우 큰 바람 소리가 나를 에워싸고 윙윙 돌아갔다. 잇따라 3, 4회 돌았다. 한번 돌아갈 때마다 내 몸이 좀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차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부님께서 파룬으로 내 신체를 청리해주신 것을 깨닫고 일념을 확고히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므로 반드시 아무 일이 없다!” 그러자 뜨거운 기운이 한 차례 한 차례 전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때 기사도 제정신이 돌아와 나를 병원으로 보내려 했다.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스스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좀 지나서 나는 미약한 소리로 기사에게 말했다. “좀 기다리세요. 지금은 움직일 수가 없으니 잠시 후에 말합시다.” 기사는 매우 두려워하면서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주변 사람들도 매우 조급해하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가족에게 전화하라고 재촉했다. 그때 나는 전신이 떨려 손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조금 나아져 기사를 보니 매우 두려워했다. 나는 기사에게 안심할 수 있는 말을 했다. “두려워 말아요.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저는 돈을 뜯어내지 않을 거예요. 저를 좀 부축해줘요. 내가 걸을 수 있다면 병원에 가지 않을 거예요.”

이때 한 사람이 다가와 나를 부축했으나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말했다. “안 되겠어요. 일어날 수 없어요. 한 명 더 오세요.” 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두 건장한 젊은이가 함께 힘을 써서야 50키로의 나를 부축했다. 일어난 후 잠깐 서 있다가 움직여봤더니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됐어요. 걸을 수 있어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요. 파룬궁 사부님은 저희에게 일에서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병원에 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만약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일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꼭 기억하세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가짜입니다. 삼퇴 보 평안에 대해 알고 있나요?” 기사가 즉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오늘 저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이때 버스가 도착해서 나는 극심한 통증을 인내하며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의지해서 차에 올랐다. 그때 어떻게 차에 올랐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와 함께 차를 타신 아줌마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오늘 목숨을 건졌어요. 나는 방금 정류소로 걸어가면서 당신이 부딪쳐 넘어지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사부님이 돌보시기에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무런 일이 없을 것으로 알고 있으나 길에서 5시간 가까이 고생했다. 기차에서 전신이 떨렸고 끊임없이 묵념했다. “사부님 도와주십시오, 사부님 도와주십시오.” 5시간 걸려서 나는 친정집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가방을 안고 집에 들어서면서 친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렸다. “오늘 난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 했어요.” 이어서 나는 일의 경과를 말했다. 친정 사람들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고 있어서 내 행동을 이해했고 적극 지지했다.

나는 곧 방에 누웠다. 이렇게 누우면서 준엄한 고험이 시작됐다. 전신의 고통이 참기 힘들 정도로 갈수록 더해 일어날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었다. 오장육부는 말할 수 없이 아프고 경추와 요추의 고통이 극심했다. 전신에 온전한 곳이 없어 다른 사람이 몸을 건드릴 수도 없었다. 몸을 한자 거리 옮기려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3일 후 오후, 여동생이 친정에 와 방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에 베개도 못 베고 눈동자와 피부는 모두 노랗게 황달이 전신에 퍼진 사람 같았다. 몸은 규칙적으로 축소되면서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었다. 보기에도 나는 이미 극한의 고통으로 잠을 잘 수 없어 이미 생명이 위험했다. 여동생은 이런 모습에 이끌리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일어나요. 누워있지 말고 가상에 순종해서는 안돼요. 정념으로 부정해요.” 여동생이 하는 말이 맞음을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비자각적으로 신음 조로 말했다. “나는 너의 말대로 할 수가 없어. 조금만 움직여도 견딜 수 없다. 앉는 건 더구나 안 된다.” 그러면서 나는 머리를 저었다. 여동생은 끊임없이 나와 교류했다. 옆에 있던 남동생과 올케도 협조했다. 한 시간 후 나는 천천히 나를 부축해 일으키라 했다. 이불과 베개로 나를 고정시키고 우리는 법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각마다 발정념을 했다. 좀 지나서 나는 눕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누울 수 없으며 사악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며 계속해서 법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후 나는 또 누우려고 했으나 눕는 문제를 교류해 다시 6, 7시간 동안 견지하고 잠시 누웠다 일어나겠다고 하자 그들은 나에게 자리를 펴주었다. 누우려고 준비하는 데 곤히 잠들었던 올케가 갑자기 깔아놓은 이부자리를 끌어당겨 덮고 계속해 잠을 잤다. 나는 즉시 이건 사부님께서 눕지 말라고 하시는 점화임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눕지 말라고 하신다. 눕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 법공부, 발정념, 교류를 했다. 그렇게 밤 12시 발정념까지 견지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또 제5장 공법을 했다. 이렇게 매일 대략 4일간 견지하자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그사이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사건 발생지에 찾아가 그 큰 표지판 덮개를 보고 멍해졌다. 건장한 남성을 불러 함께 그 표지판 덮개를 들려했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또 목격자의 진술을 들었다. 목격자들은 모두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전화로 크게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미쳤어? 그렇게 큰 것에 치였으면서 어찌 병원에도 가지 않았어. 돌아와 폐인이 되면 누구를 찾아갈 것인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요.” 달래고 윽박지르며 끊임없이 나더러 집에 돌아와 함께 병원에 가 검사하고 치료받자고 했다. 나는 그것에 이끌리지 않고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이번 생사 고험을 지났다.

26일이 지나서 나는 집에 돌아왔다. 남편의 원망과 화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빨래도 한 무더기나 쌓여있었다. 나는 일일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의 가호와 대법의 위력으로 나는 생사의 큰 고험에서 지나왔다. 가족들에게 또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허스!

문장발표: 2016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선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4/3216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