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진상의 오늘과 어제를 다시 수련생들과 나누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1년 1월 분신자살 사기극이 등장하고 삽시간에 박해가 가중됐다. 사악의 거짓말이 온 하늘을 뒤덮고 대법제자에게는 전체적인 압력, 소침한 상태가 나타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떻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4월에 나는 사부님의 점화에 의해 문장 한편을 발표했다. ‘끝없는 대법 속에서의 한 순간’이란 글이고 당시 역경 속에 있는 일부 수련생들이 고개를 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법으로 마음 속 신등(神燈)을 밝히고 싶었다. 문장에서 나는 98년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한 가지 장면을 공유했다.

그 장면에서 햇빛이 찬란한 파란 하늘 아래 매우 큰(한 개 도시 혹은 국가 정도의 큰 크기), 이미 깨끗이 치운 똥구덩이가 있었다. 속에는 아주 많은 각양각색 사람들이 바쁘게 지냈고 나와 많은 수련생들이 그 속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구덩이 밖은 아주 깨끗했지만 구덩이 안에서 모두들 똥이 묻은(세속의 오염) 말라서 오염된 옷을 입고 있었다. 일부 수련생은 긴박감이 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희희낙락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 2001년 당시 박해가 정수리를 짓누를 때 수련생들이 지적당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게 하려고 98년도에 보았던 그 진상의 일부분을 말했는데 단지 “다른 일을 하면서 집중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당시 그 똥구덩이 속에서 많은 수련생들이 기본상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고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례는 정말로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울러 구덩이 속 사람들은 갈수록 적어졌고 처음에는 빼곡했는데 한 동안 지난 후 한 무리가 사라지고 또 한동안 시간이 흘러가면 또 한 무리가 사라져서 겨우 몇몇만 남아있었다. ‘몇몇만 남았다’란 이 몇 글자는 인간세상에서는 단지 형용사로 간주하지만 그 실질적인 장면 속에서는 매우 놀라울 지경이고 비중이 아주 컸다!

그 장면에서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자신 몸에 묻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일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갑자기 허리를 펴고 옆에 사람과 쓸데없는 한담을 나눴다(집중하지 않음). 바로 그 시각 천둥처럼 위엄이 서린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바로 사부님이셨다. ‘천둥’이 울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기 전 1초 전에 일념이 스쳤다. “왜요…?”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구덩이 외곽에 사부님께서 서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마침 끝없는 우주를 등지고 엄숙하게 나를 직시하고 계셨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신의 그 일면이) 단번에 명백해졌다. 할 말이 없었고 나는 한담을 나누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으며 나는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했고 반드시 다그쳐야 했으며 일분일초도 놓치면 안 됐다.

불행한 것은 정법수련 16년간 당시 큰 구덩이 속 장면들을 나는 모두 현실 중에서 보았다. 자신이 사람의 방식으로 ‘조절’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심성이 제한되어 아주 조급하지만 한 사람의 힘은 너무나 작고 정말로 속인처럼 무력하게 느껴져 늘 여러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해 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수련생들은 늘 누가 정진하면 자신들은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이든 수련과 연결 짓고 무엇이든 법과 연결 짓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조급하고 답답했던 그 힘은 여러 해 지나서야 비로소 가셔졌다. 그러나 현재 장쩌민 고소가 반영한 현황에서 보면 우리 대법제자 정체 상황은 확실히 낙관적이지 못하다. 마치 한 수련생이 교류한 것처럼 대륙에서 직접 박해당한 사람은 18만 명뿐이 아니다. 정말로 ‘몇몇이 안 남았다.’ 고층차상의 법을 잘 모르더라도 세 가지 일을 견지하며 많이 행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걸어 나오지 못해 소침해져 사람 속으로 되돌아간 이들이 많은데 비례 수는 정말로 매우 높았다.

억만년의 지불과 간고함을 거쳐 최후의 시각에 이르렀다. ‘이 순간’은 인간세상의 갖가지 유혹에서, 가속화된 시간 속에서 20년, 30년이라 해도 정상적인 시간에서는 전혀 아무 것도 아니다. 오로지 우리가 사람 속의 명리정을 너무 진실하게 여기고, 법과 수련을 너무 허황하게 여겨 자신에게 넘지 못할 큰 산을 만들었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1] 우리는 정말 끝까지 견지할 생각이 없는가? 정말로 시간을 인생을 추구하는데 써야 비로소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이 글은 자신의 무엇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현재 제한된 수련상태에서 보게 된 작은 것으로 수련의 엄숙성과 진상을 실증하려 함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3-오직 이 한 차례 위해’

문장발표: 2015년 9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7/3166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