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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위안에서 법을 전하셨던 사부님을 회상(상)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링위안(凌源)은 천혜의 역사적 산물이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옛 수련문화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다. 수련이 마음공부가 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며 마음을 정화하게 하는 효과가 있음은 다 알고 있다. 지난 80년대 전국 각지에 기공 열풍이 나타났고 각종 기공이 사회에서 전해졌는데 링위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링위안에 입주한 국유기업 링위안 강철회사[약칭 ‘링강(凌鋼)’] 기공협회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나타났고 근로자를 조직하고 인도해 기공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자주 기공을 연마하는 근로자는 천여 명에 이르렀고 배우는 공법이 10여 개가 넘었다. 많은 근로자는 기공을 배우고 신체가 건강하게 됐지만, 기공을 배우고 정신장애와 신체건강에 문제가 생겨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끼친 사례도 있었다. 근로자들의 기공 활동을 바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링강 노조는 1992년부터 각 기공에 대해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연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각종 기공 잡지와 간행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링강 노조는 1992년 이래 파룬궁이 당시 중국에서 발전이 가장 빠르고 영향력이 가장 큰 기공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공인시보(工人時報)’, ‘법제보(法制報)’, ‘중국체육보(中國體育育報)’ 등 전국 비교적 큰 신문과 ‘중화기공’, ‘기공연구’ 등 전문잡지도 비교적 넓은 지면으로 보도했고 호평이 끊이지 않았다.

1. 아무리 골라봐도 파룬궁이 가장 좋아

특히 1993년 9월 ‘중국체육보’에 올린 ‘중국 파룬궁’이 베이징 제2포병 강당에서 학습반을 개최한다는 소식은 매우 많은 링강 기공 애호자의 관심을 끌었다.

1) 링강 노조는 출장 명의로 베이징에 직원을 파견해 파룬궁을 배우게 했다

링강 노조는 출장 명의로 기공 애호자 몇 명을 베이징으로 파견해 학습반에 참가하게 했고 착실히 동작을 배우고 돌아와 다른 근로자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베이징에 간 후 학습반 장소가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정부 강당으로 변경됐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허페이로 갔다. 학습반에 참가한 후 심신에 큰 혜택을 받은 그들은 이 공법은 그들이 접촉했던 중에서 가장 좋은 공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참가 기간에 링강 노조 책임자에게 전화로 학습반에 참가한 상황을 보고했고 동시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링강에서 학습반을 한번 개최하시도록 제의했다. 노조 책임자가 동의한 후 여러 번 파룬궁 연구회와 협상하고 연락한 끝에 연구회는 1994년 2월 22일~28일에 링강에서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하기로 동의했다.

직접 이 일을 겪은 한 수련생은 회상하며 말했다. “허페이에 도착한 후 무슨 영문인지 사부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강렬한 소원으로 아침 일찍이 사부님께서 계시는 여관으로 찾아갔습니다. 1층 카운터 앞에서 사부님께서 내려오시길 기다려 어떻게 생기셨는지 꼭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지나 어떤 사람이 2층에 서 있었는데 저분이 바로 사부님일 것이며 내려오시길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부님께서 계단으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갑자기 제 눈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사부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자비롭게 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밤낮 보고 싶었던 사부님을 뵈었지만 뭘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후에 학습반에서 사부님의 설법은 제 마음속을 촉촉하게 해주었고 파룬궁이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으며 꼭 사부님을 링위안으로 모시고 파룬궁을 링위안으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한 분식점에서 식사하시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들어갔고 사부님을 기다리며 링위안에 가서 법을 전해달라고 요청하려 했다. 좀 지나 식사를 마치신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는데 우리가 입을 열기 전에 “책임자가 지지하나요? 강당이 있나요?”(대의)라고 물으셨다. 사부님께서는 벌써 우리 마음을 알고 계셨다. 이때 사부님 옆에 있던 실무자 류(劉) 씨가 우리에게 “사부님께서는 링위안에 가겠다고 승낙하셨어요. 200명만 있으면 설 기간에 가신답니다.”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시원하게 요구를 들어주셔서 우리는 매우 기뻤다.

허페이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링위안에 돌아와 책임자에게 보고했더니 그도 매우 기뻐했다. 뜻밖에 이번 여행이 헛되지 않았고 정말로 사부님을 모셔왔다.

2)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을 모셔오는 차량이 해결되다

1994년 2월 18일(정월 초아홉)은 설 연휴 첫 출근 날이었다. 오전에 출근하자 링강 노조는 베이징 파룬궁 연구회의 전화를 받았는데 리훙쯔 사부님께서 설 기간에 스자좡에서 학습반을 개최하셨기 때문에 20일에야 베이징에 도착할 수 있고 만약 기차를 타고 가면 아마 2월 21일에 링강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개최 시간에 영향 주게 되는데 차를 베이징으로보내 사부님을 마중할 수 없느냐고 문의했다. 당시 링강 노조는 전용차량이 없어 회사 사무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링강 사무실의 차량 사용규정은 비교적 엄격했다. 보통 회사 고위 책임자가 아니면 회사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노조 책임자도 비교적 난처해 했다. 그때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하는 구체적인 일은 노조 부대표가 책임졌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링강 사무실의 위(于) 주임을 찾아갔는데 때마침 내일 차 두 대를보내 남방 시찰을 가는 회사의 쑹(宋) 사장과 차오양(朝陽)시 정부 비서장, 시 경제위원회, 시 야금국 책임자를 베이징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빈 차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탑승자가 모두 회사와 시 책임자니 만약 차를 사용하려면 쑹 사장에게 한번 말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고 그가 동의하면 그들과 동승해 베이징에 갔다가 그들이 비행기에 탑승하면 기공사를 마중해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쑹 사장에게 보고했더니 그는 즉시 동의했다. 이렇게 사부님을 마중하는 차량이 해결됐다. 정말로 딱 들어맞았다.

3) 짙은 안개를 만나 한바탕 괜히 놀라다

링강 일행은 2월 19일 오후에 베이징에 도착한 베이징 주재 링강 사무소에 입주했는데 그날 저녁 베이징 TV에서 베이징, 화북 지역에 저녁부터 이튿날 낮까지 짙은 안개가 끼어 수도 공항의 모든 비행기가 이착륙을 중단했다고 했다. 이때 링강에서 노조 궈(郭) 대표도 TV를 보고 짙은 안개로 인해 비행기가 뜰 수 없으면 쑹사장 일행과 차량이 베이징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에 학습반 개최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해 베이징으로 전화해 대책을 논의했다. 최종 노조 대표와 부대표는 만약 일단 쑹사장 일행이 떠날 수 없어 차가 돌아올 수 없다면 현지에서 차를 빌려 사부님을 모셔오기로 했다. 이 하루저녁 동안 부대표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20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온 베이징이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고 가시도가 극히 낮아 아마 오전 내내 비행기가 뜨기 힘들 것 같았다. 쑹 사장 일행의 비행기 시간은 11시였고 당시는 아직 설 기간이라 차를 빌리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조급했다. 그리하여 체면 불구하고 쑹 사장에게 만약 비행기가 뜰 수 없으면 우리가 먼저 사람을 마중하러 가고 책임자들은 공항호텔에서 하루 묵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 쑹 사장은 매우 지지하고 이해해줬으며 “링강 노조가 기공사와 이미 약속한 이상 시간대로 사람을 링강까지 보내줘야죠. 이렇게 합시다. 공항에 도착한 후 날씨가 어떻든 먼저 마중하러 가세요. 만약 오늘 비행기가 뜰 수 없으면 우리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베이징 주재 사무소로 갔다가 내일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갈게요. 우리는 택시를 잡기 쉽지만, 당신들은 그렇게 먼데 어디 가서 차를 빌리겠어요?”라고 했다. 쑹 사장의 말에 노조 부대표는 크게 감동했다. 식사 후 7시쯤에 링강 일행 12명은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는데 짙은 안개가 흩어지지 않았고 가시도가 매우 낮아 달리는 속도도 매우 느렸다. 동승한 링강 총 경제사는 노조 부대표에게 우스개로 “오늘 대사(大師)님을 모시는데 우리 비행기가 영향받지 않도록 그에게 보우해 달라고 할 수 없나요?”라고 했다. 쑹 사장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어떤 대사도 짙은 안개를 없앨 수는 없어요. 공항에 가서 기다립시다!”라고 했다. 짙은 안개로 인해 평소 한 시간쯤 달려야 하는 길을 2시간 넘게 달려서야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짙은 안개는 흩어지지 않았다. 노조 부대표는 일행을 대합실 로비까지 바래다주고 차 한 대를 갖고 베이징 주재 사무소로 돌아왔다. 12시쯤에 다른 차 한 대도 돌아왔다. 기사는 오전 비행기는 다 뜨지 못했는데 11시가 되자 짙은 안개가 흩어지고 맑아져 오직 쑹 사장 팀 비행기만 제시간에 이륙했다고 말했다. 당시 직원은 쑹 사장 팀이 너무 운이 좋았고 오늘 좀 신기했다고 말했다.

4) 작은 도시 링위안이 사방에서 구도자를 맞이하다

20일 밤 9시쯤, 사부님을 태운 차가 링강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에 들어가자 전국 각지에서 온 파룬궁수련생 100여 명이 사부님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공손하게 로비 앞에서 합장하고 사부님께 경의를 표했다. 사부님도 한 손으로 입장하시고 그들이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러 링강에 온 것을 환영했다. 이후에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지린, 헤이룽장, 베이징, 허베이, 산둥 등 각지에서 왔고 가장 먼 곳은 신장과 후베이였는데 그들 중에 교수, 경찰, 공무원, 기업 직원, 기업 책임자 등이 있었다. 소수가 링강 호텔에 숙박했고 대부분 사람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변 작은 여관에 숙박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따라 다니면서 이미 몇 개 학습반에 참가했고 여러 곳을 다녀왔다. 그들이 말하는데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할 수 있고 직접 눈으로 사부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인생 중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외지 수련생을 통해 링강 수련생은 사부님의 명성과 파룬궁의 신기한 효능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됐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7월 28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8/313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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