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산시 대법제자 치메이
[밍후이왕]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일 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노정을 개변하여 이 착한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려주라고 깨우쳐 주셨다. 대법은 그녀의 집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온 마을을 구해 주었다. 지난 후에 나는 두려워졌다. 만약 당시에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아 여전히 원래의 계획을 견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자’라는 일념으로 농촌 자매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시기를 놓쳤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본문 저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지금 자신이 이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한 과정 중의 일부 수련체득을 보고하고자 한다.
‘9평 공산당’과 ‘대기원 정중 성명’이 발표된 후 밍후이왕에서는 2005년 초에 연속으로 사부님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 문안’,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 이 세 편의 중요한 경문을 발표하셨다. 나는 정법이 ‘9평’을 전하고 ‘3퇴’ 권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우선 자신의 친척부터 시작하여 일부 사람에게 권하여 탈퇴하게 했다. 스스로는 정법 진척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년 후 발생한 일은 나에게 자신의 차이점을 보게 하였다.
7월의 어느 저녁, 나는 돌아가신 지 4년이 되는 이웃 집 언니 남편을 꿈에서 보았는데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나의 손에 편지 한 통을 쥐어 주었다. 나는 매우 의아하게 여겼고 놀라 깨어났다. 그는 아마 다른 세상에서 그의 가족에게 난이 닥치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나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나에게 꼭 가서 그들을 구도해 주라는 것인데 꼭 ‘3퇴’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진상자료를 지니고 이웃 언니 집으로 찾아갔다. 나는 언니한테 대법진상을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나의 꿈에 대한 진술과 ‘9평’, ‘3퇴’에 대한 소개를 듣고 난 후 그녀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네. 나와 영감쟁이는 출신이 좋지 않기에 아무 데도 가입하지 못했지만 자식은 네 명 가운데서 한 명이 당원이고 세 명이 단원이네. 그들이 자료를 보도록 하고 탈퇴한다는 성명을 시켜야겠네.” 반달 후에 그녀는 난처해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당신의 관심에 고맙다고 하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것을 믿지 않네.” 그리고는 자료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두 달이 지난 후 비보가 들려왔다. 당원인 이웃 집 언니 사위는 차를 몰고 외출한 후, 사고가 나서 비참하게 타향에서 죽었다. 내가 비통한 마음으로 언니를 보러 갔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영감쟁이가 당신 꿈에 보여준 꿈이 정말 그대로 일어났구나. 아이들은 모두 고집이 센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늦었구나.”라고 하였다. 나는 한편으로 괴로우면서 한편으로 직접 그녀의 사위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되었다. (우리는 원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도중에 차내가 진상을 알린 후 언니의 다른 세 자식은 단에서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돌아가신 사람을 위해서도 탈당을 해 주었다.) 나의 마음속은 여전히 후회로 가득했다.
사부님께서는 “사회에서 접촉하는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알릴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체현해 낸 것은 대법제자의 자비와 세인(世人)의 구도이다.” [1]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웃 집 언니의 자식들을 대하는 것과 자신의 가족을 대할 때의 자신의 행위를 대조해보면 신경을 쓴 것이나 열심히 한 것이 너무 부족했다. 자신이 나타낸 것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나타내야 할 자비가 아니라 친정에 대한 집착과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수련에서 얼마나 부족한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반드시 법 학습과 심성을 닦는데 큰 노력을 해야 했다.
이후 시간에 나는 노력하여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2] 하지만 내가 제일 어렵다고 여긴 것은 바로 우리 직장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많은 직장 사람은 온종일 돈을 벌고 권리를 다투며 향락을 누리기에 바쁘다. 이런 것들을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대법 진상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느끼거나 들을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점을 직장 밖에 두었다. 직장 내부에서 진상을 알릴 때에도 권리가 없거나 퇴직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알렸다. 우리 직장 대부분 사람에 대해 나는 늘 ‘인연이 성숙되면 다시 보자’로 자신의 두려워하는 심리와 타협하고 용서를 했으며 덮어 감추었다. 2011년, 어느 일이 있어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70여 세 되는 퇴직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랜 병이 낫지 않자 나보고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녀의 병은 아주 빨리 나아졌고 자식들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보게 되었다. 작년에, 나는 마땅히 그녀의 집에 가서 ‘3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밖에 내가 말도 꺼내자마자 할머니는 그만하자는 손짓을 하면서 “그만 멈춰. 우리는 연공만 말하고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사악한 당의 독해를 아주 깊이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발정념하여 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 마음이 생겨 그녀를 피해 먼저 그녀의 자식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식은 모두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고급 지식인으로서 모두 사리에 밝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줄곧 자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실 그녀는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럼 조금 있다 얘기해 보자고 생각하였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역시 두 달 후에 그녀의 아들도 차를 운전하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이 일과 5년 전 그 사고의 경과는 너무 비슷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내가 마땅히 구해야 할 사람이 나 때문에 지체되었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비록 후에 그녀 가족들은 내가 진상을 알린 후 ‘3퇴’를 하였지만 내가 할머니와 그녀의 딸이 건네준 명단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명단의 무게 때문에 부끄러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치’라는 단어를 꺼리는가? 왜 할머니한테 진상을 알리지 않고 둘러 가려 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오랫동안 숨겨왔던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다른 사람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심이다. 이 집착심의 배후에는 두려운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명리심, 허영심 등이 있는데 결국에는 모두 이기심이었다. 이 집착은 자신의 정념정행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몇 년 동안 내가 직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지 못하게 저애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나는 법을 학습하고 마음을 닦는 면에서의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고 사당(邪党) 문화의 독해가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법 학습을 강화하는 동시에 꼼꼼히 다시 ‘9평 공산당’을 읽었다. 인식이 제고되고 집착을 제거하며 사당 문화의 요소가 제거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두려운 물질을 제거해 주셨다. 단번에 정념이 좀 더 많아졌고 자비도 더 많이 생겼는데 정말로 “우리가 자비심이 나올 때,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워 보인다.” [3] 그러므로 사부님의 ‘진상을 알리는 근본 목적’이 발표된 후 나는 진상을 알리는 의의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진상을 알리는 사로(思路)도 더욱 명석해졌으며 사람을 구하려는 책임감과 긴박감도 더 강렬해졌다.
올해 초, 고향에 일이 있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일을 마친 후 사부님의 “당신은 방법을 생각해 당신이 구도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4] 가르침에 따라 중학교 시절의 몇몇 친구를 찾아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마땅히 농민으로 있는 어릴 때 자매를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절한 분의 안내로 나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들은 내가 온 목적을 안 후 진상을 명백히 알았고 온 가족이 ‘삼퇴’를 한 동시에 대법호신부를 받으면서 더욱 고마워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외우라고 알려 주면서 긴급한 상황에 부딪치면 더욱 많이 외우라고 하였다. 이별을 앞두고, 위태로울 때 대법사부님에게 보호를 빌라고 특히 당부하였다.
생각지 못한 것은 내가 떠난 후 스무날 후에, 액화가스를 가득 채운 탱크차가 그들 마을 옆의 도로에서 갑자기 불이 났고 30여 시간 탔지만 재난을 빚어내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님, 당신이 돌아간 후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난 후 처음으로 하는 일이 바로 그 아홉 글자를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법에 대해 특히 믿어요. 그날 액화 탱크차에 불이 났을 때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데 만약 폭발한다면 200톤 폭약의 위력과 맞먹게 되고 우리 마을은 평지로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 몇천 명 사람들이 대 재난이 닥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앞을 가리지 않고 서쪽을 향해 도망갈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끊임없이 좋은 말 아홉 글자를 외웠어요. 저는 대법 사부님에게 우리 마을을 구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는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은 꼭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어요. 온 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애태우면서 30여 시간을 견뎠고 경보가 풀렸다는 말을 듣자 모두 미친 듯이 마을을 향해 달려왔어요. 큰 재난에서 죽지 않은 흥분을 가지고 달려오면서 소리를 쳤어요. ‘하느님의 보호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파룬따파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너무 놀랐다. 이 농민 형제의 가족은, 위험은 없었지만 사람이 놀란 경험으로 대법의 자비와 신비로움을 실증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무날 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노정을 개변하여 이 착한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려주라고 깨우쳐 주셨다. 대법은 그녀의 집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온 마을을 구해 주었다. 지난 후에 나는 두려워졌다. 만약 당시에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아 여전히 원래의 계획을 견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자.’는 일념으로 농촌 자매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시기를 놓쳤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는 다만 잘못을 보완하고 싶은 실수한 자들에 대한 고무 격려와 위로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알다시피 만약 우리가 사람을 구도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면 대 재난이 발생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는가? 남겨진 것은 오직 영원한 유감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노력하여 법을 학습하고 자신을 잘 닦으며 모든 기회를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경의를 표한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하다!
주해: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이성(理性)’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 제7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년 설법’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4/265102.html
두 달이 지난 후 비보가 들려왔다. 당원인 이웃 집 언니 사위는 차를 몰고 외출한 후, 사고가 나서 비참하게 타향에서 죽었다. 내가 비통한 마음으로 언니를 보러 갔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영감쟁이가 당신 꿈에 보여준 꿈이 정말 그대로 일어났구나. 아이들은 모두 고집이 센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늦었구나.”라고 하였다. 나는 한편으로 괴로우면서 한편으로 직접 그녀의 사위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되었다. (우리는 원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도중에 차내가 진상을 알린 후 언니의 다른 세 자식은 단에서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돌아가신 사람을 위해서도 탈당을 해 주었다.) 나의 마음속은 여전히 후회로 가득했다.
사부님께서는 “사회에서 접촉하는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알릴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체현해 낸 것은 대법제자의 자비와 세인(世人)의 구도이다.” [1]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웃 집 언니의 자식들을 대하는 것과 자신의 가족을 대할 때의 자신의 행위를 대조해보면 신경을 쓴 것이나 열심히 한 것이 너무 부족했다. 자신이 나타낸 것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나타내야 할 자비가 아니라 친정에 대한 집착과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수련에서 얼마나 부족한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반드시 법 학습과 심성을 닦는데 큰 노력을 해야 했다.
이후 시간에 나는 노력하여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2] 하지만 내가 제일 어렵다고 여긴 것은 바로 우리 직장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많은 직장 사람은 온종일 돈을 벌고 권리를 다투며 향락을 누리기에 바쁘다. 이런 것들을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대법 진상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느끼거나 들을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점을 직장 밖에 두었다. 직장 내부에서 진상을 알릴 때에도 권리가 없거나 퇴직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알렸다. 우리 직장 대부분 사람에 대해 나는 늘 ‘인연이 성숙되면 다시 보자’로 자신의 두려워하는 심리와 타협하고 용서를 했으며 덮어 감추었다. 2011년, 어느 일이 있어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70여 세 되는 퇴직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랜 병이 낫지 않자 나보고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녀의 병은 아주 빨리 나아졌고 자식들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보게 되었다. 작년에, 나는 마땅히 그녀의 집에 가서 ‘3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밖에 내가 말도 꺼내자마자 할머니는 그만하자는 손짓을 하면서 “그만 멈춰. 우리는 연공만 말하고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사악한 당의 독해를 아주 깊이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발정념하여 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 마음이 생겨 그녀를 피해 먼저 그녀의 자식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식은 모두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고급 지식인으로서 모두 사리에 밝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줄곧 자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실 그녀는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럼 조금 있다 얘기해 보자고 생각하였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역시 두 달 후에 그녀의 아들도 차를 운전하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이 일과 5년 전 그 사고의 경과는 너무 비슷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내가 마땅히 구해야 할 사람이 나 때문에 지체되었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비록 후에 그녀 가족들은 내가 진상을 알린 후 ‘3퇴’를 하였지만 내가 할머니와 그녀의 딸이 건네준 명단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명단의 무게 때문에 부끄러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치’라는 단어를 꺼리는가? 왜 할머니한테 진상을 알리지 않고 둘러 가려 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오랫동안 숨겨왔던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다른 사람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심이다. 이 집착심의 배후에는 두려운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명리심, 허영심 등이 있는데 결국에는 모두 이기심이었다. 이 집착은 자신의 정념정행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몇 년 동안 내가 직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지 못하게 저애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나는 법을 학습하고 마음을 닦는 면에서의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고 사당(邪党) 문화의 독해가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법 학습을 강화하는 동시에 꼼꼼히 다시 ‘9평 공산당’을 읽었다. 인식이 제고되고 집착을 제거하며 사당 문화의 요소가 제거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두려운 물질을 제거해 주셨다. 단번에 정념이 좀 더 많아졌고 자비도 더 많이 생겼는데 정말로 “우리가 자비심이 나올 때,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워 보인다.” [3] 그러므로 사부님의 ‘진상을 알리는 근본 목적’이 발표된 후 나는 진상을 알리는 의의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진상을 알리는 사로(思路)도 더욱 명석해졌으며 사람을 구하려는 책임감과 긴박감도 더 강렬해졌다.
올해 초, 고향에 일이 있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일을 마친 후 사부님의 “당신은 방법을 생각해 당신이 구도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4] 가르침에 따라 중학교 시절의 몇몇 친구를 찾아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마땅히 농민으로 있는 어릴 때 자매를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절한 분의 안내로 나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들은 내가 온 목적을 안 후 진상을 명백히 알았고 온 가족이 ‘삼퇴’를 한 동시에 대법호신부를 받으면서 더욱 고마워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외우라고 알려 주면서 긴급한 상황에 부딪치면 더욱 많이 외우라고 하였다. 이별을 앞두고, 위태로울 때 대법사부님에게 보호를 빌라고 특히 당부하였다.
생각지 못한 것은 내가 떠난 후 스무날 후에, 액화가스를 가득 채운 탱크차가 그들 마을 옆의 도로에서 갑자기 불이 났고 30여 시간 탔지만 재난을 빚어내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님, 당신이 돌아간 후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난 후 처음으로 하는 일이 바로 그 아홉 글자를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법에 대해 특히 믿어요. 그날 액화 탱크차에 불이 났을 때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데 만약 폭발한다면 200톤 폭약의 위력과 맞먹게 되고 우리 마을은 평지로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 몇천 명 사람들이 대 재난이 닥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앞을 가리지 않고 서쪽을 향해 도망갈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끊임없이 좋은 말 아홉 글자를 외웠어요. 저는 대법 사부님에게 우리 마을을 구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는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은 꼭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어요. 온 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애태우면서 30여 시간을 견뎠고 경보가 풀렸다는 말을 듣자 모두 미친 듯이 마을을 향해 달려왔어요. 큰 재난에서 죽지 않은 흥분을 가지고 달려오면서 소리를 쳤어요. ‘하느님의 보호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파룬따파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너무 놀랐다. 이 농민 형제의 가족은, 위험은 없었지만 사람이 놀란 경험으로 대법의 자비와 신비로움을 실증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무날 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노정을 개변하여 이 착한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려주라고 깨우쳐 주셨다. 대법은 그녀의 집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온 마을을 구해 주었다. 지난 후에 나는 두려워졌다. 만약 당시에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아 여전히 원래의 계획을 견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자.’는 일념으로 농촌 자매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시기를 놓쳤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는 다만 잘못을 보완하고 싶은 실수한 자들에 대한 고무 격려와 위로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알다시피 만약 우리가 사람을 구도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면 대 재난이 발생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는가? 남겨진 것은 오직 영원한 유감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노력하여 법을 학습하고 자신을 잘 닦으며 모든 기회를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경의를 표한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하다!
주해: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이성(理性)’[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 제7강’[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년 설법’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4/265102.html
두 달이 지난 후 비보가 들려왔다. 당원인 이웃 집 언니 사위는 차를 몰고 외출한 후, 사고가 나서 비참하게 타향에서 죽었다. 내가 비통한 마음으로 언니를 보러 갔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영감쟁이가 당신 꿈에 보여준 꿈이 정말 그대로 일어났구나. 아이들은 모두 고집이 센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늦었구나.”라고 하였다. 나는 한편으로 괴로우면서 한편으로 직접 그녀의 사위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되었다. (우리는 원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도중에 차내가 진상을 알린 후 언니의 다른 세 자식은 단에서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돌아가신 사람을 위해서도 탈당을 해 주었다.) 나의 마음속은 여전히 후회로 가득했다.
사부님께서는 “사회에서 접촉하는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알릴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체현해 낸 것은 대법제자의 자비와 세인(世人)의 구도이다.” [1]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웃 집 언니의 자식들을 대하는 것과 자신의 가족을 대할 때의 자신의 행위를 대조해보면 신경을 쓴 것이나 열심히 한 것이 너무 부족했다. 자신이 나타낸 것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나타내야 할 자비가 아니라 친정에 대한 집착과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수련에서 얼마나 부족한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반드시 법 학습과 심성을 닦는데 큰 노력을 해야 했다.
이후 시간에 나는 노력하여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2] 하지만 내가 제일 어렵다고 여긴 것은 바로 우리 직장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많은 직장 사람은 온종일 돈을 벌고 권리를 다투며 향락을 누리기에 바쁘다. 이런 것들을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대법 진상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느끼거나 들을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점을 직장 밖에 두었다. 직장 내부에서 진상을 알릴 때에도 권리가 없거나 퇴직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알렸다. 우리 직장 대부분 사람에 대해 나는 늘 ‘인연이 성숙되면 다시 보자’로 자신의 두려워하는 심리와 타협하고 용서를 했으며 덮어 감추었다. 2011년, 어느 일이 있어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직장에는 70여 세 되는 퇴직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랜 병이 낫지 않자 나보고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녀의 병은 아주 빨리 나아졌고 자식들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보게 되었다. 작년에, 나는 마땅히 그녀의 집에 가서 ‘3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밖에 내가 말도 꺼내자마자 할머니는 그만하자는 손짓을 하면서 “그만 멈춰. 우리는 연공만 말하고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사악한 당의 독해를 아주 깊이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발정념하여 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 마음이 생겨 그녀를 피해 먼저 그녀의 자식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식은 모두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고급 지식인으로서 모두 사리에 밝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줄곧 자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실 그녀는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럼 조금 있다 얘기해 보자고 생각하였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역시 두 달 후에 그녀의 아들도 차를 운전하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이 일과 5년 전 그 사고의 경과는 너무 비슷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내가 마땅히 구해야 할 사람이 나 때문에 지체되었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비록 후에 그녀 가족들은 내가 진상을 알린 후 ‘3퇴’를 하였지만 내가 할머니와 그녀의 딸이 건네준 명단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명단의 무게 때문에 부끄러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치’라는 단어를 꺼리는가? 왜 할머니한테 진상을 알리지 않고 둘러 가려 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오랫동안 숨겨왔던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다른 사람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심이다. 이 집착심의 배후에는 두려운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명리심, 허영심 등이 있는데 결국에는 모두 이기심이었다. 이 집착은 자신의 정념정행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몇 년 동안 내가 직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지 못하게 저애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나는 법을 학습하고 마음을 닦는 면에서의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고 사당(邪党) 문화의 독해가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법 학습을 강화하는 동시에 꼼꼼히 다시 ‘9평 공산당’을 읽었다. 인식이 제고되고 집착을 제거하며 사당 문화의 요소가 제거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두려운 물질을 제거해 주셨다. 단번에 정념이 좀 더 많아졌고 자비도 더 많이 생겼는데 정말로 “우리가 자비심이 나올 때,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워 보인다.” [3] 그러므로 사부님의 ‘진상을 알리는 근본 목적’이 발표된 후 나는 진상을 알리는 의의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진상을 알리는 사로(思路)도 더욱 명석해졌으며 사람을 구하려는 책임감과 긴박감도 더 강렬해졌다.
올해 초, 고향에 일이 있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일을 마친 후 사부님의 “당신은 방법을 생각해 당신이 구도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4] 가르침에 따라 중학교 시절의 몇몇 친구를 찾아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마땅히 농민으로 있는 어릴 때 자매를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절한 분의 안내로 나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들은 내가 온 목적을 안 후 진상을 명백히 알았고 온 가족이 ‘삼퇴’를 한 동시에 대법호신부를 받으면서 더욱 고마워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외우라고 알려 주면서 긴급한 상황에 부딪치면 더욱 많이 외우라고 하였다. 이별을 앞두고, 위태로울 때 대법사부님에게 보호를 빌라고 특히 당부하였다.
생각지 못한 것은 내가 떠난 후 스무날 후에, 액화가스를 가득 채운 탱크차가 그들 마을 옆의 도로에서 갑자기 불이 났고 30여 시간 탔지만 재난을 빚어내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님, 당신이 돌아간 후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난 후 처음으로 하는 일이 바로 그 아홉 글자를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법에 대해 특히 믿어요. 그날 액화 탱크차에 불이 났을 때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데 만약 폭발한다면 200톤 폭약의 위력과 맞먹게 되고 우리 마을은 평지로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 몇천 명 사람들이 대 재난이 닥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앞을 가리지 않고 서쪽을 향해 도망갈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끊임없이 좋은 말 아홉 글자를 외웠어요. 저는 대법 사부님에게 우리 마을을 구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는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은 꼭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어요. 온 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애태우면서 30여 시간을 견뎠고 경보가 풀렸다는 말을 듣자 모두 미친 듯이 마을을 향해 달려왔어요. 큰 재난에서 죽지 않은 흥분을 가지고 달려오면서 소리를 쳤어요. ‘하느님의 보호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파룬따파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너무 놀랐다. 이 농민 형제의 가족은, 위험은 없었지만 사람이 놀란 경험으로 대법의 자비와 신비로움을 실증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무날 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노정을 개변하여 이 착한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려주라고 깨우쳐 주셨다. 대법은 그녀의 집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온 마을을 구해 주었다. 지난 후에 나는 두려워졌다. 만약 당시에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아 여전히 원래의 계획을 견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자.’는 일념으로 농촌 자매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시기를 놓쳤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는 다만 잘못을 보완하고 싶은 실수한 자들에 대한 고무 격려와 위로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알다시피 만약 우리가 사람을 구도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면 대 재난이 발생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는가? 남겨진 것은 오직 영원한 유감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노력하여 법을 학습하고 자신을 잘 닦으며 모든 기회를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경의를 표한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하다!
주해:[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이성(理性)’[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 제7강’[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년 설법’(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4/2651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