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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수련생: 글을 쓸 줄 모르던데서부터 문장을 써서 발표까지 하다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07년 어느 날, 나는 밍후이주간에서 한 수련생이 쓴 교류문장을 보았다. 이 수련생은 법을 얻은 지 1년 좀 넘었는데 세 가지 일을 아주 잘 했고, 관을 아주 잘 넘겼으며, ‘전법륜’도 외울 수 있었다. 이 글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고 아주 큰 계발을 받았다. 정진하는 수련생은 나를 격려해주었다. 나는 교육을 받지 못해 수련에 방해가 된다고 자신을 미워했다. 7년 넘게 수련했지만 아직도 대법 책의 글자도 전부 모르고, 병음도 모르고, 자전도 찾을 줄 모른다. 심득교류 문장을 쓴다는 것은 더욱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아주 부끄러웠다. 그러나 비록 잘 수련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신사신법하는 마음은 반석과 같이 튼튼했다.

그 수련생은 이제 일 년 남짓 수련했는데 자신의 체득을 써내 수련생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7년 넘게 수련했지만 한 편의 교류문장도 사부님께 보고하지 못하고 수련생과도 나누지 못한다. 수련생의 심득체험을 보기만 하는 것에 가책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고 자신을 미워하면 안 되고 노력해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뭇 제자에게 숙제를 고쳐주시다

매우 안타까워하던 3일째 날, 나는 꿈에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서 사부님께서 뭇 제자에게 숙제를 고쳐주시고 계신 것을 보았다. 사부님은 ‘전법륜’의 법상과 같은 옷을 입고 계셨다. 그곳은 궁전이었다. 주위의 모든 꽃과 나무는 아주 고요하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밖에서 궁전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문을 보고 들어갔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사부님이셨다. 그곳에는 아주 큰 한 무더기 시험 종이가 있었다. 매우 큰 탁자가 궁전의 중간에 놓여 있었고 위에는 밀린 교류문장이 있었는데 아주 높게 쌓았는데 넘어지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단정하게 궁전을 마주하고 앉아 열심히 매 한 편의 교류문장을 고쳐주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고르지 않고 고치셨고 다 고쳤으면 옆에 차분하게 놓아두셨다. 마치 보존해두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을 부르고 싶었지만 방해가 될까 봐 문 입구로 물러섰다가 다시 들어갔다. 사부님께서 열심히 시험지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아쉽게 떠나갔다. 깨어난 후 나는 울었다.

글 쓰는 것을 배우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가정의 특수한 원인으로 줄곧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나의 강렬한 요구로 13, 14살 때 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마침 문화대혁명에 부딪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글 쓰는 것은 등산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사부님께서 시험지를 고치고 계시는 그 한 장면은 시시각각 내 머리에 떠올랐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사부님의 나에 대한 자비로운 고도와 힘겨움을 생각하니 매일 눈물이 만면에 흘렀다. 나는 교류문장을 쓰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한 글자를 쓰면 1년이면 365자를 쓸 수 있고, 3년이면 나의 체득을 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법 공부를 하기 전에 매일 백지 한 장과 연필 하나를 앞에 놓아두었다. 쓸 수 있는 글은 종이에 써놓고 저녁에 아이가 잠들면 쓰기 시작했다. 써내지 못하는 글은 오자로 썼고 오자도 써내지 못하면 비워 놓고 낮에 가족에게 물었다.

내가 한 달 동안 글을 썼으면 한 달 동안 울었다. 나는 닫힌 채 수련하였으므로 평소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연필과 종이를 들면 사부님의 그 한 장면이 머릿속에 자주 떠올랐다. 네모 칸의 공책 4페이지를 썼다. 네 번 베껴 쓰고 써내지 못한 빈칸을 수련생에게 주고 밍후이왕에 접속할 줄 아는 수련생에게 수개해 달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문장을 발표한 후 수개된 초고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격동되어 문장을 펼쳐보았는데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1/3은 오자와 틀린 글자였다. 그때 나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시시각각 나를 격려해주고 계셨다. 이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 제고된 것임을 알았다.

컴퓨터를 배우다

그때 상황에서는 제때에 최근 진상자료를 얻어 복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컴퓨터를 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또 ‘병음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병음도 모르고 글도 쓸 줄 몰라서 속으로 아주 번뇌했다. 내가 매일 심사숙고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내 마음을 보셨다. 07년 연말 한 외지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와서 내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감동되어 쾌히 응낙했다.

나는 먼저 수련생에게 병음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수련생은 “병음을 몰라도 괜찮아요. 글을 쓸 줄만 알면 돼요.”라고 말했다. 자료가 모자라는 어려움을 생각하니 컴퓨터를 배우려는 나의 마음은 아주 간절했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수련생은 좀 생각하더니 “방법이 있어요. 아무튼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으면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한동안 지난 후 수련생은 매우 주도면밀하게 컴퓨터, 프린터, CD라이터, 실링기 및 필요한 소모품을 한꺼번에 집으로 싣고 왔다. 한 무더기의 기계와 소모품을 보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면 나는 꼭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빨리 배울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수련생은 기계를 켜고 끄는 것부터 아주 인내심 있게 가르쳐주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가르칠 때 밍후이왕에 접속했는데 사부님께서 좌선한 채 산중에서 조용히 세간을 바라보고 계신 모습을 본 격동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에 감사드리며 또한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했다.

수련생은 또 인터넷에서 다운받고 프린터하고 CD굽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료는 없는 것이 없었다. 수련생은 내게 한 젊은 여 수련생을 소개해주었다. 이 젊은 여 수련생은 분명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셔서 온 것이고 내가 사전서약을 실현하는 것을 도와주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부르면 곧 달려왔다. 어떤 때에는 대화상자 한 개를 위해서라도 달려왔고, 진상폐가 막혀 나오지 않을 때에도 그녀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의뢰심은 갈수록 심해졌다.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돌파할 수 없었다. 사실 젊은 여 수련생은 나보다 몇 개월 전에 컴퓨터와 프린터 기술을 배웠을 뿐이지만 그녀는 오성이 좋았다.

그녀는 또 내게 대법 책과 9평을 만들고, 교정하고,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기계를 수리하는 간단한 기술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타자하는 것을 가르칠 때 곤란에 처했다. 어떻게 하는가? 삼퇴 이름을 발표할 수 없었고, 수련생이 박해를 받아도 제때에 폭로할 수 없었으며, 수련생의 엄정성명도 발표할 수 없었고, 현 지역의 사악을 폭로한다는 것은 논할 수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자신에게 이런 것을 배워서 뭘 하려 하는지를 물었다.

워드패드를 설치하기만 하면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나는 사서 설치했다. 하지만 수련생이 박해당한 간단한 폭로자료를 쓰는데도 이틀이 걸렸다. 낮에 집에 사람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글을 물을 수 없었다. 어떤 때 그들이 저녁 늦게야 돌아와서 잠이 들면 깨울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마음이 급했다.

병음을 배우다

제때에 사악을 폭로할 수 없게 되자 나는 병음을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배우는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가? 나는 우선 어문 책 한 권을 사서 보자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서 보니 몇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으나 병음은 하나도 몰랐다. 나는 아주 실망했다.

나는 매일 법 공부를 한 후 속으로 사색했다. 어떤 때에는 가책이 느껴져 사부님께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곤 했다. 한 시기 지난 후 나는 병음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사촌 오빠는 마침 퇴직한 선생이었다. 나는 먼저 그의 집에 가서 가르쳐주겠다는 동의를 받은 후 집에 돌아와서 ‘내가 병음을 배우는 것을 교란하는 다른 공간의 모든 사악, 흑수, 난귀, 공산사령을 제거한다.’라고 발정념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내가 배우는 지식은 대법에만 사용하고 오직 대법에만 속한다.’라고 가지해 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낮에는 오빠만 집에 있으므로 일남일녀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있는 저녁에 가겠다고 선택했다. 병음을 배우는 과정도 수련하는 과정이었고 또한 집착심을 없애는 과정이었다.

며칠 지나 나는 밥을 먹고 책, 연필, 종이를 가지고 사촌오빠 집에 갔다. 그는 아주 서생 티가 넘쳐흐르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데 반시간이 걸리고, 식사 후 손을 씻는데 10분이 걸렸으며, 과일을 깎고 걸상을 닦아도 십 여분 걸렸다. 7시가 넘어 그의 집에 가도 밥을 먹고 있거나 아직 사발을 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내 어린 손자는 매일 오후 외할머니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저녁 9시에 집으로 보내므로 나는 그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매번 사촌 오빠 집에서 약 1시간만 배웠다.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조급해하는 마음을 없애고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체면을 잃기 두려워하는 마음도 제거해야 했다.

나는 외사촌 오빠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가르쳐주면 집에 돌아가 여러 번 외우고 기억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그는 나보고 큰 소리로 노래하며 손으로 성조부호를 그리라고 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어린애들이 부르는 노래를 부르라는 것은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오직 모든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체면을 볼 것 없이 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배우러 온 것이다.’ 입을 열었더니 그의 가족은 다 웃었고 그도 참지 못해 웃었으나 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는 매번 가르쳐준 것의 옆에 오자로 발음을 표시하고 집에 돌아와 그대로 읽고 노래했다. 남편이 손으로 입을 막고 웃자 나는 아예 더 크게 불렀다.

연습을 다한 후 남편에게 “당신은 어릴 적에 배웠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전부 선생님에게 반납했지요. 나는 어릴 적에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 이런 나이가 됐는데도 아직 배울 용기가 있어요. 당신은 나를 격려해주지 않고 오히려 비웃어 주고 있네요. 내가 당신을 비웃어야 옳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표준어를 배우다

사촌 오빠가 일주일 만에 다 가르쳐 준 후 집에 돌아가서 나 혼자 연습해야 했다. 나는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맞춤법이 옳지 않아 원하는 글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표준말의 맞춤법으로 읽어야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나에게 또 커다란 관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쓰촨 사람의 방언은 특색이 있다. 문화가 없는 이 쓰촨 사람에게 표준말을 하라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대법 책의 글도 아직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는가? 나는 갑자기 신화자전을 사놓고 8년 동안 쓰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 찾아냈다.

나는 자모를 알아볼 수 있고 간단한 글은 맞춤법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자전을 찾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또 사촌 오빠 집에 가서 자전을 찾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후에 나는 모르던 글을 전부 찾아내서 다 배웠다. 이렇게 되자 타자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나는 제6기, 제7기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회 교류에 참가했다. 내가 타자한 후 수련생에게 수개해 달라고 했다. 비록 발표되지 않았지만 얻음이 아주 많았고 많은 집착심을 제거했다. 과시심, 환희심, 원망심,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나쁜 물질이 끊임없이 제거되었고, 심성이 한 걸음 한걸음 제고되었으며, 지식도 끊임없이 늘었다. 일거몇득이나 되는 즐거운 일인데 어찌 기꺼히 하지 않겠는가?

내가 본지역의 사악을 폭로하고 수련생이 박해당한 문장을 쓴 것이 수련생의 수개를 거쳐 밍후이왕에 발표되었고 나는 밍후이 통신원이 되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본지역의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자료를 만들 수 있었고 수련생들과 매일 대량적으로 배부할 수 있었으며 사악이 크게 두려워 떨게 할 수 있었다.

수련생과 배합하는 데로부터 혼자서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하다

나는 전화녹음을 사용할 줄 몰랐다. 자료를 만드는 것도 수련생이 배합해서 배부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전화를 하는 수련생도 정보를 제공하는 수련생, 바로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중생의 전화번호를 수집하여 밍후이왕에 보냈다. 나는 친구, 친척, 아는 사람, 전우수첩, 동창수첩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후에 이 지역 정부기관의 주소록을 수집했으며, 후에 또 외지 향진 5천여 호의 전화번호를 얻어왔다. 오직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하려는 생각에서 늘 속으로 ‘내가 만약 온 시의 주소록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8개 현이 포함된 온 시의 주소록이 내 손에 들어오게 해주셨다. 사당의 시 위원회, 시정부부터 8개 현 위원회, 현정부까지 각 국(局) 각 향진, 각 파출소 등의 전화번호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계통적으로 전화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사악을 크게 두려워 떨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금년에 나는 마침내 진상 전화녹음을 하는 것을 배웠다. 수련생은 전화번호를 숨기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항목은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아주 좋았다. 전화를 받은 어떤 가게의 사장은 인근 사람을 불러 와서 파룬궁 진상을 들으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전화를 받으면서 옆 사람에게 해석해 주었으며, 한 중년남자는 탈당 전화를 받고 가족에게 연필을 가져오라고 하여 두 번째 들을 때 탈당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가족이 무얼 하느냐고 묻자 그는 허허 웃으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장발표 : 2012년 10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1/2635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