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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왕의 소소한 이야기(3)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편집자의 말: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오랜 기간 꾸준히 견지해 오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것이 비로소 진짜 정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자면 정말로 어렵다. 때문에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한다.”

이하는 2009년 밍후이왕 10주년 때의 단체 교류 원고다. 밍후이 사업을 하고 있는 상당한 일부 수련생은 장기간 기타 해외 수련생들처럼 수련 체험을 교류하고 함께 나눌 수 없었다. 이 방면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모두들 공동으로 이 원고를 써내 10주년 법회 때 밍후이왕 사업인원 사이의 교류와 서로 간의 고무격려로 삼고자 했다.[‘밍후이왕의 소소한 이야기 (2)’에 이어]

사부님의 긍정

2000년 1월 19일은 우리를 분발하게 한 날이다. 전날 밤,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시켜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내오셨다. 그 때 편집부에는 아직 스캐너 등 설비가 없었는데 모든 대법제자들이 가장 빠른 속도로 사부님 소식을 알도록 하기 위해 밤새 차를 몰고 나가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전문 상점을 찾았다. 다음 날 밍후이왕에 사부님 사진이 실렸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1999년 7월 20일 후 뉴욕을 떠나 산 속에서 세간을 조용히 지켜보시는 사진이었다. 그건 정말로 모든 진수제자들이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사부님께서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게 된 모든 대법제자는 모두 많은 고무각려를 받게 됐고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절실히 감수했다.

2000년 5월 22일, 밍후이왕은 사부님 경문 ‘심자명’을 발표했다.

2000년 6월 15일, 밍후이왕은 사부님 지시로 신경문 예고를 발표했는데, 예고에서 처음으로 사부님 말씀을 분명히 공포했다. “밍후이왕에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대한 문제에서는 반드시 밍후이왕의 태도를 보도록 하라. 나는 밍후이왕에 사진과 ‘심자명’을 발표했는데, 목적은 당신들에게 믿을만한 사이트를 수립해 주기 위해서이다.”

2000년 7월 8일, 밍후이 편집부는 전체 대법제자를 향해 심층 역사 진상을 드러낸 한 편의 문장을 발표했는데 제목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이었다.

사부님의 긍정은 밍후이 인원들에게 더 많은 자신감을 부여해 사업을 잘할 수 있게 한 동시에 모두들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중대한 책임을 더욱 의식했다. 압력에 눌려 더는 지탱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고, 마음속에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염두가 생길 때 사부님 가호와 대법의 수요, 동수의 수요, 진상 알리기 수요를 생각하기만 하면 언제나 충분한 정신정념이 솟아오르곤 했다.

사부님께서는 97년도에 발표한 ‘불성무루(佛性無漏)’란 글에서 지적하셨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무사무아(無我無私),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성취 되도록 하라.” 10년 동안의 길을 되돌아보면서 밍후이 사업인원들은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무사무아(無我無私)’, ‘선타후아(先他後我)’는 정념을 유지할 수 있는 관건이며, 순정을 유지하는 관건이자, ‘부패한 것을 신기한 것으로 변하게 하는’ 관건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천만 년의 표류와 영욕(榮辱)을 겪으면서 드디어 사부님을 만났다. 눈앞의 마난은 다만 원만하여 돌아가기 전의 한 차례의 곡절이란 것을 대법제자는 알고 있다. 사부님과 대법은 시종 여러분이 능히 확고부동할 수 있는 동력과 원천이다.

2000년 10월 21일은 99년 ‘7.20’의 전면 박해가 시작된 후,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공개 장소에 나타난 날인데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서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사부님을 회의장 강단으로 모셨다. “오래간만입니다”라는 사부님 말씀 한마디에 슬픔과 기쁨이 한데 엉킨 전 장내 대법제자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끊임없는 박수로 마음속 천만 마디 말을 표시하느라 손바닥이 다 빨갛게 됐다.

얼마 안 지난 2000년 12월 9일, 사부님께서는 미국대호구(美國大湖區)법회에서 또 다시 설법 하셨다. 한 밍후이 편집원은 말했다. “몇 년이 지났어도 매번 이 두 차례 사부님 설법을 들을 때의 장면을 생각하기만 하면 여전히 눈물이 옷자락을 적신다. 사부님 마음속에는 오직 무사(無私)와 위타(爲他)밖에 없었으며, 사부님은 매 한 사람을스스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이해하시고 소중이 여기셨는데 그런 박대한 흉금, 정기, 기백과 도량은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이다. 만약 세인이 기회가 있어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 설법을 들을 수만 있다면 사부님의 관심과 자비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종 감동과 끝없는 경의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일종의 특수한, 얻기 어려운 복이다.”

견지

처음 그 1 ,2년과 지금은 완전히 같지 않다. 지금 더 많아진 것은 수련과 사업 자체의 압력이다. 그 때는 도리어 각 공간의 많은 물건들이 모두 짓눌려 내려와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한 편집원은 말하기를, 어느 날 밤에 그가 쓰러지려 할 때 갑자기 큰 파룬이 자기 신체를 감싸고 돌았다고 했다. 일시에 거대한 에너지가 신속히 몸과 머리에 가득 차면서 상태가 재빨리 조절되어 그날 밤 사업을 완수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다른 수련생들과 아침 인사를 나눌 때 누구도 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몇 년 동안에 또 각지 수련생들이 잇달아 밍후이 사업에 참가하러 왔다. 여러 사람에게는 모두 자신의 직업과 가정이 있으며, 또 다른 대법 항목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밍후이왕은 그들 사업 이외의 시간에 하는 또 다른 한 몫의 전직 사업이었는데 이 전직 사업은 한 푼의 봉급도 없고 시간도 마찬가지로 하루 24시간에서 온다. 하지만 어떤 대법제자는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한 갈래 길을 걸어왔고 견지해 왔다. 밍후이 매 부서에서의 진상 알리기 사업 중에서 자신을 보다 더 성숙해지게 해서 자신이 잘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수련생을 이끌어 다 같이 잘하게 했다.

한 편집원은 그 때 밍후이왕 전직을 맡고 있었는데, 매 주 7일, 매일 17, 8시간 일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했는데 어떤 때는 몇 주씩 작업실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집 밖에 나와서 햇빛과 하늘을 보지 못했다.

수련생은 말했다. “처음 그 몇 해는 늘 밥을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것이 고생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인생의 최종의 답안을 찾았으므로 하는 일이 아주 의의가 있어서 두뇌가 청성했고 노력을 적게 들여도 성과만은 컸어요. 이런 상태는 오직 수련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사는 게 더 낙관적이고, 초탈하고 충실하다고 느꼈지요.”

당시 형세 변화가 몹시 빨랐으므로 편집부에서는 잇달아 중요 문장과 정보를 발표했다. 밍후이왕은 밤낮이 따로 없이 아무 때건 소식을 발표할 것이 필요했다. 한 수련생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밤중에 컴퓨터 곁에서 자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메일이 우편함에 전해질 때면 컴퓨터가 소리를 내므로 그가 소리를 크게 조절해 놓으면 소리가 그를 깨워줄 수 있어 편집원이 전화를 걸 필요 없이 그는 가장 빠른 시간에 문장을 밍후이왕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긴급 상황이 적어졌다. 하지만 많은 때엔 매우 늦게야 잠 잘 수 있고 어떤 때는 밤을 새우게 된다. 아침에 조금 휴식하고는 또 출근을 해야 한다.

이 수련생은 말했다. 어떤 때는 이웃이 아이를 데리고 산보하는 것을 보고 그는 자기도 언제쯤이면 이런 편안한 휴가가 있을까 생각했다가 즉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이 고생스레 지불하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이며, 자신이 보내는 시간은 가장 의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초부하적인 사업 상태를 속인으로는 견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매일 저녁 휴식하기 전이면 법공부를 견지하는데 이는 그로 하여금 수련인의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어 풍만한 정신 상태로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게 했다.

한 수련생은 사업 수입이 꽤 좋아서 조기에는 줄곧 묵묵히 밍후이왕의 기계, 사이트 등 방면의 지출을 감당했다. 다른 수련생들이 이 정황을 알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모두 함께 비용을 분담했다.

이런 해외 수련생들은 수련 전에는 모두 상대적으로 비교적 편안한 생활환경을 갖고 있었는데 수련 후, 특히 밍후이에서 사업한 후에는 모두 괴로움을 참고 힘든 일을 견뎌 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용량을 확대했다. ‘진선인(眞善忍)’을 원칙으로 한 수련이 그들을 승화시켰고, 사람을 구하는 책임감과 정법대세에 협력해야 한다는 정념이 그들을 정법 진행에 바싹 따르도록 독촉하고 지탱하게 했던 것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 선타후아’로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계속)

문장발표: 2011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7/2449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