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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사이에 서로 고무격려하는 말의 배후에 대해 말해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들이 교류하면서 서로 고무격려할 때 “정법이 곧 결속될 것이다. 다그쳐 정진해야 한다.”, “대법이 당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꼭 끝까지 수련해야 한다!”, “감옥, 노동교양소에서 불법으로 감금당한 수련생이 그렇게 악랄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고 있잖은가. 우리 밖에 있는 사람은 더욱 잘해야 한다.” 등의 말을 늘 듣게 된다. 이러한 고무격려 방식은 사람 표면에서는 좀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나 이러한 고무격려 방식에서의 ‘견정’는 단지 표면에서의 견정이며 지속적일 수 없고 또한 풍랑을 이겨낼 수 없다.

만일 정법이 마무리 단계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진할 수 없단 말인가? 만일 대법이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면, 대법을 수련해 병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럼 우리는 곧 끝까지 견정하게 수련할 수 없단 말인가? 내가 여기건대 우리가 수련생을 고무격려할 때 마땅히 법에서 고무격려해야 하며 수련생의 본성의 일면을 불러일으켜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대법 법리를 인식하고 정법수련의 기연을 진귀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법리를 명백히 깨달은 후에 법에서 견정해진 마음은 “수련을 통한 법에 대한 진정한 인식과 착실한 수련 중에서 本體(번티)가 승화된 후, 불성(佛性)에 의하여 체현되어 나온 견정(堅定)한 마음”(정진요지2-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키지 못한다)이다. 이러한 견정이야말로 동요될 수 없는 것이며 비로소 영원할 수 있다.

‘각 지역 설법3-대(大)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제자가 사부님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어떻게 하여야 비로소 이러한 법에 대한 비할 바 없이 견정한 마음을 닦아낼 수 있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법제자는 모두 대법에 대하여 견정한 신념이 있고 대법제자를 놓고 말할 때에 형용이다. 그들이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堅信)은 이성에서 인식함으로서 견정하게 믿게 된 것이지 어떤 요소가 사람에게 작용을 일으켜 조성된 것이 아니다.” “아울러 대법제자의 올바른 믿음(正信) 그것은 신의 상태이고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이성적인 깨달음(理悟)에 의하여 조성된 것이며 잘 닦은 일면의 신의 상태이지 절대 무슨 외재적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견정하게 믿기 위해 견정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견정하기 위해 견정하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수련생을 고무격려할 때 수련생을 도와 대법의 법리를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 비로소 법에서 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을 수련해낼 수 있다. 만일 단지 사람의 방법으로 고무 격려한다면 마땅히 있어야 할 효과에 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수련생의 집착을 유발시킬 수 있고 정법이 곧 종결될 것이라 여기는 것으로 일부 극단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

과거에 우리 지역에는 1백 명이 채 안 되는 연공장이 있었다. 최근에는 십여 명 수련생들이 잇따라 병업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다수는 노년 수련생이며 장기간 병을 치료하려는 구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었다. 사부님께서 거듭하여 시간을 연장해주셨으나 여전히 깨닫지 못했고 결국 구세력에게 육신을 빼앗겼다. 이러한 수련생은 처음 대법을 배울 때 신체 방면에서 모두 큰 개선이 있었으며 어떤 이는 수년간 고질병이 나아졌고 신체는 가볍게 변했다. 그러나 나중에 수련을 하면서 신체방면에서 여전히 넘겨야 할 고비가 나타났고 장기간 한 층차에 머물러 있으면서 법에서 신속한 제고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럴 때 그 수련생을 고무격려할 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대법수련을 해서 불치병이 다 나아졌다.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이런 사람의 고무격려방법은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대법 법리를 인식하고 수련의 기연을 아끼게 하기 매우 어려우며 결국은 강렬한 병을 제거하려는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서 유감을 안고 떠난다.

우리는 부동한 방식으로 대법의 문에 들어섰다.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을 품은 것이라도 좋고 혹은 기타 생각을 품고서 들어온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수련을 통해 이런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사부님께서도 우리에게 인식할 과정을 허용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늘 입문할 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며 대법수련에 들어서서 곧 대법으로 자신의 일언일행을 귀정해야 하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한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 모든 수련생이 법에서 신속히 제고하기를 바라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와 만고의 법연(法緣)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체득이며 부당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7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26/2444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