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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99년 우한체육위원회 – 파룬궁은 훌륭한 공법이다 (사진)

글/ 우한(武漢)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우한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로서 사람을 감동시킨 신기한 사실을 수없이 많이 목격하였으며, 지나간 일들이 눈앞에 선하여 한 평생 잊을 수 없다!

1993년, 사부님께서 우한에 꾸리신 다섯 번의 학습반에 모두 참가하는 대단한 행운을 얻었다. 모든 파룬궁수련자와 마찬가지로 과거 나에게 있었던 일신의 아픔이 전부 없어져 괴롭던 감각마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신체가 모두 새롭게 바뀌었다. 주변의 동료, 친척,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며 모두들 대법으로 들어왔다. 파룬궁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에로 전해져, 우한의 각 공원, 광장, 학교운동장 등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또 주변 농촌, 각종 직장에도 널리 전해졌다. 부동한 연령의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심성 수련을 첫 자리에 놓았고, 도덕이 승화되었다.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 이웃과 직장에서는 모두 ‘대법은 사회에 유익하고 나라에 유익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우한시 체육위원회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9년 새해 전야였다. 우한시 체육위원회 기공책임간부의 요청으로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과 회합을 가진바 있다. 그 때 기공책임간부는 자신들이 각 공원, 연공장을 두루 살펴보고 생각해 봤는데, 파룬궁은 아주 훌륭한 공법이어서 널리 전파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전 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파룬궁수련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면서, 그 일환으로 설을 보내고 봄에 한 차례의 대형 교류활동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우한 파룬궁 보도소는 (1) 한 차례 대형 단체법공부와 연공팀을 조직한다. (2) 전체 시민을 상대로 파룬궁을 수련하여 몸이 건강해 진 사례를 조사한다. (3) 한 차례 파룬궁수련생의 심득교류 서면보고대회를 개최한다. 하는 3개항의 시행 안을 승인하였다.

체육위원회에서는 동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관련 기관단체 간의 협조와 소통 그리고 각 방면의 평형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협조문을 각 해당 기관에 발송했다. 협조문에는 “각 대공원 관리처는 파룬궁 우한 보도소의 대회활동을 적극 지지 지원하기 바란다.” 하는 등의 내용이었고, “이 대회 활동과 관련한 공안국 서류등록 등 필요한 사안은 우리가 책임지고 한다. 그러니 시민에 대한 선전고지, 회의장 배치 등 현장의 실무적인 사항은 당신들이 책임지고 준비하도록 하라. 행사 당일 우리는 필요한 인원을 파견하여 교류회에 참가할 것이다.” 라고 구두로 시지 전파 하기도 했다.

九九年四月十一日,武汉五千学员排“法轮大法”字形,雨中听交流
99년 4월 11일, 우한 5천명 수련생이 인각한 ‘파룬따파’(法輪大法) 글씨의 형태, 빗속에서 교류를 듣다.

1999년 4월 11일 동틀 무렵,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봄 날씨가 쌀쌀하긴 했지만 교류회에 참가하러 가는 대법제자들의 발걸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천 명 되는 사람이 대회장에 모여들어 대공원을 가득 채웠다. 우한의 수련생, 현의 수련생, 그 외 다른 지역의 수련생도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무엇보다도 대견스러운 것은 수련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교류회에 참가한 것이다. 좋지 않은 날씨임에도 대회 주최 측에서는 교류회를 그냥 진행할 것이라는 안내나 통지를 하지 않았지만 참석자들은 대법에 대한 열망으로 비가 옴을 상관하지 않고 참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비가 계속오니 대회가 취소될 지도 모른다는 기우로 그대로 차안에 앉아 대회장 앞을 지날 때 장엄한 대법 음악이 들려오고, 다리 아래에서 까지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서야 얼른 차에서 내려 참가하기도 했다. 이 번 대회에 약 5천명이 참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회당일 아침에 우한시체육위원회 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날씨가 나빠서 우리는 대회에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대단히 미안합니다, 우리는 다만 대회가 원만히 성공하기를 미리 축원합니다!”

대회 일정의 첫 번째 순서는 ‘法輪大法’ 도형을 새기는 것이다. 사전에 그어놓은 선은 빗물에 씻겨가서 급한 대로 노끈으로 네모꼴의 외곽선을 만들어 놓았다. 사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도형은 글을 새길 때 사람들이 선을 따라 차례로 가서 서기만 하면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노끈 네모꼴 안에 들어가서 글자를 새겨야 하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더구나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은 지정된 수련자가 가기를 주저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즉시 다른 수련생이 가서 앉았다. 글을 새기는 수련생은 모두 결가부좌에 결인한 자세로 앉았다. 글을 새기는 전반 과정에서 직분과 관계없이, 또 수련생 모두가 너와 나의 구분이 없이 심신이 일체가 되어 자동적으로 협조와 협력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렇게 반 시간도 되기 전에 1천 명의 수련생으로 이루어진 ‘法輪大法’ 도안이 대회장 정면 중간에 놓여졌다. 그 장면은 비할 바 없는 장관이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진감시켜 참가자 모두를 경탄시켰다. 50대의 남자군관은 “이건, 군대가 이렇게 새기자고 해도 몇 달은 걸려야 할 것이다”고 말하였고, 한 여자군인은 “아! 이건 군대보다도 훨씬 더 대단하다.”고 감탄 하였다. 한 70여 세 노인은 “이렇게 오래 살았어도, 비바람 속에서 아무 원망도 없이, 고생도 힘든 것도 비에 젖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말을 잘 듣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 말하였다. 또 누군가 말했다. “정말 사람을 감동시킨다! 막 울고 싶을 지경이다.” 이 같은 강대한 감화력으로 하여 그 때 바로 즉시 수많은 사람들이 보도소를 통해 파룬궁수련을 하겠다는 뜻을 표하고 구체적인 연공장의 위치를 알아보는 사례가 많이 생겼다.

두 번째 순서는 수련생의 수련심득을 발표하는 차례다. 이 때 비가 더 심하게 내려 원래 노천무대에서 하려던 발표를 음향 설비가 비에 젖는 것을 피하기 위해 풍막 안에서 했다. 발표할 때 마이크의 소리가 중간에 더러 끊기기는 했어도 청중들을 몰입시켰다. 모두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장엄하고, 경건하며, 자비로운 에너지가 매 사람의 전신을 휩싸고 전 대회장을 뒤덮었음을 감수하였다. 퍼붓는 빗속에서 법을 얻은 대법제자는 마음으로 교류하면서 상서로운 발언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우천 관계로 수련생이 다량의 우산을 사왔지만 그래도 사람은 많고 우산은 적어 서로 양보 하였다. 남자수련생은 여자수련생에게, 노 수련생은 신 수련생에게, 현지수련생은 외지수련생에게, 젊은이는 노인에게, 어린이에게 양보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남을 배려하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타인에게 넘겨주었다. 한 수련생은 자기차로 한 차 가득 우산을 사와 도형을 이룬 수련생들에게 주었는데 빗속의 우산은 무의식 중에 ‘法輪大法’ 도안에 아름다운 꽃으로 테두리를 둘러준 것 같았다.

한 80여세 노인수련생은 손자 (일반인)가 우산을 펴 드리자, 자기는 싫다면서 손자에게 양보했다. 역시 손자도 싫다고 하니 노인은 수련생이 많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자 손자가 뒤쫓아 가 우산을 펼치며” 할아버진 젖으면 안 돼요, 90세가 다 되셨는데 남과는 달라요. 감기 걸릴 수 있어요.” 그러나 노인은 한 무리 어린이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에게 우산을 주니 누구나 다 싫다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우산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리세요,” 또 법을 얻은 지 한 달 되는 어떤 수련생은 전 날 농촌에서 무한으로 와서 그 다음날 비를 무릅쓰고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우산 하나씩은 차례가 갈 수 있었지만 대회가 계속되면서 모두가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있었다. 사람들은 감개무량하여 말하였다. “이렇게 큰 비에 놀랍게도 여러 사람은 심득교류를 열심히 듣고 있다. 기침소리도 없고 떠드는 소리도 없으니 이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오늘 정말로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

수련생이 세내어 빌려온 두 대의 높다란 사다리 작업 차량은 전 과정을 전부 촬영하여 진귀한 역사 장면을 남겼다.

세 번째 순서는 단체연공이다. 연공하는 중 갑자기 장내에서 환호성, 박수소리가 터졌다. “빨리 보세요!” 빛을 발하는 은쟁반이 공원 좌측 건물 뒤에서 서서히 떠오르더니 좌우로 돌면서 반짝반짝 은빛을 뿌렸다. 사람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사부님께서 오셨다!” 온 장내의 사람들은 눈도 깜짝이지 않고 눈을 고정시켜 보았다. 은쟁반이 서서히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한 거대한 사람 그림자가 아래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적,황,녹,자색의 아름다운 구름이 일시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울긋불긋한 파룬으로 변하여 사람들 속에서 돌아갔다. 한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걸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어요!” 행복한 표정에 자줏빛이 얼굴에 넘쳐흘렀다.

큰 빗속에 몇천 명 수련생은 하나가 되어 4장공법을 연마하였는데 누구나 온 몸이 푹 젖었다. 구경하던 일부 일반인들도 연공에 참가 하였다.

대회 후 누가 감기에 걸렸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나, 그 때 비를 맞은 후 어떤 사람은 아픈 다리가, 오랜 지병인 허리통증이 다 나았다는 말은 들었다. 유선암에 걸려 수술한 후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수련생이 있었는데, 유방의 수술자리가 아직 아물지 않아 고름이 흘렀다. 의사는 그녀에게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염증이 생길 것이라고 알려 주었었다. 그 날 그녀도 온 몸이 푹 젖었으나 상처는 염증이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름도 흐르지 않았다.

전체 대회활동은 연공음악 속에서 종료되었다. 사후에 한수공원(漢水)의 직원이 말했다. “당신들의 공은 너무 신기하다. 연공음악이 울리자 7, 80세 노인부터 몇 살 안 되는 애들에 이르기 까지 모두 우산을 놓고는 연공음악에 따라 연공하는 것이었다. 매 사람의 표정은 그렇게도 상서로울 수가 없었다.” 또 누군가 말하였다. “이는 현재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큰 빗속에서 연공하는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비를 무릅쓰고 와서 대회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상을 받아야 할 일이다.”

큰 비가 내렸고 사람 또한 많았던 까닭에 많은 곳의 잔디가 못쓰게 되었다.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수련생들은 한수공원 직원과 협의하여 패어나간 잔디를 원 모양대로 복구해 주겠다고 제기 하였다. 공원직원은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니 그럴 필요 없다고 사양했으나, 그래도 수련생들은 간곡하게 4백 위안을 내 놓아 보수비용으로 쓰라고 권유하였다. 공원직원은 몹시 감탄하는 태도로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배웅하였다.

1998년 12월, 우한의 보도소는 파룬궁을 수련한 사람들의 건강조사를 진행 하였다. 조사팀은 진실, 정확한 원칙에 따라 전체 시의 관할구역 내 50여 개 연공장 2005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하여 연령, 직업, 학력, 수련기간, 질병이 나아 건강해진 효과, 의료비 지출 및 개인의 불량한 기호 등 7개 항목에 대한 조사를 하였고, 2005명 수련생의 수련 전 후의 신체, 행위, 방식의 변화와 상황을 중점적으로 조사 하였다. 그런 다음 과학적으로 통계를 내고 종류에 따라 분석 하였다. 도출된 결과는 연공한 후의 수련생의 신체 변화가 아주 뚜렷하다는 것이 나타났는데, 질병이 완전히 나은 비율이 75.15%, 호전 율이 23.3%였다. 수련생의 의료비 절감 현상도 뚜렷하였고, 95.51%의 수련생이 수련 후 몸이 튼튼해 져 다시는 돈을 내고 병치료를 하지 않게 되었다.

파룬궁은 1993년 우한에서 널리 전해진 후, 그의 비범한 공법, 도리, 하기 쉬운 연공동작, 진실하고 신기한 효과로 인하여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 재빨리 사회에 널리 전해졌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게 되었다. 장쩌민은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데 질투가 생겼고, 1999년 중공은 파룬궁 탄압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였던 까닭에 전국적으로 한 가지 죄상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랬을 뿐만 아니라, 쵸스(喬石) 위원장을 비롯한 전국 인민대표대회 이.퇴직 노 간부들은 깊이 있는 치밀한 조사를 거쳐 “파룬궁은 나라와 인민에게 백 가지로 이로울 뿐 한 가지 해도 없다.” (法輪功于国于民有百利而無一害)는 결론을 내렸다.

십 여 년이 지나갔다. 사한 것은 바른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파룬따파는 중공의 박해 하에서 도리어 더 널리 전해져 세계로 나갔다.

문장발표 : 2011년 5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2/2406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