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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교란을 말해보자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지금 있는 층차에서 깨달은 이치로 수련인에 대한 ‘정’의 교란을 말해 보려 한다,

속인으로 말한다면 ‘정’은 ‘마’가 아니다. 정을 중히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기면 속인으로 하여금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속인 중의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수련 원만하여 천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수련인에 대한 요구는 표준과 원칙이 있는 것으로서 사부님께서 전수하신 법리로 자신의 일언일행을 대조하고 사람의 집착을 닦아 버리는 것은 수련인이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때 수련은 몹시 고생스럽고 매우 힘들다고 느끼며 수련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련은 엄숙하며 약간의 가짜가 섞여도 안 된다는 것을 두 배로 감수하게 된다. 어느 한 층차에서 마땅히 제고해야 할 때 속인 식의 ‘정’이 무형 중 수련인을 가로막는 ‘마’로 된다. 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는 데는 부모 정, 자식 정, 부부 정, 친구 정, 수련생 정을 포괄한다. 어떤 수련생은 집 때문에, 사업 때문에, 결혼 때문에 바삐 돌아다니다보니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해이해 지며, 심지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빌미로 삼아 속인 마음을 닦아버리려 하지 않는다. 이는 주의식이 강하지 못하고 비뚤게 깨달은 일종 표현이다. 다른 수련생이 선의적으로 접촉할 때도 이런 수련생의 불량한 상태에 이끌려 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하는데, 접촉하려는 수련생 자신은 자비인지 아니면 사람의 ‘정’인지? 만약 장기간 동안 쌍방이 분쟁이 생기고 모순이 생겨 내내 교란을 받는다면 사실인 즉 이는 아직도 사람마음이 있는 것이고, 아직도 사람의 ‘정’이 있는 까닭에 비로소 이런 일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피차간에 모두 아직도 마음 속에서 이런 ‘정’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고, 아직도 사람의 사심이 있고 승부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정마’에게 틈 탈 기회를 준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부모님이 훌륭하다고 말하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자신을 키웠고 어떻게 압력을 감당했다면서 부모님에게 감사의 정을 품는다. 어떤 수련생은 아내가 좋고 남편이 좋다고 하는데 실질인즉 이런 따스한 감각을 버리려 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사람마음을 만족시키는 환경을 잃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자식이 어떻게 좋으며, 어떻게 사랑스럽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마음속 보배라고 하는데 내려놓기 아쉽다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어느 수련생이 어떻게 좋으며, 어떻게 함께 난을 겪고 함께 어려운 나날을 보냈는가를 말한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정’으로서 모두 수련인의 제고를 가로막는 것이며, 당신을 속인 속으로 끌어가 분발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타고난 명을 갖고 있는데 하필 이런 것을 이렇게 중히 여길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에서 설명해야 할 것은 이제부터 수련인은 속인과 왕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법은 대도(大道)라고 가르치셨다. 때문에 속인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사부님께서도 기회를 보아 진정한 수련인을 점화해 주실 것이다. 가령 수련인으로서 하루종일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이 모두 속인의 ‘명, 재산, 권력 ’정, 사랑, 증오’라면 그건 틀림없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상태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조사정법하고 마음이 중생에게 가 있는 정법 입자이기 때문이다. 진수제자라면 층차의 제고에 따라 ‘정’을 완전히 자비로 대체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수련자에게 약간의 ‘정’을 남겨 주셔서 속인 중에서 생활하게 하셨다고 한다. 동수님께서 알아야 할 것은 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인데 수련자로서 어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집착심을 버리지 않는 구실을 찾으려 하는가? 이건 큰 죄다. 작게 말하면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서 다시 말해서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고 할 수 있고, 크게 말하면 사부님에 대하여, 법에 대해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수련의 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끌어간다면 언제 가야 끝이 있겠는가, 도대체 속인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수련인이 되려 하는가는 자신의 선택을 보아야 한다. 만약 이런 집착을 조금 남기고, 저런 집착을 조금 남긴다면 어느 때 가서야 진정으로 사람 껍질을 벗어버릴 수 있겠는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도 형식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수련인이지 속인이 아니다. 사람 집착을 조금씩 법리 속에서 깨닫고 닦아 버릴 결심을 내리고 천천히 버리고 서서히 놓아버리면, 나중에는 정말로 일신이 가벼운 상태를 느끼게 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런 미묘함은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어떤 땐 수련이 정말로 달콤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느낄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우리가 중생을 널리 구도하고 계시는 사부님과 한 세상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진의 발걸음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

이상은 얼마 전에 ‘정’에 교란 당한 후 깨달은 법리인데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층차에 제한돼 있으므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5월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20/241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