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법에 대해 책임짐은 바로 자신의 생명에 책임지는 것

글/ 안후이 대법제자 메이(梅)

[밍후이왕] 이 일은 이미 지나버린 지 오래다. 몇 번이나 쓰려다가 포기했으나 오늘날 써냄은 그 속의 교훈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침통한 교훈이 신의 길에서 걷고 있는 수련생에게 다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법에 대해 책임짐은 바로 자신의 수련에 책임지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에 책임지는 것이다.

1. 표면 현상

2002년 10월 말 사당의 16대 회의가 열리기 전에 전국의 박해 형세는 아주 엄중했다. 수련생들이 붙잡혀 박해를 당한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심지어는 박해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작은 지역에 자료를 전하는 책임을 졌다. 그러나 수련생이 감시를 당하고 있어 더는 자료를 전할 수 없었고 내가 받아 놓은 자료는 많아졌다. 심지어는 자료를 배부할 곳도 없었다. 그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심했으나 하지 않으려 해도 안됐으며 누가 대신할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밤 8시경, 저녁을 막 먹었는데 한 무리 악경들이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화가 닥쳤음을 느꼈고 후회했다. 평소 수련에 정진하지 않았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돌파하지 못했다… 대략 15분간 버텼으나 악인들에게 끌려나갔다.

내가 납치되어 도착한 곳은 한 호텔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신변에 계심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는 잠겨서 수련하나 생명의 노정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바로 옆에 계시나 도울 수 없어 하셨다. 무슨 원인일까?

그때 박해는 아주 심했다.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온 수련생이 몇 명 안됐다. 내 생명의 감당능력도 극한에 달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대법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능히 걸어 나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정정당당하게 살아서 나갈 것이라 믿었다. 그것은 사부님의 거대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을 대가로 했다.

2. 돌이켜 생각

한 수련인으로서 심한 박해는 자신이 집착을 확대하고 심한 누락이 있어서 초래된 것임을 알고 있다. 외부의 형세와 험악함은 표면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내가 구세력에게 어떤 단단한 빌미를 제공한 것일까? 두려운 마음이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심한 지경으로 박해당할 수는 없다.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을 얕잡아 본 것일까? 있었다. 그러나 구세력이 박해로 사망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마라」)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 사부님께서 이 시를 발표하지 않았으나 법리상에서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럼 무슨 원인이었을까?

마귀의 소굴은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법을 볼 수 없고 수련생과 교류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법리를 알 수 없어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없었다. 박해를 부정하면서 집착을 찾아야 하는데 이 집착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오직 최대한도로 나의 모든 일체를 포기해야 했다. 환경은 변화되고 있었고 신체상황도 점차 호전됐다. 7개월 후 나는 집에 돌아왔다. 그것들이 나를 ‘병’으로 사망하게 하려는 음모는 타파됐다. 집에 돌아온 후 신체는 신속하게 회복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도대체 무슨 원인인지 알 수 없었다.

3. 진정한 원인을 찾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알았다.

이번 박해를 당하기 전 그해 7월에 사부님께서는 워싱턴 DC에서 설법하셨으나 아직 밍후이왕에 경문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우리 많은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또 설법하셨음을 알고 경문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한 수련생 B집에 갔다. 그녀가 말했다.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을 보셨나요?” 나는 아주 놀랐다. 그녀가 말하기를 해외 수련생이 보내온 CD가 있는데 보겠냐고 물었다. 사부님 설법을 누가 보지 않겠는가? 그녀가 VCD를 켜서 보게 됐다. 보고 나서 그녀가 말하기를 동료네 집에 가서 한 장 구우려고 했는데 늘 안 됐고 나중에 발정념해서야 겨우 한 장을 구워냈는데 화면이 똑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것을 가져다 그들이 굽게 하세요. 여러 사람이 다 볼 수 있게.” 이때 나는 타당하지 않음을 느꼈다. 비록 사부님 설법이나 공개된 것이 아니어서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기를 경문으로 밍후이왕에 발표되면 CD를 다 없애버리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글로 발표되기 전에 전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잖은가. 내가 다시 생각해보니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이면 수련생들도 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이 굽지 못하게 함은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비록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됐으나 더 말하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 우연한 기회에 이 일의 전반 과정을 알게 됐다. 만일 그때 내가 법에서 법을 인식했다면 B와 L과 나는 나중에 그렇게 큰 마난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L은 학생이었고 아주 선량했으며 다른 사람을 잘 도왔다. 그렇게 긴장한 사악한 환경에서 그는 남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으며 여러 차례의 마난에서 정정당당하게 지나왔다. 압력 하에 자신을 고발했던 수련생에 대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생각을 그에게 말했고 그도 타당하지 않았고 말했으나 끝내는 구워내고 말았다.

사부님 설법이 밍후이왕에 발표됐다. 나는 수련생 B와 만났고 설법이 발표됐으니 전에 만들었던 CD는 전부 소훼하자고 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많은 수련생들이 소훼하기를 아까워한다고 했다. 나는 듣고 나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CD는 내가 가져온 것이 아니고 또 내가 전한 것도 아니며 내가 제작한 것도 아니었으며 막아야 할 것도 막았었다. 듣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됐고 관계하지 않았다.

나중에 악인들이 나를 붙잡을 때 이유는 이 설법 CD이었다. 왜냐하면 기타 것은 나에게 죄로 정하기에는 부족했었기 때문이다. 대법서적도 공개적으로 발행된 것이었고 진상자료는 그들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심문을 당할 때 그들은 사부님의 설법하실 때의 사진을 내 앞에 보여줬다. 나는 마음이 정말로 괴로웠다. 일단 설법이 발표되면 비디오는 마땅히 소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왜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까? 현재 이 CD는 다른 수련생을 박해할 수 있는 ‘증거’가 됐다. 사악 무리들은 반복적으로 나에게 이 사진을 보여줬으나 나는 모두 부인했다. 그들은 이 CD로 나에게 몇 년의 형을 안기려 했다. 나는 줄곧 수련생들이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여겼고 자신은 이 일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4. 침통한 손실

석방된 후 몇 달이 지나서 나는 이 일이 나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일에서 처음으로 CD가 전해질 때 내가 알았고 줄곧 마지막의 처리에 있어서도 ‘우연히’ 다 알게 됐다. 이 일이 어찌 나와 상관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법리에서 청성하지 못했고 사심이 있었으며 법에 책임지지 않았다. 만일 그때 내가 확실하게 모든 CD를 소훼할 것을 견지했더라면 이렇게 나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법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생명을 잃을 뻔 했고 그들 둘도 심한 박해를 당했다. B는 5년 형, L은 4년 반 형을 당했다. 인간세상에서 사부님 설법을 구워낸 일은 공안에서 전혀 몰랐다. 우리의 기소장에 이러한 일이 없었다.(왜냐하면 나와 L의 심문기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해의 그림자로 예전에 정진했던 L이 지금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마음 아픈 일이다.

5. 난법에 휘말린 것은 사심이 너무 중했기 때문

1년 후 나는 1999년 전 『북미 제1기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누가 만약 함부로 이런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복제하여 주고 이런 것을 돌려주며 이런 것을 전하고 함부로 출판사 혹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작하게 한다면 곧 가장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럼 내가 말한다면 그는 곧 한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정말 뜨끔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명확히 말씀하셨다. “악독한 파괴성적인 검증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나는 사전에 모두 설법 중에서 당신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법리에 대해 청성하지 못한 것과 구우주의 위사위아의 특성으로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이 여겼다. “내가 한 것이 아니면 나와 무관하다.” 이는 구세력의 고층생명이 직접 대법을 파괴하고 소훼될 것을 알면서도 하층 생명을 이용해 대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심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때 나에게 가서 이 CD를 제작하라 했으면 나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타당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사의 마음으로 내가 직접 하지 않았으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법리가 똑똑하지 못해 위사의 생각이 강화되고 강대해졌다. 이 강대한 사심은 강대한 집착을 숨기고 있었다. 바로 법에 대한 파괴도 나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쓰자 나도 더욱 똑똑히 구세력이 왜 그때 나를 박해해 죽음의 지경까지 몰고 갔는지 알 수 있었다. 또 문제가 왜 이렇게 심한 것인지도 알게 됐다. 공안이 모르고 있었으나 우리는 모두 이렇게 심한 박해를 당했다. 내가 마의 소굴에서 떠날 때 간수소 경찰은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기색임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구세력이 계속해 박해할 구실이 없어서였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순수한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서 중생을 구도해야 하고 죽을 수 없었다. 비록 몇 달이 지나서야 이번 박해의 원인을 알게 됐으나 나는 내가 법리에서 똑똑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바로 사심이었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었다. 구우주의 위사위아가 너무나 심해 내가 난법에 참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박해당한 원인이다. 그때 박해는 그림자같이 몇 년이나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장기적으로 이 상태를 돌파하지 못함도 자신의 사심이 이렇게 강대함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박해로 떠돌이생활까지 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이 大法을 소중히 함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이고 중생을 자비함이다.”(『정진요지』「정론(定論)」) 법을 수호함은 자신의 생명을 수호하는 것이다. 법에 책임짐은 역시 자신의 생명에 책임지는 것이다. 사존의 자비가 법리를 명백히 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사존의 거대한 지불로 나라는 생명이 자신의 착오를 인식하게 했다.

오늘에 이르러 해외 수련생도 성숙됐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는 이러한 소포를 국내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또 충심으로 해외에 나간 수련생이 자신의 착오를 인식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환경에서 잘하며 사부님의 법에 따라 법도로서의 책임을 이행하기를 바란다. 또 우리의 그 수련생, 그때의 타격으로 늦도록 돌아오지 않은 수련생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글을 써냄은 이번의 교훈이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수련생에게 다소나마 귀감이 되고 도움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7/236383.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