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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수련을 다시 논한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설이 막 자나자 두 수련생이 병업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아팠다. 중생구도의 길에서 또 두 명 수련생이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속인은 또 병업 형식으로 세상 뜬 수련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많게 적게 모두 얼마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나는 또 주변 여러 수련생에게 각종 병업 상태가 나타나 이런 수련생 정력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여러 수련생에 대해 얼마간 들은 것이 있어 그녀들의 수련 상황을 알고 있다. 내가 보건대 여전히 참답게 자신을 수련하는 면에서 부족한 것이다.

주변 수련생에게 나타난 문제를 보고 나는 견해를 좀 말해보려 한다.

1. 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법공부를 하고 있다

한 수련생은 법을 아주 숙련되게 읽고, 심지어 『전법륜』을 모두 외울 수 있었지만 정법시기에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명백하지 못했다. 문제에 봉착하기만 하면 우선 생각하는 것이란 “이는 구세력의 배치니 승인하지 않고 부정한다”고 한다. 입으로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만 사상과 행위상에서는 여전히 제멋대로다. 사실 수련생은 안에서 찾는 자체가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임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자신에 비추어 법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다른 사람을 비춘다. 어떤 수련생은 말만 꺼내면 화를 내는데 결과적으로 병업이 그치지 않는다.

내가 느끼건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법공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나는 예전에 통독의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사부님 많은 설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에 나는 법을 외우는 형식을 채용한 후, 물론 『전법륜』만 외울 것이 아니라 또 사부님 기타 모든 경문도 외웠다. 이렇게 하니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인지 이해하게 했다. 이후에 나는 자신이 감성적인 인식으로부터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됐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물론 법을 외웠다 해서 자신이 수련을 잘했음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법을 외움으로서 자신으로 하여금 법리를 안 후 심성을 보다 훌륭히 수련할 수 있는 것이다. 참답게 수련해 제고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법을 읽고 외우는 것이 아무리 유창하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것인 진수(眞修)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의 주위에는 법공부 형식이 아주 훌륭하긴 하지만 오히려 진정으로 참답게 수련하지 않는 수련생이 적지 않음을 보았다. 그래서 어떤 수련생에게 모두 의문이 생겨났다. 『전법륜』까지 다 외웠는데 왜 아직도 그렇게 엄중한 병태가 나타났을까? 원인은 바로 이런 동수들이 법을 외우는 것과 마음 수련을 연계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법을 유창하게 읽고 법을 외울 수 있는 것을 수련생 가운데서 명을 구하는 수단으로 여기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집착을 버리지 않았을 뿐더러 확대한 데 있다.

2. 단체 법공부 형식을 수호하지만 진정으로 단체 법공부에서 제고하지 않음.

단체 법공부 형식은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것이다. 하지만 대륙의 형편은 참으로 몹시 복잡하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박해로 인해 진수하는 사람으로, 가짜로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오에서 떨어진 사람으로, 그럭저럭 지내는 사람으로 각종 상황의 수련생이 다 있게 됐다. 우리는 이런 수련생을 자비로 대해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법공부 팀의 기타 수련생의 수련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도 마음속에 파악이 있어야 한다. 만약 모두 법에서 깨달을 수 있다면 물론 서로 촉진하는 작용을 일 수 있지만 반대로라면 일으키게 되는 것은 바로 교란 작용이다.

내 신변의 한 수련생은 매 주 여러 개 법공부 팀에 참가하지만 매 법공부팀마다 모두 엉망이다.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고, 말하기만 하면 화를 내며, 인정과 체면을 수호하고, 단체 법공부 팀을 바람막이로 여기며, 동수 정이 엄중한 등등 상황이었다. 단체 법공부에 이렇게 오래 동안 참가했지만 병업이 나타난 사람은 예전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왜 법공부 팀에 참여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병업이 나타남으로 인해 여전히 온갖 방법을 다해 더 많은 법공부 팀에 참가하는 것으로 수련생들의 도움을 얻어 병업관을 넘으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책임지는 태도에 입각해 우리는 정말이지 마땅히 자신에게 이 문제를 물어 보아야 한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종교형식’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사람은 이런 종교형식을 이용해 자신을 수련하고, 명백하지 못한 사람은 종교의 형식을 수호하고 있다. 이런 형식 자체는 결코 신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은 우리에게 이런 형식을 이용해 승화하라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며, 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구세력은 들어오지 않는 구멍이 없는데 우리는 왜 냉정하게 자신에게 이런 문제를 물어보지 않는가. 착실하게 수련한 어떤 수련생은 이런 단체 법공부 팀에 참가하고 난 후면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고 난잡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이런 법공부 팀에 참가하고는 아주 기뻐한다. 왜 기뻐하는가? 그것은 그녀들의 사람마음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자기 한 사람이면 고독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갑갑증을 풀 수 있으므로 참가하지 않으면 오히려 괴로운 것이다. 이러한 단체 공부 팀에는 또 일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든다면, 내가 알고 있는 갑 수련생은 주변의 세 개 팀에 모두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적해 준 후 기타 수련생들이 듣지 않으므로 더는 이 법공부 팀에 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세 개 팀은 모두 박해를 받았다. 또 어떤 사람은 비록 잡혀 들어가 박해를 당하진 않았지만 내부 수련생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우리 정말 냉정해진 후 이성적으로 대법을 인식해야 하겠다. 사람을 구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무척 쉽게 반복되므로 만약 대법제자가 바르게 걷지 않는다면 문제가 나타날 것인즉, 어떤 속인은 이 때문에 반면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지금 사부님께서 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는지 조금 명백해졌다.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성숙되고 정념이 강해야만 자신의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고, 사람을 더 훌륭히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 체험이고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8/2364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