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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마’(困魔)는 수련인을 교란하는 연한 수단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즈음 나는 내내 ‘졸음 마’의 교란을 받았다. 매일 저녁 식사 후, 막 법공부를 시작하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잠들어 버리고, 어떤 때는 8시 발정념을 하는데 나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 눈을 떠 보면 한, 두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밤 1시 발정념의 경우 어떤 때는 남편이 나를 깨워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는데 지나간 후에서야 엄청 후회를 했다. 나는 주변 수련생들에게도 이런 정황이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출근하는 직장인에 대해 말 할 때, 특히 사업이 비교적 바쁜 대법제자의 경우 세 가지 일을 잘 하려면 잠자는 시간에서 시간을 짜내야 한다. 지금 사악은 대법제자를 엄중히 박해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 대법제자를 교란하는 방법을 변화시켜 ‘졸음 마’로 대법제자를 꽁꽁 속박하고 있다. 이는 대법제자로 하여금 ‘천금과도 같고, 만금과도 같은’ 이 시기를 헛되이 낭비하게 한다. 이런 졸음은 보통 졸음이 아니라서 나는 머리 위에 흐릿한 물건이 뒤덮여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두 눈엔 끈적거리는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 같아서 당신으로 하여금 버텨내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졸음 마’는 기타의 박해 형식과는 다르다. 기타 박해 형식은 신체적, 정신적 등의 방면에서 대법제자로 하여금 극도의 그런 고통, 그런 생사의 시련, 그런 거대한 난관을 감수하게 하지만 ‘졸음 마’는 사람의 관념에 따라, 사람의 집착에 따라 감행한다. 사람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래서 당신을 도취시키고, 향수하게 하며, 만족하게 하며, 심지어 당신이 향수를 누리느라 분발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지금처럼 사악이 무척 적은 상황에서 그것이 어떤 때는 이 같은 ‘연한 수단’(软手段)을 취하여 수련인을 그 중에 깊이 미혹되게 만들며, 자신도 모르게 편안하게 박해를 접수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수련인의 시간을 낭비하고, 수련인의 정진하는 의지를 소모하여 수련인으로 하여금 향수하느라 정념을 잃게 한다.

사악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진(陣)’을 형성하는 것은, 표현상에서 잔혹한 그런 박해와는 같지 않다 할지라도 실질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법을 바로잡는 것이 끝나기 전의 우주 그것은 바로 그러한바, 그것은 법을 바로 잡지 않는데도 자동적으로 좋게 변하지 않는다. 법을 바로잡지 못하였는데 그것이 어떻게 좋게 변할 수 있겠는가? 그 독약 그것은 바로 독이 있는 것으로서, 당신이 그것으로 하여금 독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하여도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없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그것은 바로 각종 수단을 다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려고 시도하고, 그리하여 그의 눈에 들지 않는 대법제자를 도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법에 있는 대법제자에 대해서는 아예 건드리지 못한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이런 연한 교란에 대해 우리가 만약 내심으로부터 그것의 엄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런 교란에 직면하여 쉽게 해이해 지고, 자신의 정념을 늦추어 버리게 된다. 흔히 하루 또 하루 악성 순환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졸음 마’에게 자랄 시간과 공간을 주어 졸음 마가 자랄수록 크게 되며, 갈수록 더 우리에게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굴 것이다 .

그러므로 수련인은 반드시 근본적으로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향수를 누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런 속인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좋다고 여기면 그것을 배제하기 싫어지고, 그것의 통제를 받기 쉽고, 사악에게 그런 형식의 박해를 강화하고 가중시키기 쉬우며, 이런 상태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을 초월한 사람으로서,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여러 방면에서 모두 속인 중에서 걸어 나오고 승화해야만 비로소 최후의 정법의 길을 잘 걸어 갈 수 있다.

문장발표 : 2010년 11월8일

문장위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8/“困魔”是干扰修炼人的软手段-2319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