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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모집선정】내가 본 세상에 전파된 대법

글/ 샤오허(중국대륙)

[밍후이왕 2010년 5월 16일]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점에 가서(『파룬궁』「수정본」) 을 샀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불법 복제한 책이란 걸 알았다. 그때는 1995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공의 통제하에 정규적인 출판사에서 대법 서적을 출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현재 해외에 전문 대법서적을 파는 서점이 있다- 천제서점(天梯書店),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비록 복제판이고 안에 오자가 있지만, 그래도 안에서 말한 기공 수련에 나는 깊이 매료됐다. 특이 안에서 말한 ‘반본귀진(返本歸真)’은 더욱 나의 마음을 앗아갔다. 나는 그때부터 나의 인생길은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룬따파 수련은 중국의 오래된 수련방법과 같지 않고, 속인 상태에서 수련하라고 했다. 학생은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직장인은 일을 잘해야 하며,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사람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한편으로는 또 대법을 홍보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법은 나의 시야를 넓혔고 내가 속인의 지식을 더욱 쉽게, 투철하게 이해하게 했고 공부를 더욱 좋아하게 했다. 그리하여 본과 졸업 때 연구생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박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아침, 점심으로 운동장에서 연공을 2차례 했다. 아무나 편리한 시간에 가면 됐다. 매주 시간을 고정시켜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떻게 心性을 제고 했는지를 얘기 했다. 학생들은 한 개 반씩 졸업을 했고 명부를 남기지 않아 졸업하고 어디로 갔는지 보도원도 몰랐다. 학생들은 수련에서 정진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1999년 4월 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학교에서 우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학교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 대법의 진실한 상황을 알리고 학교에서 지지해 주기를 요청했다. 학교 지도자는 우리는 접견했고 학생 대표에게 학교에서 조사한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학생들이 모두 괜찮고, 사람 됨됨이도 훌륭하다며 잘 대해 주었다. 한 보도원은 박사에 합격했다. 그때는 마침 7월이어서 박해가 시작된 후다. 학교는 그녀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교사 몇 명을 조사하고 끝내 그녀를 뽑았다. 우리 수련생이 대법의 요구대로 얼마나 바르게 걸었는지를 보아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박해의 승급에 따라 학교와 지도교사의 압력이 갈수록 커져 아쉽게도 그녀는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1997년 5월 13일 우리 지역은 파룬따파 전파 5주년 기념 활동을 열었다. 나는 참여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당시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창작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림을 그렸고, 자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자수를 그리고, 또 서예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당시에 아주 큰 장소를 빌렸는데 작품으로 꽉 찼다. 참관하러 온 사람은 참 많았다. 수련생과 일반인 그리고 외지에서 온 수련생도 많았다. 많은 사람이 사부님의 불상(法像)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나는 당시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 찍는 사람들을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이 때문에 나는 동수에게 비평 받았다. 그는 수련생들이 사부님 불상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는데, 당신이 왜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느냐고 했다. 나는 창피했고 사부님과 법에게 존경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지금 대륙에서 이런 활동을 한번 더 열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큰 과욕인가!

당시에 성, 시 지도자도 참관했고 어떤 사람이 이름 있는 수련생이 그린 그림을 사겠다고 했는데 팔지 않고 총 보도소에서 간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들은 중공 사당이 1999년 대법을 박해한 후 ‘범죄 증거’로 전시됐고 너덜너덜해져 매우 안타까웠다.

이번 활동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부님을 뵈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부님을 만난 사람은 다수가 기념 활동에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대부분은 학교의 학생이고 수련생도 있으며 속인도 있었다. 사부님은 당시 이 일은 공덕이 무량한 일이라고 말씀했다. 또 중국의 문화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셨고, 기타 민족의 문화도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사부님 말씀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부님은 자애롭고, 겸손했으며 자신을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고, 자신을 치켜세우지도 않았다. 사부님 마음에 담은 것은 바로 중생이다! 여기까지 쓴 나는 문장을 써서 사부님과 대법을 비판할 줄만 아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어떻게 사부님의 경지를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수련을 시작하고 어머니도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 전에 어머니의 한 친구가 동물 위패를 어머니에게 주며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올 것이니 모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어머니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언니와 여동생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대법을 얻자마자 그 위패를 내다 버렸고 어머니는 얼굴빛이 좋아졌으며 몸도 가벼워졌다. 이때부터 우리 집은 근심이 없고 온 가족이 모두 즐거웠다. 현재 대륙에는 여우, 족제비, 귀신, 뱀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중공이 바른 믿음을 진압하여 서민들은 이런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천 년에 얻기 힘든 사람 몸이 이런 것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가족이 이익을 본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져 우리 지역에서 법을 얻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한 공원에 연공장이 6개 가량 되었고, 작은 구역에도 연공장이 있었는데 수십에서 수백 명이 있어, 당시에는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대법이 박해 받지 않고 오늘까지 왔다면 중국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박해가 시작 된 후, 수련의 길을 평탄치 못했다. 수감소에 이송되고, 심사 받고, 감시 당하고, 해고됐어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온화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썼다. 나는 이런 일과 수련인의 관계를 잘 안다. 이별을 경험하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방랑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기쁘게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며, 일을 하고 동시에 진상을 알린다. 나는 문학을 배운 사람이다. 고금중외의 책, 수련하는 책을 포함해서 나는 거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수련을 가장 투철하게 말한 것은 사부님 밖에 없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배울 기회가 있어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대법으로 자신을 씻어 사상이 갈수록 깨끗하고 순수해져 가부좌를 해도 자주 조용해 진다. 그것은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고 신체상의 향수다.

15년을 수련한 나는 마음속에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에게도 미운 마음이 들지 않고, 사람과 모순이 생기면 자신을 찾고 남을 질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금방 생각난다. 그리고 사람에게 더 깊은 관심이 생겼다. 사부님은 오늘의 인류가 쉽게 생긴 것이 아니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관심을 가진다. 자신의 수련제고를 통해 그들이 이익을 보고 대법을 바르게 인식하고, 적당한 시기에 대법 속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한다.

안심 되는 것은 현재 아직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잔혹한 박해를 겪고도 여전히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견정하게 걸어왔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노인에게 효도하며, 자식을 교육하고 또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며 서둘러 진상을 알렸다. 우리는 대법의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중국 대륙에서 펼쳐지기 바란다. 우리는 사악이 하루 빨리 소멸되고, 더 많은 사람이 구도되며 사부님께서 편안하게 웃으시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16일
문장분류: 원고모집선정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16/222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