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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해체에 대한 깨달음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19일] 오랫동안 집착 하나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쉽게 화를낸다는 것이다. 나는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아 최근 2, 3년간 더욱 심해져서 가족과 수련생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나는 더 이상 이것을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집착이 나에게 조성한 각종 방해만으로도 나는 반드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이 문제를 생각해봐야 했다. 생각 중 일부 계발을 얻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만약 한가지 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일 처리가 순조롭지 못하거나, 나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하거나 번거롭게 하면 나는 크게 화를 낸다. 이 일의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원망하고 업무 보는 사람의 태도가 나쁘다고 원망한다. 어쨌거나 매우 불만스러운 상태고 초조해하며 몸도 피곤하다고 느낀다. 또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기분까지 망친다.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능력이 너무 낮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다림이나 번거로움은 일상적인 생활 중에서 누구나 다 겪는 일다. 왜 이겨내기 못할까? 이런 기다림과 좌절에 들인 시간과 정력이 나의 예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나의 예상대로 일이 끝나지 않아 손해를 입었고, 희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매번 이런 일이 나타난 후 씬씽을 닦고 용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상태는 장기간 변하지 않았고 씬씽도 제고되지 않았다.

집에서 물건을 찾지 못하는 등 일부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낸다. 물건을 찾을 때 한을 가득 품었고 마치 무엇이 나와 맞서고 있는 것 같고, 나는 반드시 그것을 압도하고 그것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강한 쟁투심이 있었다.

원망, 불만하는 마음이 나오게 된 것은 발생한 일이 나의 뜻을 거슬러 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렬한 자아다. 이것은 수련 중에서 반드시 닦아내야 하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그렇다면 나의 공간장 안에 확실히 이런 물질이 존재한다. 나의 상상 중에 그것은 한 덩이 치솟고 포효하는 검은 회색 물질이다. 그것은 원망, 분노, 억울, 초조로 혼합되어 있다. 구세력의 배치거나 나의 업일 수 있다. 나는 발정념을 아주 적게 한다. 나는 그것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줄곧 그것을 나의 ‘성격’으로 허락하고 있었다. 나의 관념 중에 자신은 화를 잘 내고 마음이 넓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은 줄곧 나의 공간장 안에서 생존했다. 나의 법공부 상태가 좋아서 비교적 자상할 때 그것은 틈을 타지 못한다. 그러나 해이해 지면 아주 사소한 일도 그것에게 이용된다. 그것은 용솟음치고 포효하며 분출된다. 그때 심신은 그것에 억제되고 체득되는 것은 증오와 악이다.

여기까지 분석한 나는 또 한번 나와 나의 집착, 이 두 가지 다른 개념을 분간해 냈다. 나는 수련해야 하고 모든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집착은 나의 공간에 기생하며 계속 생존해 나가려고 한다. 내가 정념이 강할 때는 집착을 억제하고 그것을 제거한다. 그러나 정념이 없을 때 속인과 같을 때는 그것을 억제할 법력이 없고 그것은 이 기회에 강대하게 발전한다. 이전에 그것의 출현은 나를 연마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당당하게 계속 존재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마(魔)’에게 의지해 제고되는 방법은 역대로 소도(小道)가 채택한 것이다. 연마하고 연마해 업을 얼마 닦아내지도 못하고 수명이 다해 다시 환생해서 수련했다. 하지만 파룬따파는 우주대법이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겨냥성이 있기에, 진정하게 그 마음을 집어내어 그 마음을 제거하는데, 그러면 수련이 매우 빠르다.”『전법륜』

모든 대법제자는 모순 앞에서 자신의 집착을 의식할 수 있고, 결심을 해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다. 대법의 치지(氣機)와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이 집착을 해체하고 있다. 그리고 사부는 제자에게 발정념이란 법보(法寶)를 주시어 제자가 신통으로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런 수련형식은 수천년 간 수련인이 감히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대법제자가 이런 허락을 받고 수련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고층차에서 왔기 때문이고, 중생을 구도하는 숭고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법수련은 직접 집착을 제거한다는 방식으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공간장내지 자신의 대응하는 우주범위를 지배하고,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인은 첫째, 집착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이런 집착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인식하지 못해 제거해야 한다는 결심이 부족하다. 셋째, 대법수련은 직접 사람마음을 겨냥하는 것으로 신통으로 악을 제거하고, 자비로 원한을 선해하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대법제자가 발정념을 중시하고 매일 잘 견지한다면 그의 공도 매일 자동으로 이런 나쁜 것을 해체할 것이다. 그 물건들은 줄곧 제거되는 상태에 처해 있고, 아예 표현할 기회도 없고 표현해 나와도 아주 약하다. 대법제자의 공간장은 상화(祥和)로 충만해 모 집착을 겨냥해 해체할 필요가 없다.

이 나쁜 물건이 내 공간장에서 활개를 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발정념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법리에서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분간했을 때(자신의 성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화가 욱하고 치밀어 올라올 때 나는 그것이 또 악행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런 기미가 보이면 그것을 해체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하다. 나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운 것은 당신이 정말 그것을 분간하고 제거하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나는 너무 오래 끌었다. 한 대법제자가 얼마나 정진하는지 표현했다. 집착을 버림은 신으로 가고 사람과 결별하는 과정이다. 정진하는 수련인은 어떤 집착을 의식했을 때 금방 닦아낸다. 그의 목표가 명확하고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진하지 않는 수련인은 정에 묻혀, 사람의 감수에 묻혀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집착 한 개가 우리가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지상에 묶어놓은 한 개의 끈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잘라내야 하겠는가 말아야 하겠는가? 어떤 집착은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훼멸시킨다. 색욕에 대한 집착이 그 예다.

이 화를 잘 내는 집착을 내가 분간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개인의 집착뿐만 아니라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데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 마음을 내려놓자. 내가 이렇게 생각할 때 나는 점점 커지고 집착은 점점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의 제거는 당연한 것이다.

이상은 개인 최근의 체득이다. 부당한 곳은 자비로 시정하길 바란다.

문장완성: 2010년 04월 18일

문장위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19/22177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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