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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본 것만이 진실하다고 믿는 완고한 관념을 버리다

【밍후이왕 2010년 2월 23일】 최근 몇년간 발정념의 효과가 줄곧 좋지 않게 여겨졌고 점차 느슨해지고 게을리 했다. 실은 이것은 세간의 이치에 제한되어 교란받은 것이다. ‘눈으로 본 것만이 진실이다’는 사람의 뼛속에 형성된 이치이다. 사람은 무엇인가 할 때 늘 강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결과를 보지 못하거나 실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면 곧 믿지 않으며 물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자아보호, 자아봉폐에 빠져 있다. 나는 ‘눈으로 본 것만이 진실’이라는 가상의 교란과 함께 법공부, 연공에 극히 게을러졌다. 늘 마음속으로는 잘하려 하나 오히려 마성의 교란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착오를 범했다. 그리하여 자책하는 심리가 강화되었고 사부님께서 나를 관계하지 않으시며 자신이 떨어졌다고 여겼다. 때문에 세 가지 일에 아주 차했고 심신이 피로해졌고 심리상의 압력은 마치 극한에 이른 것 같았다.

하루는 우연히 동수의 사무실에 가게 됐는데 마침 법공부하고 발정념했다. 발정념이 긑나자 수련생이 갑자기 말했다. “오늘 발정념은 참 좋았다. 아주 조용했고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때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내가 발정념한 것은 아무 효과가 없는데, 그래도 이곳 동수들은 잘하는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련생이 또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발정념을 잘했다. 한층은 붉은 빛이고 한층은 남색으로 빛났고 층층마다 채색의 에너지마당이었다.” 나는 그때 놀랐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이는 내가 의기소침해질까봐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나를 고무격려하시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마음속에 한가닥 난류가 흘렀다. 이는 내가 신사신법(信師信法)이 부족하고 오성(悟性)이 차한 것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가상에 장애가 된 것이었다. 정말 사부님께 죄송하다.

나는 기독교의 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예수가 수난당한 3일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난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제자는 그들의 예수가 부활한 것을 믿었으나 다른 한 제자는 반드시 자신의 눈으로 직접 예수를 보아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쇠못에 박히고 긴 창에 찔린 상처를 보아야 비로소 믿으려 했다. 나중에 예수는 정말로 이 제자에게 자신의 상처입은 부분을 보여주었다. 이 제자는 그제서야 정말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말하기를 예수의 수난당한 신체를 본적이 없어도 믿은 사람은 더욱 복이 있다고 했다.

비교하건대 나의 오성은 너무나 차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눈으로 보아야만 진실로 받아들이는 관념을 닦아버려야 하며 각자(覺者)의 정념을 일으켜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왜 보이지 않는가(爲何不得見)〉에서 ”보면 믿고 보지 못하면 곧 믿지 않는 이것은, 하사지견(下士之見)이로다. 사람은 미혹 중에서 업을 너무 많이 빚어, 본성이 미혹 당했거니 그 어찌 볼 수 있겠는고. 깨달음이 선차적이고 보임이 후차적이라, 마음을 닦고 업을 제거하여 본성이 나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도다. 그러나 상사(上士)는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간에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루노라. 뭇 사람은 보이는 사람도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거니 층차에 의해 정해지고 근기(根基)로 인하여 된 것이로다. 수련자 다수가 보이지 않으므로 보는 것을 추구하나니, 이는 집착으로서 버리지 아니하면 볼 수 없는 것이로다”

금후 나는 반드시 눈으로 보아야만 진실로 믿는 이 관념을 버리고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발정념을 잘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2월 23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 심성제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10/2/23/2186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