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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유럽법회에 보냄》을 읽고서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30일】 사부님의 신경문 《유럽법회에 보냄》을 읽고, 몇 가지 생각이 있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동수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안을 향해 찾지 않고, 도리어 법을 실증하는 대법 일에 참가하지 않거나 심지어 수련하지 않는 수련생들을 겨냥하셨다. 줄곧 나와서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하는 동수들은 주위에 이런 수련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꼭 조급해 할 것이며, 방법을 강구해 그들과 교류하고, 정체를 이탈한 이런 동수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진일보로 사부님의 법을 이해하고 나니 나는 사부님께서 나오지 않는 수련생들만 겨냥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걸어나온 우리 수련생들도 겨냥해 말씀하셨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이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보아낼 수 있으며 심지어 매우 엄중하다.

줄곧 걸어나온 우리 동수들 중에는 비록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는 수련생은 없고 또 홧김에 수련을 하지 않는 동수도 없다. 그러나 늘 몇몇 동수들이 함께 항목 일을 할 때, 누가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거나 늘 자신과 잘 지낼 수 없을 때면 홧김에 이 항목을 하지 않고 다른 항목을 하러 가버리곤 한다. 혹은 여전히 이 항목을 하지만 다른 동수의 태도가 좋지 않아 화가 치밀어 원래 일을 하지 않고 이 항목에서 다른 일을 한다. 이로 인해 항목의 진행 과정이 심각한 장애를 받게 되는데 이런 일이 정말 늘 발생한다.

나는 정법의 총체적인 노정은 우리 매 항목 노정의 좋고 나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인의 불만 때문에 모 항목을 잘 추진할 수 없다면 이 역시 엄중하게 서약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동수 사이의 모순은 상대방이 맞고 틀림을 떠나 자신에게 불만 정서가 생긴다면 이미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개인 수련의 문제이다. 매 수련인은 모두 이런 상황이 나타난다. 나는 이 일체 역시 모두 수련 중의 정상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문제와 모순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자신을 보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역시 자신의 문제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이런 모순이 법을 실증하는 일과 연계되고, 일단 우리 자신의 정서와 법을 실증하는 일을 동등하게 여길 때면, 심지어 자신의 정서를 법을 실증하는 일보다 더욱 중시할 때면 문제가 매우 엄중한 것이다.

구세력은 무엇 때문에 도태 대상이 되었는가? 바로 그것들 자신이 집착하는 것이 사부님의 정법요구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구세력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며 그것들은 그것들의 선택을 근본으로 삼았다. 아울러 내가 한 일체를 그것들이 갖고자 하는 그 일체에 따라 원용(圓容)시키는 것으로 하였는데 전체가 거꾸로 되었다.”(《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

그렇다면 이점에서 우리는 구세력과 같은 씬씽이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법에 동화해 새로운 우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개인적인 이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위대한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조사정법 중에서 모순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고, 부단히 자신을 잘 수련하면서 정법 노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매 개인의 수련 승화는 완전히 정법 중에서의 우리들의 작용, 보다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는가와 긴밀히 연계되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의의가 매우 큰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하면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미룰 수 없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바 장차 신의 심판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수련인은 모두 사람 마음이 있기에 문제에 부딪치면 지나가지 못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만이 항목의 정상적인 진행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어쨌든 법을 실증하는 일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달통하지 못하고, 모 동수에 대한 정서가 매우 커서 의연히 자나갈 수 없어 단기간 지나가지 못할 수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눈앞의 일을 돌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중생이 위험한 경지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도 관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동수들은 생각한다. ‘나는 그와 마음이 맞지 않으니 그가 이 일을 하려 하면 그가 하도록 하라. 어쨌든 나도 할일이 있으니 누구도 내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 하진 못 할 것이다.’ 만약 그 수련생이 하는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이 비교적 중요하다고 한다면, 이런 견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수련생이 하는 일이 정법의 큰 국면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내가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이런 견해는 곧 매우 큰 문제가 된다.

수련은 매우 엄숙하며, 우리 대법제자들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높으며 우리도 갈수록 표면을 향해 수련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모두 바로 잡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보면, 비록 행위상에서는 협조하지만 사상으로는 늘 순정하지 못한 염두가 튀어 나오곤 한다. 자신이 즐겨 하지 않는 것, 만족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나는 또 다른 동수에 대한 불만때문에 협력하지 않으려는 염두도 있다. 비록 행동에서 표현 되지는 않지만, 행위는 사상의 지도를 받으므로 내가 표면에서 억지로 한다 하더라도 마음을 써서 한 것이 아니기에 이 마당이 상화롭지 못하다. 동시에 사악이 쉽게 틈을 타고 기어 들어와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장기적으로 이렇게 하면서 이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항목의 진행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 역시 엄중하게 서약을 어긴 것이다.

우리가 정법의 그 어떤 일에 참가할지라도 모두 신성하고 위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종 신성한 태도로 대해야 하며, 모두 반드시 자비로운 심태에 입각해 무조건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곧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나는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여야만 사람을 구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관계하지 않고 관심갖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 션윈 공연의 장소를 구하는 문제에서 잠시 중단 상태가 나타났다. 아마 우리들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앉아 안을 향해 찾을 때가 된 모양이다. 션윈과 같은 이처럼 중대한 일을 마주하고 우리 매 대법제자들은 어떠한 심태로 대했는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이 역시 우리가 제고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며, 우리 정체가 법에서 제고해야만 션윈의 일에 돌파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션윈, 이처럼 중대하고 법을 실증하는 와중에서 나타난 일체 교란을 마주하고, 첫 번째 일념은 여전히 구세력의 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이해는 법을 실증하는 한 항목이 순조롭게 추진되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의 부족과 집착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에 부딪치면 반드시 안을 향해 찾고 제고해 올라와야만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돌파를 가져올 수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집착이 있어 법을 실증하는 항목이 성공할 수 없다면 이는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치면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문장완성: 2009년 11월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11/30/2135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