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후난(湖南) 헝양(衡阳)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0월 6일】 요즘 일부 동수들이 이러저러한 마난 속에 처해 있다. 수련의 길에서 마난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야 비로소 관을 넘을 수 있는지에 대해 동수들은 교류 중에서 모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다.
명혜주간에서 동수의 교류문장을 늘 보았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 개인의 옅은 깨달음을 말하겠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마난의 관을 돌파하려면 세 가지 방면에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1. 위치를 바로 놓고, 주와 부를 가리고 신심을 수립해야 비로소 마난을 똑바로 볼 수 있어
수련자로서 그의 위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수련 속의 사람이다. 우리는 비록 수련 중의 사람이지만 일반적인 수련인이 아니라 대법수련자이며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이다. 수련자라면 그럼 당신이 걸어야할 길은 바로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길로써, 중생을 구도하면서 각종 마난 속에서 끊임없이 씬씽(心性)을 제고하는 길이다. 이 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잠재의식 속에서 각종 마난을 전승할 사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마난이 정말로 찾아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속인의 관념으로 대하기 쉽다. 속인은 속인의 추구가 있고 수련인은 수련인의 추구가 있다. 양자의 추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련자로써, 위사위아하고 온 몸에 업력인 속인이 무사무아한 각자로 수련되는데 갖은 마난을 겪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에서 이렇게 우리를 가르치셨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때문에 수련자로서 오로지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생각해야 하고 각종 마난의 고험을 겪어야 비로소 원만으로 수련될 수 있으며 당신은 비로소 마난 속에서 난을 맞받아 나아가야 하는데, 마난은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고 층차를 제고하며 법리를 승화하는 동력이 된다.
이런 수련생이 있었는데 몇 년 전 그의 두 다리에 자신도 모르게 어혈이 생기며 부었고 감각을 잃게 되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가족은 억지로 그를 병원에 보냈고 의사는 곧바로 수술을 진행하지 않으면 괴사하게 되고 장애인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비는 십여만 위안이 들었고 가족은 듣고서 깜짝 놀랐다. 십여만 위안이 아니라 몇천 위안도 없는데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구한단 말인가?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가족은 모두 고뇌 속에 빠졌다. 그는, ‘나는 대법수련자로서 사부님께서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수련의 길을 걷게 하셨다. 나는 이미 법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걱정한단 말인가? 옛사람들은 “아침을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이고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대법을 수련하여 원만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3년동안 그가 단호한 신념으로 매일마다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자 기적이 나타났다. 두 다리의 붓기는 차츰차츰 없어지고 붉은 색을 띄면서 감각을 회복했다. 지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어 중생구도의 일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신기한 일은 지금도 현지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 대법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현재는 대법을 믿게 만들었고 일부분 사람 또한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2. 안을 향해 많이 찾고 자신을 부지런히 수련하여 정념을 단호히 해야 비로소 마난을 돌파할 수 있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수련의 길에는 늘 각종 마난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돌발적이든 아니던 모든 마난의 출현은 모두 개인의 수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특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중생구도의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고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박해 하에서 매개 수련자가 마주하는 마난은 더욱 커지고 더욱 복잡한 상황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만약 당신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그릇되게 깨달을 것이다.” (《정진요지2》〈정법시기대법제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로소 사부님의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에 따라 수련의 길에서의 각종 마난의 관을 돌파할 수 있는가? 동수들은 실천 속에서 한 갈래 중요한 경험을 규합했다. 그것은 바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마난의 관을 넘는 관건 시기에 안을 향해 찾아 닦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각종 모순에 부딪치고 각종 정황에 부딪칠 때마다 안을 향해 찾아 자신을 닦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정념을 단호히 하고 대법제자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게 되는 바, 당신은 속인의 마음에 이끌리지 않고 자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고 비로소 끊임없이 정진하고 마난을 돌파할 수 있다.
물론 마난이 올 때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데, 당신에게 알려준다면 또 관을 넘는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난은 갑자기 나타나야 비로소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고험할 수 있다. 대법제자 매 개인의 수련의 길은 다르고 수련상태도 다르고 가정조건이 다르며 사업환경도 다르다. 생생세세 누적된 업력이 다른 이유 등으로 하여 마난의 존재형식과 크기 역시 다른데,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은 씬씽(心性)제고상에서의 마난이 있는가 하면 업력을 갚아야 하는 방면의 마난 등등이 있다. 이런 마난을 만났을 때 만약 안을 향해 찾지 않고 밖으로 구하면 당신은 단호한 정념이 없게 된다. 이 시각에는 구세력의 요소가 틈을 타고 들어와 마난을 크게 만든다.
왜 일부 수련생은 사악한 박해 속에서 사오하고 타협하는가? 심지어 수련생을 배신하고 자료점을 배신하는 그릇된 일을 하게 되는가? 왜 일부 수련생들은 신체의 어느 곳이 불편하거나 병증상이 나타나면 두려워하고 정념도 없게 되는가? 바로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자신을 닦는 것에 주의하지 않거나 법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업과 빚을 병으로 오인하고 씬씽(心性)은 속인의 위치로 떨어져, 할 수 없이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입원해야 한다. 구세력은 이를 보고서, 이 집착을 단단히 잡고 끊임없이 괴롭힌다. 일부 수련생은 오랫동안 “병마”에 처해 있는데,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또 극히 개별적인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 동안 업과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는 별도로 말해야 한다.
물론 정법수련과 박해 이전의 개인수련은 아주 큰 구별이 있다. 안을 향해 찾는 중에서 이 한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그렇게 해야 비로소 주동을 파악하고 진정으로 법속에서 빨리 제고할 수 있다.
이상은 개인의 견해이다. 동수들이 교류시 참고하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9년 9월 3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6/20935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