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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동수’와 ‘직원 동수’

【명혜망 2009년 8월 6일】

이 제목의 글을 쓰면서 마음속에 많은 감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 몇 해 동안 내가 일부 동수들이 ‘사장 동수’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발생한 일부 모순과 정체적인 제고가 부족했던 일부 일들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약간의 감수를 적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모든 사장들은 수련생이 자기 회사의 직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수련생이 착실하게 일하여 걱정을 덜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교류하고 촉진하는 환경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환경은 중생을 구도하고 정체적으로 제고하는 데 아주 관건적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러하지 않았다. 동수들이 ‘사장 동수’의 회사에 온 후 모순이 곧바로 올라오는데 일부는 점점 첨예해졌다. 나중에 많은 동수 직원들이 그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쌍방은 마음속으로 서로 부자연스럽고 침통함을 느낀다.

여기서 관건적인 문제는 쌍방이 상대방의 단점을 보면서 무조건 안을 향해 찾지 못하고 회사를 수련환경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진심으로 투철하게 서로 교류하며 정체적으로 제고하지 못했다. 잘하지 못할 때 일부 사람은 정말로 속인보다 못하며 심지어 속인 중에 아주 좋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한 수련생은 어느 ‘사장 동수’의 기업에서 일을 했는데 사장은 그를 아주 중시했다. 그 회사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착실하게 일하고 주동적으로 야근하여 기업의 모든 직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아주 빨리 한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은 ‘사장 동수’의 일부 관리방식과 기업 내부의 일부 일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어서 늘 사장님에게 의견을 제출했다. 그가 매번 의견을 낸 후 사장은 진지하게 듣고 자세히 가늠해보았다.

사장은 동수(직원)의 마음이 좋은 것을 보았지만 제기한 문제와 건의는 그렇게 행할 수 없었다. 기업은 마치 ‘사업의 바다’ 속에서 질주하는 차량과 같아 어느 지점에서 빨리 움직이고 어느 지점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사장은 마음속으로 잘 가늠하고 있었다. ‘사장 동수’는 ‘직원 동수’의 의견에 대해(심지어 아주 격렬함) 진지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반드시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가끔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음). 이때 ‘직원 동수’는 아주 불만스러워 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장님이 잘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기업을 위해 하는 것인데 당신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직원 수련생은 사장 수련생이 자신의 의견을 몇 차례나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서를 냈다. 그 사이에 사장 동수와 직원 수련생은 또 여러 차례 교류했지만 서로 간의 “이유”가 아주 강했다. 사장 수련생이 만약 직원 동수의 건의를 받아들이려면 기업의 구조를 전부 어지럽혀야 하고 직원 동수의 좋은 ‘건의’는 국부적인 고려로 기업 전반 발전 방향과 각 방면에서의 타산에 대해 수련생은 잘 알지 못했다. 이 한 점에서 말하자면 직원 수련생은 사장 동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전반적으로 문제를 보지 않았으며 “의견”을 제시할 때 “자아”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당신이 나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가겠다고 하자 사장 수련생은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어렵네요! 동수(직원)는 업무실력은 아주 뛰어나지만 틀어지기만 하면 정말로 속인보다 더 못하네요. 속인 직원이라면 감히 내게 이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관건적인 문제는 직원 수련생이 사장 수련생을 ‘친정 식구’로 여기고 자신을 ‘사장’으로 생각하여 말을 할 때 안팎을 가리지 않아 속인 직원들 사이에서의 영향마저도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사장의 입장을 고려해 온화한 심태로 자신의 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실 당신의 건의라고 하여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있는가? 사장은 사장이고 자신의 기업을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면 사실 반드시 멀고도 강대한 ‘자아’가 그 곳에 앉아있다. 우리의 수련은 “마음을 닦아야” 하므로 (문제를 보는 중에 우리의 어떤 사람마음이 폭로되었는지 보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이 한 점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동수와 같이 있을 의미가 없다. 최소한 안을 향해 찾는 이 한 점에서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또 한 수련생은 ‘사장 동수’의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사장의 ‘능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동수의 ‘능력’은 오히려 사장보다 나았다. 회사 직원들은 수시로 사장의 관리상에의 누락과 일 처리의 잘못을 사적으로 의논했다. 그런데 수련생은 이에 대해 묵묵히 보충하고 원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속인 직원들과 함께 배후에서 사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했다. 몇 차례 지난 후 사장이 이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생각했다. 교류를 해도 같은 인식에 도달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에서는 회의를 열어 이 동수의 일부 행위에 대해 비평했고 그 수련생은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해 얼마 안 가 곧 사직했다.

사실 사장이 되고 직원이 되는 것은 단지 ‘덕(德)’이 많고 적음 그리고 역사의 배치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 당신이 보기에는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도 그는 도리어 ‘사장’이 될 수 있고 당신은 직원밖에 안 된다. 이 환경은 바로 자신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이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사직서를 내고 어디를 가든 늘 이 문제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사장 수련생은 한 수련생이 일자리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열정적으로 그를 회사로 불렀다. 그러나 나중에 그 수련생이 여러 방면에서 자신과 코드가 전혀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진상을 알릴 때 사장은 마땅히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하며 안전에 주의하여 사악이 환경을 파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함에 큰 칼을 휘두르고 서슴없이 전진하고 후퇴하며 회사를 찾아온 모든 고객이 인연 있는 사람으로 구도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쌍방은 쟁론이 생겼다. 쟁론과정에 누구도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수련생이 사직했다.

내 생각에는 대법제자가 무엇을 하든 그 기점은 모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구도해야 하는가? 먼저 서로 잘 상의해야 한다. 한 사람이 진상을 말하고 여러 명이 발정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명이 서로 보충하여 진상을 알리고 소수가 발정념할 것인가? 반드시 정체에 서서 협조해야 중생 구도의 힘은 비로소 크다. 한 수련인이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에 협력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 문제가 아주 관건적이다. 이 한 점을 해내지 못한다면 누구도 원만할 수 없다.

동수와 ‘사장 동수’는 먼저 관리상에서 속인 이 한 층의 법을 수호해야 한다. 당신이 동수라고 하여 사장을 대신해 “주인 노릇을 하거나” 혹은 “이것저것을 지시하지” 말아야 한다. 쌍방은 마땅히 ‘진심’으로 교류해야 한다. 사장으로서 동수에 대해 “틀”이 없어야 하고, 직원 동수의 건의와 마음속 감수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동수 역시 아주 성숙하지 못하게 수시로 ‘사직서’를 내지 말아야 한다. 쌍방의 공동 노력과 협조를 통해 양호한 사업 환경과 중생 구도 환경을 개척해야 한다.

문장완성:200년 8월 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6/20597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