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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와의 교제에서 생각한 것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11일】 나의 주변에는 몇몇 동수들이 있는데 사람마음이 많고 무겁다. 비록 세 가지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속인 중의 명리정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다. 매번 그들의 집에 가면 그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요리를 만들어주는데 또한 무척 흥분하여 속인의 일들을 나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누구누구는 그들에게 잘해주지 않고, 어떤 일을 하면 큰 돈을 벌고, 지금의 속인들은 얼마나 나쁜가 하는 등등이다. 처음에 나는 억지로 정신을 집중하여 들었다. 왜냐하면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나도 수긍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 나아가서는 이런 화제에 대해 아주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법에서 그들과 교류하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상대방은 아주 빨리 화제를 바꾸면서 일 자체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이런 속인의 화제들을 이야기한 후 나는 무척 괴로웠다. 집에 돌아온 후 책을 보아도 법리를 볼 수 없었는데 한동안의 시간을 들여 조정을 해야 겨우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러 번 그들 집에 가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올 때 물건을 두고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을 두고 나오거나 PMP, 옷 등을 두고 나왔다. 나는 이것이 아마도 사부님께서 나더러 그들의 집에 가지 말라고 점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동수들과 간격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렇게 동수들과 어울리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대법제자는 왜 함께 있어야 하는가? 좋은 환경이 있어서 함께 제고하도록 촉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법에 입각하지 않은 그런 교류들이 필요할까? 대법제자들이 함께 모여 속인들의 잡담이나 하는 것은 사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고 수련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속인은 속인의 잡담을 하는 것인데 수련인의 마음이 거기에 가 있어 그런 잡담을 나눌 때 사실은 속인이 아닌가. 그럼 내가 거기에 참여한다면 역시 속인이 아닌가?!

만약 내가 지적했는데 상대방이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사실 그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 역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속인마음을 위하여 수련생들 속에서 속인의 일을 떠든다면 그것은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하고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상대방이 정말로 이렇게 하고 또 그것을 견지한다면 그들과 연락을 끊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시간은 너무나 보귀하고 나는 이러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연락을 취하지 않게 되면 동수와 간격이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동수들 사이에 간격이 없다는 것은 날마다 함께 있고 먹고 마시며 자신의 가정사까지 상대방에게 모두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동수사이에 간격이 없는 것은 세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사람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서로 협조하여 법을 실증할 때 사람마음과 집착으로 대하지 않으며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가장 순정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간격이 없음이다.

사실 이런 연락을 자제하는 것도 그들에게 좋은 일이다. 그들이 대법제자들 속에서 속인의 것을 떠들 기회를 주지 않아 남의 수련을 교란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의 수련에 영향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 대법제자의 가장 큰 임무는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만약 수련생들이 함께 있으면서 대법을 실증하는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른 일종의 반작용이다. 자신의 작은 테두리를 수호하면서 사람의 정(情)이 범람하게 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부작용을 일으킨다. 대법제자들 속에서 형성된 속인식의 작은 테두리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후 나는 수련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이지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나도 자신의 많은 집착을 찾았다. 예를 들어 정에 집착하고 속인의 어떠한 화제에 대해 매우 재미를 느끼고 수구(修口)하지 않고 체면에 집착하고 작은 편의를 얻으려고 하고 먹는 것에 탐하는 것 등등이다. 가끔 그들에게 가게 된 것은 그들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맛있는 요리를 먹으라고 한 것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나 자신이 실질적인 수련이 부족하고 법리를 똑똑히 알지 못해서이다.

현재 대법제자의 책임에 대해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이 문제에서 오랫동안 돌파하지 못했다. 이렇게 반복이 되어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사실 나의 이런 심태는 “청심논단”에 오랫동안 빠져있던 수련생들과 똑같았다. 나는 현실생활에서도 동수들과 정이 깊어 날마다 그들과 집에서 담소를 했다. 논단이란 허구적인 세계에 빠진 수련생들과 같이 사람의 정(情)이 많아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잊었던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서 나는 정말로 비할바 없이 부끄러웠다. 다행히 육안으로 사부님을 뵙지 않아서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정말로 땅굴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빨리 뒤따라가며 더이상 반복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체험과 인식이니 부족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1/206283p.html
문장완성 : 2009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