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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내려 놓고 상화로운 심태로 수련생을 보아야 한다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6일] 며칠 전 우리 지역의 몇몇 노 동수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였다. 교류하는 과정 중에 쉽게 느낄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났다. 표면상 매 사람마다 모두 마치 상화롭게 문제를 교류함에 있어서 직접적인 충돌은 없으나 내심으로는 모두 자신의 인식을 보류하였고 또 상대방의 인식에 대하여 배타적인 뜻이 있다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사”의 다른 한 일면의 표현 형태를 보게 하였다. 보건 대는 상화롭지만 배후에서는 자신을 고수하고 자아를 견지하면서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표현 형식은 때로는 매우 미묘하게 나타났다. 십 몇 년 간 법리에서 “성숙”된 노 제자로서 이 방면에서 최후의 근본 돌파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느 한번 우리 몇몇 수련생이 교류하는 중에 세 수련생이 하나의 화제로 인하여 뚜렷한 쟁론 의식이 있었는데, 심지어 표정조차도 좀 상화롭지 못하였다. 이때 나는 갑자기 내 주변에 앉아 있는 한 수련생이 조용히 말없이 얼굴에 상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갑자기 속인의 한 어구가 생각났다.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얼른 보기에는 어리석은 사람 같이 보인다.”이와 같은 경지의 표현은 때로는 사람에 대하여 일종 진감을 산생하게 한다! 이는 나로 하여금 단번에 자신의 한 방면을 동수와 비겨 보았을 때 거리가 있음을 보게 하였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만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무조건적으로 묵묵히 보완해주며 그것으로 하여금 더욱 원만하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여러 해 수련한 노 대법제자로 놓고 보면 매 개인은 모두 법 공부와 관을 넘는 것을 통하여 모두 자신의 실제적인 체험과 깨달음 그리고 법리에 대하여 “성숙”한 인식이 있다. 만약 자신의 약간의 인식을 매우 중히 보거나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일종 전형적인 “사”의 표현이다. 어떤 동수들이 자신의 “법리”가 매우 성숙하였다고 생각할 때, 어떤 동수들이 어떻게 정념으로 뛰쳐나왔다고 떠들어대면서 이야기 할 때, 어떤 동수들이 자신은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때…. 나는 분명하게 이“화제”의 배후에는 아직도 “나”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감수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만약 시시각각 사부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었더라면 대륙의 그처럼 사악한 환경하에서 어느 대법제자가 오늘까지 생존할 수 있었단 말인가? 강대한 정법 홍세 하에 위대한 사존님 앞에서 우리 매 개인은 모두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어찌 그러하지 않았던가? 한 시기 동수의 문장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이 수련생이 말 한 것이 옳은가? 저 수련생이 말한 것은 옳지 않으며 혹은 조금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가늠하였다. 이런 가늠의 배후에는 의연히 “나”가 있는 것으로 마치 나의 표준과 인식에 부합되어야만 정확하고, 부합되지 않으면 “몇 마디 한다”하면서 상대방을 규정하려 했다. 물론 동수 사이에 부동한 인식이 있다 하여 교류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관건은 “나”라는 그 “뿌리”를 틀어 쥐고 놓지 않는 것이다.

오늘 법공부 때 질투심에 관하여 학습하면서 우연히 또 깨달음이 있었다. “진정하게 수도하는 사람 중에도 역시 이런 반영이 있는데 서로간에 불복하며,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며,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 신공표가 강자아가 늙고 재간이 없다고 생각한 그 심태의 배후는 하나의 강대한 “자아”인 것이다! “당신이 보라. 나 신공표는 얼마나 대단한가. 내 머리는 베어도 다시 돌아와 붙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봉신하게 하지 않는가?” (>) 이러한 “나”는 낡은 우주 생명상에서는 뿌리가 깊고 꼭지가 튼실하게 체현되는 것으로서 낮은 층차에서의 표현은 매우 강렬하며 높은 층차에서의 표현은 비교적 함축되고 완곡한데 모두 이 “주선(主线)’을 떠나지 못했다.

이 몇 년 간의 수련의 체험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시 부단히 대법으로 그 “나”를 깨끗이 씻어 버리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한가지 일에서 마치 자신을 씻어 버린 것 같지만 다른 하나의 일에서도 “자아”가 매우 돌출하게 표현되곤 하였다. 이 몇 년 간 자신이 동수들과 접촉하는 과정 중에서 마치 매 개 동수들의 장점에 대하여서는 모두 어렴풋한 것 같고, 그들의 결점에 대해서는 매우 똑똑히 보아내고 매우 오랫동안 기억하였으며 심지어는 동수들과 담론 할 때 “모모는 지금 어떠한가?”라고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집 식구 수련생이 나와 이야기 하였다. “당신은 왜 어느 누구도 모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렇다. 무슨 일인가? 사실 자신의 마음 속으로는 매우 똑똑하다. 나! 나! 나! 이 내려놓기 힘든 내가 나의 마음 속에서 줄곧 내려 놓여 지지 못한 것이다. “나”로서 주위의 일체를 볼 때 일체 법에 부합되지 못한 상태가 모두 체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간고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 갈 때, 자신이 관을 넘고 매 하나의 관념을 버릴 때, 이“나”는 조금씩 증발되며 자신의 심태와 표정도 조금씩 변하고 친절해 진다는 것을 알았다 .

문장발표: 2009년 3월 6일

문장갱신: 2009년 3월 5일 23:36:38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3/6/1965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