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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 심리를 버리다

【명혜망 2008년 12월 30일】 교류 중에서 어떤 동수들이 곤혹에 봉착했을 때 마음이 아주 혼란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차라리 “몸을 사리지 말자”, “후과를 따지지 말자”, “마지못해 하자”라고 하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어떤 동수들은 요행히 성공하지만 많은 동수들은 일이 생기는데 그 원인은 수련 중에서 도박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마음으로 일을 하고 청성한 정념으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박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마음을 품고 수련중의 일을 할 때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속인 속에 떨어져 있다. 그럼 구세력은 속인의 법으로 우리들을 박해할 구실이 생긴다. 속인의 속담에도 “도박을 일삼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도박은 열 중 아홉은 진다”는 말이 있다. 도박에 의지한다면 혹 일시적인 이익을 얻어 잠시나마 위풍을 떨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밑천마저 찾을 길 없는 끝장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수련인이 선택과 곤경에 처했을 때는 마땅히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응당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착실하고 침착하게 매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가 일에 부딪쳐 어찌할 바를 모를 때면 우선 법으로 가늠해 이 일이 법리의 요구에 부합 되는가, 다시 말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만약 한 각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청성한 정념으로 교란을 없앤 후 어떻게 하는 것이 결과가 더 좋을지 전면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자신을 강조하거나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념이 부족할 때는 조급해 하지 말고 급히 성사시키려 하지 말며 먼저 법학습을 강화해 정념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지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욕심을 부리거나 속도를 추구하거나 지름길로 가려 해서는 안 된다.

요행 심리, 도박을 하는 심태와 정념의 구별은 도박은 이기고 지는 것을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통제 할 수 없고 오직 운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 중의 정념이 얼마나 강하면 위력이 그만큼 강하며, 결과에 대해서도 정념으로 대처하고 통제할 수 있다. 수련자가 견정한 정념하에 있으면 신의 도움이 있어 사악을 진압하고 난을 없앨 수 있으며 시련과 검증을 겪어낼 수 있으며, 난관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정념에 의거할 때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사부님의 위력과 대 지혜이며 또한 자신의 신념(神念)이 있는 것이다. 의지한 것이 신(神)의 것이므로 힘은 무궁하다.

수련 중에서 요행심리와 도박하는 심태로 일을 한다면 우연히 난관을 넘어갈 수는 있으나 이것은 일시적인 행운에 불과하며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장기간 평온하게 3가지 일을 잘하려면 기세 드높은 큰일이든 섬세한 작은 일이든지 막론하고 성공의 근원은 오직 착실한 수련과 정념에 있지 그 무슨 요행이 아니다. 더욱 안정적으로 착실하게 매 한 걸음을 잘 걸어야만 비로소 수련 중의 성숙이다.

개인 인식이니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감사 합니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 30일
문장분류 : 수련 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2/30/19247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