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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私)를 보아내다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25일】
나는 줄곧 자신이 수련한 것이 괜찮고 명(名), 리(利), 정(情)에 대해서도 이미 아주 담담해졌으며, 동료들도 탄복하고 이웃에서도 찬양하며 가정도 화목하고 일에 있어서나 생활에 있어서 법을 스승으로 삼고 늘 다른 사람의 이익을 앞에 놓고 있다고 여겨왔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때는 모두 법으로 한번 가늠해보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호하게 하지 않았으며 해야 할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수련환경도 줄곧 아주 좋았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자신이 아주 이기적[自私]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달 전 평소에 나와 연계가 있었던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되었다. 나는 두렵지 않았고 사부님과 법을 믿었으며 또한 수련생이 나를 팔아먹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었으며,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래도 적극적으로 수련생을 위해 사이트에 소식을 올리고 박해를 폭로하고 또 동수의 가족들과 협력하여 공안부문을 찾아가 수련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차례 하고 나서도 효과가 없었고 게다가 동수의 가족들이 수련생을 원망하는 말을 하면서 법에 대해서도 그리 존중하지 않자 마음속으로 반감이 생겨 더 이상 이 사건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단지 수련생을 위해서 발정념만 했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심지어 발정념마저도 잊어버렸다.

최근에 갑자기 이 수련생이 판결을 받게 되었지만 언제 선고하는지 개정(開廷)일자조차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수련생은 이 동수의 가족들과 연계할 방법이 없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도리어 연락을 유지하지 못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구실을 댔지만 실제로는 가족들이 징징 우는 소리와 원망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에게 나쁜 심정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고 나 자신의 안일한 환경이 파괴될까 봐 두려웠는데 사실은 이때가 바로 수련생을 도와야 할 때였다. 만약 내가 동수의 가족들에게 이치를 제대로 알려주어 공동으로 박해를 제지했다면 그럼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며 최소한 동수의 가족들이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대법을 원망하고 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동수들은 이 동수의 직장 동료 전화번호를 구할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를 연상할까 두려워 전화번호를 제때에 사이트에 올리지 못했다. 이리하여 동수의 직장 동료들이 해외 동수들의 진상전화를 받지 못하게 했으며 법에 대해 진일보로 이해하지 못하게 했고 동수의 공간장에서 정의의 목소리가 결핍되도록 했다.

다른 동수들은 이 수련생이 간수소에서 박해받는 정황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자신의 안전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 제때에 소식을 파악하여 사이트에 폭로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이 동수의 정보를 사이트에 올려 수련생을 구원하는데 제공할 수 없었다.

매번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비록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 도리어 “나는 너무 바빠서 이 일을 상관할 시간이 없었다.”라고 자위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본래 내 일은 아주 한가한 편이라 거의 매일 출근해서 법학습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된 이후 직장이 정말로 바빠졌는데 기이할 정도로 바빠졌다. 내가 업무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주말도 없었다. 법학습을 할 시간도 없었고 연공할 시간도 내기 힘들었다.

직장 동료들은 일이 힘들어지자 어떤 사람은 물건을 집어던지고 어떤 사람은 난동을 피웠으며 또 일부는 울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여전히 득의양양해했다. 왜냐하면 전체 과정 중에서 오직 나만이 태연자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료들이 감동할 정도였다. “나는 대법제자라서 같지 않단 말이야?” 그러나 나중에 천천히 이런 종류의 바쁨은 극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번거로움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매번 바쁜 일이 생길 때마다 직장에는 전혀 의미가 없는 일들이었다.

이렇게 되자 서서히 이런 종류의 바쁨은 이미 교란이라는 것을 나는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것이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초래된 결과임을 의식하지는 못했다. 사부님께서도 여러 차례 꿈을 통해 점화해주셨음에도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수련생이 판결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렇게 해냈는가?

나는 바쁘다는 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구실로 삼았는데 이 속에서 자신의 이기심[自私]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이기심은 나로 하여금 동수들 대할 면목이 없게 했으며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없게 했고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대해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새로운 아침 태양이 떠오를 시각이 다가왔음에도 나는 도리어 여전히 낡은 우주의 ‘위사(爲私)’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으니 이런 심태로 어찌 새로운 우주로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동수여, 당신이 나와 같은 경험이 있었거나 혹은 지금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한번 자문해보자. “나는 수련생을 위해 생각하고 있는가? 나의 행동에는 아직도 얼마만큼 이기적인 염두가 남아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위대한 神으로 수련성취할 것을 원하신다! 신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 2006년 8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8/25/13627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