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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濟南)시 수련생, 류젠(劉健)을 기억하며

[명혜망] 4년전 12월 28일, 류젠은 34세의 나이로 지난(濟南)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받은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한때 유쾌하고, 힘이 넘치며, 온화했던 이 수련생이 혹형을 받고 친구와 가족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난 강제노동수용소는 류젠의 사인(死因)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구금된 다른 수련생들이 이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상세히 아는 것을 금했다.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류젠은 여러번 단식항의를 했다. 그가 죽기 며칠전, 수용소 복도를 지나가다 죽어가는 형을 면회하러 왔던 류젠의 남동생을 우연히 마주쳤다. 대법을 실증할 때도 그랬지만 개인수련 중에서도 그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한 명으로서 나는 그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995년 겨울 리샤(歷下)구의 산둥성 사범대학에서 류젠을 처음 만났다. 그 때, 단체연공이 아침마다 있었고, 월, 수, 금 저녁에는 법공부가 있었다. 법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온화하고 솔직한 인상이었고,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단체 법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심득교류를 했고,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류젠은 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법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당시 나는 신수련생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부분적으로나마 나는 개인수련에서 내면을 향해 찾는 법을 점차적으로 터득해갔다.

1996년, 파룬궁 연공장이 산둥건축공정학원(山東建築工程學院)에 개설되었다. 연공장이 시작되자, 류젠은 자원해서 그곳에 가 그들을 도왔다. 매일 아침 그는 단체연공에 참가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아주 먼 거리를 갔다. 나중에 다시 우리 연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한동안 음악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나와야 했다. 후에 우리 모두 그가 법에 정진하고 열성이므로 보도원이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당시 우리 산둥사범대학 연공장은 주변 파룬궁 연공장이 필요로 하는 대법서적이나 오디오, 비디오 자료를 보급하는 중심 연락소가 되었다. 자원해서 책들과 사부님의 새 경문들을 배달하던 그 몇 년간, 류젠은 리샤구의 여러 연공장에 잊혀 지지 않을 인상들을 남겼다. 나는 그의 초라한 자전거며, 하얀 천으로 만든 커다란 가방 그리고 그의 미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류젠은 간소하게 살았다. 갈색 자켓은 그가 일 년 내내 입는 옷이었고, 바닥이 평평한 천으로 된 신발을 신었다. 나는 1997년에 그의 여자 친구가 가죽신발을 선물했던 것을 회억한다. 그는 신발을 신어보더니 가죽 신발을 신고 어떻게 걸어야할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류젠은 기꺼이 남을 도왔으며 많은 수련생들이 그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얘기하며 웃곤 했지만, 연공장이나 보도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법공부를 시킬 때 류젠은 매우 엄숙했으며, 우리 모두에게 책을 많이 읽고 피상적인 얘기는 적게 하라고 격려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법을 암송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1998년 6월, 지난 수련생들이 치루만보에 대법을 진상하고 오보를 정정하려는 활동 중, 류젠은 침착하게 우리를 이끌었다.

후에 내가 이사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얼굴 볼 기회가 점점 적어졌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그가 법공부에서 나보다 훨씬 견정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찾아가 교류했다. 그러자 1999년 5월 즈음해서 류젠이 박해 받는 첫 수련생들 중 한명이 되었는데 자신의 서점에서 파룬궁 서적을 팔았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되었다. 다음에 내가 그를 본 것은 1999년 겨울이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으며 다른 두 명의 수련생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고 수련 심득경험을 교류했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박해를 받고 있었으나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만은 변함이 없었다.

2000년 10월 1일 휴일기간 동안, 지난시의 많은 수련생들이 걸어 나왔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류젠도 물론 거기에 끼었다. 톈안먼 광장에서 그는 여자 수련생들을 학대하는 경찰들을 제지하려다 경찰들에게 혹독하게 발로 차이고 얻어 맞았다. 그런 후 정념으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10월 말, 지난 리샤구 610 사무실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들을 박해하기 위해 세뇌반을 개설했다. 류젠을 포함한 많은 수련생들이 납치되어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박해를 저항하기 위해 류젠과 다른 네 명의 수련생이 단식항의를 하며 일주일 정도를 버텼다. 그런 다음 그는 탈출하고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났다.

11월 중순, 류젠은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좋습니다’ 메시지가 담긴 포스터를 붙이다가 체포되었고 다시 18일 동안 단식항의를 한 후 탈출했다.

2000년 말 쯤, 류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고 12월 31일, 거기서 우리는 만나 당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을 교류했다.

2001년 1월 1일, 류젠,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온 수련생들을 따라 나도 다시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서 나는 사부님이 정법하시는 이 시기에 대법을 실증할 수 있다는 영광을 느꼈다. 광장에서 톈안먼을 마주하고 류젠과 나는 현수막을 펼쳤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경찰이 우리를 붙잡아 때린 다음 톈안먼 경찰서로 연행했다. 거기서 경찰이 한 수련생을 발로 차는 것을 류젠이 나서서 막았다. 경찰은 류젠의 팔을 잡고 머리로 코를 들이 받았다. 나도 그 경찰을 제지하기 위해 나섰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옷이 류젠의 피로 얼룩져있었다.

그 후 다른 곳으로 이송되기 위해 먼터우거우(門頭溝) 간수소로 옮겨졌다. 발정념을 하고 우리 둘은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한 시각은 한밤중이었는데 서로를 보면서 너무나 감격하여 껴안았다. 그날 밤 산둥사범대학 연공장의 한 동수에게 전화를 걸고 정념을 유지하고 대법에 신념을 가지라고 격려해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류와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우리의 심득체험을 글로 썼다. 그 해 나의 생일을 함께 지낸 후, 그는 다시 지난시로 돌아갔다.

2001년 1월 중순, 류젠은 다른 사람들의 부탁으로 혼자서 광저우(廣州)로 가서 노트북 10대를 안전하게 베이징으로 가지고 왔다. 그 노트북은 진상자료를 만들기 위해 나중에 여러 장소로 보내졌다. 2001년 3월 류젠이 다시 납치되었고 리샤구의 다른 강제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리산(歷山)로에 위치한 지광국초대소(地礦局招待所)의 한 곳으로 보내졌다. 류젠이 그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날 그는 불법적으로 지난시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는 노동수용소에서 7월까지 약 4개월에 걸쳐 단식항의를 했다.

2001년 8월, 강제노동수용소 안에서 나는 우연하게 그가 감금되어있는 작은 방 옆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도록 박해를 받았으나 그의 평화롭고 확고한 눈빛에서 나는 대법에 대한 그의 견정한 믿음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사과 하나를 주었다. 다음날 그의 부탁으로 우리는 서로 만났고 아침 시간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마지막이 되었다. 그는 침착하고 이성적이었으며 나는 그에게서 나를 향한 친구로서의 염려 그리고 나에 대한 동수로서의 자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감동을 받고 전에 빨리 훑어보면서 외워두었던 사부님의 최신경문 《건의(建議)》 일부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헤어지기 전, 류젠은 일상용품 몇 개를 내게 주었다. 후에 그는 수용소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옮겨졌으며 거기서 다른 사람들의 감시를 받았다. 매일 아침 노동에서 돌아올 때 나는 가끔 2층 창가에 서 있는 그를 볼 수 있었고 우리는 서로 손을 살짝 흔들어 인사를 나눴다.

2001년 12월 28일 오후, 류젠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나는 저장실의 창으로 가서 혹시 내 선량한 친구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주의 깊게 밖을 살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노동수용소에서 류젠을 실어갈 구급차였다.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우리가 함께 했던 나날들, 톈안먼 광장에서 대법 현수막을 펼치던 일, 마지막까지 사부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눈물로 ‘나의 친구 류젠을 기억하며’ 이 글을 썼다.

그날 밤 우리가 TV방에 모여 있을 때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켜졌다. 이런 일은 어떤 곳에서든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므로 나는 류젠이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인간세상에서 그는 젊은 생명을 잃었으나 정법시기 동안 그는 수련생으로서 해야할 바를 했다. 사악한 박해를 마주하고 확고하게 그의 믿음을 치켜들었다. 생사(生死)에 직면했을 때 그는 침착하게 그 관을 넘었다. 그의 진정한 생명은 새롭고, 숭고하며 영원한 것으로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또한 부동한 시기, 부동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냈던 많은 동수들이 떠오른다. 그들과 다른 모든 동수들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수련의 노정을 더욱 잘 걷고, 정념을 유지하고 원만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정진하기를 바란다.

발표일자: 2006년 1월 14일
원문일자: 2006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2/31/117640.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14/68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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