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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와 서로 양해하며 주동적으로 대법 일을 감당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자

글 /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월 16일】내가 보게 된 한 문제에 대해 동수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이는 대륙과 해외 모두 존재하는 문제로써 일부 동수들이 대법 일을 한다고 법공부 할 겨를이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이에 대하여 나 개인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대륙에서 이번 사악한 고험이 발생한 후 상당 수의 대륙 수련생들이 사악의 기염에 놀라 두려워하여 아직까지 관망하는 상태에 처해 있는 데, 그러다 보니 정법 형세에서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음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 비록 걸어나온 사람일지라도 마음 씀씀이가 큰 수련생이 있는 반면 작은 수련생도 있어 서로 다르다.

줄곧 곧은 길로 용감하게 앞을 향하는 일부 제자들, 그들이 하는 일의 양이 가장 많으면서도 위험한 일을 계속 하고 있는데,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하지 못하면 그가 곧 무엇을 하는 것이다. 계속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일부 정진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은 그러한 동수들에게서 자신의 차이점을 찾지 못하고 반대로 더욱 동수에게 의지하며 끊임없이 대법 일을 동수에게 밀어놓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정진하는 동수들의 부담이 갈수록 무거워져 법공부할 시간조차 없게 되었다. 대륙의 환경에서 한 대법수련생을 놓고 말할 때 이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가, 그 결과 동수들이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이때 동수들에게 미루기만 했던 수련생들은 번거로움에 부딪힌 동수들을 도우기 위해 무슨 작용을 일으켜야 하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 수련생이 그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간단하게 질책하며 자신은 매일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법공부를 하였다고 과시한다. 이런 때 자신이 동수들의 법공부할 시간을 점유하였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노교소에 돌아온 일부 사람들은 계속 두려워 집에 숨어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어찌하여 이번 마난을 결속짓지 않는가”고 묻는데 아직까지 외재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본질이 변화한 원인을 찾지 않는다. 나는 그런 질문을 들은 당시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러 왔다. 만약 매개 동수 10명이 1000명의 세인을 책임진다면, 매 사람마다 100사람에게 진상을 잘 알리면 족하다. 그러나 만약 오직 한 사람만 진상을 알린다면 1000번을 해야 하고 시간은 물론 길어지게 된다. 만약 이때 그 외 9사람이 매 한사람마다 한 사람이라도 분담한다면 이 동수의 압력은 모두 많이 작아질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정진하는 동수들을 위하여 또 좀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일찍 결속짓기를 바란다면 걸어나와서 적극적으로 대법 일을 하면 된다.”라고 했더니 그 수련생은 찬성하였다.

그리고 일부 수련생들은 다른 동수들과 같이 일하면 그들과 연루될까 걱정하여,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자신의 할 일만 한다. 그런 수련생은 자신의 시간을 아주 잘 배치하여 세 가지 일 모두 적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만족해 한다. 그러다보니 동수들이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경우 그는 그들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며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제자들이 이렇게 몇 년동안 하루같이 대법일을 해냄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움직이지도 않는 그러한 수련생들과 비길 때 무척 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또 자아의 요소가 반영되지 않았는가? 동수들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닌가?

노제자가 신수련생을 이끌어야 하며, 정진하는 제자가 다른 수련생을 이끄는 것은 똑같이 우리 수련 중의 책임이다. 그럼 더욱 주동적인 제자들이 이런 작용을 일으킬 때 이미 자신의 작은 테두리인 그 한 점을 초과하여 감당하고 있는 것이기에, 만약 문제가 나타났다면 우리는 마땅히 차가운 시선으로 방관하면서 동수에게 집착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마땅히 손을 내밀어 구원하거나 혹은 수련생이 사고가 나기 전에 마땅히 이러한 일부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가? 우리는 필경 정체인 것이 아닌가.

일부 수련생들은 수련생이 정말로 아주 고생스러운 것을 보고 함께 참여하기 시작하는데 이 첫 걸음은 물론 아주 좋다. 허나 일을 하는 과정을 자신이 제고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일부 동수들은 자료점의 동수들을 위해 운송하는 일을 분담하지만 자료점을 떠나기만 하면 자신이 남에게 추적당하고 있다고 느껴, 결국에는 사부님의 경문과 명혜주간을 화장실 혹은 쓰레기 더미에 버리고 자신이 재빨리 도망간다. 이런 소중한 대법자료를 이런 곳에 버리는 것이 어떤 죄인지를 먼저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모두 동수들이 자신의 휴식 시간을 희생하면서 고생스럽게 인쇄해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누군가가 추적했다면 당신은 도망가 버렸지만, 나쁜 사람이 이 물건을 보고 자료점을 추적하여 조사했을 경우 자료점의 수련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료를 나르는 사람이 무슨 두려움이 있는가? 정말로 추적당하더라도 이때 만약 동수의 정력과 재력의 헌신을 생각하고, 대법자료를 보호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보호하실 것이다.

정과 사의 대전이 서막을 연 후 베이징은 주요 전장(戰場)으로써 여러분이 평론하는 초점이 되었다. 일부 타지역 동수들은 일부 베이징 수련생들과 접촉한 후 보게 된 일부 심성문제를 말해 주어 베이징 수련생들이 제고되도록 돕고 있다. 그들은 아주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데, 이는 단지 자신이 본 한 개의 국부일 뿐이라 여기고 있으며 전제 베이징 제자를 타격할 뜻은 없다. 이렇듯 이 동수들이 아주 객관적이고 정말로 베이징을 위해 걱정하기 때문에 본질을 볼 수 있었고 말해낸 문제는 바로 베이징에서 존재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일부 동수들은 가능하게 현지에서 괜찮게 행하였기에 자신이 현지에 있을 때 가장 좋다고 여기는 방법과 형식화된 평가 표준으로 베이징의 정황을 가늠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너무나 절대적이면 옳지 않다.”(《전법륜》 ‘질투심’) “어느 한 층차에로 수련된 사람, 그는 다만 그 층차 중에서의 광경을 볼 수 있고 이 층차를 벗어난 진상을 그는 볼 수 없으며 또 믿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전법륜》’천목에 관한 문제’)
이는 모두 우리가 수련 중에 마땅히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정황이다. 우리가 하는 매 한 마디 말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무슨 상처를 입히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동수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하는 것이 과연 베이징에서 정진하는 동수들에게 도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바란다.

타지역에서 온 많은 동수들이 베이징에 와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수들이며, 기타 동수들은 잠시 동안 그래도 현지에 남아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베이징에 대한 가장 좋은 지지이다). 그들은 경찰의 눈밑에서 대법 표어를 인민 대회당을 둘러싸며 한 바퀴 부쳤고, 또 베이징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중에 원래 계속 정진하지 못하고 있던 베이징 수련생들을 이끌었다. 정진하는 베이징 제자들은 그들이 베이징에 준 도움에 아주 고마워하고 베이징 수련생들은 모두 그들의 정념 정행에 감동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베이징의 자료점과 합작하여 함께 일을 할 때, 그들도 그 상황에 직접 처해지게 되자 베이징의 객관적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악의 중심에 서서 빠짐없이 꾸준히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는 베이징 제자들이 이미 가장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일종 초범한 의지 품격을 단련해 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감개하여 말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베이징의 수련생들이 잘 하지 못하여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줄곧 잘해 온 베이징 제자들은 일을 함에 있어서 전면적이고 빈틈이 없으며, 남을 위해 생각하는 마음이 모두 우리보다 훨씬 더 초과하였음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우리는 베이징 제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바로 이렇게 여러분들이 서로 양해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분담하며, 서로 지지한다면, 우리 정체의 힘은 곧 개체의 힘과 더불어 우주를 형성하고 있듯 입체적으로 겹침으로써, 우리는 반드시 사악을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을 형성할 것이다.

정체가 협조하는 방면에서는 해외 제자들이 대륙의 동수들보다 조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여러 사람이 기본적으로 모두 주동적으로 일부 일들을 감당하고 있으며, 일부 동수들은 몇 가지 항목을 모두 다 감당하고 있다. 일부 일에서 여러 사람이 모두 앞다투어 하는데 이렇듯 정연한 정체적 기세는 대륙 수련생들이 잘 배워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 2년 동안 해외의 동수들이 오랫동안 막중한 일을 감당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로한 상태가 나타났고, 일부 수련생들은 힘든 일을 밖으로 미루기 시작하여 개별적으로 대법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 동수들이 더욱더 초과부하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동수들은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잘 수 없으며, 법공부와 연공을 말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생활마저 보장할 길이 없게 되었다. 비록 해외에서는 붙잡히는 정황이 없지만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벗어나면 사악은 틈을 타서 들어오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제자가 대법의 일을 해야 하고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비록 해외 일지라도 계속 이렇게 해 나간다면 동수들은 또 기타 형식의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동수들을 위하여 함께 책임질 수 없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공덕을 쌓는 것이다.” 우리는 수련인이다. 비록 개인수련 단계일지라도 우리는 또 공덕을 쌓음을 말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지금은 정법 수련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동수들은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 긴박감과 대법 일의 중요성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념으로 문제를 보는 수련생은 반드시 돌이켜서 자신의 마음이 대법 일을 어떻게 보는가를 보아야 한다.

일부 수련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있으면 우리 많은 사람들이 모두 쉴 수 있다.” 수련인의 표준으로 가늠하기만 하면 여러분들은 모두 그 속의 문제를 보아낼 수 있다. 더 이상 이런 힘든 일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 수련생들, 당신들은 이때 그 수련생은 무슨 생각인지 아는가? 여러 사람들이 모두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 일들은 또 아주 중요하다. 그가 대법의 일을 자신의 일 앞에 놓았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감당할 수 밖에 없으며 마음 속으로는 아주 어찌할 바를 모른다. 비록 모두들 자신의 임무가 있지만 만약 이때 또 매 한 사람마다 조금이라도 더 한다면, 매 한 사람마다 또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며, 동수의 처지가 많이 좋아져 모두들 함께 법공부도 할 수 있다. 이 속에서는 사실 또 대법이 우리에 대하여 아직도 더 높은 요구가 있음을 체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에 부딪혀 교류할 때 해외의 일부 동수들은 대륙의 정진하는 동수들과 비기면 아직도 부족한 면이 뚜렷이 드러난다. 일부 사람들은 문제를 들었을 때 이 문제가 나타난 것이 아주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일종 방임하는 상태가 되며, 어떤 이들이 서로 이야기는 하지만 역시 일 표면만 공론하고 있다. 일부 동수들은 직접 ‘정념이 부족하다!’란 한마디로 결론을 내려 일을 마무리짓는데 마치 법에서 말하는 것 같지만 실질은 ‘진선인’을 이탈한 것이다.

‘정념이 부족하다’는 비록 법 속의 한 마디이지만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닦는 것이 ‘진선인’으로써 여러분들이 한번 가늠해보라. 수련생이 곤난과 문제에 부딪혀 해결이 필요할 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도대체 일종 타격인가 아니면 도움이겠는가. 만약 자신이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말해내지 못하면 만약 똑같은 일이 자신의 몸에 떨어졌을 때 역시 똑같이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정념이 부족하다’는 실제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가장 사악한 고험을 겪으면서 많은 대륙 제자들은 마난 속에서 청성하고 성숙하게 변하고 있다. 일부 수련생들과 동수들이 교류할 때 기본적으로 모두 법에 서서 인식하는 바, 수련생이 문제를 말한 후 그들의 반응은 즉시 이 일이 법에서 무슨 정황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만약 내가 부딪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법리에서 수련생을 도와 명석하게 분석해 주고 또한 자신이 그 동수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교류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위치를 바로 놓는 문제인 즉, 수련생을 남으로 여기고 차가운 시선으로 방관하면서 자신과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가,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한 개 정체의 일부분으로서 동수의 일이 바로 나의 일이라는 태도를 가지는가 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주 많은 대법 일을 주동적으로 감당한 동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을 아주 존경하고 또한 당신들이 대법을 위하여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래도 여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을 나누고 자신의 원망만 말하지 않으면서 여러분들이 다 함께 제고되면 문제가 없다. 대법을 책임지기 위하여, 수련생을 책임지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자신을 책임지기 위하여 우리 매 한 명의 수련생들이 모두 자신을 다른 사람의 위치에 놓고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여러분들이 모두 조금만 더 주동적이면 우리는 정체적으로 하나의 큰 진보가 있을 것이다.

문장완성:2005년 01월 15일
문장발표:2005년 01월 16일
문장갱신:2005년 01월 16일 01:04:52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6/9358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