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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베이징에서 장(江)을 기소한 두 원고 중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판결을 받다(1)(사진)

【명혜망 2005년 1월3일】(명혜기자 추톈싱[楚天行]보도)2000년 8월(음력 경진년),파룬궁 수련생 두 명이 베이징(北京)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최고검찰원에 기소장을 보내어, 장쩌민, 뤄간, 쩡칭훙이 파룬궁을 불법으로 금지, 탄압하였다고 기소하였다. 이번 기소사건을 지지하는,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을 여러 방면으로 탐문한 결과 명혜기자는 이번 소송장이 등기우편으로 중국고검에 전달된 후 피고 장쩌민과 뤄간이 직접 명령을 내려 원고를 체포했음을 알아냈다. 원고 두 명은 기소장을 부치고 2주 뒤에 베이징에서 체포되었으며, 그 중 베이징 주민 왕제(王杰)는 이미 2001년에 박해로 이미 사망했고, 홍콩주민 주커밍(株柯明)은 비밀리에 5년 판결을 받은 후 톈진차뎬(天津茶淀)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 기소장이 올려진 경과

조사 과정에서 내막을 아는 이가 명혜기자에게 이렇게 증언하였다. 즉 1999년 파룬따파가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박해를 받은 후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계속 베이징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청원하였으며 또한 법률경로와 연합국경로를 통하여 사람들이 파룬궁 진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박해를 제지하려 했다고 한다. 주커밍과 왕제는 더욱이 서점에서 관련 법률 서적을 사서 각자가 나누어 법률조항을 찾아 신고사실과 이유를 적었던바, 2000년 7월 무렵에 고검에 보낼 기소장을 작성했다.

2000년 8월 25일, 주커밍과 왕제는 베이징 창안거리의 한 우체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검찰원에 기소장을 부쳐 장쩌민(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군위 주석), 뤄간(중화인민공화국 국무위원, 정법위 서기), 쩡칭훙(중화인민공화국 중앙정치국 위원, 서기처 서기, 조직부 부장)이 파룬궁을 박해함은 ‘국가명성과 사회도덕을 엄중히 타락시키고 국가체제, 헌법 및 법률을 파괴하였다’고 고발하였다. 2000년 9월 28일 명혜망은 이 기소장을 실은 적이 있었다.

* 원고가 체포된 경과

명혜기자의 파악에 의하면, 9월 7일 기소장이 등기우편으로 나간 2주 뒤 20여 명의 경찰(사복차림)들이 밤 11시 전후에 주커밍과 왕제가 당시 잠시 머물고 있던 거처를 포위하였다고 한다. 그 때 두 사람은 모두 현장에 있었는데 주커밍은 이미 예전에 베이징 옌산석유화학공사에서 외무 이사 등으로 임직할 때 단서가 드러나 추적되었으며 주요 체포대상이 되어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하였던 주커밍은 경찰이 갑자기 “당신이 주커밍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경찰에 의해 그 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왕제와 같은 이름은 베이징에 수 천 명이 달하여 본래 경찰은 기소장에 적은 이름이 어느 “왕제”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왕제가 그 당시 역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아울러 경찰이 이름을 물었을 때 왕제가 마찬가지로 대답하였기에 왕제도 그 자리에서 잡혀갔다.

조사에 의하면 주커밍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은 베이징 하이뎬구와 팡산구에서 왔으며 하이뎬경찰 중에 부국장급도 한 명 있었다.

* 왕제의 조우

주커밍과 왕제 두 사람은 9월 7일 체포된 후 더는 소식이 없었다. 그들의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던 파룬궁 수련생들과 친구들이 각종 경로를 통해 탐문하며 알게 된 것은, 두 사람은 ‘장쩌민과 뤄간이 직접 잡은 것이고’, ’어떠한 사람도 물어보거나 내막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주커밍과 왕제는 체포된 후 심문도 없이 오로지 혹독하게 구타당하고 혹형을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결코 굴하지 않았다. 중국 공민으로서 왕제가 당한 박해는 더욱 참혹하였다.

2000년 11월30일 베이징시 중서의결합병원이 왕제(병안호53791)에게 내린 《진단증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0년 11월 24일부터 2000년 11월30일 까지 입원 치료하였으며 모두 7일간이다. 퇴원 진단 : 만성 신장기능불완전, 만성신소구신염’ 이 때 왕제의 체중은 체포될 때의 70Kg에서 50Kg으로 감소되어 있었다.

2000년 11월30일,왕제의 친척이 통지를 받고 왕제를 ‘보석 치료’시켰다. 내막을 아는 사람의 소개에 의하면 그 당시 왕제는 이미 완전히 의식이 없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하루 건너 신장을 한 번씩 세척해야 했다고 한다. 기자가 다른 한 병원의 영수증을 보니 2000년 11월 30일부터 12월 16일까지 왕제는 수도의과대학 부속 베이징우의병원에서 16일간 입원하였고(입원번호 430027)이고 비용결산은 9806.98위안이었다. 그 중 상당 부분이 신장 투석에 쓰였다.

왕제가 베이징우의병원에 있던 기간, 경찰은 날마다 병원을 감시하였고 왕제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또한 입을 열어 말하지도 못하였다. 후에 경찰은 가족이 집에 데려가서 한약으로 치료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조건은 ‘후심(候審 : 심문 조사를 기다림)’ 인즉 왕제의 신체가 호전되면 다시 잡아가서 계속 박해하려는 것이었다.

왕제가 집에 돌아온 후 신체가 다소 호전되었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더욱이 걷지 못하였다. 가족들은 그에게 안에서 무슨 고생을 하였는가를 물으면 왕제는 대답하지 않고 오로지 눈물만 흘렸다.

2001년 4월 중순 왕제는 한 양심적인 인물의 도움으로 해외로 나올 수 있었다. 같은 해 5월 2일, 한 수련생은 왕제가 정상적인 기억을 상실하는 증세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호흡 곤란이 있었고, 신체는 극도로 허약하여 기타 수련인들과 같이 연공하고 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부 해외 수련생들이 다른 대법제자들이 박해당한 명혜문장과, 미륵불이 고달프게 수행했던 이야기를 읽어주며 왕제를 격려하였다 어느날 왕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런 박해를 저는 모두 받았습니다.” 문장에는 대법제자가 악경에 의해 물을 주입당하고 담배로 지지고 얼음에 얼리고 구타당하는 것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의 한 목격자가 기자에게 알려주기를, 왕제의 발목 근처는 뼈가 드러나 있었는데 상처가 아주 오래 지나서야 겨우 나았다고 한다.

왕제는 경찰이 가장 잘 사용한 한 가지 혹형이 바로 물건으로 사람을 둘둘 말아 놓은 후 혹독하게 때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이렇게 때리고 나면 외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 온 후 왕제는 전에 곁에 있는 한 수련생에게 이렇게 물었다. “침전물 동굴을 알죠. 침전물 동굴이란 형벌도 나는 모두 당했습니다” 그 수련생이 “당신을 때릴 때 조금이라도 두려워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본래 말수가 아주 적은 왕제는 이 말을 듣고서 즉시 눈을 크게 뜨더니, “가능하겠습니까!”(뜻은 근본 두렵지 않음)라고 하였다.

친구가 왕제에게 전에 이렇게 물었다. “왕제, 당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할 때가 어떤 때였습니까?” 왕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경찰이 무릎으로 나의 신장을 찍을 때입니다.” 왕제는 팡산구치소에 잡혀 들어간 후 매일마다 혹독한 매질을 당하였다. 경찰은 장쩌민과 뤄간의 명령을 받고서 심문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그를 혹독하게 때렸다. 바로 악경이 무릎으로 왕제의 신장을 심하게 찍은 후 왕제는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응급치료를 받고서 비로소 깨어났다.

마지막 나날에 왕제는 식은 땀을 흘리고 피를 토하였는데 가끔은 밥을 한 두 술 뜨면 피가 1,2 미터 멀리 뿜어져 나왔으며 토해낸 피는 토마토 주스와 같았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이 한 단락 정황을 회억하면서 말하기를, 의학상에서 이는 중추신경이 손상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였다. 왕제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져 있어서 밤에 잠을 잘 때는 호흡이 곤란하여 천천히 속옷을 풀어야 했으며, 속옷 바지의 고무밴드가 주는 그 미약한 압력마저 감소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는 줄곧 묵묵하고 단호하게 고통을 감수했다. 한 번은 과거 수련인들이 수난을 당한 이야기를 읽을 때 왕제는 기껏해야 이 몸을 그들에게(박해자를 가리킴) 줘버린다고 말하였다. 여기까지 말하자 그 당시 왕제와 교류할 기회가 있었던 한 수련생은 후회하며 말했다. “그 당시 나 자신도 잘 몰랐었는데, 마땅히 그에게 높은 곳에 서서 박해를 주동적으로 부정하며, 결코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해야 했을 것입니다.”

2001년 6월 18일 깊은 밤, 왕제는 화장실의 바닥에 쓰러져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38세였다.
(계속)

문장완성:2005년 01월 01일
문장발표:2005년 01월 03일
문장갱신:2005년 01월 03일 02:00:01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3/9270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