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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주의 대법 인연(1)——우간다:진상의 힘(사진)

글 / 아프리카 홍법팀

【명혜망 2004년 11월28일】우간다에서 국회 빌딩 앞의 수위가 우리의 전단지를 받아 보더니 곧바로 웃었다.”파룬궁! 파룬궁이 우간다에 왔네! 당신들은 아십니까? 저는 파룬궁을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 박해와 관련된 많은 정황들을 나는 모두 사이트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 제가 당신들을 도와 드릴게요… …”

2004년 6월28일 남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우리는 남아프리카 및 기타 아프리카 국가에 가서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월 26일부터 11월 8일 2주 동안 우간다에서 홍법한 여정을 통하여 우리들은 아프리카 중생들의 대법에 대한 기다림과 바람을 체험하였고, 대법의 홍대함과 자비를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 저명한 호텔 사장— 당신들이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월 26일 우간다에 도착하여 해야 할 첫번째 일이 바로 연공장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수도 캄팔라에서 우리는 한 바퀴 돌면서 현지의 어느 한 저명한 국제 호텔 앞의 공원이 비교적 이상적임을 발견하였다. 들은바에 의하면 그곳은 캄팔라에서 유일하게 조용하고 우아하며 관리가 아주 잘된 공원이었다. 공원 밖에는 큰 잔디가 있었고 또한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우리는 호텔 사장을 찾아가서 이 공원에 연공장을 건립하는 일을 상의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은 호텔 공공 관계부의 지배인이었고 우간다 현지의 여자였다. 우리는 그녀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설명하였다. 그녀는 아주 감동하고 고무가 되었는데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자신이 직접 가서 사장한테 말씀드리겠다고 하였다. 몇 시간 뒤 그녀는 우리에게 전화를 주었다. 그녀는 사장이 이전에 파룬궁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표시하며 당신들이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공원의 관리권은 우리 호텔에 속하므로 우리는 당신들이 수시로 오는 것을 환영하며 얼마나 오래 사용해도 다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우간다에 온 이튿날 연공장을 건립하였다.

그 호텔의 공관부 지배인은 또 기왕 이 곳에 연공장을 건립하면 당신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을 희망할 것이므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매스컴을 요청하여 당신들을 인터뷰하게 하여 그들이 당신들을 도와 광범위하게 광고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하였다. 잇달아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매스컴에 전화를 걸었고 연락처를 우리에게 주었다.

*기자의 인터뷰를 받다

그녀가 요청한 모든 매스컴들이 왔고 연속적으로 보도하였다. 주요한 신문사 두 곳과 주간신문 한 곳, 그리고 현지에서 가장 큰 텔레비전 방송국이자 비영리 텔레비전 방송국이었다. 그 중 우간다 라디오 방송국은 각각 영문과 현지 언어로 파룬궁 연공장의 연공, 법공부 시간을 알람식으로 방송하였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기자는 진상VCD를 본 후 아주 흥분하여 연속으로 특별히 연공장에 와서 현지에서 법공부하고 연공을 배우는 수련생들과 우리를 인터뷰하였다. 아울러 뉴스를 보도하는 것 외에 파룬궁 진상에 관한 심도 있는 특별보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 연공장이 신속하게 성장하다

매스컴과 접촉하여 연공장 개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우리는 또 수 천장의 홍법 전단지를 배포하였다.
연공장의 첫날엔 비록 우리만이 그곳에서 연공하였지만 공원에 와서 놀고 휴식하는 많은 현지 민중들이 주위에서 흥미있게 구경하였다. 이튿날 현지 사람 3명이 들어왔다. 이 세 명은 지금까지 매일 그 곳에서 연공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2명은 이미 그 연공장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에 전단지를 가진 사람, 텔레비젼을 보거나 라디오를 들은 많은 현지 시람들도 계속 우리의 연공 행렬에 참석하였다. 사람이 많을 때는 8,9 명이고 심지어 20 명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무료로 공을 가르치기 때문에 들어왔지만 진정으로 그들이 남도록 한 것은 대법의 신기함이었다.

현지에서 작은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사장은 파룬궁의 공법에 대해 아주 흥미를 느꼈고 그는 직접 연공에 참석한 후 돌아가서 그의 수하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불러내어 그들이 연공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하고 연공장을 알려주었다.

리차드라고 부르는 한 남자아이는 우리의 연공장에 들어올 때 에너지를 느꼈다. 이어서 그는 주동적으로 우리의 연공이 끝난 후 진행하는 법공부, 발정념에 참가하였다. 그는 아주 감동했다고 말하며 이것이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것이었다고 했다. “당신들은 왜 4, 5년 전에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일찍이 법을 만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말해 주었다. ” 늦은 것이 아니에요. 소년은 현재 우간다에서 첫번째로 법공부 하는 사람이잖아요. 소중히 여기세요.” 그는,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저는 아주 자부심을 느낍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 연공하는 시간에 공법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곧바로 주동적으로 가서 가르쳤다. 현지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 연공장의 그들은 곧 주동적으로 통역에 나섰다. 모두들 아주 빠르게 협조적이고도 원용된 모임을 형성하였다.

* 대학에서의 인연 있는 사람

현지의 유명한 한 대학에서 홍법할 때 우리는 대학 법학과의 한 집행 주임 교수를 만났다. 우리가 파룬따파 수련자임을 들었을 때 그는 아주 격동하는 것이 마치 몇 해 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는 몇 해 전에 아일랜드에서 공부할 때 현지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접촉한 적이 있었으며 《전법륜》을 읽었다고 하였다. 그는 우간다에서 또 다시 파룬궁을 접하게 된 것을 아주 신기해 하였다. 그는 이것이 자신과 대법의 연분이라고 믿었다. 대학 법학과 학생들에게는 인권 교과과정이 있는데 이 교수는 그 중의 한 강의실에서 파룬궁을 소개하였다. 수업에서 반응은 아주 열렬하였고 수업이 끝난 후 현지의 한 학생이 남아서 파룬궁 수련생이 될 수 있는가를 물어왔다.

* 우간다의 중국 여자와 중국 대사관

어느 한 호텔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홍법을 하던 중, 말수가 적은 어느 중국 여자 한 명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우리에게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한 장을 주면서 우리에게 시간이 있을 때 연락을 꼭 부탁한다고 하였다.

이틀 후쯤 우리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고 어느 한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녀를 만나게 되자 그녀는 특별히 감격을 하는 듯이 보였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타향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만나니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2일 동안 그녀는 내내 울었다.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랴오닝 사람이고 여동생의 일가족 모두 파룬궁 수련생이었다. 그러나 지나간 5년 동안 그녀의 여동생 온 가족이 아주 비참하게 박해를 당하였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든지 반드시 중국을 벗어나기로 결정하였고, 아울러 자신의 생활이 안정된 후 아직도 고난 속에 있는 여동생에게서 아이라도 데려와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우간다에 온 후 자신마저 아직껏 생활고에 몸부림치다 보니 여동생의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기약이 없게 되었다. 그녀는 내심에서 아주 비참해하며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당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아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는 아직도 수 천만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의 가정이 여전히 그와 똑같이 처참한 처지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장쩌민이 공산당을 이용하여 발동한 인간성이 말살된 이번 박해는 수 억 명에 달하는 가족 구성원을 해친 것이기 때문에 이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박해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전 지구에서 20여 개가 넘는 국가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장과 그의 공범자들을 기소하고 국제법정에서 장쩌민을 공개 심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원인이며, 아울러 장을 심판하라는 외침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까닭인 것이다. 그 외 우리는 또 그녀에게 해외에는 파룬궁 수련생 가족을 구원하는 조직이 있으며 우리는 모든 방법을 찾아서 이 조직과 그녀를 연결시켜 그녀 여동생의 아이를 구원하는 일을 도울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여자는 또 울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파룬궁을 배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물론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법륜》한 권을 빌려주어 그녀에게 먼저 보라고 일러주었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우리를 찾아와서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하려고 하였다.

이 중국 여자와의 만남으로 인해 우리는 중국 대사관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직도 기만당하고 있는 중국인 근무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게 되었다. 중국 대사관에 도착하여 우리는 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한 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얼마 안 되어 일등 서기관이 걸어오더니 딱딱한 어투로 물었다. “당신들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한 여 수련생이 아주 평온하게 우리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말하고, 파룬궁이 국내에서 박해당하는 진상을 설명하였다. 그녀는 그 일등 서기관에게 박해는 장쩌민의 독재 명령이지 중국인의 결정이 아니라고 말했다. 뜻밖에 일등 서기관은 듣고서 곧바로 아주 경직되어 뻣뻣이 일어서더니 수위에게, “이들을 내보내시오.”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도망치듯이 달려나갔는데 아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자리에 함께 있던 백인 수련생은 중국 대사관 공무원의 표현에 대해 아주 불가사의해 하였고 또한 아주 가련하다고 느꼈다.

* 국회빌딩의 수위— 나는 파룬궁을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간다 국회 빌딩 앞의 수위가 우리의 전단지를 받아 보더니 곧바로 웃었다. “파룬궁! 파룬궁이 우간다에 왔네! 수련생이 물어보았다. “당신은 파룬궁을 알고 있나요?”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파룬궁을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박해와 관련된 많은 정황들을 나는 모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도와드릴게요.” 이어서 그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빠른 방법으로 아주 짧은 시간동안 관련된 정부부문을 찾는지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또 캄팔라의 모든 도서관에 파룬궁의 서적을 증정하였는데 대학 도서관과 시 중심 도서관 등을 포함하였다. 도서관 관리자는 아주 기뻐하였다.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더 많은 책을 가져가지 못한 것이었다.

* 후기

2주동안의 시간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우간다를 떠나기 전에 우리는 다시 그 호텔을 찾아가 지배인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며 그가 대법에 보내준 지지와 도움에 감사를 표현했다.

우리는 우간다 국가가 비록 국민 생활이 아주 가난하지만 그들의 신념에 대한 추구는 아주 경건하고 정성스러웠으며, 서로 간에 아주 너그럽게 인내함을 느꼈다. 우리는 대법의 도래가 사람들 내심 깊은 곳에서 대법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켰음을 보았다. 우리는 법을 얻은 우간다 국민들에게 모두 밝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임을 믿으며 또한 진심으로 축원하였다!

문장완성:2004년 11월 27일
문장발표:2004년 11월 28일
문장갱신:2004년 11월 28일 18:16:47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28/9021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