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법수련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사명을 잘 완성할 수 있다. (2)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1월 19일】(앞문장에 이어집니다)

2. 가정의 교란을 받고 있는 대법제자

이 몇 년 간의 박해 속에서 사악의 교란은 여러 방면으로부터 오고 있다. 일부분 대법제자들은 가정에서의 교란이 매우 큰데 집에서 정정당당하게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진상을 알리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기타 법을 실증하는 일들은 더구나 곤란하다. 이것은 개인의 제고와 중생을 구도하는데 엄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대법제자들이 이렇듯 교란을 받고있는 것은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상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다. 그들은 흔히 이런 교란을 개인수련시기의 관과 난으로 보고 있으며 사람이 사람에 대한 교란으로,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보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교란들은 단지 개인수련만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니며 낡은 세력이 대법제자들이 소업으로 제고할 것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배치한 대법에 대한 박해이며,낡은 세력이 흑수와 썩은 귀신들을 이용하여 교란을 함으로써 그들이 위사(爲私)한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꼭 이면에 대해 청성(淸醒)하게 인식해야 한다. 낡은 세력은 바로 대법제자들이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이 면에서 틈을 타고 들어오며 그들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마난‘속에 처해있게 한다. 만약 능히 정법수련의 각도에서 이런 교란을 본다면 이러한 교란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 사람 자체가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신(神)을 교란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배후의 사악한 요소이다.

며칠 전에 한 여자 대법제자가 쓴 심득체험을 보았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대법책을 읽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혹독하게 때리고 욕했다고 했다. 이렇게 때리고 욕하자 그녀는 “당신이 나를 때려 죽인다고 해도 나는 대법을 배울 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개인수련으로 보았을 적에는 법에 대해 확실히 매우 견정하지만, 그러나 정법수련의 각도에서 본다면 역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다. 이렇듯 법에 대하여 파괴하는 것을 대법제자 개인에 대한 박해로 여겨 소극적으로 감당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며, 적극적으로 그것에 대해 부정해 버리지 않았다.

우리 한 번 분석해 보자. 7.20 이전에는 그녀의 남편이 왜 지금처럼 그렇게 흉악하지 않았는가? 그의 태도가 이런 변화를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사악의 선전을 믿고 좋지 않은 것들을 머리에 부어 넣었기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그의 이러한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완전히 배후의 사악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교란을 제거하여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로 가야 하는가? 먼저 우리 자신이 무엇을 내려놓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찾아야 하며, 이런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확실히 아직도 일부 사람의 마음과 집착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중에 닦아버려야 한다. 낡은 세력은 우리들에게 아직까지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는 틈을 타고 들어오기 때문에, 일에 부딪히면 자기를 수련하고 반드시 자기에게서 찾아야 하며 개인수련 시기이거나 아니면 정법수련 시기이거나를 막론하고 우리들은 반드시 이 점을 잘해야 한다.

자신을 제고하고 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근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꼭 청성하게 인식해야 하는데 우리들이 비록 아직까지 제거해 버리지 못한 것이 있지만, 그러나 이 버리지 못한 것 때문에 절대로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우리들을 박해하는 구실로 삼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야 한다. 얻어맞고 욕을 먹으며 감옥에 감금되고 심지어 박해로 치사하는 이런 사악한 방식은 절대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낡은 세력이 한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이 일체를 승인하시지 않으며 우리 역시 이러한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비록 험난하고 간고(艱苦)하지만 그러나 꼭 위대하고 신성하며 또한 위엄이 있는 것이다.

배후에서 진정으로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사악한 요소에 대해서는 견정하게 제거해야 하며, 철저히 그것들을 소멸시켜야 하며 낡은 세력의 이런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어떠한 사악도 우리를 고험할 자격이 없으며, 사람은 더구나 우리를 때리고 욕할 자격이 없다. 대법제자는 위엄이 있는 것이다. 미래 새로운 우주의 신(神)이 어찌 마음대로 사악의 교란을 받을 수 있으며 어찌 마음대로 사람한테 매를 맞고 욕을 먹을 수 있는가? 오직 우리들이 정법의 각도에서 이 모든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자신을 완전히 법속에 용해시키고, 자신을 대법정체의 한 입자로 여기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위엄을 나타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배후에 당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부님과 우주 중의 바른 요소이며 그 무궁한 바른(正) 역량은 당신의 정기(正氣)를 급증시킬 것이며 어떠한 바르지 못한 것들도 당신의 공간마당 내에서 연기가 사라지듯이 없어질 것이다. 그 사악이 감히 당신을 박해할 수 있겠는가? 집에서의 교란이 아직까지 남아 있겠는가? 그저 그것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긴다면 법을 실증하는 정체적 형세에서 당신은 외톨이로 될 것이며 낡은 세력은 곧 바로 틈을 타고 들어와 당신을 박해할 것이다.

발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함과 동시에 꼭 표면에서 교란 작용을 하고 있는 친인(親人)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좀 더 세심하고 인내성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명백한 일면이 능히 진정으로 자신을 주재하여 구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낡은 세력이 이미 철저히 제거되고 흑수와 썩은 귀신들이 대량으로 소멸된 상황에서 거짓말은 금방 드러난다. 오직 우리들이 견정하게 발정념을 잘하고 진상을 잘하면 집안의 교란을 제거할 수 있으며 환경을 개변하고 집안의 친인들도 구도할 수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말한다면 낡은 세력이 이렇게 배치한 목적은 가능하게 우리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우리들이 위덕을 쌓는 동시에 그것들이 구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승인하시지 않으며 사부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대법을 교란하지 말 것을 요구하시며 모든 것을 선해하실 수 있다. 우리들이 오직 낡은 세력의 이런 배치를 타파하고 교란하고 있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야 만 비로소 우리들을 교란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태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이런 하나의 사례가 있다. 한 총각이 법을 얻기 전에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두 사람 사이가 매우 좋았다. 총각이 법을 얻은 후 여자 친구는 비록 대법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두려움이 있어 그가 수련하는 것을 갖은 방법으로 방해했다. 두 사람은 이 일로 인하여 늘 모순이 생겼으며 총각의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일에 엄중하게 영향을 받았다. 총각은 대법에 매우 견정했으며 법리도 매우 명석했다. 그는 정(情)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사상투쟁을 거친 다음 마지막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일년이 지난 후에 여자 친구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매우 행복하게 지냈으며 총각도 교란이 없는 상황에서 갈수록 정진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매우 많은 일들과 대법을 실증하는 일들을 했다. 이 여자의 출현은 아마 낡은 세력의 배치일 수 있으며 배치한 목적은 총각에게 있는 정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낡은 세력은 개인의 원만을 첫째로 보고있다. 그러나 총각은 정념이 매우 강했기에 낡은 세력의 이런 배치를 부정했으며 사부님께서는 그들에게 각자 다른 인생의 길을 선택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장래 법정인간시기에 이 여자는 낡은 세력에게 이용당해 정법을 교란하여 도태될 위험에서 벗어났는데 이것은 제일 좋은 선해이며 또한 그녀에 대한 진정한 선이며 이것이 또한 낡은 세력에 대한 가장 철저하고 전반적인 부정이다.

3.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수련생

7.20 이후에 일부분 수련생들이 집에 숨어 있으면서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러저러한 구실로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덮어버리고 있다. 그저 대법에서 좋은 점을 얻으려고만 하고 대법을 위해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으며 대법과 대법제자들이 박해를 받고 있을 적에 과감히 나서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지 못한다. 표면상에서는 책을 보고 있지만 실제상 진정으로 사람 속에서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도 속이면서 자신이 진수(眞修)한다고 여기고 있다. 실지로는 심성과 오성이 너무도 차한 것이다.

이런 수련은 완전히 낡은 세력의 배치를 돌파하지 못한 개인수련이며 이것은 정법이 승인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수련을 잘한다고 해도 정법수련 이 한 단계가 없으면 그저 공든 탑이 무너진 것 과도 같은 것이다. 또 일부분 사람들도 역시 정법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자신의 앞길과 이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전제 하에서 ‘하는 김에’ 따라 하고 있으며 일단 자신의 실제 이익에 영향이 미치면 그만둔다. 그러면서 다른 대법제자들에게 자기도 정법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정법의 요구에 비하면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사부님께서는 이러한 수련생들을 상대로 전문적으로 한편의 경문 『역시 방할하다』를 쓰셨다. 바라건대 이런 동수들이 능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무님의 경문을 많이 읽으며 정진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고 따라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일부분 대법제자들은 표현됨이 때로는 좋아졌다가 나빠졌다 하는데 정진하다가 또 정진하지 못한다. 내 생각에는 제일 주요한 것이 아직도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못한데 있다고 본다. 자기 수련에 대한 목표가 명확치 못하고 뚜렷하지 못하여 하다말다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는 태도를 취하고있다. 이러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 잘하자면 먼저 주관적으로 강렬하게 자신을 제고하려고 생각해야 하며 잘 하려는 염원이 있어야 하며 생활에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시간이 있을 적에 책을 많이 보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이것 외에도 환경의 영향이 매우 관건인데 상호 비교가 없으면 쉽게 나태해지며 쉽게 자만하며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못할 적에는 또 자신을 속인과 혼동해 버린다. 이것은 일상적인 교류가 필요하며 상호간에 촉진하고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정체적으로 정진해야한다.

또 하나의 상황은 어떤 대법제자들은 책을 매우 적게 보며 또한 보아도 머리속에 들어가지 않으며 자신의 변화도 크지않고 사람의 고유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 매우 느리다. 그들 자신도 매우 고민하고 있는데 잘하려고 하는 마음은 여러 사람들에게 모두가 있다. 잘하려고 하자면 내 생각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며 자신의 문제가 필경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정법수련 시기와 7.20 이전의 개인수련 시기는 다르다. 단순히 법을 배우기 위해서 법을 읽거나 제고를 위해 제고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은 모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과 연계되어 있으며 잘하지 못하거나 혹은 반복이 나타나는 대법제자들은 이 면에서 인식이 명확하지 못하거나 사부님의 후기 정법시기 수련에 관한 설법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피동적으로 접수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얼 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지’ 라고만 한다면 이것은 내심으로부터 법에 내포된 함의에 대해 명백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들을 잘 하여 그 속에 용해된다면 내가 보기에는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4. 감옥에서 나온 일부 대법제자

박해가 시작된 초기에는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굽은 길을 많이 걸었다. 그러다보니 인위적으로 많은 불필요한 손실들을 조성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중(重)하게 맞을수록, 박해를 감당한 것이 많을수록 수련이 더 잘된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것은 완전히 정법수련에 내포된 함의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부 노교소에서 금방 나온 대법제자들은 이지적이지 못하며, 사악에 타협하지 않았기에 이른바 견정하다고 득의양양하며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하고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 우리의 길은 사실상 매우 좁으며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정법의 길을 강 위의 외나무 다리에 비교한다면 낡은 세력이 배치한 개인수련의 길은 바로 다리 아래의 강이다. 정진하는 대법제자들은 외나무 다리에서 온건하게 전진하고 있지만 정진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대법제자들은 늘 앞을 내다보고 뒤를 고려하며 좌우로 흔들리는데,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강에 떨어지게 되며 급류속에서 허덕이다가 간신히 안간힘을 다 써서야 겨우 목숨을 건져 기어 올라온다. 올라 온 후에도 근본적으로 자신이 강물 속에 떨어진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득의양양해 하면서 “봐라 이렇게 깊고 물살이 센 강에 빠졌어도 나오지 않았는가! 당신이 빠졌으면 능히 올라올 수 있는가?………”라고 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잘했다면 근본적으로 강물에 떨어질 수 없으며, 정정당당하게 한 대법제자들이 떨어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사악의 박해를 감당하라고 오게 하셨겠는가? 물속에서 당신이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역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고 있으며 대법을 실증할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하게 된다. 이런 경향이 있는 대법제자들은 응당 사부님의 후기 정법수련에 대한 설법을 많이 보아야 하며 정법수련의 내포를 빨리 이해해야 하며 개인수련의 틀속에서 뛰쳐나와 정법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계속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정법수련의 각도에서 부딪힌 문제들을 대하지 않는다면 가능하게 또다시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제기된 어느 한 상황이거나 어느 한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다면 모두 법공부를 잘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모든 것은 책속에 있으며 모든 것이 법 중에 있는데 법공부를 잘한다면 자연히 모든 것이 명백해 질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많은 대법제자들은 법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적지않게 하고 있지만 관건은 요령을 잘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형식에 지나쳐 버린다.

법공부를 할 때에는 반드시 마음이 조용해야 하며 마음으로 책속의 매 한 글자 매 한구절을 ‘보아야’ 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 속에 용해되어야만 법의 무궁하게 내포된 함의가 끊임없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며 법공부도 자연히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눈으로, 감각으로 보면서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 법공부를 하나의 임무이자 부담으로 여긴다면 이러면 당연히 법을 잘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법공부 외에 대법제자 사이의 교류도 능히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충하며, 서로 보충하며 서로 독촉하는 것도 우리들이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이다. 한 사람의 생각은 한 점을 대표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응결시키면 그것은 한 면이며, 이것이 바로 정체적인 제고이며 정체적인 승화이다. 7.20 이후에 전반형세의 변화에 따라 국내의 대법제자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할 기회가 적어졌는데 명혜망의 출현은 우리에게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명혜 문장을 읽는 것은 이미 우리의 수련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되었다. 기왕의 경험으로 보아 우리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명혜문장을 보거나 아니면 직접 교류를 하거나 반드시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는 말이 있다.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문장을 읽어야 하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 한 말의 내포를 체험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의 것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참조해야 하며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찾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자신의 결점을 보아야 하며, 자신을 제고하려는 강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집착을 제거하려는 염원이 있어야만이 우리들은 비로소 자신의 부족점을 찾을 수 있으며 비로소 부단히 진보할 수 있다.

만약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능히 정법수련의 각도에서 부딪힌 문제들을 대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들이 법을 실증하는 길은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어떤 깨달음은 아직 성숙되지 못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환영한다.

문장완성 : 2004년 11월 16일
문장발표 : 2004년 11월 19일
문장갱신 : 2004년 11월 19일 02:15:48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19/895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