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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인내할 필요성에 대한 논평

글 / 중국대륙 대법 수련생 칭수이

[명혜망]
인간 세상에 참을성이 더 있다면, 비극은 적어질 것이다. 수련생들 간에 참을성이 더 있다면, 손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련생들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참을성이 없다면, 자비심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명혜망]에서 읽은 한 기사를 기억한다, 강제로 함께 집을 떠나야 했던 두 수련생이 나중에 파를 먹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로 서로 모순을 일으켰다. 결국에 그들은 헤어져야했다. 만약 그들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일어났던 한 사건은 나로 하여금 참음의 중요성을 보게 해주었다. 수련생 A와 B (결혼을 하지 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같이 살게 되었고, 애정관계로 발전이 되어 수련생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적시에 이를 만회했다.

그 당시, 사부님께서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를 발표하시고, 거기서 지적하셨다,

“이렇게 말하자. 내가 방금 전에 말한 바로 대법제자 신분에 면목이 없는 일을 한 그런 모든 사람들은 당신들은 가장 좋기로는 자신이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라. 이렇게 하면 당신들의 아주 많은 것을 없애 버릴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 자신들로 하여금 결심을 아주 단단히 먹게 할 수 있다.”

수련생 A는 사부님의 말씀을 따랐고 그의 지역 수련생들에게 그의 남녀관계를 말했다. 기대에 어긋나게, 이것은 마치 하나의 돌이 천 개의 파문을 일으킨 꼴이 되었다. 대부분 수련생들의 반응은 비난, 짓궂음, 불평과 혐오를 동반했으며 단 몇 명만이 이 두 수련생이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가능한 빨리 이를 만회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아직도 미래에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련생 A는 후회와 동수들로부터의 불평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는 너무 큰 압력을 느끼게 되어 고향을 떠나야했다. 나중에 그가 다시 나를 보았을 때, 그는 내게 그에게 일어났던 것을 말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이 잘못이었단 말인가?” 속인들에게도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이것을 시정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속담이 있다. 왜 수련생들은 이 수련생이 그의 잘못을 시정하는 기회를 줄 수 없었는가?

또한 많은 수련생은 체포된 동수들을 구출하는 데 상관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많은 단점과 집착심, 그리고 그들이 이면 또는 저면, 등등에서 잘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참음과 자비심을 지니고 있지 않다.

수련생들 사이에서든 또는 수련생들과 속인들과의 사이에서든, 우리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강물에 빠진 한 사람을 보는 것과 똑같다: 당신은 그를 잡아당길 것인가 아니면 한 발자국 더 떠밀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인간 관념을 버리고 대법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아야한다.

다른 사람의 과거의 품행이 좋지 않음에 머물러 있지 말고, 대신 그들에게 그들 잘못을 시정할 기회를 주어야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 자신에게 참음과 자비심을 발달시키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장발표: 2004년 8월 26일
문장완성: 2004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생관점]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8/14/81708.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8/26/517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