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에는 지기 싫어하고 사납게 다투며 이기적이고 냉담했다. 수련 후에는 남을 배려하고 남을 선하게 대하며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으니, 정말 환골탈태한 변화였다.
1. 둘째 아주버니와의 원한에 마침표를 찍다
남편에게는 형이 둘 있다. 둘째 아주버니는 이치가 통하지 않고 공짜를 몹시 좋아하며 말도 유난히 듣기 거북하게 하는 사람인데 시어머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남편과 결혼한 뒤 시부모님과 앞뜰 뒤뜰에 살며 함께 식사했고 보통 아침밥은 내가 했다. 내가 한 음식은 그다지 맛이 없어서 정성껏 해도 영 맛이 나지 않았다. 둘째 아주버니는 거의 매일 시어머니 집에 와서 아침을 먹었고 때론 저녁도 먹으러 왔지만 물건 하나 사 온 적이 없고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연금이 조금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없었다. 먹고 마시고 쓰는 비용은 대부분 우리가 냈는데도 둘째 아주버니는 늘 “나는 너희 걸 먹는 게 아니라 부모님 걸 먹는 거야”라고 말했다.
둘째 아주버니는 매일 운전해 돈도 벌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이도 많고 노후 보장도 없잖니. 지금 운전으로 돈을 버니 매달 내게 용돈 좀 다오. 많이 줄 것도 없고 한 달에 30위안, 하루에 1위안이면 된다.” 둘째 아주버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다. “매일 와서 밥을 먹으니 식비도 좀 내야 하지 않겠니.” 그러자 둘째 아주버니가 말했다. “이 바보(나를 가리킴)가 한 밥이 너무 맛없는데 식비는 무슨 식비예요. 우리집에는 닭도 있고 생선도 있어요. 먹기 싫어서 그렇지, 우리집 밥은 상하면 그냥 버려요. 내가 여기 와서 먹는 건 두 분의 체면을 세워 주는 거예요.” 시어머니는 화가 나서 어서 가라고 내쫓았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고 마음속으로 원망만 했다. ‘이게 무슨 사람이야. 한 푼도 안 내고 매일 와서 밥을 먹으면서 당신 집 생선이며 고기를 우리에게 가져다준 적도 없잖아. 게다가 와 달라고 청한 사람도 없는데. 맛이 없어도 누군가는 해야지. 맛있게 할 수 있으면 당신이 하든가. 이 노력을 알아주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으며 부모님 용돈 1위안도 안 내면서 여기서 우리 화를 돋우네. 날더러 바보라니 내가 당신 것을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아닌데 내가 바보든 아니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나는 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다툴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어 화를 내면 혈압이 오르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실까 봐 걱정됐다. 감히 다투지도 못한 것은 그가 이치가 안 통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온 가족의 화목을 해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모두 의견을 모았다. 둘째 아주버니를 건드리지 말고 무슨 말을 하든 다들 듣기만 하며 상대하지 말고 화를 덜 내자고 했다.
나는 매일 꾸준히 법공부를 했고 둘째 아주버니에 대한 원망심도 점점 옅어졌다. 둘째 아주버니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번 돈을 고스란히 둘째 형님 손에 넘기고 돈 쓸 일이 있어도 하나도 꺼내 쓰지 못하니 사람마다 다 어려움이 있는 법이다. 이후 둘째 아주버니가 듣기 거북한 말을 하면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어쩌다 내가 한 음식이 맛있으면 둘째 아주버니가 한마디 했다. “오늘 음식은 사람이 한 것 같네.” 가끔 내가 일부러 “오늘은 맛있어요?” 하고 물으면 둘째 아주버니는 “맛있을 때가 어디 있어?”라고 했다.
둘째 아주버니는 돈을 빌리면 거의 갚지 않았다. 시누이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았는데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몰래 대신 갚아주었다. 시어머니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아서 내 돈으로 시어머니에게 갚아드렸다. 한번은 둘째 아주버니가 시아버지에게 200위안을 빌려 마작을 하러 가며 다음 날 갚겠다고 했는데 끝내 갚지 않았다. 설날에 시아버지가 이 일이 떠올라 화가 나서 마구 욕을 하셨다. “해마다 그 녀석 돈 한 푼 구경도 못 한다. 내 돈을 빌리고도 갚지를 않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른 돈을 꺼내 시아버지께 가져다드렸고 시아버지는 화를 푸셨다. 시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또 네가 주었구나.” 나는 “설날인데 아버님 기분 상하시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또 한번은 둘째 아주버니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상점에 옷을 사러 갔는데 시아버지 옷은 사지 못하고 시아버지 돈으로 자기 구두를 한 켤레 샀다. 돌아와서 시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 며칠 동안 둘째 아주버니를 욕하셨다. 나중에 내가 둘째 아주버니 대신 돈을 시아버지에게 드리고서야 시아버지는 화가 풀리셨다.
꾸준히 법공부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 심성도 점점 높아졌다. ‘진선인(眞·善·忍)’은 입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고 해내야 진정한 수련인이다. 나는 더는 둘째 아주버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자주 이렇게 생각했다. ‘수련에는 우연이 없다. 어쩌면 예전에 둘째 아주버니에게 빚을 졌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둘째 아주버니가 내가 수련의 고비를 넘도록 돕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둘째 아주버니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 수련 과정에서 심성을 높이도록 도와주고 내 수련에 심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 것이니까.’
꼬박 20년간 나는 둘째 아주버니에게 ‘바보’라고 불렸다. 이 20년 동안 나와 둘째 아주버니는 매일 연속극을 찍는 것 같았다. 하루에 한 편씩 줄거리는 그대로고 대사도 거의 그대로였으며 변한 것은 내 마음과 심성이었다. 20년이 지나 둘째 아주버니는 더는 집에 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원한이 원만하게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은 내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수련 후 누가 관리하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우러나 스스로를 바꾸고 스스로 잘하려 했다. 이것이 파룬따파의 위력이고 수련인의 복이며 내 가족들의 복이기도 하다.
2. 가족들이 날 지지하다
수련 전후의 큰 변화를 보고 가족들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됐고 나를 반대하다가 지지하게 됐으며 나아가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 한번은 경찰이 어머니 집에 와서 나를 납치하려 했는데 어머니는 그때 몹시 무서웠지만 지혜롭게 경찰을 붙잡아 두어 내가 제때 빠져나갈 수 있게 했다. 시댁의 대가족은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 맞서 이치를 따지며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번 나를 보호해 사악한 박해를 면하게 해 줬다.
내가 세 번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할 때 남편은 아무 원망이 없었고 오히려 진리를 지키는 아내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새 옷과 새 신발을 사 주며 자기 체면을 구기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도 남편은 자주 말한다. “봐, 당신은 언제든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은 건 뭐든 하잖아. 나는 간섭하지 않고 번 돈은 당신이 쓰게 하고 있어. 우리집에 아무 일도 없고 아이는 신경 쓸 필요 없고 돈은 많지 않아도 먹고 입는 걱정은 없으니 당신은 만족해야 해.” 나는 “정말 만족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수련 잘해. 내가 힘이 돼 줄게”라고 말했다.
이 몇 해 동안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나는 고난을 하나하나 넘었고 온갖 시험을 견뎌 냈다. 가족들은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믿는다.
3. 시누이가 대법에서 이로움을 얻다
시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독한 사람으로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고 성격이 몹시 사나워 표정을 바꾸는 것이 책장 넘기는 것보다 빨랐다. 마작을 좋아했는데 한번은 마작방에서 누군가와 말다툼이 나자 의자를 휘둘러 그 사람을 내리쳤고 이어 주방으로 달려가 식칼을 찾았다. 방 안 사람들이 힘껏 말려서야 시누이가 멈췄고 말다툼했던 그 사람은 벌써 놀라 달아난 뒤였다. 그 뒤로 아무도 감히 시누이를 건드리지 못했다.
시누이는 결혼하고 얼마 안 돼 남편과 싸웠는데 탁자와 의자, 식칼이 함께 날아다녔다. 나중에 남편이 외도해서 7개월 된 아들을 안고 이혼했다. 이혼 뒤에는 시어머니와 동쪽 방 서쪽 방에 나뉘어 살았고 우리와는 앞뜰 뒤뜰이라 대가족이 모두 한 마당에서 살았다. 전남편이 아이 양육비를 줬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도 계속 끊기지 않았다.
내가 수련한 뒤 시누이는 내 변화를 보고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대법서적을 읽었고 진상도 어느 정도 알아서 일찍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 중공의 공청단과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했다. 시누이는 깨달음이 좋아 성격도 서서히 변했다.
시누이에게는 장점이 하나 있는데, 이치를 따지고 진리를 지키는 데 용감하며 인과응보를 믿는다는 것이다. 파룬따파가 좋다고 믿었고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는 기간에는 늘 지혜롭게 나를 보호했다. 파출소와 공안분국 사람들이 뒤에서 모두 말했다. “○○○(나를 가리킴) 집에는 가면 안 돼. 그 집 시누이가 너무 세. 법도 알고 손도 쓰거든.”
시누이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하나 있었는데, 점이 아주 잘 맞는다는 사람이 시누이가 47세까지만 산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 시누이는 더는 연연하지 않고 올해 이미 57세가 됐다. 시누이 스스로 말하기를 “10년을 더 살았으니 만족해”라고 했다. 나는 시누이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대법제자를 자주 보호했으니 복이 있어요. 이미 중공 조직에서 탈퇴했고 대법의 보호가 있으니 아가씨의 목숨은 대법이 안배해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세요.”
시누이는 지금 성격이 아주 좋고 재물도 부족하지 않다. 아들은 이미 결혼했고 아들과 며느리 모두 각자 먹고살 기술이 있으며 100제곱미터짜리 상가도 하나 얻었다.
지난해 우리 지역에서 판자촌 개조가 있었는데 시누이는 전남편 쪽에 땅이 한 필지 있었다. 시누이의 전남편은 줄곧 철거 보상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계속 철거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철거사무소가 강제 철거를 결정했다. 어느 날 아침 철거사무소 직원들이 집행 부서 사람 수십 명을 데리고 시누이 전남편 집으로 강제 철거를 하러 갔다. 시누이는 전남편의 전화를 받고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남편 집으로 갔다.
시누이가 전남편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전남편이 차를 몰고 미친 듯이 강제 철거 인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시누이는 뜻하지 않게 전남편의 차에 치여 마당의 개집 옆으로 쓰러졌다. 그 안에는 큰 개 네 마리가 있었다. 시누이는 쓰러져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큰 개 한 마리에게 오른쪽 허벅지 윗부분을 세 번이나 물렸다. 정신을 차린 시누이가 주먹으로 개 머리를 죽기 살기로 마구 때리자 개가 입을 놓았지만 개 발톱이 시누이의 목과 뒤통수를 할퀴어 상처를 냈다.
이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져 전남편과 주위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며느리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차를 몰아 시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강제 철거 인파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모두 달아났다. 시누이의 전남편도 침착함을 되찾았고 그제야 뒤늦게 겁이 났다. 전남편은 시누이의 성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싸울 때 시누이는 닥치는 대로 던져서 집 안의 솥과 그릇, 식칼이 모두 날아다녔다. 이번에는 큰 화를 불렀다는 것을 알았고 철거 인원은 겁나지 않아도 시누이는 두려워했다.
시누이는 그때 개에게 물리고도 아픈 줄 몰랐는데 병원에 도착해 외래 진료실에서 의사가 상처를 보고 간호사에게 상처 부위를 씻으라고 지시했다. 핀셋으로 살가죽을 집어 올리고 솜뭉치에 소독액을 묻혀 조금씩 상처를 정리해야 봉합할 수 있었다. 약을 바를 때 아프다고 느낀 시누이는 줄곧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다.
그때 진료받는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에게 물린 사람들이었다. 많은 환자가 간호사가 상처를 처리하는 동안 몹시 아파했고 어떤 여성은 아파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시누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줄곧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기 때문에 상처의 통증을 견딜 수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시누이가 강인하다고 칭찬하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고 했다. 시누이가 잘 협조한 덕에 의사와 간호사는 상처를 아주 깨끗하게 처리해 줬다. 의사가 시누이에게 말했다. “주사를 5번 맞아야 하고 한 달 안에 마쳐야 합니다. 매일 소독해야 하고 상처에 고름과 피가 더는 나지 않아야 꿰맬 수 있습니다.”
시누이는 집에 돌아온 뒤 밤에 잘 때 상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살이 당기듯 아파서 도무지 잠들 수 없었고 시누이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한 번 또 한 번 쉬지 않고 외웠다. 한밤이 지난 뒤에야 잠들었다. 이후에도 상처는 여전히 아팠지만 견딜 수 있게 됐다.
큰시누이가 돌아와 시누이를 돌봤는데 시누이가 겪은 고통을 보고 몹시 가슴 아파하며 날마다 전 제부를 욕했다. 하지만 시누이는 아주 평온했고 언니에게 화내지 말라고 달랬다. 두 사람은 매일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거즈를 갈았다. 15일째 되던 날 간호사가 시누이의 상처에 이미 피와 진물이 없는 것을 보고 의사에게 말했다. “꿰매도 되겠죠? 안에 이미 진물이 없어요.” 의사가 와서 살펴보고 시누이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살이 너무 잘 붙었어요. 안에서 이미 새살이 돋기 시작해서 아예 꿰맬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상처가 심해 보였어요. 어쨌든 큰 개에게 물렸으니까요. 지금 보니 가장 운이 좋은 환자입니다. 소독도 하지 않아도 되고 꿰매지 않아도 되니 남은 주사 2번만 맞으면 괜찮습니다.”
나중에 내가 시누이를 보러 가자 시누이가 내게 말했다. “새언니,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했어요. 이번 일로 저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많은 일을 깨닫고 마음을 열게 됐어요. 제 성질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때 얼마나 아팠든 칼을 찾아 그 개를 찔러 죽였을 거예요. 찔러 죽이고도 끝나지 않고 몇 번 더 찔러야 분이 풀렸을 거고요. 그러고 나서 전남편과도 끝장을 봤을 거예요. 그 사람을 편하게 두지 않고 고통이 어떤 맛인지 보여 줬겠지요. 지금은 이해했어요. 대법서적에서 늘 ‘업력윤보(業力輪報)’를 말하는데 저는 전생에 그 개에게 빚을 졌고 이번 생에 갚은 거라고 믿어요. 전남편과도 정이 끊어질 때가 됐고 원망도 끝날 때가 된 거예요.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아요. 그 사람도 쉽지 않잖아요. 지금 아이도 결혼했고 전남편도 재혼했으니 앞으로 저희는 완전히 끊어질 거예요. 지금은 인생을 완전히 담담하게 봐요. 평생이 이런 거죠. 선악에 보응이 있고 인과 윤회가 있으니 목숨만 붙어 있으면 돼요. 따지지 않아요.”
“다행히 코로나 이후에 새언니가 늙은 T(전남편을 가리킴)에게 삼퇴를 하게 해 주셔서 이번에 그 사람도 복을 받았어요. 만약 그때 그 사람이 친 게 제가 아니라 강제 철거하러 온 사람이었다면 저희에게 상가며 철거 보상금이 어디 있겠어요. 어떤 결과가 됐을지 몰라요. 대법의 보호에 감사해요. 이것도 불행 중 다행이죠. 만약 그때 개가 문 곳이 제 얼굴과 목이었다면 저는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개가 조금만 빗나가 아랫도리를 물었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요. 지금은 꽤 만족해요. 저와 이 개의 원한도 끝났고 제가 조금 고생하고 고통받은 것도 큰일은 아니에요. 병원에 갈 때 철거사무소에서 택시비와 의료비를 일부 줬고 제가 든 상해보험에서도 일부를 환급해 줘서 저는 한 푼도 안 쓰고 조금 남기까지 했어요. 이건 정말 대법 덕분이에요! 선한 마음에 선한 보답이 있네요!”
시누이의 말을 듣고 나는 뜻밖이라고 느꼈지만 뜻밖이 아니기도 했다. 왜일까? 뜻밖인 것은 시누이가 예전과 딴사람이 됐기 때문이고, 뜻밖이 아닌 것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선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이상이 나와 가족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분이 즐겁고 선량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5/51480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15/51480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