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선 대법제자입니다. 20년이 넘는 사악한 박해 속에서 현지 사악한 공안과 610(파룬궁 탄압 기구) 직원에게 불법으로 형사구류를 세 번 당했고, 7년형을 불법 선고받았습니다.
1. 고난 속에서 확고하다
2001년, 현지 구치소에서 사악은 제게 자백을 강요하며 제멋대로 때리고 욕하며 모욕, 협박하고 가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수단이 극한에 달할 정도로 잔인해 저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생명이 위독해져 여러 차례 쇼크를 일으켰으나 구사일생했습니다. 원래 몸무게 65kg이었던 제가 검은 소굴에서 걸어 나올 때는 25kg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악인은 “병원에서 죽게 놔둬!”라고 말했습니다.
병이 위중한 상황에서도 임금 지급이 중단돼 생활 자금이 끊겼고, 10대인 제 아이는 길거리를 떠돌았습니다.
처음 불법 납치돼 1개월간 형사구류 처분을 받았을 때 저는 이성적으로 사악을 대했고, 한마디 자백 없이 구치소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악질 일행 몇 명이 갑자기 제 사무실에 불법적으로 들이닥쳐 수색을 벌였고 강제로 대법서적을 빼앗아 갔습니다. 또 강제로 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밀어 넣고는 우리집으로 데려가 밖에서 떠돌다 갓 집에 돌아온 남편 수련생을 불법 납치했습니다. 불법 가택수색으로 대법서적을 빼앗고 덤으로 우리집 자동차와 포장도 뜯지 않은 복사기 한 대, 일부 생활용품과 현금까지 가져갔습니다.
정보과(政保科)에 도착하자 그들은 흉악한 본색을 드러내 우리를 각각 따로 감금했습니다. 심문이 아니라 잔혹한 고문과 모욕, 욕설을 가하며 수갑으로 난방기에 묶어 쪼그려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큰 나무 몽둥이를 겨드랑이 사이로 찔러 넣고 팔과 어깨를 힘껏 비틀었습니다. 아파서 기절하면 찬물을 뿌려 깨웠습니다. 우리가 대답을 거부하자 이틀 밤낮으로 비인간적인 고문과 가혹한 심문을 가한 뒤 현지 구치소로 불법 송치해 형사구류 처분을 내렸습니다.
어느 날 오전 8시경, 정보과 부과장과 경찰 한 명이 저를 심문했습니다. 제가 심문실에 들어서자마자 부과장은 두말할 것 없이 달려들어 따귀를 때렸습니다. 제가 어지러워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때린 뒤에야 손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때리는 건 피곤하니까 방식을 바꿔 혼내주지! 네가 아무리 입을 굳게 다물어도 입을 열게 만들어 주마!” 이어서 저를 벽 밑으로 끌고 가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머리 위로 넘겨 목 뒤에 두게 한 다음 제 몸을 눌러 바닥에 쪼그려 앉혔습니다. 1m가 넘는 큰 나무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수갑 찬 손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는데 고통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당시는 7월의 무더운 여름이라 저는 민소매 상의와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기록을 담당하던 다른 경찰은 득의양양하게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깡패들을 때리면 2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죽거나 불구가 되는데, 너 같은 나약한 여자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먼저 자신이 대법제자이기에 사악은 사부님의 제자를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으로 쉼 없이 외웠습니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홍음-위덕(威德)]
이렇게 큰 몽둥이가 한 대 한 대 빗방울처럼 제 몸에 떨어졌지만 저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그 악질 경찰이 다시 “계속 연마할 거야?”라고 물었을 때, 저는 “연마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죽어도 고집을 피우네. 죽더라도 분명히 알고 죽게 해주지. 내가 널 꼭 때리려는 게 아니라 너희 내부 사람들이 다 너에 대해 증언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른바 ‘조서’라며 서류 한 무더기를 꺼내 보여줬지만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당당한 정부 기관 관리가 공산당 밥을 먹고 공산당 돈을 받으면서 공산당을 반대하다니!” “내일 ○○시 구치소로 보낼 거야. 거긴 파룬궁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으니까 거기서 널 죽게 만들어도 아무도 상관 안 할 거다!” 그렇게 그들은 미친 듯이 하루 종일 괴롭히고 나서야(점심시간에는 휴식) 손을 멈췄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내일 얘를 ○○ 구치소로 보내서 거기서 죽게 만들어!”라고 말했습니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감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감방 안의 한 여자가 자신도 오후에 심문을 받았는데 바로 제 옆방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돌아와 감방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는 정말 대단해. 물어도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얇은 벽 너머로 경찰이 때리고 욕하는 소리만 들려서 난 무서워서 울었어….”
2. 진상을 분명히 알리며 선을 권하다
이튿날 오전, 그들은 저를 ○○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이전에도 저는 이 구치소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행태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잔혹한 정도가 머리카락이 쭈뼛해질 정도였습니다. 이곳의 식사는 형편없었습니다. 찐빵은 70% 정도만 익었고 그 위에는 죽은 파리가 있었으며, 여기에 파리가 들어간 가지탕이 더해져 저는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 먹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원래 몸에 잘 맞던 바지가 허리에서 흘러내렸습니다. 이 감방의 감방장은 아동 유괴 및 매매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죄수였는데 늘 대법제자를 신고했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수련생들의 단식을 보고하는 바람에 수련생 몇 명이 철창에 갇혔고, 수액을 맞지 않으면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당했습니다. 가증스러운 감방장은 “그들이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 ○○가 먹지 못하게 한 겁니다”라고 보고까지 했습니다.
평소 아침 식사 후 줄을 서서 번호를 외쳐야 했는데, 이날은 9시가 넘어 경찰이 저를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나가 보니 구치소 정·부소장과 지도원이 있었고 경찰 몇 명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파랗게 질린 얼굴로 큰 적수를 맞이한 듯 서 있었는데 소장이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습니다. “이 큰 족쇄는 남자 감방에만 준비된 게 아니라 널 위한 것도 한 세트 있어!”
문제가 생겼으니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평온한 심정으로 “여러분을 위해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이 큰 족쇄를 채울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갑과 족쇄는 사형수에게 채우는 겁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연마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기 때문에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저한테 이걸 채우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3반(三反), 5반(五反), 문화대혁명에서부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무려 2시간 가까이 진상을 알렸고, 그들 각자의 표정도 변하며 조금씩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때 제1부소장이 “미안해요. 모두 오해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도원은 경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빨리 족쇄 치워!”라고 말했습니다. 소장은 체면을 차리며 “앞으로 지켜보겠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들어가라고 손짓했습니다. 수련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제 손을 잡고 “무서웠어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무서울 게 뭐 있어요. 제가 죄를 안 지었는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한번은 구치소에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지장을 찍게 했는데, 저는 단호히 협조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제가 범죄를 안 저질렀으니 지장을 찍을 수 없습니다. 이건 원칙 문제입니다. 제가 지장을 찍으면 사악의 편에 서는 것과 같고, 그러면 당신들 죄가 더 커집니다….” 감방 안 사람들은 작은 마당의 쇠창살을 붙잡은 채 바라보고 들으며 걱정했습니다. 이 일을 담당한 경찰 역시 부소장으로 여성이었으며 우리 감방을 담당하는 감옥경찰이었습니다. 그녀는 줄곧 저를 매우 불친절하게 대했고 감방장의 험담을 믿고 수시로 감방을 기습 수색했는데, 목적은 우리 경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주 저를 ‘파룬’이라고 불렀는데 저는 이번이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마지막에 그 부소장은 화가 풀렸을 뿐만 아니라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돌아가서 파룬을 돌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그 부소장이 다시는 저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더는 대법을 배척하지 않게 됐음을 뜻했고 저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기뻤습니다.
저는 진상을 모르는 우리 감방 사람들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해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난 후 늘 저를 괴롭히던 사람이 평소와 달리 저를 친절하게 대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정말 수련을 잘하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침 5시에 잠에서 깨 구들에 앉아 있다가 제 진신(眞身)이 작은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큰 보살의 형상이었고 아주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놀랍고도 기뻤는데 큰 보살이 순식간에 아주 높이 자라 작은 마당 지붕의 철근 망을 뚫고 나갔고, 그녀는 깜짝 놀라 구치소에서 저를 벌할까 봐 제 이름을 불렀는데 그렇게 부르자 큰 보살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연화(演化)해 내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주도하에 적지 않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와 몇몇 수련생이 사부님의 ‘홍음’을 한 수 한 수 써서 그들에게 배우고 외우도록 가르쳤는데 경찰은 알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그 감방장도 그때부터 사람을 해칠 명분을 잃었고, 다시 저를 고자질하려 하자 감옥경찰은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네 속이 바늘구멍만 해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3. 정념으로 마의 소굴에서 벗어나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기 위해 모두 구치소에 가고, 노동 개조를 당하고, 판결을 받아야만 비로소 가장 좋은 수련이라고 말한다. 수련생들이여, 이런 것이 아니다. 걸어 나와 각종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은 위대한 행위지만, 절대로 사악에 잡혀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걸어 나온 수련생들이 청원(上訪)하는 중에 또 죄 없이 잡혀가고, 구속당하고, 노동 개조 당하고, 판결받은 모든 수련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는가?”(정진요지2-이성)
이 단락의 사부님 설법을 읽고 마음이 활짝 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오랜 시간 밥을 먹지 않아 이미 피골이 상접했지만,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발정념(發正念)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당일 점심 저는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고 배가 아파 온몸에 땀을 흘렸으며 몇 사람이 눌러도 진정되지 않아 ‘120(구급차)’을 불렀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오장육부의 각종 수치가 모두 기준 미달이었고 특히 심장과 신장에 심각한 병증이 나타나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구치소로 돌아오는 길에 구치소 간부가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 몸은 이미 병보석 조건에 부합하니 돌아가면 즉시 현지에 연락해 최대한 빨리 데려가라고 하겠소. 우리는 당신을 여기 잠시도 더 붙잡아 두지 않겠소.”
사흘 뒤 제가 현지 구치소로 돌아왔을 때,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체중이 몇십 kg도 되지 않았고 사람 몰골이 아니었지만 현지 공안, 검찰, 법원과 610은 여전히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전부 사부님께 맡겼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열흘 후 구치소 의사가 와서 보더니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안 갑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당신이 안 간다고 안 가? 뼈만 남아서 기껏해야 25kg도 안 될 텐데 한 사람이 병아리 들듯 들어 올릴 수 있어!”라고 말하고 나갔습니다. 잠시 후 남자 감방에서 뚱뚱하고 건장한 젊은이 두 명을 데려와 “그녀를 밖의 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라고 했고, 두 젊은이는 별생각 없이 각자 이부자리 양쪽 끝을 잡고 들어 올려 가려고 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들이 온 힘을 다했지만 누워있는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경찰이 “몇십 kg을 못 든다는 게 말이 돼?!”라며 가세했지만 세 사람도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또 몇 사람을 불러와 한 명씩 다닥다닥 붙어 아주 힘겹게 저를 차에 실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제가 협조하지 않아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저를 다시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여전히 물 한 모금, 밥 한 톨 넘기지 못해 몸이 더욱 허약해졌고 자주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틀렸어. 몰골이 다 변했는데도 안 풀어주네.” “지금 풀어준대도 집에 살아서 도착하면 다행이지.” 온갖 말이 다 들려왔습니다.
다음 날 새벽, 사람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몸이 가벼워져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제 원신(元神)은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관공서 건물 책임자의 사무실에도 가서 그에게 “내가 집에 가야 하니 오늘 8시까지 답을 줘요!”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왔지만 저는 감방 지붕에 내려앉아 아래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오전 6시로 막 기상할 시간이었습니다. 두 수련생이 아주 다급하게 손으로 제 몸을 흔들며 끊임없이 제 이름을 부르고, 주변에도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너도나도 소리치며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조급해하는 것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면 내가 안 죽었다는 걸 그들이 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껏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몸이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사고는 아주 또렷해 그들이 말하고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전혀 듣지 못해 마치 제가 말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20여 명의 여성이 어떤 이는 감옥경찰을 부르고 어떤 이는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 감방 스피커에서 “여자 감방은 얼른 내부를 정리하라. 잠시 후 간부들이 시찰하러 올 것이다…”라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마침내 멈췄고 그들은 재빨리 내부를 정리한 뒤 바닥에 있던 저를 들어 구들 위로 올렸습니다.
모든 정리가 끝나자 610, 공안국, 정법위 등 일행 몇 명이 왔는데 모두 몹시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머리를 안쪽으로 하고 누워있자 그들은 제 발치에 서서 수련생에게 저를 부축해 앉히게 한 다음 갑자기 손을 놓게 하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시켰습니다. 그들은 손을 놓자마자 제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꾸민 것이 아님을 확인한 뒤에야 안심하고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제 부모님을 찾아가 “당신네 딸이 너무 버릇없이 자라서 고생을 조금도 못 견디고 자살하려 합니다”라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한편 구치소 측은 숨이 넘어갈 듯한 저를 위해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수속을 밟았지만 저를 집으로 보내지 않고 곧바로 현지 현(縣)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이는 바로 그들이 말한 “구치소에서 죽게 하지도 말고, 집에서 죽게 하지도 말고, 병원에서 죽게 만들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배한 것은 제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현 병원에서 저는 그들의 검사나 치료에 협조하지 않았고 의사도 감히 강제로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미 숨을 헐떡거리자 자칫 잘못해 생명에 지장을 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평소처럼 처방을 내렸고 매일 새 수액으로 바꿨습니다. 또한 현 610과 직장에서 매일 사람을 파견해 저를 감시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당신들이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 감시하는데, 내가 도망갈까 봐 두려운 거예요, 아니면 죽을까 봐 두려운 거예요?”라고 묻자 그는 “둘 다 두렵지. 위에서 회의할 때 당신이 도망갈까 봐 두렵고, 죽을까 봐 두렵다고 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전해요. 난 도망가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요! 첫째, 여기가 바로 내 집이고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아 당당한데 왜 도망을 가요? 둘째, 난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어요. 신이 죽는 거 본 적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병원의 약물 치료에 협조하지 않자 과 주임은 제게 권고했습니다. “병원 약물 치료에 협조하지 않으면 이러저러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 제 신체 상황을 여러분이 얼마나 확실하게 고칠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먼저 예를 하나 들죠. 몇 달 전 여기에 당신과 비슷한 나이의 환자가 왔는데 그녀도 신부전이었어요. 그녀는 혼자 걸어서 입원했지만 사흘 만에 사망했어요. 제가 치료에 협조하라고 권하는 것도 부모님이 후회하지 않도록 하려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임님 관심에 감사드려요. 의사의 마음이 부모 마음과 같으니 저는 주임님이 좋은 사람이라 믿고 반드시 제가 좋아지기를 바라실 거라 생각해요. 만약 지금 저한테 건강을 회복할 방법이 있다면 저를 돕고 지지해 주실 건가요?”라고 묻자 그는 “그야 당연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5개월 전만 해도 전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단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이유로 형사구류 처분을 받고 장기간 감금됐어요. 제 몸은 그들의 가혹한 심문과 자백 강요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 법에는 파룬궁 연마가 불법이라고 명시돼 있지 않아요. 이건 장쩌민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초유의 억울한 사건이고 정치적 사건입니다. 만약 제가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면 훗날 책임 추궁할 때 당신한테도 책임이 있어요. 지금 저를 내보내는 게 최선의 선택입니다. 우리 사부님은 제 건강을 회복시킬 능력을 갖고 계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로 병원에서는 다시 제게 수액을 걸지 않았습니다. 과 주임의 강력한 요구로 며칠 후 사악은 부모님에게 사람을 데려가라고 통보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친척과 친구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저를 보고 원래 모습이 사라졌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괜찮아. 사부님께서 계시니 뼈 한 줌만 남아도 살아날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형세가 아무리 준엄하고 사악이 아무리 창궐하며 수련의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저는 굳건히 걸어 나갈 것입니다! 구세력의 안배를 따를 수 없으며 바로 이 사악한 곳에서 제가 구해야 할 중생을 구할 것입니다! 수련 속에서 감히 나태해질 수 없으며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고 대법에 맡기려 합니다. 신의 상태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잘해낼 것입니다. 법공부를 다그치며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사람을 구하는 큰 흐름 속에 하루빨리 녹아들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정념으로 마의 소굴을 빠져나온 작은 체득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이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4/51542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14/515429.html






